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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4화 〉다크 엘프, 그리고 검사(3) (264/341)



〈 264화 〉다크 엘프, 그리고 검사(3)

자신의 수업을 따라오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체르는 만족할  있었다. 제국의 똑똑한 아이들을 모아놓았다고 해서 기대하고 있었는데, 죄다 학점의 노예일 뿐이고 공부를 하는 녀석은 없었는데. 마레이의 모습을 보아하니 점수보다는 공부에 집중하는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뭐, 이런 모습이 마음에 들어서 제자로 삼은 걸까. 이론이 아니라 마법을 가르쳐보았으면 좋았을 텐데. 조금 아쉬울 따름이었다.

“이 부분… 일리엔 교수님 수업 때 들었던 거랑 유사한데….”

그렇지만 조금 사회성이 부족했다. 아니, 아직 모르는 걸까. 자신은 별로 신경 쓰지 않는 타입이지만, 오만한 교수들이 워낙 많다 보니 수업 중에 다른 교수를 언급하는  일종의 불문율이었지만 이 아이는 모르는  같았다.

“마법이라는  기본적으로 수용(受容)과 변환 과정을 따르니까 비슷한 부분일 확률이 높아.  부분은 유사한 게 아니라 같은 작용이야. 마법이라는 건 하나의 뿌리로 시작했으니까. 자, 여길 보면...”

자신이 그런 걸 일일이 교정해줄 필요는 없었다. 뭐, 다른 교수들이 싫어한다면 자신이 가르치면 될 뿐이었다. 생각보다 소질이 있는 것처럼 보이고, 일리엔이 받아들일 정도라면 훌륭한 인재일 확률이 높았다.

“이드리엔 교수님의 해석에 따르면….”
“그래, 그렇게 해석하는 게 옳지. 잠깐. 이드리엔? 이드리엔 크사크루? 일리엔 교수의 쌍둥이 동생?”
“아, 네.”

고개를 끄덕이는 소년의 모습에 이체르는 멍하니 소년을 보았다.

“그 성격 나쁜….. 아니, 아니. 그러고 보니. 일리엔 교수님의 제자인데, 이드리엔 교수 수업을 들을  있어?”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어리둥절한 소년의 모습에 이체르 발렌타인은 크게 한숨을 토해냈다. 학생 앞에서 한숨을 토해내는 건 지양해야 했지만, 이건 아니었다. 참을 수가 없었다라는 말이 정확했다.

“....이드리엔 교수에게 일리엔 교수의 제자가 되었다는  말하지 마. 알겠지?”
“네? 그게 왜요.”

이건 얼마나 천만다행인가. 이드리엔이 보이는 그 묘한 소유욕과 집착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일리엔이 자신의 제자에게 동생을 조심하라고 말했을 리 없었다. 자신도 이드리엔이  일리엔에게 그렇게까지 끈적한 애정을 보이고 있는지 이해하고 있지 못하는데, 이걸 소년에게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그냥, 일리엔 교수가 제자를 받는 걸 별로 안 좋아해. 이드리엔 교수가.”

분명 소년을 납득시킬 수는 없는 말이었다. 하지만 따로 뭐라고 말할 수가 없는 게, 두 사람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이체르 발렌타인도 이드리엔의 행동이 이해가  될 때가 종종 있었으니까…..

이런 비논리적인 말로 소년을 설득할 수가...

“이드리엔 교수님이요? 오히려 좋아하시던데….?”
“뭐?”

 성격 더러운 년이? 목 끝까지 터져 나오는 비명 섞인 외침을 이체르는 간신히 삼켜냈다. 그리고 눈앞의 소년을 다시 보았다. 아니, 다시 보기 위해서 꼼꼼히 살펴보았다. 1학년이라고 했나. 조금 몸집이 작은 남자아이였다. 귀염성이 있는 얼굴이었고, 조금 여리여리해서 아직은 여자아이 같아 보이기도 했다.

