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39화 〉다가오는 것들(6) (139/341)



〈 139화 〉다가오는 것들(6)

버려진 강아지처럼, 이별한 연인처럼 금방이라도 눈물을 터트릴 것 같은 그 모습에 로렌은 애써 시선을 돌렸다.

“제가 당신을 지켜드리는 건 어렵지 않지만….. 저 아이를 경계해주시길 바랍니다. 저는 마리와 다르게 저 아이가 신뢰할만한 인간이라고는 절대 생각하지 않습니다.”

로렌은 마레이를 경계하고 있었다. 아니, 경계는 비등하거나 자신에게 위협이 될만한 상대에게 하는 것이었다. 경계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정확히는 혐오한다는 말을 하는 게 정확할까. 보랏빛 눈동자에 마레이가 들어올 때마다 눈살을 찌푸리고 애써 시선을 돌렸다. 같은 공간에 있다는 것조차 싫다는 듯이, 어린 소년의 존재를 부정하고 싶다는 듯이. 무시하고 있었다.

아니,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마레이에게 대놓고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고 있었다. 로렌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지만, 마레이가 보기에 그녀의 모습에서 수많은 욕설과 저주를 자신에게 퍼붓고 있다고는 생각이 들었다. 그정도로 로렌의 눈에는 적의가 가득했다.

“당신께서 마리의 아이의 만나는 건 제가 용인할 수 있고, 묵인할 수 있지만…. 적어도  장소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성녀의 총애를 받고 있는 저런 꼬맹이에게 말이죠.”
“이곳은  땅이고, 제집이기도 합니다. 어미가 제 새끼를 집안에 들이는 게 문제가 되는 것입니까?”
“란님의 아이가 아니라, 마리의 아이겠지요.”

엄밀히 말하자면, 로렌은 마레이가 지금 이 자리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불편해 보였다.

“말장난을 하자는 게 아닙니다. 로렌, 당신이 불편하시다면 제가 자리를 비켜드리겠습니다.”
“란님이 아니라, 저 아이가 이곳을 떠나야겠지요.”

대화의 내용이 아니라, 서로에게 내뱉는 음색, 목소리의 톤을 생각한다면 싸운다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조용한 대화가 이어지고 있었다. 로렌은 길게 한숨을 내쉬며 다시 한번 마레이를 노려보았고, 거대한 존재가 자신을 내리누르는 압박감에 마레이는 자신도 모르게 몸을 크게 움츠렸다.

“로렌. 당신에게 큰 소리로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만하시지요.”
“....정녕 고집을 꺾지 않으시겠다는 것입니까?”
“오늘같이 길(吉)한 날, 로렌 님과 싸우고 싶지 않습니다. 마리의 아이가 되돌아왔을 뿐인데 당신께서는 왜 그리 화가 나신 건가요.”

란의 말에 대답하는 대신 로렌은 눈을 감았다. 그리고 머지않아 눈을 다시 뜨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녀의 아이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습니다. 저도 란님과 다투고 싶지는 않습니다. 조금 진정할 시간이 필요할 뿐이니, 제 마음이 진정되면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저 아이의 대한 처우도 그때 다시 이야기하지요.”
“조심히 가시길 바랍니다. 배웅은 따로 하지 않겠습니다.”

일어선 채로, 란을 바라보던 로렌은 말없이 등을 돌렸다. 몸에 꽉 달라붙은 스타킹이 유려한 곡선을 그리고, 마레이는 저도 모르게 로렌의 다리를 보고 갑작스레 드는 음란한 생각에 애써 고개를 숙였다.

“쯧….. 라벨라,  아이는 도대체....”

마레이의 시선을 느낀 것인지, 아니면 마레이가 단지 마음에 안 든 것인지 모르겠지만. 로렌은 마레이가 들으라는 듯이 크게 혀를 찼다.

“행동거지에 신경 쓰거라, 나의 눈은 언제나 너를 지켜보고 있을 터이니..”

경고나 다름없는 말을 내뱉은 로렌이 한 걸음을 내딛자, 그 앞에 검은 선이 길게 이어졌다. 그리고 곧장 좌우로 입을 크게 벌린다.

“금요일 저녁, 총독부로 부를 터이니 준비하거라.”

마지막 말을 남긴 그녀는 곧장 검은 공간 속으로 걸음을 옮겨 녹색용이 울부짖은 검은 코트의 뒷모습만 남기고 사라졌다.

