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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0화 〉다가오는 것들(7) (140/341)



〈 140화 〉다가오는 것들(7)



부드러운 배를 슬며시 핥고, 솜털도 나지 않은  위를 혀로 슬그머니 움직여, 귀엽게 떠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본 마레이는 자연스레 란의 붉은 하카마를 슬그머니 내리고 그대로 꽉 닫힌 둔덕을 혀끝으로 슬그머니 핥….

‘마레이.’

익숙한 목소리가 귓가에 울리자, 마레이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자신의 밑에 란이 깔려 있었다. 너무나도 슬픈 눈으로, 그리고 아프다는 눈으로 마레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동안 마레이가 경험한, 애욕에 가득 찼던 눈동자들과는 다르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혼란스러워하는 눈이었다. 그렇게 보였다. 어떻게 해야되는 건가. 모르겠다. 자신이   아는, 아니 그렇게 해야된다는 생각으로 자신조차 멈춰세우지 못한 그런 눈.

말로 표현할 수는 없었다. 다만  수 있었다.

“란님….?”
“괜찮단다. 이리로….”

란이 손을 벌려 마레이의 목을 살며시 감싸 안았다. 성욕에 미쳐 버릴 것 같았다. 아니, 몸은 당장 그녀를 안으라고 외치고 있었지만,  수 없는 죄책감과 두려움으로 마레이는 바지안에서 괴롭게 비틀거리는 페니스를 애써 달랠 수밖에 없었다.

“당신은… 당신은… 누구지요. 무엇인가요?”

란의 손길에서 벗어나 마레이는 슬며시 몸을 일으켰다. 슬며시 벌려진 란의 옷을 다시금 여미어주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란 또한 말없이 마레이를 바라보다가 조심스레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역시 이런 어린 몸은 싫은 테지.”

하카마 밖으로 슬며시 나온 발목이 그렇게 야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마레이는 처음   있었다. 복숭아뼈가 슬며시 드러난 작은 발을 왜 그리 핥고, 깨물고 싶은 것인지. 스스로 이해할 수 없었다.

“란님…. 어째서….”
“그냥, 변덕… 이라고 할까.”

란은 씁쓸하게 웃고 있었다. 그 순간 란에게 느껴졌던 모든 감정이 전부 거짓인 듯, 평범한 여우여자아이가 마레이 앞에 있었다. 아니, 고귀해 보이는, 신성해 보이는 어린 무녀님의 모습에 마레이는 방금전까지 느꼈던 성욕이 모두 죄를 지은 것만 같다고 느꼈다.

“됐다….그저, 헛된 바램이 있을 뿐이니까. 아가, 내가 너에게 나쁜 짓을 해버렸구나.”
“...란님은 도대체…. 도대체… 누구십니까. 아니, 무엇입니까.”
“글쎄, 내가 누구일까…. 어려운 질문이구나. 답해줄 수는 없더라도 보여줄 수는 있겠지.”

란이 깍지를 낀손으로 마레이의 뒷목을 잡아 당겨, 자신의 이마와 어린 소년의 이마를 맞댔다. 숨결이 닿는 거리에서, 달아오른 여린 뺨의 온기가 슬며시 전해진다.

방금전 느낀 거대한 인력이 다시 한번 마레이를 끌어당기고 있었다. 부서진 금속들로 얽혀있는 홍채 가운데, 검은 동공 속으로 마레이는 저도 모르게 빠져들었다.

산이 보였다. 아주 높은 산. 크기를 짐작하지 못할 만큼 커다란 산. 아주 멀리서도, 대륙 끝에서도 보이는 거대한 산. 실제로 존재할 리가 없는 그런, 눈으로 가득 덮인 산이 있었다. 바람이 불어, 산 위를 헤쳐 지나가자 산 전체가 흔들렸다.

아니, 산이 아니었다. 흔들리는 것은 나무도, 눈도 아닌, 수많은 털들이었다. 마레이는 고개를 들어 보였다. 크기를 짐작할 수도 없는 여우가 마레이를 내려보고 있었다. 여우의 발아래에는 하얀 구름이 떠돌아다니고 있었다.

상상 속에서조차 존재하지 않을  같은, 자신이 딛고 있는 대지보다 더욱 커 보이는 여우의 금색 눈동자가 마레이와 마주치고, 다시 한번 꿈에서 깨어났다.