그래, 이 정도는 이드리엔이 용인할 수도 있을지도 몰랐다. 2차 성징도 오지 않은  같은 작은 소년에게 성질을 부릴 정도로 나쁜 년은. 아니, 충분히 부릴 사람인데. 이체르는 미간을 찌푸리고 소년을 보았다. 두 엘프가 공통적으로 마음에 들어 할 부분이 있지 않을까 몇 번이나 훑어보았지만, 딱히 알 수 있는 게 없었다. 단지, 귀엽다라는 건  알겠다.


“신기한 일이네…. 일리엔 교수님이 제자로 들인 것도… 이드리엔 교수가 좋아하시는 것도...”
“아하하….”

이체르에게 이드리엔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졌다. 예전에는 목을 조르고 협박하던 무서운 엘프였지만, 지금은 애정을 갈구하면서도 자극적인 플레이를 해달라 조르고 매달리는 애욕으로 가득한 엘프로 변한 이드리엔의 이미지에 마레이는 곤란한 듯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마레이를 보면서, 혹시 마법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니? 라고 묻고 싶은 이체르였지만 그걸 직접 물어볼 정도로 자신이 무신경한 사람은 아니었다.

“뭐, 사적인 이야기는 다음에 하도록 하고. 케이크도 많이 남았으니까. 일단, 지금페이지에 적힌 저주술에 대해서 보자면….”

그리고 시간도. 이체르의 말에 마레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쉬는 시간 종이 이제 막 치고 있었다. 중간에 쉬는 시간을 가진  사람이었기에 수업은 계속 이어졌다.

과거의 흑마법, 저주, 기타 비주류 마법들를 하나로 뭉쳐 놓은  현재의 흑마법이었다. 개론인데도 마레이가 공부하는 원소마법과 백마법 개론을 합쳐놓은 것보다 두  이상의 두께에 마레이가 수 있는 일은 죽어라 필기를 하는 것뿐이었다.

이체르의 수업은 듣기에는 즐거웠지만, 공부하기에는 두려울 정도로 어마어마한 분량의 페이지가 쓱쓱 지나가고 있었다. 첫날 만났던 학생이 경고한 것처럼, 다른 학생들이 수업을 피하는 이유는 분명히 있었다.

분량은 많았지만, 헛으로 넘어가는 건 하나도 없었다. 책을 읽어주는 것도 아니라 본인의 생각과 주석을 매 페이지에 두세 줄씩 남기는 것은 기본이었다. 방금전 지나쳤던 내용을 복기하거나, 저 앞에 있는 내용을 끌어와 설명하는  듣다 보면 마레이는 필기하는 것만으로도 한계라는 걸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마치 책을 전부 외우고 있는 것처럼, 수업할 내용을 그냥 암기한 것처럼 자연스럽게 쭉쭉 밀고 나가는 진도에 숨을  없었다.

“종이 쳤으니, 20분간 휴식이야~! 아니, 이게 아니라.. 흠흠.. 휴식이다.”

이체르의 말에 마레이는 펜을 놓아버리고 곧장 책장에 엎어져 버렸다. 버틸 수 있을까. 한심한 생각이 이어졌다. 오늘 하루 나간 분량만 해도 정신이 없을 정도인데, 이걸 제대로 공부해서 시험을  수 있을까. 걱정부터 앞섰다. 아니, 시험을 보려고 수업을 듣는 게 아닌데. 망치면 다시 공부하면 되는데. 왜 이상한 생각이 드는 것인지.

편협한 생각이었다. 속에서 숨의 덩어리가 맴도는 것 같았다. 몸을 일으켜 억지로 몸을 비틀며 스트레칭을 하자 역한 욕심과 함께 숨이 토해진다.

“힘들지?”

이체르는 웃고 있는 것 같았다. 여전히 로브 속에는 희미한 윤곽만 보일 뿐이었다. 그녀는 기뻐한다기보다는 자조하는 것 같았다. 마레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고싶은 질문이 산더미 같았다.

“다들 힘들 거라고 했는데, 제 능력을 과신한 것 같아요. 으으… 머리가 따끈따끈해서...”

이체르는 작게 웃음소리를 내며 마저 남은 케이크를 꺼냈다. 이드리엔은 두 사람이 먹을 양이라고 하면서  쉬는 시간마다 두 조각 이상, 그러니까 커다란 종이봉투 한가득 케이크를 두고 가 버렸다.

