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49화 〉적응 기간(1) (149/341)



〈 149화 〉적응 기간(1)

마레이의 등교 시간은 일반적인 학생들보다 무척이나 빠른 시간이었다. 여체에 둘러싸여 밤새 몸을 섞고 나면 피로한 대신 온몸의 기운이 넘치기 때문에, 수면을 취한다고 해도 겨우 몇십 분이 전부였다.

밤늦게 여체 속에 둘러싸여 잠이 들고, 가벼운 사정감과 함께 잠에서 깨어나 침대 위에서, 욕실에서, 부엌에서, 그리고 마지막으로 현관에서 마음대로 모친과 이드리엔의 자궁안에 정액을 잔뜩 부어주고 나더라도 꽤나 이른 시간에 학교로 출발할 수 있었다.

걸어서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학교가 있더라도. 성실, 근면 등 바른 학생으로 아들을 키우려는 라벨라의 교육방침 때문에 더욱더 아침이 빠르게 시작되는 이유이기도 했다. 상하 관계를 현실적으로, 그리고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는 일리엔은 집안에서는 라벨라의 눈치 때문에 어느 정도 자제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처럼 빠르게 통학할  마레이의 뒤를 쫓아와 연구실에서 끈적하게 몸을 섞거나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교사 뒤편에 있는 숲속에서 개처럼 울부짖으며 박히는 일을   했고 습관이 될 뻔도 했지만.

이드리엔의 앙큼한 계획을 훤히 꿰뚫어 보고 있는 라벨라가 일리엔을 잠시 집 밖으로 유기(애완동물인 자신을 집 밖으로 내쫓았다며 일리엔의 표현으로 말하자면)했기에 집을 나서는 시간은 비슷하더라고 수업이 있는 강의실에 빠르게 도착할  있었다.

인기 없는 수업이라 그런 것인지, 아니면 너무 일찍  것인지 몰라도 사람 하나 찾아볼 수 없는 강의실은 의미 모를 섬뜩함이 깃들어 있었다. 황량함이라는 말과는 이질적인, 끈적끈적한 이상한 기분이 들어서 왜인지 모를 섬뜩함에 마레이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아, 여기 있네?! 주인님~ 보고 싶었어요~”

익숙한 목소리가 들리는 동시에 뒤에서 물컹한 느낌이 전해지고, 기분 좋은 푹신함에 마레이는 고개를 위로 젖혀 자신을 끌어안은 사람을 바라보았다.

“일리엔, 안녕하세요.”
“후후… 아침 일찍 오는 학생에게 상을 줘야겠죠?”

사랑하는 주인님을 만난 강아지처럼 눈을 반짝이는 일리엔은 그대로 고개를 숙여 어린 소년의 입에 입술을 맞추었다. 그리고 자연스레 혀를 내밀어 끈적한 침을 슬그머니 흘려보낸다.

애교를 부리듯 입안을 간지럽히는 그녀의 혀놀림에 마레이는 입안을 전부 핥을 기세로 다가오는 일리엔의 설육을 가만히 내버려 두었다. 잇몸, 여린입천장, 혓바닥, 치아 사이사이까지 전부 핥아내기 바쁜 그녀의 행동이 너무 귀여워서 뺨을 조심스레 쓰다듬자 기쁜  작게 비음을 흘려낸다.

“후후…. 정말 좋아해요 주인님. 더 해드리고 싶지만…이체르  발렌타인 선생님이 조금 빠르게 오시고 있네요. 자, 이건 교재에요. 라벨라님이 챙겨주셨겠지만, 저도  나름 주인님께 해드리고 싶은 게 있어서요.”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지만 일리엔은 작게 웃어 보이고 조금 더 주인님에게 봉사하지 못한 것이 안타까운 것인지 입과 이마 그리고 볼에  번이나 입을 맞추고 연인처럼 달라붙어 있는 몸을 천천히 떼어냈다.

“이체르 선생님이랑 나기사 선생님 수업이 공국 건국일 때문에 밀려버려서 오늘이 처음 맞지?”

갑작스레 하대하는 일리엔의 모습이 조금 낯설게 느껴졌지만, 친근한 선생님 같은 모습에 마레이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적당히 고개를 끄덕였다.