“보았구나. 마리또한 너와 같은 것을 보았지. 그렇다면 너에게 또한 같은 말로 설명하자면, 신화 속에 버려진 짐승이라고 말을 해야겠구나.”

란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마레이에게는 닿지 않았다. 꿈에서 깨어났지만, 마레이는 여전히 꿈 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주변은 온통 불바다였다. 하늘에서는 검은 비가 내리고 있었다. 방금전 본 거대한 여우가 크게 울음을 터트리고,  여우보다는 작지만 크기를 짐작할 수 없는 거인들과  많은 종족들이 무기를, 마법을 휘두르며 여우와 싸우고 있었다.

거대한 짐승은 거인의 목을 물어뜯고, 손톱으로 대지를 찢어내고, 포효로 해일을 일으킨다. 그렇게 수백 번의 해가 뜨고 지는 시간 동안 여우는 대지 위의 생명들을 죽이고, 죽이고,  죽였다.

 번이나, 수백번의 해가 뜨고 진 이후에야, 짐승의 목에 수십개의 무기가 박혀들었고, 그 위로 일곱의 존재만이 대지 위에서 살아 숨쉴뿐이었다.

“죽여라, 칼펜. 우리의 검은 모두 부러졌다.”

거인의 어깨에 앉아있는 마녀가 길게한숨을 내뱉었다.

“죽일 수가 없습니다. 에르제베르트.”

거인의 도끼는 금방이라도 부러질 듯, 잔뜩 금이  있었다.

“........그렇다면 봉인하죠. 신성은 빼앗었습니다. 코르키엘”

악마가 기분 나쁘게 웃고 있었다.

“리리스, 경쟁자가 죽었을 뿐이죠. 이제는 이 땅은 우리의 것입니다.”

천사가 날개를 흔들자, 금색의 깃털이 대지 위에 떨어지다 스며들었다.  여우는 그들을 죽일 듯 노려보고 있었다. 하지만 목에 꽂힌 수십 개의 병장기들로 인해 그 어떤 말을 내뱉지 못했다. 이를 들어내고 낮게 울부짖는 모습에 일곱의 존재들이 흠칫 놀란다.

“제기랄…. 저주의 무기가…..영원하지 못할 봉인이 의미가 있는 건가요. 에르제베르트.”
“오천 년씩 주기적으로 확인해 줘야 합니다. 당신의 아이들이 이 신을 봉인하고 관리하는데, 가장 어울리겠지요. 아이들의 수명은 길어봤자 삼천 년이니... 라비우스?”

마녀가 요사스럽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녀의 시선 끝에는 숨을 고르고 있는 검은 존재가 있었다.

“수작 부리지 마라, 네년의 입을 찢어버리기 전에.”

금색 눈이 크게 떠지고, 날개 달린 짐승이 몸을 일으키며 낮게 으르렁거렸다.

“그에 맞는 힘, 그에 맞는 보상을 우리들이 각자 드릴 것입니다. 이 땅을 떼어드리죠. 어차피 중요한 것은 처음으로 우리의 승리라는 것이니….”
“내가 만족할 만한 댓가를 가져오길 기대하지. 에르제베르트. 그리고 모두들.”

검은 존재가, 아니 거대한 용이 검은 하늘을 향해 나아갔다. 그리고 마레이는 꿈에서 깨어났다.

“.....보면 안 되는 걸 보았구나.”

란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해할  없는 광경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무서운, 아주 괴기스러운 꿈을 꾸었다. 과거를 꾸었다. 과거를 보았다. 아니, 그건 꿈이었을까. 무엇인지   없었지만. 지금의 감정을 뭐라 표현해야 될지 몰랐지만, 그 감정들의 파도 중 하나는 두려움이었다.

마레이는 온몸이 식은땀으로 젖어 있다는 걸 깨달았다.

“라비우스, 에르제베르트, 바알, 코르키엘……… 라비우…? 라비? 라? 왜… 왜 기억이? 기억이 안 나.제가 방금무슨 말을 했죠?”
“아무말도 안했단다.”
“란님?”

방금 내뱉은 말이 기억나지 않았다. 방금 말을 내뱉었던가? 마레이는 뻐금거리던 자신의 입에서 목소리가 나왔는지, 나오지 않았는지도 기억할  없었다. 몽롱했다. 아니, 정신은 정말로 멀쩡했다.