이체르 발렌타인은 무척 좋아하는 눈치였지만, 아무리 맛있는 조각 케이크도 매 시간마다 두 개씩 먹어 치워야 한다면 마레이에게는 조금 괴로운 일이었다. 어릴 적부터  습관이 음식을 남기는  허락하지 않았다.

“아, 저는 배부르고 점심 약속이 있어서 더 드실래요?”

마레이는 자신 앞에 배당된 케이크를 이체르에게 권유했다. 그래도 필리아랑 점심 약속이 있는데, 여기서 케이크를 쉴 새 없이 먹었다가는, 깨작깨작 점심을 먹을 테고, 그럼 필리아가 화를  것 같았다.

“그러면 고맙지. 일리엔 교수님이 널 위해 사 오신 것 같은데.이거 미안하네…. 나는 르 말렝에못 들어가다 보니까. 거절하기가 쉽지 않네.”

다음에는 내가 더 멋진 것으로 보답할게. 그렇게 이야기한 이체르는  손으로 마레이가건네는 케이크를 받았다. 보답하실 필요까지야… 중얼거리는 마레이의 모습에 고개를 내저었다.

“일리엔 교수님도 초대할 것이니까, 거절하지 마. 일리엔 교수의 제자면 내... 아니. 아니, 잊어. 헛소리를 해버렸네.”

이체르는 당황한 듯 마레이의 시선을 피하고 플라스틱 포크를 집어 들었다.

“렌.. 아니, 말이 헛나왔네요. 일리엔 교수님과 친하신 편인가요?”
“렌이라….”

마레이의 말실수에 이체르는 무엇인가 곱씹는 듯 어린 소년을 보았다. 애칭을 부른다고. 아마, 단둘이 있을 때에는  교수님이라 부르는 걸까. 부모님이 부르는 애칭을 제자에게 알려주는 걸 보면 이드리엔도 단순히 심심풀이로 제자를 기르는 건 아닌  같았다.

설마 조금 더, 아니 많이 깊은 사이일까 생각도 했지만.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귀여운 소년의 모습에 고개를 털어냈다. 나 참, 소설도 아니고 무슨 생각을 하는 거람.

“일리엔 교수 집에서 어릴 적에 신세 진 적이 있어. 그 정도니까,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일리엔이 자신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다면, 굳이 이 소년에게 자신에 대해서 이야기해줄 필요가 없었다.  아이도 자신에 대해서 일리엔 교수에게 제대로 들은 게 없는 같으니까.

“아…. 네.”

차가운 대답에 소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체르는 이 소년이 조금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선을 지킬  안다는 건, 상대방이 그어놓은 선을 쉽게 이해한다는 건 이 나이 소년에게는 무척 어려운 일이 있으니까. 그렇다면 이 아이는 소심한 게 아니라 배려심이 넘치는 거다

“일리엔 교수님이 말씀해 주신다면 할 말은 없는데, 아니라면 나도 애매해서 말이야.”

이체르는 자신이 보여줄 수 있는 최선의 다정한 얼굴로 마레이를 보며 웃었다. 그리고 곧장 자신이 마법 로브를 뒤집어쓰고 있어서, 앞의 소년에게 그 어떤 표정도 보이지 않을 거라는 걸 기억해내고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래서 사람들하고 대화하고 싶지 않았다.

“아, 그러고 보니 질문이 엄청 많았는데….”

쉬는 시간에도 책을 뒤적이는 소년의 모습에 이체르는 등받이에 허리를 기댔다. 학생이라면 이런 맛이 있어야지, 죽은 생선 같은 눈으로 필기만 하고 도망치던 다른 학생들을 마음속에서 실컷 걷어찼다. 성적을 위해 공부하는 녀석들이라면 자신이 사절이었다.

로렌, 그 성격 나쁜 녹색용이 한 소리하겠지만 그뿐이었다. 이 아이가 로렌의 성격을 조금만 닮았어도 지루할  같았는데, 생각보다 수업 시간이 즐거웠다. 총명하면서도 호기심이 많은 학생은 언제든지 환영이었다.

“수업 중에 여기 다크 엘프에 관한 내용이 궁금했는데…..”