폐를 짓누르는 거대한 존재감이 사라지자 마레이는 제대로 앉아있지도 못하고 그대로 힘이 풀려 옆으로 쓰러질뻔했고, 어느새 다가온 란이 마레이를 가까스로 붙잡는다.

“마레이 괜찮은 것이냐…?”
“아, 네…. 조금 어지러워서요.”

자그마한 손이, 정말로 어린아이처럼 작은 손이 마레이의 뺨을 천천히 쓸어내렸다. 란은 조심스레 마레이의 머리를 천천히 내려놓으며 자신의 무릎 위로 옮긴다.

“무겁지 않으세요…?”
“더 누워있으렴. 이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으니까.”

란은 여전히 웃고있었다. 다만, 마레이를 통해서 무엇인가를 보고 있었다. 그게 무엇인지는   없겠지만, 금색 눈동자에 떠오르는 감정이 물감처럼 번져서 이유도 모르게 울음을 참을 수 없었다.

“울지마렴, 아가…..”
“아뇨, 아뇨… 저는.. 저는...”
“로렌 때문에 속이 상한 것이니?”

마레이는 고개를 내저었다. 뭐라고 말해야 될지 알 수 없었다. 그저 란의 감정이 흘러들어와 숨이 막힐 뿐이었다. 어머니를 알고 있는 작고 어려 보이는 무녀님의 감정이 눈동자를 통해서 스며들어오자, 속이 울렁거렸다. 눈물이 쉴 새 없이 흘러내렸다.

“슬펐어요. 너무 슬퍼서요.”
“로렌의 말이 심해서 그런 거니…?”
“아뇨.. 란님이 울고 있어서, 그게 너무 슬퍼서요.”

란의 눈동자가 처음으로 파르르 떨렸다. 란은 마레이를 내려보다, 작게 웃어 보였다. 새벽에 고개를 드는 태양처럼 밝게 빛나는 미소였다. 보는 것만으로 기분 좋게 만들어주는, 옆에 있는 것만으로 행복할  같은 그런 미소.

하지만 마레이는 그런 웃음의 너머에서 알 수 없는 감정의 편린에 물들고 있었다.

오염된다는 말이 정확할지도 몰랐다.

“나는 울고 있지 않단다. 보렴, 이렇게 웃고 있잖니.”
“어지러워요…. 놓아주세요..”
“그대로 있으렴. 용의 힘을 간접적으로 느꼈는데, 무리할 필요는 없단다.”

자그만한 손이 마레이의 어깨를 다시금 내리눌렀다. 억척스럽다고 표현해야 될 것 같은 강한 힘. 아무리 노력해보려 해도 벗어날  없을 것 같았다. 거대한 바위로 짓누르는 듯한 힘에 마레이는 일으키려는 몸이 제자리로 되돌아온다.

“란님, 아파요…...”
“한숨 자고 일어나면, 조금 괜찮아질 거란다.”

금색의 눈동자가 여전히 마레이를 내려보고 있었다. 금을 녹여만든 것 같은 눈동자 색, 동공을 감싸고 있다고 부를 수도 없이, 이리저리 깨진 금속조각을 얼기설기 묶어놓은 것 같은 홍채.

 틈으로 쉴새 없이 알 수 없는감정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머리가 몽롱했다. 구역질이 올라오는 것도 잠시, 조금씩 잠이 올 것 같았다. 이대로 눈을 감으면 영영  일어날 것처럼. 란의 무릎은 무척이나 부드러웠다. 일어나고 싶지않도록. 얼굴을 매만지는 작은 손가락이 따뜻했다. 영원히 잠들 것처럼.

“란님, 란님… 란님...”
“그래.. 그래… 여기 있단다. 나는 여기있단다. 우리 아가… 나는 여기 있단다.”

귓가에 속삭이는 목소리가 너무나도 희미했다. 어머니의  안에 안겼던 그 희미한 기억처럼. 그렇기에 안도가 되었다. 당장이라도 눈을 감아도 된다는 듯이 평온했다. 눈을 뜨는 것조차 슬슬 힘에 부쳤다. 시야가 잔뜩 흔들려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뺨을 간질이는 금색의 머리카락의 촉감에 뺨을 부비고 싶어졌다.

