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5화 〉다가오는 것들(2)
“그… 지, 질문이 여러 개인 사람도 있을 텐데, 이렇게 강요하듯이 하면…..”
“강요? 내가? 강요했나?”
-아닙니다!!!
줄리아가 뒤를 돌아보며 묻자, 약속이라도 한 듯, 반 아이들이 같은 말을 내뱉었다. 마레이의 행동에 몇 명은 눈을 질끔 감고 있었다.
“뭐… 그래도, 네가그렇게 느꼈다면 사과하지. 나는 끼어들지 않을 테니까, 파웬에게 자유롭게 질문해보도록.”
학생들이 예상한 반응과는 정반대로 행동하는 줄리아의 모습에 다들 어리둥절한 모습이었다. 줄리아는 더이상 일절 관여하지 않겠다는 듯이, 팔짱을 끼어 가슴을 받치고 벽에 기대어 서 있었다.
쭈뼛쭈뼛 한 여학생이 손을 들었다.
“저기….. 그 어제.. 필리아 공녀님이랑 같이 있던 사람맞아?”
“네? 필리아 공녀님이, 필리아 더 블러드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응, 공국의 공주님…..”
줄리아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레 묻는 소녀의 모습에 마레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뭐가 그리 기쁜 것인지, 방금전 질문을 한 여학생이 두 손으로 입을 가리고 두 눈을 크게 뜬다.
“공주님이랑은 무슨 관계야?”
“네? 치, 친구라고 해야 되나… 필리아에 대한 질문은…..”
“개인이 곤란해하는 질문은 삼가도록. 시간이 20분쯤 남았으니, 자유롭게 질답하도록. 나는 남은 업무가 있으니 처리하도록 하지. 조례는 이걸로 끝낸다. 길리아?”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 나와 마레이가 버벅거리며 대답하자, 줄리아는 가볍게 박수를 치며 가볍게 조례의 끝을 알려왔다. 줄리아가 호출하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는 갈색 머리카락의 포니테일 소녀.
“예, 전체 차렷, 선생님께 경례!”
-감사합니다~
길리아라 불리던 소녀의 주도하에 학생들의 인사가 끝나자, 줄리아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마레이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드린 뒤 교실 문을 나섰다. 칠판과 가장 가까운, 줄리아가 직접 지정한 자리에 앉았다. 학생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공녀님이랑 진짜로 사귀는 사이인 거야?”
“공녀님이랑은 언제 만난거야?”
“파웬가와 블러드가 약혼인 거야?”
필리아에 관한 이야기가 쉴 새 없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필리아에 대해서 아는 게 거의없는 마레이는 잘 모르겠다고 말끝을 흐리자, 질문의 방향성이 아무렇게나 흘러가기 시작했다.
“전학이라는 소문이 있던데, 어떻게 된 거야?”
“그게, 조금… 그게....”
“수업은 뭐 들어?”
눈치 빠른 몇몇 학생들이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이 들어올 때마다 빠르게 화제를 돌려주고 있었다.
“이하운 수업 듣는다고 했지? 그거 악평이 자자하던데 괜찮은 거야?”
“좋으신 분이에요.”
“선배에게 들어보니 시간 내내 달리기만 시키고 대련이라는 이름으로 무자비하게 괴롭힌다던데, 진짜야?”
“그, 글쎄요. 그런 걸 해본 적이 없어서...”
마레이에게 이하운이란 호탕한 누나가 있다면 그런 느낌이 아닐까 생각이 드는 재미있는 사람이었다.
“시간표를 이렇게 빡빡하게 짜면 공부할 시간은 있는 거야?”
“그, 그러게요….”
셀린 페르디낭이 해주었던 이야기가 똑같이 튀어나왔다.
“일리엔이랑 이드리엔 수업을 동시에 듣는 건 무리하는 거 아니야?”
“네?”
“원소 마법이랑 백 마법 이론기초 및 실습 말이야.”
“그, 그러게요….”
라벨라가 짜준 대로, 일리엔이 추천한 대로 수업을 있는 그대로 들었던 마레이였기에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아직 감조차 오지 않았다. 셀린 선배가 경악했던 것처럼 동급생들이 미쳐버린 듯한 황천의 시간표를 가지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조심해야 돼, 적정 성적을 맞추지 못하면 졸업을 못 한다고…. 4, 5년 동안 다니는 사람들도 꽤 있으니까. 뭐, 그런 사람들은 보통….”
