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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9화 〉모든 여자를 지키는 방패 (109/111)



〈 109화 〉모든 여자를 지키는 방패

제국군 독립 천인대(제스 홀란트 천인대), 제 삼(三) 백인대, 1분대장.
헤트나는 인생이  얄궂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별 욕심이 없다. 성욕은  있었지만, 괜찮은 남자를 꼬시는 건 그녀처럼 평범한 병사가 아니라 기사여도힘든 일이다.
그저 말년까지 무사무탈하게 지내는 것.

이게 헤트나의 목표였다.

'인생이 그렇게 쉽게 풀리지는 않지만 말이지.'

귀족의 수탈이 싫어서, 차라리 그 휘하로 들어가면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병사가 된 그녀다.
다행히 그럭저럭 적성에 맞아 잘 버텼고.

"그렇다고 전쟁에 참여할 생각은 없었는데..... 에휴."
"분대장님, 무슨 일 있으십니까?"
"됐다. 다들 준비했지?"

헤트나는휘하의 분대원 7명을 확인했다. 다들 날카로운 표정이다.

"예...."

 녀석이 우렁차게 외치려는  간신히 동료가 틀어막는다. 헤트나는 땅을 툭툭 차며 중얼거렸다.

"소리질러서 수인종 몰려오면  좋겠어? 그치? 우리가 나름 매복한 건데, 그것도 들키고 말이야."
"아, 아닙니다....."

그녀는 한숨을 푹 쉬며 수인종 쪽을 바라봤다. 높은 지대라서나름 잘 보였는데, 수천 명이 달려오는광경은 가히 장관이었다.

두두두두ㅡ

수인종과 가장 가까운 사람은 헤트나가 존경해 마지않는 사람, 제스 홀란트였다.
그녀는 문득 가슴이 두근거리는 걸 느꼈다.
뒤에서 동료의 목소리가 들린다.

"오늘도 천인장님 얼굴 감상하는 겁니까?"
"시끄러워."

내가 저분을 흠모해서 뭘 하겠나. 제스 기사단에 들어갈 실력도 아닌데.
이럴 때면 열심히 살지 않은 게 후회되었다. 죽을 만큼 노력했다면, 제스 기사단에 들어갈 수 있었을까?

'거기 여자들은 가끔씩 천인장님과 잠자리를 한다던데......'

고작해야 분대장인 그녀로서는 멀기만 한 일이다. 헤트나는 아쉬움을 접어두고 수신호를 보냈다.
그걸 보고 2인 1조로 행동하는 분대원들.

"준비됐습니다."
"제대로 굴려야 한다.천인장님 쪽으로 가면 너흰  죽는 거야."
"예.....!!"

두두두-

점차 발소리가 커진다. 헤트나는 불안한 눈으로 제스 홀란트를 관찰했다.
혹여 천인장님이 다치진 않을까? 만약에 따라잡힌다면 내가 그림처럼 나서서......

머리속에 제스와 이어지는 로맨스를 그리는 헤트나였다.
그런데 진짜로 위기가 닥쳤다. 유독 빠른 엽표족 하나가 제스 홀란트의 등을 덮친 것이다.

"어어, 천인장님......!!"

입을 틀어막고 비명을 지르려던 찰나, 이상한 광경이 펼쳐졌다. 허공에서 엽표족이 튕겨 나간다.
벽에 머리라도 박은 듯, 형편없이 나뒹구는 엽표족.
제스 홀란트는 아까처럼 막힘없이 달렸다.

"뭐지....? 천인장님께 저런 재주도 있었나?"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침이 성수인 분인데 뭔들 못하시겠습니까."
"그거랑은 다른데......"

헤트나는 머리를 긁적였다.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공격을 튕겨낸다?
마법사도 힘든 일이었다. 마법이라고 해도 눈으로 확인해야 정확도가 높아지니.

'뭣보다 천인장님은 마법이 어울리지 않아..... 다른 쪽으로 생각하면 초능력?'

모종의 초능력을 각성했다. 제스 홀란트가 갑자기 마법사가 되었다는 것보다는 훨씬 설득력 있는 가설이었다.
저도 모르게 중얼거리는 헤트나.

"키야, 저 얼굴에 신분에 초능력까지 있으시면...... 나랑 너무 멀잖아."
"분대장님?"
"아, 아니다."

황급히 손사레치는 헤트나. 그녀는 거리를 가늠하며 명령했다.

"슬슬 굴려라. 어차피 내려가면서 속도는 붙으니까, 방향을 잘 정해야 한다."
"예!"

쿠르르-

큼직한 바위가 서서히 움직인다. 제스 홀란트는 산비탈로 수인종을 유도하고 있었다.
산비탈을 올라오는데, 바위가 굴러떨어지면? 피해가 클 거다.

병사들은 미리 구해둔 바위를 열심히 밀었다. 분대원들이 총 십여 개의 바위를 굴리자, 준비한  동이 났다.

"끝났습니다."
"그래.... 이쪽을 보는 놈들도 조금 있네."
"후퇴합니까?"
"합류지, 합류."

헤트나는 가기 직전, 제스 홀란트를 바라봤다. 수천의 수인종에게 쫓기는 모습.
분명한 도주다.
하지만 그의 얼굴,지위, 이때까지의 행동이 도주마저 멋있게 만들어줬다.

"하아..... 진짜 전쟁 끝나면 홀란트 가문 사병이나 해봐야지."
"안 가십니까?"
"가자."

헤트나는 지령서를 다시 확인하며 산등선을 올랐다. 한낱 분대의 동선마저 짜인 지령서는 보물이나 다름없었다.

'아씨, 얼굴 한 번만 더 보고 싶은데.'

