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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0화 〉3주차 에필로그-공녀님의 처음(필리아 더 블러드)(1) (130/341)



〈 130화 〉3주차 에필로그-공녀님의 처음(필리아 더 블러드)(1)

연회는 사교의 꽃이라 지칭하는 이들이 있다. 과거에는 그랬을지도 모르겠지만, 이제 대중 앞에 보이는 사교장이라는 것은 하나의 투기장로 변모한 지 오래였다. 아니, 처음부터 그랬던 것일지도 모른다.

힘의 우위가 어디로 기울어져 있는지 민중들에게 속이는 장소인 동시에, 수많은 거짓과 진실이 뒤섞여 현실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들이 흘러온다.

이미 합의된 내용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하면서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장소. 많은 사람들이 모일수록 거짓은 선명해지고, 진실은 강력해진다. 주워 먹을거리를 찾는 하이에나들은 항상 주변을 배회하고, 부스러기가 떨어질 자리를 귀신같이 알아서 찾아온다.

즉, 제국의 수뇌부들이 모이는 이곳에서 결집한 사람의 수와 힘의 우위와는 어떻게든 연관이 되는 장소라는 소리다.

“공녀, 엘븐하임에서 축하 인사를 드리기 위해 왔습니다.”

엘븐하임에서 파견된 대사, 인간의 피가 섞인 하프 엘프가 필리아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묘하게 붉은 얼굴로 드레스 자락을 꼭 잡고 있는 하얀 손등을 겨우겨우 풀어낸 필리아는 장갑을 벗고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축하는 감사하나, 저보다는 공왕님께 먼저 인사드리는 게 맞지 않을까요?”

하프 엘프가 필리아의 손등에 조심스레  맞춘다. 되묻는 그녀의 언행과는 다르게 필리아는 웃고 있었다.

“하하. 실례했습니다, 제국의 문화는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 말이죠. 엘프들은 제일 친한 친우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곤 합니다. 이해해주시겠습니까, 공왕?”

동시에 힘의 균형을 깨트리기 위해서로 준비한 패를 들춰내는 장소이기도 했다. 그러므로 지금 내보이는 패는 무척이나 직접적이고, 모욕적이며, 동시에 도전적인 수였다.

공왕의, 아스모스 더 블러드라 불리는 남자의 인상이 딱딱하게 굳었다. 필리아는 당당하게 가슴을 피고 자신의 아비를 바라보았다. 뭐, 이제는 아비라고 생각조차 하지 않았지만.

“....이해합니다, 대숲의 대사. 우리 공국과 대숲은 제국이 왕국시절부터 유력했던 동맹. 개인의 친분에서 나오는 실수로 마음이 상하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굳었던 얼굴도 찰나, 인자한 미소를 보이며 엘븐하임의 대사를 환대한다. 그리고 자연스레 준비한 말을 이어나간다.

“대숲에서 손님이 찾아오는 일은, 공국에게도 또한 축하할만한 일이지요. 제가 공왕으로 있을 때, 이렇게 엘프들과 교류하는 일이 생기다 기쁜 일입니다. 공녀를  교육한 보람이 있던 것 같습니다. 하하하하!”

아스모스는 웃고 있었지만, 필리아를 노려보는 것은 잊지 않았다. 필리아는 그저 밝게 웃어 보였다.

개자식. 웃음 속에 숨겨둔 욕설을 당장이라도 토해내고 싶었다. 필리아에게 있어 힘을 기를 때까지 고개를 숙여야 한다는 개소리였다. 아스모스의 아들의 손을 꼭 붙잡고 들어온 첩 년이 들어온 순간부터 밟아놨어야만 했다. 그때 보인 자비가 지금은 자신의 길로틴이 되어버렸다.

“이렇게 기쁜 날, 아버님께서 그렇게 좋아하시는 아들분께서는 어디로 가셨는지요?”

그 쓰레기는 지금쯤 놀고 있느냐 바쁘겠지, 아니면 궁에 있는 시녀에게 추행이나 저지르고 있겠고. 뭐 초대받아온 손님에게 실례를 저지를 것이 뻔하니, 어디로 여행이나 보냈을 터. 물론, 필리아는 그 새끼가 어디에 있는지 정도는 알고 있었다.