“마법 이론은 어떻게 보면 하나의  틀에서 약간의 변화가 있다고 생각하면 편할 수도 있어. 마법의 극의를 찾는 게 아니고 개략적인 이해와 일상적인 수준의 마법이라면 같다고 볼 수도 있으니까. 다만, 흑마법을 하는 사람들은 무척이나 적고. 사람들이 배척하는 경향이 있어서, 이렇게 공개적인 장소에서 배울 수 있다는 건  행운이야. 대부분의 흑마법사들은 사람들 앞에 나서지 않으려다 보니까. 좋은 기회라고 할 수도 있겠지. 그렇지 않나요 이체르 교수님?”

일리엔은 옅은 미소를 띄며 강의실 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발걸음 소리도 없이, 약간의 인기척도 없이 로브를 뒤집어쓴 인물이 걸어들어온다.

“좋다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나쁘다고도 할 수 없겠지요. 일리엔 교수님은 여기까지 무슨 일로 오신 것인지?”

여성의 목소리 톤치고 살짝 낮은 느낌이 드는 미성이 로브 속에서 새어 나왔다. 중얼거리는 정도는 아니었지만, 말을 정확히 듣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집중이 필요할 정도로 작은 목소리였다.

“저희 반 전학생이거든요! 착하고 똘똘한 아이니까  가르쳐주셔야 돼요~?”
“저는 언제나 똑같이 수업을 진행할 뿐입니다. 본인이 의지가 있으면  배우고 돌아갈 것이고, 아니면 적당히 시간만 보내다 끝나겠지요."

냉소적인 발렌타인의 대답에도 일리엔은 그저 쿡쿡 웃을 뿐이었다. 마레이의 머리를 잔뜩 쓰다듬고 ‘열심히해야되요, 마레이.’라고 격려한 그녀는 곧장 강의실을 빠져나간다.

“총독의 손자라고 들었는데, 저는 그런  신경 쓰지 않습니다. 제대로 공부를 한다면 좋은 성적을 받아 갈 것이고, 적당히 시간을 보낼 생각으로 수업에 임한다면 낮은 성적을 줄 것이니. 수업에 진지하게 임하세요.”
“네, 넷!”

이체르 데 발렌타인은 여전히 로브를 벗지 않은 상태였다. 수업 시간까지 꽤나 시간이 남았지만, 발렌타인 교수는 수업교재를 이리저리 훑어보고 있었다. 아무런 말도 없는 그녀의 모습에 마레이도 별다른 할 일이 없었기에 일리엔이 가져다준 교재를 펼쳤다.

중간중간 포스트잇이 붙어있고, 알아보기 쉽게 정자로 적혀있는 몇 가지 팁이나 부연설명이 빼곡히 적혀있었다. 주인님을 위해 당연한 봉사라 생각하고 일리엔이 정성스럽게 준비한 선물이었기에, 어린 소년의 남심을 흔들기에는 너무나도 적합한 선물이었다.

사랑스러운 애완동물의 선물을 훑어보며 교재를 읽어나가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것 같은데, 발렌타인 교수가 분필을 집어 들고 칠판에 글을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일리엔의 수첩에는 수줍음이 많다고 적혀 있던 것 같은데, 그런 느낌을 전혀 찾아볼  없었다. 작은 목소리로 말을 하는 게 흠이었지만, 사람이 없는 수업이다 보니 그런 단점도 와닿지 않았다.

“흑마법을 배운 적 있나요? 아니, 다른 마법 이론 중에 배운 것이 있나요?”
“백마법과 원소마법 수업을 듣기는 하는데…. 아직까지 제대로 배운 것은 없습니다.”

로브속에서 나올 생각이 없는 이체르 데 발렌타인는 고개를 가볍게 끄덕였다. 불편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지만, 당연하다는 듯이 로브를 뒤집어쓴 채로 수업을 시작하는 그녀의 모습에 마레이는 필기도구를 붙잡고, 라벨라가 챙겨준 노트에 이체르 교수가 써준 필기를 쭉쭉 적어나가기 시작했다.

“마법의 정의는 신성력과 반대되는 개념으로 시작하는 게 정확할지도 모른다. 인간의 몸으로 행할 수 없는 기적을 마력이나 신성력을 통해서 행한다는 점에서 본다면 둘 다 같다고 볼 수도 있고,  공통점도 발견되고 있지만, 현재 학회에서는 부정적인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우리 흑마법의 계열에서는 신성력과 마법은 동일하고, 단지 힘을 빌려오는 개체가 다를 뿐이라는 이론으로부터 시작된다.”

