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08화 〉함정으로 (108/111)



〈 108화 〉함정으로

"끄아아아압!!"

힘껏 마력 방패를 휘두른다. 그러다가 문득 깨달았다.

'최강은 아니겠네. 마력 방패로 때려도 결국 내 힘이 들어가는 거잖아?'

질량은 없다고 쳐도, 상대에게 전해지는 충격은 내가 만드는 거다. 당연히 내 힘, 실력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물론 수인종 따위를 깨부수기엔 충분했다.

마력 방패로 복도를 가득 채우고  쥐어박자, 주춤거리며 물러서는 놈들.

"제기랄, 누구 저 막을 깰 수 있는  없나?"
"너희가 정예 전사잖아! 누굴 원하는 거야?"

수인종끼리도 다툼이 벌어진다. 고작 나 하나를 처리하지 못하니 답답할 것이다.

'뭣보다 내가 유명한 기사도 아니고 말이지.'

차라리 아버지가 와서 놈들을 학살했으면? 억울하진 않을 거다. 전통적인 강자니까.
하지만 듣지도 보지도 못한 내가 와서 일방적으로 때리니 억울한 것.

나는 콧방귀를 뀌며 외쳤다.

"안 될 놈으로 태어난 걸 슬퍼해라! 나는 될 놈이니까!"
"저 미친놈이 뭐라는 거냐!"
"낯짝을 갈기갈기 찢어야만 잠들 수 있을 거 같다...."

나는 병사들에게 눈짓했다.그러자 곁으로 다가오는 병사들.

"방어선을 뒤로 물려라.보다시피 시간은 내가 충분히   있다."
"어디까지....?"
"제3 방어선도 같이 물려. 비밀통로의 입구에서 다시 보는 거다."
"예!"
"보라 머리만 남고 얼른 가라."
"아.... 알겠습니다!"

보라 머리 병사는 남아야 한다. 내 욕망을 채워주기 위해서 말이다.
방어선을 유지하던 여자 병사가 멀어지자 마력 방패는 다시금 얇아졌다.

얻어맞던 수인종 놈들이 그걸 눈치챈다.

뻐억-

"크흣.....? 아까보다 덜 아픈  같은데?"
"진짜지? 때려 본다!"

검기가 서린 발톱이 마력 방패를 후려친다. 나는  손에는 방패,  손에는 보라 머리를 끼고 황급히 방어했다.

까아앙-!

조금 진동하지만 결과적으로 멀쩡한 방패.

'휴.... 역시 싸움은 여자 끼고 하는 게 제맛이지.'

그리 생각하며 한 발짝씩 물러서는데, 신음이 들린다.

"하으읏, 흐으....."
"음?"
"하아아....."

찔걱-찔걱-

알고 보니까 나는 병사의 사타구니를 능욕하는 중이었다. 평소 습관이 그대로 나온 모양이다.

'경험이 없다고 그랬지?'

그러면 훨씬 더 흥분될 거다. 남자의 손길이 처음이니 얼마나 흥분될까. 나도 덩달아 달아올라서 좋았다.

질척거리는 사타구니를 마음껏 유린하며 조금씩 물러난다.
수인종들은 내 모습에 더욱 분노했다.

"저, 저, 저..... 저 자식은 암컷을 끼고 싸운다!"
"빌어먹을..... 대체 얼마나 얕보이는 거냐!"

그러고 보니 어째 내가 나쁜 놈이 되는 그림이다. 여자를 능욕하면서 물러나는 사람이라니.
어디 인질극이라도 벌이는 것 같지 않은가.

'크게 다르지도 않지. 인질범은 인질이 무기라면, 나는 여자에 대한 욕구가 무기니까.'

최대한 천천히 후퇴하려고 하는데, 수인종 중에 하나가 외쳤다.

"돌아가라! 돌아서 저 녀석 옆의 벽을 부수는 거다!"
"굳이?"
"딱 보면 알잖아. 저놈은 모든 방향을 가리지 못한다!"
"......!!"

오, 천잰데?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덕분에 마력 방패의 약점도 알게 되었으니.

'마력 방패가 조금 휘어질 수는 있어도, 앞뒤양옆을 전부 감싸지는 못해! 사방에서 포위당하면 죽을 수도 있다는 거야.'

물론 방패를 한껏 키워서 휘두르면 될 일이지만...... 그것도 내 힘이 따라줘야 가능한 거였다.
마력 방패에 수인종 수십이 달라붙으면? 곤란할  있다.

방패의 성능은 내가, 약점은 적이 발견해주니 이처럼 좋은 테스트가 없다.
나는 씩 웃으며 말했다.

"단점을 말해줘서 고맙군."
"쿠르르, 고맙기는 개뿔. 이 저택은 어차피 포위됐다. 네놈도 조만간 내장을 드러내게 될 거다."

아우울-

승리의 포효를 부르짖는 수인종. 나는 녀석이 여유부릴 때를 노려 뒤로 훌쩍 물러났다.

'슬슬 비밀 통로 입구에 모였겠지?'

시간은 충분히 벌어줬다. 아직도 모이지 못했다면, 그건 병사가 게으른 거지 내가 태만한  아니다.
방패를 등에 매고 땅을 박찬다.

타닥-

"드디어 도주한다!"
"잡아!"

혹시 등에 맨 상태에서도 방패가 발동되나? 궁금해서 해봤는데 진짜로 발동되었다.

우우웅-

아까와 같은 소리를 내며 퍼지는 방패. 위력도 손으로  때와 거의 비슷했다.

'신체와 접촉하면 괜찮다는 거지?'

보면 볼수록 마음에 든다. 순간 이런 상상이 스쳤다.