낯선 관경이 보였다. 마레이는 어떤 여자의 품안에 안겨 있었다. 앞을 보고 가던 여인은 중간중간 마레이를 내려다 보고 미소를 지어 보이고 다시 무작정 걷고 있었다.

“엄마….?”

마리  파웬. 마레이가 기억하던 모습보다 더 젊어보이는 어머니의 얼굴이었다. 아니, 어려보였다. 자신의 기억에는 어머니였지만, 여기에서는 소녀였다. 희미해지던 의식이 다시금 수면밖으로 나오기위해 허우적거린다.

“한숨 자고 일어나면 모든 게 편안해질 거란다. 의식에 몸을 맡기렴.”

란의 목소리에 몽롱한 의식이 수면 아래로 더욱 깊게 가라앉는다. 깨어나려고 해도, 거대한 수압에 갇혀 어떤 말도 내뱉을 수가 없었다.

다시 한 번 낯선 공간에 펼쳐진다. 어머니는 신사에 앉아 있었다. 란이 자신을 데리고  이곳이었다. 마레이는 지나가는 벌레를 멍하니 지켜보고 있었고, 곧장 누군가가 뒤에서 마레이의 옆구리를 붙잡아 살며시 들어 올렸다.

갑작스러운 변화에 주변을 살피다, 금발의 여인의 얼굴을 보고 활짝 웃어보였다. 란처럼 여러개의 꼬리가 흔들리는 신비한 무녀님이었다. 아니, 본능적으로 그녀가 란임을 알 수 있었다.

눈을 떼어낼 수 없는 미모. 아름답다.

무의식적으로 수 많은 수식어들이 머리속을 스쳐지나갔지만, 모든 감각이 시각에 의존하게 되는 그녀의 모습에, 무엇인가 생각이 났지만 촛불처럼 금세 꺼져버렸다. 마레이는 멍하니 그녀를 볼 뿐이었다.

처음 란을 보았을 때처럼 소녀의 모습도, 지금처럼 어린 아이의 모습도 아닌. 성인의 모습이었다. 자신을 들어올린 란의 모습에 갓난쟁이인 마레이는 웃고 있었다. 란도 웃고 있었다.

하지만 마리는 웃고 있지 않았다. 평화롭고 그리운  풍경에 동떨어진 듯 마리를 슬픈 표정으로 란을 보고 있었다. 마치 무엇인가 대단히 잘못 된 것처럼.

“아이의 이름은 마레이로 하잖구나. 무슨 의미인지는  아이가 성인이 되었을 때 알려줄 테니….”
“스승님,”

마리는 고개를 젓고 있었다. 그저 모든 게 아니라는 듯이 고개를 젓고 있었다. 자신의 아이와 자신의 신이 어울리는 모습을 웃으며 바라보던 과거와는 다르게 마리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마레이와 란을 바라본다.

“당신께서 왜 이런 과거를 떠돌고 있는 것인지요.”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이냐, 마리?”
“가여운 분. 안타까운 분. 저희 어머니. 저희 스승님. 저희 신이시여….. 아이의 시간을 더듬어가며 왜 우리의 추억을 다시 한번 삼키시는 것인지요.”
“마리?

란은 어머니를 다시금 불렀다. 마리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같은 얼굴로 눈을 감았다. 눈과 같이 닫혔던 입술 사이로 목소리가 희미하게 흘러나왔다.

“오래된 꿈에서 깨어나거라, 마레이.”

그와 동시에 눈이 떠졌다. 란은 놀란 듯 두 눈을 크게 뜨고 있었다. 무어라 말하기 위해 입을 뻐금거렸지만, 그 어떤 말도 내뱉지 못하고 멍하니 입을 벌릴 뿐이었다. 그녀의 코에서, 입에서 옅은 숨결이 마레이의 뺨을 천천히 쓸어내렸다.

“무슨… 마리…. 넌…..”
“란님?”

란의 목소리가 잔뜩 떨리고 있었다. 흐느끼고 있다고 해야 할까. 란이 자신에게 무슨 짓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화가 나지 않았다. 다만, 왜인지 모를 그리운 광경을 본 것 같았다.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지만. 다만,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

“미안하구나… 그래… 난… 난...”
“란님. 울지, 울지…. 마세요.”

란은 더이상 웃고 있지 않았다. 어린 소년의 위로에 그녀는 아무런 말도 없이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하지만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잔뜩 찡그린 얼굴은 고통을 말하고 있었지만, 눈물이 말라버린 것처럼. 그녀는 울 수 없었다. 왜인지 그런 것 같았다.

