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7화 〉다가오는 것들(4)
얼마나 걸음을 옮겼을까. 한순간이라고 해야 될까, 몇번 걸음을 옮기지 않았는데도 어느새 발밑에 있는 수백 개의 도라이를 보고 마레이는 알 수 없는 신비에 몸을 잘게 떨었다.
불쾌한 감각이었다. 마치 온몸이 잘게 조각이 난 후, 다시 재조립 되는 것 같은 그런 느낌. 속이 울렁거렸다.
“오랜만이구나 라벨라.”
익숙한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 마레이는 황급히 목소리의 주인을 찾기 시작했고, 구석에서 마대 빗자루를 들고 있는 소녀를 발견했다. 필리아보다는 조금 더 연상이라는 느낌의 여자아이였다.
다만, 그 소녀는눈을 붉은 천으로 묶고 있었으며, 뾰족 튀어나와 있는 금색의 여우 귀에는 붉은색 글씨로 덧칠된 부적을 덕지덕지 붙이고 있는 기괴한 모습의 소녀였다.
그러면서도 신성하게 느껴졌기에, 불안하면서 동시에 두렵게 느껴진다.
하지만 왜인지 모르게 너무나도 그리웠다.
“라벨라?”
여우 소녀는 앞이 보이지 않는 듯, 고개를 갸웃등하더니 마레이가 있는 방향으로 천천히 다가왔다.
“아… 라벨라가 아니군요. 라벨라의 냄새가 잔뜩 나기에 그녀인 줄 알았더니. 다른 사람이군요. 혹시 그녀의 반려인가요?”
여우 소녀가 무어라 이야기하는지는 귀에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익숙했다. 천천히 다가오는 그녀에게서 나는 달콤한 향기가, 목소리가, 모습이, 모든 게 다 익숙했다. 마레이는 저도 모르게 그녀를 향해 다가갔다.
눈앞의 여우 소녀는 여전히 빗자루를 두 손에 꼭 쥐고, 마레이가 있는 방향을 보고 있었다. 아니, 붉은 천으로 가린 눈동자에는 한 점의 빛조차 담아지지 않았기에, 자신을 향해 몸을 돌리고 있다는 말이 정확했다.
“라벨라는 오지 않았나요?”
하얀 얼굴. 필리아처럼 병적으로 하얗다기보다는 베어 물어 잇자국을 나고 싶을 정도로 깨끗하고 보드라워 보이는 하얀 피부 위로, 붉은색조를 띄는 분홍색 입술. 자그마한 입에 간간히 들리는 얇은 미성.
“네, 혼자….. 왔습니다.”
그리웠다. 이 단어를 제외하고 마레이의 감정을 설명할 수 있는 말은 없었다. 이상하게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목소리가 덜덜 떨려서, 지금 제대로 말하고 있는 것인지 걱정마저 들었다. 말을 어눌하게 내뱉지 않았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잘 오셨어요, 청소도슬슬 마무리되어가니. 올라가서 이야기를 나눌까요?”
무엇인가 욱하고 가슴속에서 올라오고 있었다. 섣불리 말을 내뱉는다면, 이상하게 비명이 터져 나올 것 같아서 고개를 끄덕였고, 눈앞의 작은 무녀님은 마레이의 대답이라도 들은 것마냥 등을 돌려 조심스레 앞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금을 녹여낸것 같은 머리카락은 나무 그늘 아래에서도 묘하게 반짝이며 눈길을 사로잡는다.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가느다란 하얀 목덜미와, 그보다 더 하얀. 더러움이라고는 한 점 찾아볼 수 없는 순백의 상의와 발목까지 덮는 붉은 치마를 입고 있었다.
빗자루를 소중하게 끌어안고 앞서 걸어가는 여우소녀가조심스레 계단을 오를 때, 붉은 하카마가 슬며시 들리며 보드라워 보이는 하얀 살이 보였다. 묘한 감정이 들어 마레이는 애써 시선을 돌렸다.
“당신은, 라벨라를 좋아하나요?”
“.... 아, 네. 무척이나요. 무척 좋아해요.”
배운 적도, 들은 적도 없는 단어들이 기억나고, 또 떠오른다. 머릿속을 헤집는 듯한 이상한 감각에 앞서 걸어가는 무녀님의 질문에 마레이는 뒤늦게 대답해버렸다.