이체르 데 발렌타인은 손을 뻗어 칠판에 기본적인 마법 수식과 도형들을 그리기 시작했다. 하얀 롱 장갑 사이에 붙잡힌 분필이 거침없이 판서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흑마법이 오랜 시간 배척받아왔던 이유는 신성력과 마력을 동일 선상에 놓았기에 신성모독이라는 이름 아래에서 박해를 받아온 역사가 길었기 때문이다. 세간에서는 저주라든지 불쾌한 이야기가 가득하지만, 실질적으로 본다면 원소마법이나 백마법보다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이론적으로는 가장 완벽하게 정립된 학문이라고 볼 수도 있다. 지금 적어준 기본적인 마법 기호들과 도형들의 암기 사항이니 외워오도록.”

수업은 이렇게 진행되고 있었다. 생각보다 빠르게 전개된 수업내용에 마레이는 겨우겨우 이체르 발렌타인의 판서와 말을 받아 적어가고 있었고, 이체르는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계속해서 수업을 이어나갔다. 그러다 보니 쉬는 시간이 찾아오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저주 방어라는 것은 저주라는 개념을 명확하게 인식하는 데에서부터 시작하는데, 이는 흑마법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부터… 쉬는 시간이군. 일단 여기까지.”

쉬는 시간 종이 울리자마자 이체르 데 발렌타인은 곧장 강의실 밖으로 나갔다. 버거울 정도로 빠르게, 그리고 수없이 많은 필기량을 요구하는 수업이 잠시 멈추자 마레이는 겨우겨우 한숨을 내쉬고 한 시간 동안 끝없이 채워진 자신의 노트를 보고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라벨라에게 들었던 대로 이전 학교와 비교해서 수업내용은 어려웠고 또 양이 어마어마했다. 이게 고등학교에서 배우는 수업이구나 깨달음과 함께 앞으로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에 작게 한숨을 내쉬는 와중에 갑작스레 강의실 문을 열고  학생이 뛰어 들어왔다.

“교, 교수님 오셨어요?”

처음 보는 학생이었지만, 대뜸 이체르 데 발렌타인의 행방을 묻는 모습에, 마레이가 고개를 끄덕이자 머리를 쥐어뜯고 크게 앓는 소리를 낸다.

“으으…. 재수강해야  것 같은데… 큰일 났네. 아, 안녕하세요. 저는  능우엔라고 해요. 같은 수업 듣는것 같은데 잘 부탁 드려요.”
“안녕하세요. 마레이 드 파웬이에요.”
“오늘 사정이 있어서 좀 늦었는데… 교수님 화 많이 나셨나요?”
“딱히 그런 느낌은 없으셨는데요.”

다행이다. 중얼거린 롱 능우엔은 붙임성이 좋은 것인지 곧장 마레이에게 말을 걸었다.

“이체르  발렌타인 교수님 수업은 처음이신가요?”
“아, 네. 처음이에요.”
“계속 로브를 쓰고 계셔서 당황하셨죠?”

마레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로브를 쓰고 돌아다니는 마법사를 종종 보긴 했어도 실내에서는 대부분 로브를 벗었다. 답답하기도 할 테고, 거추장스럽기도 했으니까. 발테르에서 만난 마법사들에게 이야기를 들어보면, 마법사들의 정통이라 입고 있을 뿐이라 다들 난색을 표하곤 했다.

“소문이긴 한데, 이체르 교수님이 이종족이라는 소문이 있어요. 공국의 출신이라고 하는데, 흡혈귀는 아니라는 말도 있어서. 무슨 종족이길래 저렇게 꼼꼼 숨기고 있는지….”

롱 능우엔은 말끝을 길게 늘어뜨렸다. 정돈되지 않은 갈색 머리카락이 어깨까지 내려왔지만, 구김 없는 교복을 입고 있어서 그런지 딱히 지저분하다거나 하는 느낌은 없었다. 자유분방하다는 느낌이 강하게 와닿아 친해지고 싶은 느낌의 사람이었다.

“...늦었군.  능우엔. 지각 사유가 있나요?”

어느새 들어온 이체르 데 발렌타인의 목소리에 능우엔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했다. 지금의 대화를 들은 게 아닐까해서 잔뜩 긴장한 얼굴이었다.