“일어날  있겠니?”
“아, 네. 왠지 기분 좋은 꿈을 꾼 거 같아요.”

마레이는 조심스레 몸을 일으켰다. 이전과 다르게 란은 마레이를 다시금 눕히지 않았다. 조심스레 무릎을 꿇고 앉은 마레이는 란의 눈치를 살피었다. 잠시 눈을 감았다뜨니, 무엇인가 바뀌어있었다. 그게 무엇인지는  수 없었다.

라벨라의 질안에 잔뜩 사정하고 나서 기분 좋은 냄새가 나는 그녀의 몸을 이불로 삼아 달콤한 낮잠을 잔 것 같은 충족감이 마레이의 안을 채우고 있었다. 깜빡 잠이든지 몇 분이 채 되지 않은 것 같았지만 푹 자고 일어난  같았다.

“자, 나를 보거라. 마레이.”

그녀의 말대로, 마레이는 자신 앞에 정갈한 자세로 앉아있는 란의 모습을 담아냈다.

짐승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 자그만한 아이였다. 여우를 떠올리게 하는 금색의 뾰족하다고 생각이 되는 귀속에서는 하얀 귀털이 밖으로 솟아나 있었다. 어린아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는 작은 몸이었지만,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듯, 그저 자그마한 어른의 모습이었다.

묘한 달콤한 냄새가 란에게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저 냄새를 맡는 것만으로 침을 삼키게 만들 정도로 달콤한 냄새. 맡는 것만으로 몽롱해질 것 같은 향기. 손을 뻗어 목을 붙잡아 코를 박아 냄새를맡고 싶을 정도로 좋은 향기.

폐 끝까지 채워 넣는 것으로 부족해서 저 여린 몸를 씹고, 핥아서 전부 손에 넣고 싶은 기분 좋은 향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배가 고프다. 미친 듯이 배가 고팠다. 자그만한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향은 색욕을 넘어서 식욕을 자극하고 있었다.

란은 여전히  자리에 앉아 있었다. 작은 몸과는 전혀 어울리지는 않은 색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니, 그녀가 관능이었다. 마레이는 자신의 바지 아래에서 양물이 빳빳하게 굳다 못해 쿠퍼액을 흘리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듯, 란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란은 그런 마레이의 모습에도 무표정하게 마레이를 바라볼 뿐이었다.

가녀리다고 말해야 될 여리여리한 몸은 이상하게 기대고 싶은 포용력을 담아내고 있었다. 작아진 몸과는 다르게 그대로였던 옷이 슬며시 흘러내려 그녀의 하얀 속살을 들어내고, 매력적이라고 말할 수 없는 빈약한 몸에도 마레이는 이전에 느낀  없는 커다란 흥분을 느끼고 있었다.

필리아에게 흡혈을 당해 발정한 것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거대한 욕망이 마레이를 휩쓸고 있었다. 마레이는 저도 모르게 일어나 란에게 다가가 그녀의 어깨를 붙잡고 천천히 밀어 넘어뜨렸다.

숨결이 닿는 거리에서 란은 여전히 마레이를 보고 있었다. 짐승을 닮은, 아니, 그 누구도 닮지 않은 특이한 눈동자는 거대한 인력을 가진 것처럼 마레이를 끌어당기고 있었다. 마레이는 조심스레 란의 몸위에 올라타 그녀의 입에 입술을 조심스레 핥아냈다.

달다. 달았다. 마레이는 게걸스럽다는 표현이 옳을 정도로 란의 입술을 핥고, 또 핥았다. 그로 모잘라, 그녀의 입안에 슬며시 혀를 밀어 넣다가 그녀의 목으로 붉은 혀가 투명한 물감을 이어나간다.

“으응….”

간지럽다는 듯이 몸을 움찔 떠는 란의 모습에 마레이는 더욱더 거칠게, 그리고 빠르게 란의 옷을 벗겨냈다. 옷 안에는 그 어떤 방해물도 없었기에 마레이는 거침없이 란의 새하얀 살을 핥고, 연분홍빛으로 반짝이는 작은 가슴을 슬그머니 베어 물었다. 몸을 움찔움찔 떠는 모습이 귀여워 말랑한 유실을 이빨로 잘근잘근 씹자, 무척이나 작은 몸이 부르르 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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