셀린이 해주지 않은 무서운 이야기가 갑작스레 튀어나왔다. 졸업이라는 건 교육과정을 이수하면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나. 마레이가 아는 상식 내에서는 그랬다. 다만, 전학생의 무분별한 시간표를 보고 걱정하는 반 학생들의 모습을 보면 마레이가 아는 상식과는 무엇인가 거리가 있는 것 같았다.
“이체르… 이 사람은 좀 위험한 소문이 돌고 있어. 통일 전쟁 때, 금지된 마법을 썼다는 소문이 있어. 왠만하면 안 듣는 게 좋을 것같은데...”
“금지된 마법이요….?”
여학생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금지된 마법이라는 게 무엇인지 몰라 되묻는 거였지만, 마레이의 얼떨떨한 반응을 정말 마법을 썼냐로 듣는 것 같았다.
“어디서 온 거야? 응? 사실대로 말해줘. 어차피 여기의 대부분은 떳떳하게 온 애들이 아니니까~.”
“바, 방벽 주변에 있었어요.”
“방벽? 거기 진짜로 좋았는데… 부럽네~.”
마레이는 자신이 살던 작은 마을을 말하고 있는 것이었지만, 호응해주는 여학생은 눈 덮인 설산이라든지, 휴양지라든지. 그런 이야기를 하고는 해서 무엇인가 핀트가 조금씩 어긋나는 것 같았다.
“파웬 가문이면, 황제님을 직접 본 적 있지?”
“텔레비젼에서만… 아, 공국의 축하 사절 때 직접 보긴 했어요.”
황제에 관한 이야기가 튀어나왔다. 모른다는 마레이의 반응에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곧장 화제는 다음으로 넘어갔다.
“라벨라 감찰청장은 어떤 분이셔?”
“라벨라님이랑 같이 산다고?”
라벨라의 양자로 발테르에 온 것이었지만, 다른 학생들은 그런 사실을 모르는 눈치였다. 적당히 대답할 수 있는 수준으로 대답하고 있었지만, 끝없이 밀려드는 질문들에 슬슬 버겁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자자, 전학생이 제대로 말도 못 하고 있잖아. 다들제자리로 돌아가!”
어느새 끼어든 갈색 머리 소녀의 모습에 다른 아이들은 모두 적당히 대답하고 제자리로 돌아갔다. 흑색의 눈동자가 무척이나 익숙하면서도 낯설게 느껴지는 여자아이였다. 반장을 맡고있는 것인지, 방금전에 줄리아에게 대표로 경례를 주도하던 여자아이.
“길리아 마리타라고 해.”
마레이보다 살짝 크다고 해야 할까. 살짝만 고개를 올리면 마주 볼 수 있는 키. 앞머리를 남겨두고 깔끔하게 묶은 포니테일. 짙은 눈썹과 오똑솟은 코.
“마레이 드 파웬이에요.”
길리아가 손을 내밀자, 마레이는 본능적으로 그녀와 악수를 했다. 부드러워 보이는 피부와 다르게 손에 딱딱하다 생각이 드는 굳은살이 박혀 있었다. 무기술을 배우고 있는 걸까, 외견과는 다르게 악력이 있는 손이었다.
“라벨라님의 후계가 있다고 들었는데, 너였구나?”
“아… 네.”
양자(養子). 길리아가 소리를 내지 않고 입 모양으로 뻐끔거렸다. 마레이는 흠칫 놀라 잠시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다, 사실이었기에 그대로 고개를 끄덕였다. 발테르의 총독이라는 명함이 붙어있지만, 사실상 발테르를 소유하고 있는 파웬가문에 대해서는 마레이가 알 방법은 없었다.
아니, 그런 것을 신경 쓰기에는 너무나 매력적인 여체들이 매일매일 어린 소년에게 애정을 갈구하고 있었다. 아니, 애정이라는 말보다는 애욕이라는 말이 정확하지 않을까. 발정난 짐승처럼 소년 앞에서 엉덩이를 흔들고 있는 모습을 보면 누구도 현실감이 들지 않을 광경이었으니까.