라벨라, 라벨라드 파웬. 어머니를 여의고 불행한 삶을 살았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조금 부족함이 있었지만, 친척들은 분명히 마레이를 챙겨주고 있었고 대다수가 동의할 수 있는 가족이라는 테두리에 묶여서 지내고 있었으니까.
막연하게 도시의 생활에 환상을 가지고 있을 때, 마침 라벨라에게서 연락이 왔고 발테르에 왔을 뿐이었다. 물론 양모가 되어준다던 젊은 여성을 성노예나 다름없이 만들어, 집 안에 있을 때는 라벨라의 안과 밖에 정액이 마를 틈도 없이 잔뜩 귀여워해 주는 상황은 분명히 이상하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린 소년에게는 극상의 여체들이 계속해서 매달리고 정액을 달라고 조르는 상황에서 자신의 중심을 잡고 이성적인 생각을 이어나가는 일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아침에 일어나, 모친의 입안에 한 발.
다 마시지 못하고 일부로 하얀 몸 위로 흘리며, 자신을 올려다보는 양모의 매력적인 모습에 그대로 밀어 눕히거나, 엎드리게 해서, 임신시킬 생각으로 가득찬 질내사정을 하고.
더러워진 육체를 씻는 중에는 집에서 기르고(?) 있는 못된 암캐가 주인님과 사모님의 끈적한 섹스를 보며 잔뜩 끈적하게 만들어낸 속살을 스스로의 손으로 벌려 어린 소년의 정액을 자궁 안에 가득 받아낸다.
꾹꾹 조이는 기분 좋은 살단지에 정액을 가득 쏟아붓는 것으로 모자라, 백금색의 음모와 부드러우면서도 단단하게 느껴지는 암캐 여선생의 배와 풍만한 가슴, 그리고 얼굴에 정액을 가득 뿌리고 난 뒤, 다시 목욕을 시작한다.
이때쯤이면 식사 준비를 마친 모친 또한 욕조 위에서 구걸에 가깝게 애원하며자위를 하며 어린 소년의 이성을 마비시키고. 모친의 질안에 가득 담긴 정액을 흉악한 고기 막대로 끄집어 내면서도, 새로운 정액을 주입시킨다.
다시 한번 달라붙는 암캐 엘프를 포함한, 셋이서 함께 욕실에서 마음껏 욕망을 배출한다. 기분 좋게 사정하고, 끌어안으면 끈적하게 달아오른 여체들의 체온에 파묻혀. 몇 분 눈을 감고 일어나면, 몇 시간 숙면을 취한 듯한 기분으로 가볍게 몸을 씻어내고, 식사 중 시중을 책상 위에서, 그리고 의자 아래에서 받아들이며 본격적인 아침을 시작한다.
학교의 시간표도 다르고, 여행도 다녀왔기에 고정화된 패턴은 아니었지만. 오늘 하루만 해도 마레이는 모두가 잠든 시간에 깨어나, 집에서 출발하는 시간까지 라벨라와 일리엔의 질안에 십회이상 사정을 한 이후였다.
그리고 교회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매력적인 에르덴과 이제 슬슬 자신의 욕망에 솔직해져 기대하는 눈빛으로 흘깃 바라보는 이드리엔까지. 현자라고 해도 자제심을 잃기 충분한 여성들에게 둘러싸인 어린 소년에게 지금 상황을 논리적이나, 객관적으로 이해할 시간은 물리적으로 부족했다.
오늘만 해도 필리아아의 대화가 아니었다면, 지금 이시간까지 줄리아나 이드리엔을 붙잡아, 그녀들이 수업에 지각할 때까지 마음껏 싱싱하다기보다는 아직 미성숙한 어린 씨앗을 그녀들 배 안에 잔뜩 집어넣고 있었을 테니까.
뭐, 아무튼 끝이 없다고 불러야 되는 무한한 성욕에, 어린 소년의 정액으로 임신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극상의 여체들로 가득찬 생활을 하고 있는 마레이에게는 라벨라 드 파웬이라는 존재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기분 좋은 나날들의 시작이자, 어찌 면 모든 것일 수도 있었다.