여자를양손에 끼고 마력 방패를 사용하면? 신체에 접촉만 하면 되니까, 발로도 쓸 수 있으리라.
양옆에 여자, 그리고 발로는 무수한 적군을 막는다.

상상만 해도 멋졌다.

“헤헤.”
“인간 자식이 신나서는!”

수인종의 외침은 이제 시끄럽지도 않다. 나는 비밀통로 부근에서 손을 흔드는 리우 남작을 발견했다.

“천인장님, 여기입니다!”
“오, 용케 도망치지 않았군? 미리 들어갔을 줄 알았는데 말이야.”
“그렇게 못 써먹을 놈은 아닙니다.”

글쎄다. 내 전력을 믿어서 이러는 걸 수도 있지.
비밀통로는 지하에 뚫려 있었다. 마치 맨홀 뚜껑처럼 생긴 것을 열면  들어가는 구조다.
병사들은 전부 들어갔고, 리우 남작만 날 기다리던 상황.

나는 문득 궁금해져서 물었다.

“내 방패에 대해서 들었나?”
“예, 예...? 들기는 했습니다만.....”
“역시.”

새롭게 얻은 마력 방패를 병사들이 떠벌린 모양이다. 마법도, 검술도 아닌 것이 힘을 발휘하니까 특이하긴 할 거다.

내가 마력 방패를 다시금 펼치자, 리우 남작은 조심스레 물었다.

“혹시...... 초능력자이십니까?”

초능력자. 다른 능력자보다는 훨씬 적지만 가끔 튀어나오는 족속이었다.
특히 몇몇 가문에서는 아예 핏줄에 각인된 능력이고.

‘대표적으론 5대 공작가의 하나인 발루아 공작가가 있지.’

말고도 변경백인 싸이 가문 따위도 있었다. 아무튼 초능력자는 드물긴 해도 이상한  아니라는 거다.
난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맞다. 나도 몰랐는데, 얼마 전에 각성했지.”
“오오! 전선에서 활약하셨던 이유가.....!”
“흥. 들어가기나 해라.”

전쟁 활약은 순전히 맨몸으로 했다. 이런 특성의 도움 없이도 말이다.
리우 남작이 꾸물거리며 비밀 통로로 들어갈 때였다.

쿠드득-

“음?”

콰직-!

저택의 벽이 뜯어진다. 수인종 놈들이 기어코 벽을 뚫고 날 포위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타조족 우두머리의 미소가 눈에 들어왔다.

“크하핫, 이제 어디로 도망칠 셈이냐!”
“바본가......”

타조족이 멍청하다는 소문은 진짜였던 모양이다. 나는 혀를 끌끌 차며비밀 통로 안으로 몸을 던져 넣었다.
털썩하고 아래에 도달. 좁은 통로로 열심히 이동하는 병사들이 보인다.

“내가 생각도 없이 저택에서 항전했겠나? 제발 대가리 좀 탑재했으면 좋겠어!”

다시 분노해서 뭐라고 외치는 소리가 꽂힌다. 게다가 수인종들의 눈도 적잖이 붉어진 게, 어지간히 화난 모영이다.

“$%$!&”
“저 인간 자식을 &*$!”

나는 유유히 걸어가면서 생각했다.

‘아무리 봐도 죽을 때까지 날 따라올  같은데?’

딱히 의도한 건 아니지만, 여자를 끼고 싸우는 바람에 어마어마한 분노를 샀다.
반은 짐승인 수인종들이 감정을 억누를 리도 없고.

유인 자체는 대성공.
이후의 전투는?

나는 방패 손잡이를 꼭 잡으며 중얼거렸다.

“정 안 되면 내가 모두를 지켜야지. 그럴 일이 없는 게 더 좋겠지만 말이야.”

믿음을 가지고 발걸음을 옮겼다.
현재까지 병사 손실은 전무. 어쩌면 내가 전쟁에 어울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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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폴리타는 초조하게 제스 홀란트를 기다렸다.

‘와야 해요..... 제발 무사히!’

함정은 충분했다. 그녀는 광적일 정도로 꼼꼼하게 병사들을 배치했고, 각 분대마다 역할을 정해 놓았다.

10명도 안 되는 분대 하나가 어디서 공격하고, 어느 산길로 돌아서 다시 본대에 합류할지.
그리고 상대의 정찰병은 어떻게 잘라야 하고, 수인종들이 격분할 때는 어디로 숨어야 하는지 말이다.

히폴리타가 광적으로 작성한 서류를 본 분대장들은 약간 질릴정도였다.

중요한 것은 수인종들이 분노해서 마구잡이로 뛰어드는 것.
심혈을 기울인 함정이었으나, 연습 시간은 좀 부족했다.

“이성을 잃어야 제대로 걸릴 텐데......”
“걱정이십니까?”

히폴리타는 호위 기사에게 괜히 짜증냈다.

“당연히 걱정되지! 사실 최선은 중소 영지를 전부 버리고 성안에 틀어박히는 거였어. 제스 공이 그럴 사람이 아니라서 차마 말하진 못했지만......”
“그렇군요.”

기사도 뭐라  말이 없었다. 그가 보기에도 중소 영지를 전부 버리는 잔인했다.
그렇게 히폴리타가 산봉우리에 올라 초조하게 대기하고 있을 때, 호위 기사가 돌연 크게 외쳤다.

“옵니다!”
“뭐?”
“수인종들이 몰려옵니다! 정확히 공녀님이 정해둔 경로입니다!”

정확히 작전대로.
제스 홀란트는 깔끔하게 역할을 수행했다.

‘유인에 성공했으면, 다음은 제 차례죠.’

히폴리타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말했다.

“개시의 깃발을 올려. 사냥 시작이야.”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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