“죄, 죄송합니다. 그… 집에 조금 문제가.”
“그러면 바로 수업을 시작하겠습니다. 마레이 드 파웬이 새롭게  학생이라 그런데, 복습  처음 강의내용을 말하고 있으니 이번에는 그냥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능우엔은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딱딱하게 굳은 몸과 망했다는 얼굴로 어쩔  몰라하는 그의 모습에 마레이는 어떻게 해야될 지도 모르고 판서를 이어나가는 이체르  발렌타인의 수업을 따라가는데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적고, 또 적고. 암기하고  적고. 빠르게 진행되는 수업의 템포에 마레이는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벅찼고. 그러다 보니 쉬는 시간을 빠르게 찾아왔고, 롱 능우엔과 가벼운 잡담과 수업 내용을 나누었다.

 능우엔은 남부 대수림쪽 지방에 사는 귀족 가문의 자제로 부모님의 억지에 이끌려 발테르에 온 사람이었다. 수인 족이 쓰는 특이한 저주술에 관심이 많아 이체르 데 발렌타인의 수업을 듣게 됐는데, 생각보다 너무 원론적이고 빠르게 진행되는 수업에 죽을  같다고 푸념을 늘어놓았고. 마레이도 어느 정도 공감이 가기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쉬는 시간이 든, 수업 시간이  끝나는 것은 금방이었다. 이체르 데 발렌타인가 간단한 숙제를 내주고 곧장 강의실을 나섰다.

“교수님도 나가셨으니까. 나도 이제 가야겠네. 그럼 다음에 보자고, 파웬군.”

먼저 자리를털고 일어나는 능우엔의 모습에 마레이도 안녕히 가세요라며 적당한 인사말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매시간 쉬는 시간이 있었음에도 4시간 동안 했다고는 믿어지지 않은 수업 내용을 보며 마레이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렵지? 이체르의 수업은 악평이 자자하거든.”

옆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필리아가 짓궂은 웃음을 지으며 옆자리에 앉아있었다.

“아, 안, 안녕하세요.”
“그렇게 어색하게 인사하면 내가 슬퍼지는데….”

말을 더듬거리며 인사를 건네는 마레이의 모습에 필리아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마레이의 뺨을 양쪽으로 잡아 쭉쭉 늘리기 시작했다.

“월반했다고 해도 역시 바로 수업 듣기에는 힘들지? 특히 이체르는  준비한 대로 수업하다 보니까, 융통성이 조금 모자르거든.”
“필리아도 이체르 교수님의 수업을 들었나요?”

필리아가 고개를 저었다.

“그냥 아는 사이거든, 개인적으로.”

입을 가리며 쿡쿡 웃는 필리아는 마레이가 적어놓은 필기를 보고 흥미가 동한 것인지, 붉은 눈동자로 쓱쓱 훑어보기 시작했다.

“읽어보실래요?”
“조금, 실례할게.”

노트 12장이 빼곡하게 적힌 필기량을 보고 필리아는 기가 질린 듯 작게 앓는 소리를 내었다. 그러면서도 노트 내용에 눈을 떼지 않는 모습을 보면 분명히 관심이 있는  같기도 했다. 말없이 노트를 넘기던 필리아는 다음 장에 아무것도 적혀있지 않을 때가 와서야 손을 멈췄다.

“수업은 엄청 열심히 들었나 보네. 다만, 전부 적을 필요는 없어 보이긴 한데…. 뭐, 이체르의 성격상 다른 말은 안 하다 보니까, 상관은 없을  같기도 하고...”
“필리아는 무슨 일로 오신 거에요?”
“왜? 내가 오는 게 부담스러워? 아아, 장난이야 장난. 울 것 같은 얼굴로 바라보면 내가 나쁜 사람 같잖아. 그냥 같이 점심을 먹고 싶어서 찾아왔을 뿐이야.”

필리아는 마레이의 뺨을 쿡쿡 찌르며 옅게 웃고 있었다.

“그.. 학생회 관련해서 바쁘지는 않으세요?”
“아아, 뭐… 조금 바쁘긴 한데. 시간을 이렇게 내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근데 누구에게 들었어?  학생회에 있다는 거.”
“반 아이들이 알려줬어요.”

나쁘지 않네. 아니, 좋네. 필리아는 담담이 고개를 끄덕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