마지막으로 헤트나가 제스 홀란트를 바라본 순간이었다.
그는 마침 삼백의 귀족 사병을 수호하고 있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삼백 명을 지킬 수는 없다.

하지만 그가 방패를 내리찍은 순간, 투명한 막이 삼백 명의 앞을 감쌌다.
이어지는 수인종의 공격.

수백 명을 감싼 만큼, 감당해야 하는 수인종의 공격도 수백이었다.
저건 막을 수 없다. 제아무리 초능력을 각성했다고 한들, 어찌 막겠는가.

"천인장님.....!"

비명을 지르려던 헤트나였는데..... 그녀는 그대로 입을  벌렸다

"어.....?"

투명한 막이 온전히 공격을 막아낸다. 질량에 밀려서 조금 비틀대는 듯했지만, 주변 병사가 달려들자 그럭저럭 유지되었다.
그러니까, 제스 홀란트 혼자서 삼백의 부대를 수호한 것이다.

순간 그에게서 후광이 비치는 듯하다.
헤트나는 용맹하게 맞서는 제스 홀란트를 보며 중얼거렸다.

"천인장님......"

하염없이 바라보는 헤트나. 그녀는 어느새 자신의 사타구니가 축축하게 젖어든 것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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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스 홀란트가 모두의 앞에서 '여자를 지키는 방패'를 선보인 때, 놀란 건 한둘이 아니었다.
전황을 지켜보던 히폴리타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뭐, 뭐야? 저거 초능력이야?"
"그런 것 같습니다.홀란트 가문에 그쪽 핏줄은 없는 거로 알고 있지만....."
"아니, 위력은 또 뭐야. 배리어형 초능력 같은데, 저 정도면 발루아 가문 직계라고 해도 믿겠어."

제국 5대 공작 가문의 하나.
대대로 초능력자를 배출하는 곳이 발루아 가문이다. 히폴리타는 제스 홀란트의 마력 방패를 그 급으로 평가했다.

옆에서 고개를 끄덕이는 호위 기사.

"확실히 그렇습니다. 지금 덤비는 놈들도 수인종 중에선 정예 같으니....."
"하... 푸하하하!!"

히폴리타는 호탕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제스 홀란트의 안전을 걱정했는데, 저런 능력을 숨기고 있었다면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호쾌하게 지시하는 그녀.

"천인장님이 막아주는 사이에 바위를 전부 굴려라! 수인종을 막아서서 밀집도가 높아졌어. 더 잘 통할 거다."
"예!"

깃발이 연속해서 펄럭인다. 이내 산의 곳곳에서 바위가 천천히 굴러떨어졌다.
조금 흥분한 목소리로 말하는 히폴리타.

"정확히 어떤 능력일까? 초능력자는 귀해서  적도 거의 없단 말이야."
"일단 방어적인 건 확실합니다. 막기만 하고 있습니다."
"흐으음."

히폴리타는 웃으면서도 속으로 조금 투정 부렸다.

'저런 능력이 있다면 진작 말했어야죠! 작전 자체를 바꿀 수 있는 능력인데....!'

든든하게 제스 홀란트가 막아주는 가운데, 삼백여 명의 사병들은 거리를 벌렸다.
본래 유인 계획에서 미끼로 쓰려고 했던 이들이다.

“대단하네. 죽을 사람까지 살렸어.”
“그렇습니다.”

단신으로 모든 적을 죽일 수는 없다.
하지만 모든 아군을 살릴 수는 있다. 히폴리타는 제스 홀란트의 능력이  그답다고 생각했다.

‘항상 얻어맞았잖아요? 그런데 이젠 맞으면서 누군가를 지킬 수 있겠네요.’

히폴리타는 자신감이 생겼다. 저런 남자라면 확실히 끌어올릴 수 있다.
단순히 자신의 욕구일 뿐 아니라, 진짜로 제국이 도움이 될 남자였다.

저런 초능력을 더욱 갈고닦는다면?

‘어쩌면 제국을 수호하는 방패..... 평화의 상징이 될 수도 있겠어요.’

제스 홀란트라는 존재 하나가 전쟁의 억지력이 된다. 십존급 강자도 하지 못한 일이었다.

물론 아직은 꿈일 뿐이지만..... 히폴리타는 언제나꿈을 이루며 살아왔기에, 희망을 가졌다.

“천인장님에게 뒤처질 수 없다. 준비했던 걸 쏟아부어!”
“예!”

밀집한 수인종 가운데로 에델의 마법이 떨어진다.
순간 화력은 낮아도 지속적으로 괴롭힐 수 있는 불의 비였다.

쉬이익-쉬익-

꾸준히 떨어지는 불덩이. 제스 홀란트에 대한 분노로 가득했던 수인종들이 정신 차리기엔 충분한 양이었다.
그들은 뒤늦게 흩어지며 피해를 최소화하려고 했지만, 그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곳곳에 함정을 파고 숨은 분대가 가득했던 것이다.
병사들은 철저히 안전하게 행동했다. 숫자가 많은 무리는 그냥 보낸다.
그러다가 하나, 혹은 둘이서 지나가는 수인종이 있으면?

“짐승 새끼들을 쳐죽여!!”
“와아아아-!”

하는 식으로 덮치는 것이다.
확실히 이길 수 있는 상대만 골랐기에 전투는 짧았다. 전투 후에는 당연히 이탈하여 후방으로 합류한다.

상대의 피해를 극대화한다기보다는, 아군의 손실을 최소화하는 전법.
그중에서도 핵심은, 히폴리타가 예상하지 못했던 ‘모든 여자를 지키는 방패’였다.

이날, 제스 홀란트의 방패는 족히 수백의 생명을 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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