“몸이 안 좋아서 요양을 보냈는데 못 들었느냐? 그래도 네 동생이다. 아무리 타인에게 관심이 없다고 해도 적어도 가족에게는 관심 정도는 가져야지 쯧쯧…..”
“그 어린아이가 몸이 안좋으니, 알함브라에 있는 축제에 가서 요양도 좀 하는 건 이해하는데. 적어도 건국일 정도는 와야되지 않겠습니까? 시중을 드는 인원이 전부 여성이라는 건 조금 부럽기도 하군요.”

“키르케에 있는 좋은 요양소가 있다길래 그쪽을 통해 보냈단다. 가는 길에 여러 가지를 보라며 수행원을 붙여놨고. 너는 몸이 아픈 아이에게 어떻게 그리 냉혹한 게냐.”
“냉혹하다니요, 공국에서 키르케까지 거리가 얼마나 멀길래 벌써 일 년째인지 모르겠습니다. 도보도 아니고, 그 귀한 마차를 쓰고 보냈음에도 너무 오래 걸리기에 물어보았을 뿐입니다.”

“넌 별것도 아닌 것에 동생에게 트집을 잡는구나.  성격을 좀 고쳤으면 좋겠는데 말이다.”
“동생이라뇨, 제 동생은 하나뿐이랍니다. 정식 후계자도 아니고, 이름도모를 피가 반이나 섞여 있는 아이를 제 혈육으로인정해야 하는 것입니까?”

필리아는 입을 꾹 다물었다. 자신을 노려보는 아비의 눈초리에도 그녀는 당당하게 제 자리에 서 있었다. 아스모스의 시선에 비웃음으로 화답하며 여유롭게 주변을 둘러보아야 하지만, 자궁 안에서 꿈틀거리는 질척이는액체 때문에 필리아는 지금 서 있는 것도 한계였다.

“얼굴이 붉구나, 네 궁으로 가서 쉬어도 된다, 필리아.”
“오랜만의 공국에 돌아오니 기뻐서 그렇답니다. 아버님”

움직일 때마다, 배 안에서 출렁거리는  느껴지는 정액덩어리들. 긴장을 약간이라도 늦춘다면 그대로 주저앉아 헤프게 절정에 이를 것 같은 위기감에 필리아는 이를 악물고 제자리에 서 있었다.

드레스 자락 밑에 숨겨진 다리가, 아니 엄밀히 말하면 허벅지가 덜덜 떨리고 있었지만, 다행이도 눈치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밤새 그런 짓을 했는데도, 호텔 방 안이 떠나갈 정도로 헤프게 소리를 지르며 온몸을 비틀어 대며 아득할 정도로 혹사를 당했는데도, 몸은 이상하리만큼 정상적이었다.

아니,  어느 때보다 컨디션이 좋았다. 오랜만에 보는 정적인 아스모스를 보았는데도 별로 긴장되거나 하지 않았다. 이 인간이 이렇게 작아 보이다니. 우스운 일이었다.

덕분에  안에 정액을 가득 채운 채로,연회에서 사람을 맞이하고 적당히 이득이 될만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중간중간 질육안에서 뒤틀리듯 꿈틀거리는 정액덩어리들 때문에 약한 절정을 반복하는 것만 제외한다면 무척이나 괜찮았다.

“저보다는 아버님의 안색이  좋으신데, 안채에서 쉬고 계시는  어떤지요?”

공왕은 더이상 대화조차 하기 싫은 듯, 필리아를 무시하고 지나쳤다. 필리아는 스쳐지나가는 아스모스의 모습에 코웃음을 쳤다.

고개를 숙이는 순간 밟힐 뿐이었다. 날카롭게 갈린 칼을 보이며 시시각각 아스모스를 위협해야만 했다. 더이상 뺏길 것도 없었고, 남은 것은 더럽고 추잡한 싸움뿐이었다. 연회장을 보았다. 공국의 절반은 적이었다. 그리고 그의 ⅓ 내지는  다른 적이었다.

“괜찮겠습니까, 공녀.”
“괜찮습니다.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싸울 테니, 전초전을 시작했을 뿐입니다. 제 부탁을 들어준 네리아님께 감사 인사를 전해주십시길 바랍니다.”