그렇기에 자연스레 그녀의 이름이 나올때, 흘러나오는 감정은 색욕뿐만 아니라 끝없는 감사와 사랑이 담길수밖에 없었다.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계단을 천천히 오르는 여우무녀는 희미하게 미소를 짓고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네요. 라벨라도 자신을 정말 좋아하는 사람을 만났군요.”
“가, 감사합니다.”
“조금만 더 가면 되니까, 힘내요.”
섹스를 할 때에는 무한할 것 같은 체력과 반대로 조금은 운동 부족이 아닐까 생각이 드는 마레이에게 있어서 높디높은 계단을 오르는 건 무척이나 고된일이었고 숨이 목 끝까지 차오르다 못해 그대로 앞으로 누워버리고 싶은 생각이 들 쯤에야 여우 소녀가 말한 조금만의 끝에 다다랐다.
여우 소녀가 건네준 물을 마시고, 숨을 고르고 나서야 마레이는 다시금 현실로 되돌아올 수 있었다. 육욕에 빠져 사는 나날이다 보니, 잠시만 멍하니 의식을 흘린다면 매력적이 여체들이 떠올라 성욕을 자제하기가 힘들었다.
여우 소녀가 눈을 가리지 않고 있었다면, 어린 소년의 것이라고는. 아니, 인간의 것이라고 믿기지 않은 흉악하고 거대한 페니스가 바지위로 한참이나 부풀어 오른 것을바로 볼 수 있었을 터.
마레이에게는 무척이나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사람들의 인기척이라고는 찾을 수 없고, 깔끔하게 정리되지 않았다면 을씨년스럽다는 표현이 어울릴 것 같은 거대한 신사의 모습에 마레이는 알 수 없는 두려움과 익숙함이 공존하는 것을 깨닫고 이상하게 시선을 한곳에 정착시킬 수 없었다.
“이 대륙에서는 볼 수 없는 신기한 건축 양식이긴 하지요. 가까이 가서 보시겠습니까?”
“아, 네….. 감사합니다.”
시선만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을 뿐이지만, 마레이가 두리번거리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고 있는 것인지 여우 무녀님은 친절하게 길일 안내하고 있었다.이름조차 밝히지 않은 소녀.
마레이에게 내뱉는 존대에서 묘한 이질감이 계속해서 느껴진다. 그러고 보니, 눈앞에 걸어가고 있던 소녀는 라벨라를 격식없이 그저 이름을 불렀다. 그리고 보이지도 않은데, 자신을 알고 있는 것 같지 않은데 라벨라의 반려라고 생각한 것일까.
불현듯 머릿속이 맑아진다.
왜 자신은 이 소녀를 따라가고 있던 걸까. 누구인지도 모르는 소녀를?
왜 이 소녀에게 익숙함을 느끼고 있던 걸까. 오늘 처음보았을 텐데.
왜 자신은 이 소녀를 보고…..
“이상한 게 당연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여우 소녀가 걸음을 멈추었다. 하얀 상의와 붉은 하카마가 보이던 뒷모습에 나풀거리는 무엇인가가 있었다. 솟아난 것일까. 아니면 처음부터 있었는데 보지 못했던 걸까. 나풀거리는 것은 꼬리였다. 아홉 개의 금색의 꼬리.
순금을 녹인 듯 반짝거리는 금색의 꼬리의 끝부분은 겨울이 막 찾아온 산처럼 하얗게 물들어 있었다.
“수인(獸人)은 아닙니다. 인(人)이라 표현할 수 없다는 게 정확할지도 모르겠지요.”
분명 앞서가던, 몇 걸음이나 크게 뛰어가야 닿을 것 같은 여우 소녀가 어느새인가 마레이의 코 앞에 있었다. 마레이는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생각을 읽는 것일까.
“생각을 전부 읽을 수는 없습니다. 다만, 당신에게서 피어나는 끈적한 욕망을 읽어낼 수는 있지요. 그리고 몸에서 잔뜩 나는…. 라벨라를 제외한 다른 여인들의 냄새도.”
마레이는 눈앞의 소녀의 눈을가린 붉은 천의 의미를 자신도 모르게 깨달았다. 흉하다고 생각이 들 정도로 귀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부적들이 어떤 용도로 쓰이고 있는지 알아버렸다.
“라벨라가 왜 당신을 여기로 보낸 것일까요.”