방금전까지 란을 밀어넘어뜨려 범할 뻔했다는 것도 모두 기억하고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란에게 그녀의 정체를 물었고, 그녀가 보여준 광경에는  세상 그 어떤 것보다  보이던 거대한 늑대를 보았다. 그리고.

그리고?

“무엇을 보았느냐?”
“거대한 늑대….. 그리고… 거대한 늑대.”

무엇인가 본 것 같았다. 거대한 늑대, 그리고?

그리고 무엇을 보았지? 본  같았다. 아니, 보았던가? 무엇을 보았지?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아니, 왜 혼란스러운 거지?   없었다.

“제대로 보았구나.”
“....란님?”

의식의 흐름이 끊기며 마레이는 저도 모르게 눈앞의 여우 소녀의 이름을 불렀다. 자신이 무슨 생각을 했던 것인지 기억나지 않았다. 아니, 자신이  란의 이름을 부를때 이렇게 떨고 있는 걸까.

“아주, 아주 오래된 악마. 최초의 악마. 악신. 마리는 나를 그렇게 불렀단다.”

악마라는 말보다는, 천사라는 말이 어울릴 외모로 란은 웃고 있었다. 아니, 웃는 척을 하고 있었다.

악마.

무척이나 불길한 이름이었다.

인신 공양을 하는 이교도, 북부군이 막아내고 있는 오크들, 남동쪽 산맥을 넘어오는 야만인들, 수백 년째 전란을 이어나가고 있는 산맥 저편의 이국의 지배자들에게조차 악마라는 이름을 씌우지 않았다.

신이 있는 세계에서 악마라는 이름은 흔하게 내뱉을 수 있는 단어는 결코 아니었다. 이성과 합리를 내세운 현 제국의 체계에서조차 악마라는 단어는 일종의터부였다.

왕국이라는 이름이 제국으로 오르기까지, 거대한 산맥으로 변두리에 위치한 남부지대를 제외한 대륙의 비옥한 땅을 전부 먹어 치우기까지 걸린 시간은 채, 20년도 되지 않았다. 제국이 아무리 합리와 이성을 내세워 제국민들을 가르친다고 해도, 지향점과 현실의 거리는 아직도 아득하기만  뿐이었다.

그렇기에 구 왕국들의 수도, 현 중심도시라 불릴만한 거대한 중앙관리의 핵심이 되는 몇몇 중심부와 거리가 떨어질수록 미신과 이교도들은 아직도 제 몸을 불사르며 더욱 큰 존재감을 퍼트리고 있었다.

서쪽의 이교도들과 암처럼 퍼져있는 미신들로부터는 거리가 먼 북부 방벽 언저리의 마을 출신인 마레이에게 있어서, 란이 내뱉는 악마라는 단어는 실제로  의미보다 더욱 크게, 더욱 위협적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악마라는 단어 하나로 벌벌  거나, 지금 란에게서부터 도망칠 정도로 마레이는 어리석지도, 무지하지도 않았다.

“믿지 않는 눈이구나.”

란은 눈꼬리가 길게 늘어졌다. 신비한 금색의 눈동자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눈을 감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정도로 길게 늘어진 눈꼬리를 따라 입이 길게 선을 그은다. 입을 슬며시 가리며 란은 한참 동안 쿡쿡 소리를 내며 웃었다.

“아뇨, 믿어요.”

란의 웃음소리가 멎었다.

“란님을 보았을 때, 익숙하다는 느낌은…… 달랐거든요.”

마레이는 왼쪽 눈 위로 손을 올렸다. 어머니가 만들어준 안대의 부드러운 감촉이 느껴졌다. 아무리 힘을 주어도 끊어지지 않은 신기한 물건. 성녀라 부르는 에르덴 파벨조차 이상함을 느끼지 못한 물건.

그런 물건이 가리고 있는 자신의 왼쪽 눈.

 눈이 란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마레이는 고개를 저었다. 가끔은 자신이 안대를 쓰고 있다는 사실을깨닫지 못할 때도 있었다. 사람들 시선에서 섞인 동정에서, 그 사실을 알아차리고는 했으니까.

지금에 와서는 일리엔이 걸어준 환각 마법 때문에남들에게는 그저 평범한어린 소년으로 보일 뿐이지만.

“너무 오랜 시간을 살아왔고, 너무 많은 것들을 보고 지나쳤구나. 의미도 없이 바라보던 것들을 하나,  따라 하다 보니. 나라는 존재는 희미해지고,  작아져서 이제는 그 무엇도 될 수 있고, 그 무엇도 아닌  같다고 느낄 때가 있단다.”