필리아는 자필로 쓴 편지를 엘븐하임 대사에게 내밀었다. 연회장의 절반 이상은 공국의 사람들이 아니었다. 사람은 많았다. 굳이 공국안에서 전부 해결해야 하는가? 라는 의문이 든다. 외세를 끌어들여 봤자 좋은 일은 없겠지만, 내가 갖지 못하면 부서지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철없던 저희 공주님이 필리아님을 보고 많은 자극을 받고 있습니다. 요즘 열심히 수행하시는 모습에 대 신관님께서 네리아님을 설득해주셨을 뿐입니다.”

공국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는 곳은 몇 없었다. 파후 공작령, 발테르 총통령, 제국, 대숲.

공작령이라 불리고 있지만, 파후 공작령 또한 실상은 제국의 직할령이었다. 그런데도 공작령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이유는, 제국으로 보내지는 세금에서 일정 부분을 떼어주기 때문이었다. 그것만으로 엄청난 부를 쌓을 수 있고, 주변에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행사할수 있겠지만, 실질적으로 가문을 지휘하는 파후장군  역할에 충실한 고지식한 인간이었다. 권력에 미친  가주가 문제였지만, 파후장군이 살아있는 현재로서는 그 어떤 움직임을 보일 수 없었다.

녹색용은 인간의 싸움에서 부스러기를 주워 먹는 것을 극도로 혐오하는 인물이었다. 고로 발테르의 총독은 이런 지저분한싸움에 끼어들지도 않았다.

황제는 너무나도 바쁜 사람이었고, 공국의 자율을 약속한 만큼 필리아에게, 아스모스에게 알아서 잘하라고 말할 뿐이었다.

“아, 혹시 엘븐하임에서 향수를 구하셨습니까?”
“....?!”

하프(half) 엘프의 물음에 필리아는 잔뜩 놀라 몸을 움츠렸다. 혹시 정액 냄새가 나는 건가. 지금 비꼬는 건가. 아니면 정말로 묻는 것인가. 같은 질문이 수도 없이 반복되었다.

“하이엘프 분들에게서 나는 달콤한 냄새가 나셔서 물어보았습니다.”
“아하하, 잘 모르겠습니다.”

하프(half) 엘프라고 해도, 하이(high)엘프에 관련된 이야기라면 진심이었다. 필리아는 내심 안도의 한숨을 삼켜냈다. 이게 좋은 냄새인가. 생각해보았지만, 맛을 보았을 때, 풋내나는 밤꽃향 같으면서도 묘하게 중독되는 냄새였던 걸로 기억하는데.

“제국의 황제께서 드디어 오시는군요. 공녀님같이 가주시겠습니까?”

엘프 대사가 손을 내밀었다. 필리아는 작게 웃고 그녀의 손을 붙잡았다.

“물론이죠.”

대숲도 여황제랑만 파이프라인이 연결되어있기에 공국의 싸움은 공국 내부만의 싸움이었다. 다만 필리아가 어떤 수를 써서 대숲을, 그것도 핵심인 엘븐하임을 끌어들인 것인지 모르겠지만, 결과는 한가지였다.

아스모스 또한 지금부터 긴장해야만 했다.

“마에리베리 빌헬름전하께서 입장하십니다~!!”

거대한 나팔이 연회장의 분위기를 가라앉히며, 오늘의 주인공이 드디어 연회장으로 등장하려하고 있었다.

필리아는 숨을 길게 들이마시고, 다시 길게 내뱉었다. 배 안에서 꿀렁꿀렁 움직이는 정액의 감촉에 아무렇지도 않기 위해 몸을 진정시켰다. 몸의 감각보다는 생각이 날카롭게 벼려져야만 했다.

필리아의 나이가 마레이보다 어렸을 때, 아스모스는 한 여성과 자신또래의 남자아이를 성에 데리고 왔다. 필리아는 아스모스가 바람을 피우고 있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제 아비가 쓰레기임을 알았기에 필리아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새로운 가족이라 생각하지도 않았다. 마음에 들지 않았으나, 굳이 아버지와 척을  필요는 없었다. 그렇기에 필리아는 고개를 숙였고, 얼마지나지 않아 짓밟혔다.

후계자의 자리를 공식적으로 빼앗기지는 않았지만, 자신과 친하게 지낸 이들이 하나둘 궁 밖으로 쫓겨났다. 처음은 드미테르였다. 다음은 기사단장 푸르크, 다음은 행정관 노만.