그리고 파웬가문의 유일한 후계자라는 라벨라 또한 양모(養母)로서 마레이를 교육(?)하고 있다보니, 그런 것에 신경쓰지 못한다는 말이 정확하겠다만.
“먼 방계가문이니까, 기억 못 할 수도 있겠네. 뭐, 앞으로는 친하게 지내자고. 마레이.”
강인한 여자아이였다. 여자아이라는 말과 여성이라는 말의 기로에 서있는 길리아 마리타는 여전히 마레이의 손을 놓지 않고 천천히 위아래로 흔들었다.
길리아의 입술은 웃고 있었지만,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 자신을 훑어보는 검은 눈동자에 마레이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라벨라와 다른 여인들이 보는 애정 어린 시선과 다르게, 이상하게도 불쾌한 느낌이 들었다.
“친척이 있는 줄은 몰랐네요.”
흑안. 희귀한 눈동자 색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흔하지 않은 색. 오늘 첫만남인데도 불구하고, 친척이라는 이야기에 마레이는 묘한 친근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물론 라벨라가 더욱더 혈연적 의미로 가깝겠다만, 어린 소년이 느끼기에는 사회생활을 하는미모의 직장인은 너무나도 멀었고, 같은 학교, 같은 반에 있다는 점에서 묘한 심리적 거리감을 단번에 줄이고 있었다.
물론, 매일매일 이모(?)에게 임신을 강요하듯이 질내에 건강한 아기씨를 전부 자궁속에 뱉어내는 것으로 모자라, 각종 봉사를 받고 있는 소년이 할 생각은 아니었지만.
“나도 좀 놀랐어, 라벨라님이 양자를 들였다니. 뭐, 마리님이 자식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길리아에 대해서 아는 것도 딱히 없었기에 마레이는 적당히 웃어 보였다. 친척이 있었다면, 라벨라는 왜 길리아에 대해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을가. 그런 생각도 잠시 들었지만, 친구를 사귀기 힘들어 보였는데 어떻게든 될 것 같다는 느낌에 그런 생각은 아무래도 좋았다.
“총독님은 만나 본 거야?”
“로렌님이요? 라벨라… 아니, 어머니가 다음에 시간이 될 때 인사드리러 가자고 말은 하셨어요. 요즘 이래저래 바쁘시다고 하셔서...”
발테르의 총독. 녹색의 용 등 수많은 이름이 있는 로렌 드 파웬이라는 용을 만나보고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라벨라는 로렌을 볼 틈도 없이 정말로 바빴기에 마레이는 이해할 수 있었다.
어린 주인님이 오기 전까지 어떻게든 집으로 달려와, 어서 오세요 키스에서 시작해서, 오후 내내 비어있던 자궁에 다시 한번 끈적한 정액으로 자궁에 가득 받아들여야 하고, 식사 직전에 가벼운 샤워(?)에서 온몸으로 봉사 해야 되는 등, 할 일이 정말로 많은 그녀였다.
거기에 요근래에는 일리엔 크사크루라는 새로운 섹스용 펫이 들어왔기에, 조금이라도 마레이와의 단둘의 시간을 가지기 위해 노력하는 그녀에게 로렌을 만나는 것은 조금 뒤로 미뤄도 되는 일이었다.
물론, 그녀가 마레이를 탐탁치 않게 여기기에 조금 더 시간을 끌고 있다는 말이 정확하겠지만, 그 사실을 벤치에 앉아있는 소년소녀가 알 일은 없었고….
“부럽네, 나도 한번 뵙고 싶어서 연락을 드렸는데. 답장도 안 오던데.”
길리아 마리타는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입꼬리는 올라가 있었지만, 여전히 눈은 웃고 있지 않았다. 왜인지 모르게 자조적인 느낌이 들기도 했기에 마레이는 어색한 듯 뺨을 긁었다.
“식사는 괜찮은 편이지? 맛도 맛이지만, 발테르 학교의 식당은 가격적인 면에서 훌륭하다니까.”
“아, 네….”
가방 안에 들어 있는 라벨라의 사랑이 가득 담긴도시락이 있었지만, 마레이는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길리아와 식사를 이어나갔고, 잠시 벤치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게 바로 지금이었다.
