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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5화 〉지휘관의 역할 (105/111)



〈 105화 〉지휘관의 역할

"하지만 정 하고 싶다면 네가 먼저 나서라."
"예......?"

나는 조쉬 베흐나의 가슴을 쿡쿡 찔렀다. 얼굴을 찌푸리며 살짝 밀리는 녀석.

"솔선수범 몰라? 영지민을 희생양으로 내세울 거면, 네가 먼저 해보라고."
"그건......"
"차라리 도망치면 그러려니 해. 그런데 뭐 영지민 배에 극독을 넣어서 먹이자고? 네가 그러고도 사람 새끼냐?"
"......"

조쉬 베흐나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얼굴에는 불만이 가득했는데, 마치 '논리는 내가 이겼지만, 힘에서 딸리니 반박하지 않겠다.'라는  같았다.

그 표정이 정말 참기 힘들다.

"야!! 넌 그딴 작전을 쓰면 진짜로 통할 거라고 보냐?"
"예, 수인종은 지금도 인육을 먹는 중입니다."

나는 입을 가리고 큭큭 웃었다. 진짜 어처구니가 없는 놈이다.

"그럼 하나가 인육을 먹고 뒤지면? 다른 놈들은 멍청하게 그걸 보고도 계속 먹어? 뭔가 조치를 취하지도 않고?"
"어...... 전부 처리할 수는 없어도 조금은 통할 겁니다. 이때까지 당하기만 하지 않았습니까!"

참지 못했는지 발끈하는 조쉬 베흐나. 나는 당하기만 했다는 말에 주목했다.

'이 자식들은 우리가 적절히 반격했다는 걸 모르는군. 하기야 소형 영지의 정보력이 얼마나 되겠어.'

정보원도 딱히 없을 테고, 그냥 소문을 수집하는 정도일 것이다. 나는 에델을 시켰다.

"에델, 우리가 수인종을 상대로 올린 전과를 읊어봐."
"예. 우선 호족의 습격에 맞서 민간인 피해 없이......"

줄줄이 말하는 에델. 그걸 듣는 귀족 무리의 표정은 점점 파리해졌다.

"......닷새 전에 있었던 매복에서는 랑족의 잔당 이백을 소탕했습니다. 참고로 매복 작전에서 입은 아군의 피해는 극미합니다."
"......"

말문이 막힌 조쉬 베흐나. 녀석은 어쩔 줄 모르는 얼굴이 되었다.

"한 게 없다고? 응, 다시 말해봐."
"죄송합니다."
"너희들이 그냥 가만히 틀어박혀 있을 때, 우리는 열세를 극복하고 4할이나 갉아먹었어. 네놈들의 그 쓰레기같은 작전을 받아주고 싶겠나?"
"정말 실수했습니다."

조쉬 베흐나는 완전히 사죄하는 태도가 되었다. 다만 미래에 대한 걱정은 여전한 듯하다.

"이젠 무슨 작전을 쓰실 겁니까?"
"그게 말이지......"

말끝을 흐리며 히폴리타를본다. 하지만 기대하지는 않았다.

'괜찮은 아이디어가 떠올랐으면, 바로 달려왔겠지.'

곤란한 얼굴의 히폴리타를 예상했는데, 의외로 그녀는 뭔가 고심하는 얼굴이었다.

"히폴리타?"
"아...... 잠시만요."

혼자서 중얼거리는 그녀. 이내 밝은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생각났어요! 천인장님이 목숨만 걸어주면 돼요!"
"내 목숨?"
"네! 방금 솔선수범해야 한다고 했잖아요. 이번 작전도 목숨 걸고 나서주시면 됩니다, 후훗."

잠시 정신이 멍했다.
왜 나한테 목숨을 걸라고 하지...... 사실 히폴리타가 내부의 배신자인가? 소형 영주들한테 붙은?

쓸데없는 생각은 바로 치웠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그녀의 말이라면 들을 가치가 있다.

"좋아, 설명해줘."
"음...... 일단 삼백 명의 병력은 천인장님이 지휘해요."
"그거야 당연하지."
"또 삼백 명만 끌고 수인종에게 덤비는 거예요."
"......?"

통할 리가 없다. 나는 수인종 사이에서도 꽤 유명한 얼굴이었다.
나를 보자마자 찢어죽이려는 놈들이 넘쳐날 텐데, 저딴 영지병 삼백이라니......

'얼마 지나지도 않아서 나만 남지 않을까?'

 얼굴이 굳어지기 전, 히폴리타는 재빨리 설명을 덧붙였다.

"매복 작전 알죠? 그걸 시도하는 '척'이에요."
"시늉만?"
"실제로도 하는 거죠. 대신에 철저히 패배할 거고."