여우소녀는 웃고 있었다. 아니, 웃고 있지 않았다.
“저는… 저는….”
길을잃고 찾아왔다. 그냥 간단하게 대답하면 될 뿐인데, 이상하게. 너무나도 이해가 되지 않게. 그런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억울하다는 말이 정확할까. 목이 콱하고 막히고 코끝이 찡하고 울린다.
“남자라면 울지 말고 이야기하세요.”
정중한, 그러면서도 조근조근한 존대. 하지만 그 속에는 거대한 압력이 담겼기에 마레이는 쉽게 말을 내뱉을 수없었다. 눈앞의 여우 소녀는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것 같은 어린 소년의 모습에도 그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고 그저 앞에 서 있을 뿐이었다.
“먼저 말하기 어렵다면 제가 먼저 하면 될까요.”
눈앞의 소녀는 공격적이었다.아니, 적대적이라는 말이 정확할까. 여우 소녀의 모습은 하나도 달라지지 않았다. 그래, 처음부터 마레이에게 적대적이었다. 다만, 말하고 있지 않았을 뿐이고, 마레이가 몰랐을 뿐이었다.
별것도 아닌 사실에 마레이는 새어 나오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공격을 당해서는 아니었다. 추궁을 당해서도 아니었다. 그냥, 그냥, 그냥이라는 말밖에 반복이 되었다.
“저는 이 신사를 관리하고 있는무명의 무녀입니...”
“란님.”
눈앞의 소녀의 이름은 란이었다. 마레이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왜 알고 있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다만, 그녀의 이름은 란이었다.
“제 이름을 라벨라에게 듣…. 지 않았군요.”
“란님.”
다시 한 번 눈앞의 무녀의 이름을 불러보았다. 울음이 새어나오다 못해, 끝없이솟아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목이 잠기고, 꽉닫힌 입에서는 울음소리가 터 나온다.
무녀는, 란은 입을 꾹 다물었다. 눈이 봉인된 채로, 귀가 강제로 닫힌 채로 란은 마레이를 살피고 있었다.
“그 어린 성녀가 보낸 건가요? 냄새가 희미하게...”
성녀 에르덴. 그녀가 보낸 게 아니었다. 마레이는 고개를 저었다. 자신을 코앞에서 내려다보는 그 모습이, 옅은 살내음이, 달콤한 내음이 너무나도 그립고, 이상하게 마음속을 헤집는다.
“왜인지 모르겠어요. 당신을 보면 그리워요.”
깊은 한숨과 함께, 마레이는 억눌린 목소리로 내뱉었다. 란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마레이를 보고 있었다. 붉은 붕대로 가려진 눈이 봉인을 너머 마레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잘 보이지 않는 듯, 고운 이마에 약간의 주름이 잡힌다.
“란님, 저희가 만난 적이 있었나요?”
마레이는 저도 모르게 란을 향해 한 발자국 다가갔다. 몸이 닿을 거리. 숨결이 닿을 거리. 란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고 마레이를 보고 있었다.
“제가 미쳤는지도 몰라요. 근데, 그런데…. 이상하게 그리워요. 이름이 떠오르고, 당신의 모습이 떠오르고, 목소리가 떠올라요.”
“.........마리.”
한참 동안 말이 없던 란의 입에서 익숙한 이름이 흘러나왔다. 마리. 너무나도 그리운 이름이었다. 그리고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이름이었고.
“란님은 어머니를 아시나요.”
“아아…..”
란의 입에서 간헐적 신음이 터져 나왔다. 보는 사람이 안타까울 정도로 덜덜 떠는 손으로 마레이의 뺨을 매만졌다.
눈앞이 보이지 않아 몇 번이나 뺨을 만지기 위해 목을, 귀를, 허공을 스쳐 지나가던 손이 뺨위에 조용히 가라앉았다.
“너였구나. 너였어. 마레이.”
“저를 아시나요?”
란은 대답하는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몸을 내리누르는, 피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전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마리의 아이였구나. 그 어린, 그 작던, 내 품에 가득 안기던. 마리의 아이.”
란은 울고 있었다. 그녀의 눈물을 보자, 이상하게 가슴을 짓누르던 먹먹한 감정이 차갑게 식어갔다. 마레이는 더이상 울지 않고 그녀를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