“학교는 어때? 일반적인 학교랑은 많이 다르지?”
“아, 네. 수업을 선택해서 듣는 거랑 다양하고 또...”
그녀의 이런저런 질문에 성실히 대답하고 있었지만, 시골 촌놈이라고 부를 수 없는 마레이에게 있어서. 여전히 발테르의 문물들은 전부 신기하고 놀라웠기에 적당히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길리아는 재미있다는 듯이 작게 웃고는 했다. 뭐라고 말할 수 없는 꺼림칙함을 느끼고 있었지만, 마레이는 이렇게 친절한 친척을 안 좋게 보려는 자신을 몇 번이나 타이르기를 반복했다.
“궁금한 게 있으면 자주 물어보고, 한 번 놀러 가도 될까?”
“네? 집에요…?”
“응, 라벨라님도 뵙고 싶거든. 한 번도 직접적으로 만난 적이 없어서. 멋진 분이잖아, 아름답고….”
라벨라를 칭찬하는데, 마레이는 묘한 고양감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사람들이 흠모하는 라벨라 드 파웬의 몸 안에 자신의 욕망을 전부 쏟아내는 것으로 모자라, 천박하게 엉덩이를 흔들며 페니스를 요구하는 모습을자신만이 알고 있었다.
“라벨.… 아니, 어머니에게 여쭤봐도 될까요?”
“물론이지. 역시, 너도 라벨라님이라는 말이 익숙하지?”
길리아의 말에 마레이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감찰국의 마녀와 그녀의 양자의 비밀스럽고 끈적한 관계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는 아직 마레이가 라벨라를 어려워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당연할지도 몰랐다.
물론, 이 모습을 라벨라가 본다면 본인의 훈육(?)이 제대로 진행되고 있다며 속으로 좋아하고 있겠다만….
“나는 오후 수업이 따로 있어서 슬슬 출발해야 될 것 같네. 고마워.마레이 드 파웬.”
길리아는 치마 끝을 붙잡고 슬며시 고개를 숙였다.
귀족 가문의 방계를 본가로 초대하는 것에 의미를 둔 길리아 마리타가 받아들인 의미를 친척이 집에 온다는 느낌으로 받아들인 마레이였지만 두 사람의 오해가 풀리는 데는 조금 오랜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길리아는 빠른 걸음으로 사라졌지만, 아직 점심시간은 한참이나 남아있었다. 라벨라가 준 도시락은 여전히 남아있었지만, 억지로 먹고 싶지는 않았기에 마레이는 소화라도 시킬 겸 학교를 무작정 걷고 있다가, 익숙한 뒷모습의 그의 눈에 들어왔다.
무리를 이끈다는 표현이 옳은 걸까. 앞서 걷는 세 명 뒤로 여러 명의 학생들이 따라 걷다가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 것인지 몇 명은 웃음을 크게 터트린다. 태양을 받아 은빛으로 반짝이는 머리카락이 걸음을 옮길 때마다 슬며시 흔들리고, 슬며시 웃는 모습에 날카로운 송곳니가 슬며시 보인다.
반가운 얼굴에 마레이는 저 멀리 가는 사람들을 무작정 따라 걸었다. 필리아와 함께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릴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 다가가자, 필리아가 슬며시 무리에서 떨어진다.
“아, 여러분. 개인적인 일이 있어서, 먼저 자리를 옮길게요.”
아쉬워하는 사람들과 손을 흔들고 홀로 다른 곳으로 걸음을 옮기는 필리아의 모습에 마레이는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필리아가 자신을 본 것인가 순간 생각이 들었지만, 필리아는 마레이를 쳐다보지도 않고 여전히 똑같은 걸음걸이로 앞으로 나아갔다.
무슨 일이 있는 걸까하는 궁금증에필리아의 뒤를 조심스레 뒤따라가다, 모퉁이를 도는 순간 날카로운 무엇인가가 마레이의 배를 쿡 누르는 느낌이 들었다. 조금이라도 움직였다가는 그대로 옷을 찢고, 살을 파고들 것 같은 위험한 느낌에 마레이는 몸이 꽁꽁 얼어붙는 느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