란은 알 수 없는 말을 이어나갔지만, 마레이는 란을 바라보았다. 정확히는 이제와서야 그녀의 뒤에 흔들리는 여러 개의 꼬리에 시선이 집중되었다는 말이 정확할 테지만.

“그렇게 흐려지다 보면, 눈앞의 모든 것에 익숙해진단다. 그건 상대 또한 마찬가지일 테지. 응….? 어디를…. 꼬리가 마음에 드는 게냐?”
“아, 그게….”

제대로 집중하고 있지 않는 마레이의 모습에도 란은 가볍게 웃어넘기고 자신의 꼬리를 슬며시 잡아 당겨 마레이에게 천천히 내밀었다. 아무것도 아닌 모습에도 느껴지는 고혹스러운 느낌에 마레이는 긴장한 듯, 조심스레 란의 꼬리를 받아드렸다.

“부드러워….”

손바닥에 닿는 기분 좋은 촉감에 마레이는 저도 모르게 입밖으로 소감을 내뱉었다. 란은 무엇이 그리 기쁜지 입을 가리고 작게 웃고 있었다. 반사적으로, 반응적으로 웃던 모습과는 다르게 웃는 그녀의 모습에 손아귀에 놓인 부드러운 꼬리마저 순간적으로 시선에서 사라진다.

“꽤나 오랜 시간을 기다렸지만, 막상  만나니 무엇을 해야 될지 모르겠구나.”

란이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슬프고,  기쁘고,  안쓰러워서 마레이는 눈앞의 무녀님에게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고민하다 조심스럽게 입을 달싹였다.

“괜찮아요.”
“그래, 그런 친절함은 또 마리를 닮았구나...”

어머니의 이름이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었다. 얼굴을 본 적도 없는 아버지의 친척인 사람들도 잘 모르던 어머니, 지금 엄마(?)의 역할을 맡고 있는 라벨라 또한 잘 모르던 어머니. 슬그머니 기억의 저 너머로 흐릿해지는 친모의 이야기가 듣고 싶은 어린 소년은 드디어 란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었다.

“어머니는… 어떤 분이셨나요?”
“어떤 분……. 글쎄, 어려운 질문이구나.”

어떤 분.
어떤 ‘사람’이 아닌 어떤 ‘분’.
‘분’.

마레이가 내뱉은 말을  번이나 곱씹은 란은 마레이를 슬픈 눈으로 올려다보았다.

“마리는 악마의 혼혈이었단다. 들은 적 있니?”

출생의비밀이라고 불러도 좋을 이야기였지만, 마레이는 그렇게 놀라지는 않았다. 현실감이 없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지금 이 자리에, 자신 앞에 앉아있는 존재가 악마의 어머니라 주장하기 때문이었는지는 몰랐다.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될까…. 오백 년 전. 용사 하겐과 리리스 사이에 반인반마가 태어났단다. 그게네 외증조모지만, 지상에 남은 이름은 없단다. 마계에서 무어라 불리고 있지만, 지상의 언어로는 발음할 수가 없구나…. 그리고 그 아이의 자식의 자식. 네 외할머니가 되는 레오나.”

하겐 드 파웬. 마레이의 고조부기도 했다. 하겐이라는 이름은 역사서나, 라벨라의 가문 교육 때에도 종종 들었지만, 리리스라는 이름은 처음 들었다. 하지만, 익숙했다. 들은 것 같은 느낌. 그것도 아주 근시일내에. 마레이가 기억을 되짚으려는 찰나, 란은 쉬지 않고 말을이어나갔다.

“레오나는 백  전 마계를 빠져나와 지상을 떠돌았고, 사십 년 전 북쪽에서 작은 영지를 가진 기사와 사랑에 빠져 마리를 가졌단다. 행복하게 지상에 뿌리를 내리려는  아이에게, 네 외조모에게, 외조부의 자살은 큰 충격일 수밖에 없었겠지.”

갑작스러운 외조부의 자살 이야기에 마레이는 두 눈을 크게 뜨고 란을 바라보았다. 말을 이어나가던 란은 자신이 무슨 말을 잘못했는지 다시 한번 곱씹다가  눈을 크게 뜨고 이런… 이라는 말과 함께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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