전쟁이구나. 필리아는 깨달았다. 앞에서 보이는 칼부림이 아니라, 뒤에서 저지르는 흉악한 암수를 그렇게 뒤늦게 배우게 되었다.

고개를 숙이면 밟힌다. 한 번 밟히면 일어날 수가 없는  정상이었지만, 다행이도 시대가 필리아에게 일어날 기회를 주었다. 황제에게 인정된 공식 후계자라는 점이 필리아를 살아남게 했다. 아니, 싸울 수 있게 했다.

그렇기에 필리아는 다시는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싸울 일이 있다면 끝까지 싸워야만 했다. 한 번 고개를 숙였을 때, 필리아는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 짓밟혔기에, 다음에는 자신이 죽을 거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아니, 죽으면 차라리 나을지도 몰랐다.  사생아 새끼가 자신의 몸을 핥는 것처럼 바라볼 때마다, 당장 그 두 눈을 뽑아 개먹이로 주고 싶을 정도였다. 더더욱 참을 수 없는 건, 동생을 바라보며 끈적하게 스킨쉽을 하려는 그 새끼의 행동이었다. 자신과 다르게 순진한 동생은 오빠의 부담스러운 애정이라 생각하고 있겠지만, 그건 엄연히 추행이었다.

처음에는 애정이 부족하겠거니, 이해하려고 했지만. 성을 벗어나 돌아다니는 중에, 자신이 있는 줄도 모르고 사생아 새끼가 왈패들과 어울리면서 자신이 왕이 되면 공녀 자매를 범한다든지, 돌려쓴다든지 두자매를 엎드리게 해서 같이 범한다 같은 개소리를 짓거렸기에 필리아는 더이상 그것을 인간으로 보지 않았다.

지 애미와, 지 애비를 닮아 경박하고 더럽고 추잡한 짐승 새끼였다. 동생의 가슴을 만지는 모습에 참지 못하고 손등을 나이프로 찍어버렸고, 필리아는 강제로 발테르에 보내졌다.

공왕이 3년이라는 시간을 벌었다고 생각했지만, 그녀는 가만히 있을 정도로 녹록한 인물은 아니었다.

엘프들의 지지, 대놓고 보여줄 수 있는 패 중 최고의 카드였다. 아직도 사생아의 자식과 자신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돼지 새끼들을 얼마나 서로의 편으로 이끌었는지를 비교해야만 했다. 이미 공국 내부에는 더이상 중립을 지키는 이들이 없다고 자신할 수 있을 정도.

말이 유학이지, 사실상 정치에 수를 쓸  없도록 발테르로 유폐를 당한 자신이 건재하다는 걸 모두에게 알려줘야만 했다. 확실하게 이쪽이 우세하다는  보여줘야만 했다. 충성이라는 것은 자발적인 게, 아니라 충성을 받칠만한 대상이 되어야만 했다.

정확히는 그들에게 이득을   있다는 확신을 주어야 했다. 더 작은 약속을 하더라도 그 약속을 지킬 수 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금덩이를 주겠다는 허황된 말보다, 지금 주머니에 있는 지폐를 주겠다는 말이  매혹적으로 들릴 테니까.

그렇게 따졌을 때, 필리아가 약속하는 건 약간의 거짓이 섞인 말과 현실을 교묘하게 섞인 약속일 수밖에 없었다. 아스모스가 지금 당장 그들에게 줄 수 있는 것보다는 더 작지만, 미래에는 조금 더 큰 것을 주겠다는 약속.

첫 발테르에 적응하고, 이리저리 발을 뻗는데 걸린 시간이 일 년. 그 일  동안 수많은 공국의 귀족들이 등을 돌리는 것을 보고 필리아는 그 사실을 깨달았다..

작년에는 북서부 연방과 좋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들을 사교장으로 끌어드렸다. 삼  동안 공을 들인 결과로 대숲의 이름 아래 나오지 않던 엘븐하임을 이곳으로 끌어드렸다. 다시 공국으로 복귀하기까지는 앞으로  개월.

이번에는 좋은 패를 얻게 되었다. 파웬가의 그 아이랑 몸을 섞거나 할 생각은 없었지만, 이상하게 그렇게 되어버렸다. 하지만 나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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