방금   취소. 이체르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건… 그냥… 필요 없어.”

더듬더듬 나오는 목소리에 이체르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아니, 성격이 나쁜 것일지도 몰랐다. 그 핏줄이 어디 갈 리가 없었다. 이 녀석 날 알고 온 걸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체르는  번이나 입술을 달싹이며 마레이를 보고 있었다.

“네?”

의구심을 표하는 소년의 모습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연기일까, 아니면 진심일까. 아무것도 모를 수도 있었다.

“시험에 안 나올 거야. 이제 별로 존재하지 않는 종족이고…. 거의 만날 일도 없을 거야.”

한심한 변명이었다. 시험을 생각하며 공부하지 말라고 자신 있게 떠든 주제에, 지금 급하게 튀어나온 말은 자신이 제일 혐오하는 종자들이 내뱉을 것 같은 말이었다.

“그러니까  알아야 하는 거 아닌가요? 실례를 저지를지도 모르니까...”

이체르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차라리 입을 꾹 다물고 있을 걸. 한심한 변명을 한 자신에게 벌을 주고 싶었다. 거기에 이 소년을 한번 믿고 싶었고.

“다크 엘프 본 적 있어?”
“아뇨…..?”

이체르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크 엘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네? 그… 엘프의 친구… 정도요?”

이체르는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사슴 같은 눈망울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소년의 모습에 뭔가 홀가분한 기분이 들었다.

이체르의 수업은 수업이라고 하기에는 애매했다. 차라리 과외라고 하는 게 정확했다. 바로 옆에 붙어서 펜으로 일일이 알려주고, 몇 번이나 재차 확인하는 수업에 마레이는 반 아이들이 말하는 개인과외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문제는 수업의 진도는 전 시간보다 더욱 빠르고, 더 많은 내용을 담고 있었다. 판서로 수업하던 지난주와 비교가 불가능할 수준의 속도로 진행되는 수업에 숨이  막혔다.

“저, 이 부분은..”
“다시 설명해 줄게.”

몇 배나 빠른 템포 중간중간마다 질문하거나 확인하지 않으면 이체르의 목소리를 따라잡지 못할 수준이었다. 흐름이 끊기는 중간중간 질문에도 이체르를 별다른 말 없이 친절하게 알려주고 있었다.

바로 옆에 앉아, 아니 마레이의 책에부연 설명을 적어주는 탓에 밀접한 그녀의 몸에서는 정신이 맑아지는 상쾌한 향이 묘하게 났다. 로브에서는 묘한 달콤한 향이 났지만, 찰싹 달라붙어 있다 보니 살결에서 나는 듯한 그런 냄새를 가리지 못했다.

이드리엔이나, 일리엔 살결에서 나는 것 같은 달콤한 향. 아니, 조금  옅은 달콤함과 숲을 떠올리게 하는 맑은 향이 났다. 북방의 추운 겨울에 침엽수림에서 나는 그런 짙은 향.

“듣고 있어?  부분은 중요한 부분이야. 여기를...”
“지, 집중할게요…!”

고개를 털어낸 마레이는 다시금 이체르의 설명에 집중했다.



“시간이 애매하네…...”

시계를 본 이체르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진도를 나가기에는 애매한 시간이었다. 오늘은 일찍 수업을 마치겠다고 말하면 되는데, 그냥 호기심이 들었다. 바로 옆에 귀가 새빨갛게 물들 정도로 헉헉대며 수업을 따라온 마레이  파웬에 대한 간단한 호기심.

“네?”

되묻는 마레이의 모습에 어깨를 으쓱였다. 일리엔이나 이드리엔 교수가 제자를 둘 거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다만, 그건 아주 먼 미래의 일이고 한창 연구 중인 두 사람에게 필요한 건 연구 보조였지, 제자가 아니었다.

학회에서 한창 절정기를 구가하고 있는 크사크루 자매에게 학회의 마법사들은 널리고 널렸다. 마법사의 제자라 하는  일종의 상속권이 없는 친자나 거의 다름없었다. 마법의 미친 존재들이니 결혼을 하지 않는 경우가 꽤나 많으니, 어떻게 보면 상속권이 없다는 말도 애매모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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