맞는 말이었다. 작금의 수인종은 열심히 뭉쳐 다닌다.
그런 놈들 상대로, 300을 데리고 덤비면 개박살일  뻔했다.

"내가 패배해서 얻는 건 뭐길래......?"
"후훗, 비밀."

나는 입을  벌렸다. 당장 내가 위험한 작전인데 비밀이라니.
히폴리타는 싱긋 웃었다.

"그냥목숨 걸고 도망치세요. 병사들과 동떨어져서 혼자만!"
"그래봐야 내가 유명해서 나를 따라올 텐데....."
"이후엔 알아서 할게요. 그냥 목숨만 건지세요."

뭘 하려는 건지는 모르겠다. 다만 나는 히폴리타의 약속을 믿었다.
나를 도와 정상까지 끌어올린다는 약속.

"하아아..... 따라볼게."
"잘 생각했어요."

히폴리타는 몸을 돌려서 떠났다. 이후엔 철저히 나를 배제하고 작전을 짰는데, 정말 나는 패배해서 도망친다는 임무 말고는 받은 게 없었다.

조금이라도 연습하자는 생각에 밖으로 나왔다. 연무장에서 방패를 쥔 채, 멍하니 하늘을 본다.

"살아남을 수..... 있겠지?"

왠지 불안한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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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인족들은 아직도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사실 8천의 병력은 수인종 전체로 따지면별  아닐수도 있다. 하지만 비주류가 뭉쳐서 발호한 만큼, 8천을 전부 잃으면 치명적이었다.

이미 거진 3천을 잃은 상황.
수인종들은  가지를 충족해야 했다.

"첫 번째, 우리 병력을  잃으면  된다."
"다음은?"
"이미 3천이나 잃었으니 확실한 성과를 올려야지. 하다못해 국경 근방의 영지를 초토화시켜서 우리의 활동영역을 늘리기라도 해야 한다."
"흐음......"

오크 제국의 부탁을 받아서 발호한 이들이다. 그러나 순전히 그 목적만으로 움직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병력 손실을 감수했으니, 그만한 대가를 받아가는 게 당연하리라.

그들은 어디까지나 천천히, 착실하게 갉아먹는 것으로 기조를 정했다.

"뭉쳐 다니자. 그게 답이다. 상대는 결국 우리를 각개격파하지 않으면 이길 방법이 없어."
"피로도는 어쩔 거냐? 암만전투가 없어도 원정을 계속하면 피로가 쌓일 수밖에 없다."
"흠...... 2교대가 좋겠군."

절반으로 나누어, 하루씩 싸우자는 거다.
조금 우려를 표하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수인종의 기저에 깔린 선민의식은 여전했다.

"절반도 어떻게 보면 나누어지는 건데......"
"괜찮다. 이때까지 당한 건 어디까지나 백 단위의 병력이었어. 2500씩 뭉쳐서 다니면 질 수가 없다."
"흐음..."

상대의 전력이 약하다는 건 익히 알고 있다.
게다가 피로를 줄인다는 명분과 수인종은 강하다는 선민의식까지 있다.
엽표족, 타조족, 랑족, 적마족의 수장은 2교대를 하자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그럼...... 우리 랑족부터 쉬겠다. 정신병 걸릴 거 같은 놈들이 많거든."
"마음대로."

쉬는 종족까지 정한 후, 회의는 가볍게 끝났다.

"리오 영지로 향한다. 정찰은 해놨겠지?"
"물론. 목책을 세운 게 고작인 영지다."
"좋아, 내일 보자고."

각기 흩어지는 수인종의 수장들. 그들  누구도 내일 벌어질 일을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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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격 루트는 리오 영지라고?"
"네."

나는 지도를 자세히 들여다봐야만 했다. 그만큼 코딱지만한 영지였기 때문이다.

"이런 것도 영지맞아......? 그냥 장원 같은데."
"리오 남작이 들으면 화낼 겁니다."
"화내라고 해. 어차피 우리가 구해주러 가는 역할이야."

구원자한테 역정내서 뭘 어쩔 건가. 나는 툴툴거리며 머리를 쓸었다.
에델의 걱정스러운 눈빛이 내게 꽂힌다.

"제스님......"
"왜 그렇게 보는데?"
"위험하다고 들었습니다. 유인 작전을 펼친다고......"
"히폴리타가 제안한 거야. 힘만 센 수인종들 상대로는 잘만 먹힐 거라고."
"......"

입을 달싹거리다가 한숨 쉬는 에델.
문득 그녀를 따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겨우 참았다. 나는 한구석에서 훈련 중인 3백여 명의 사병들을 봤다.

"어째 저놈들은...... 정규군보다 약해 보이냐?"
"그럴 겁니다. 훈련 상태에서도 차이가 있고, 뭣보다 저런 변방 영지의 병사는 사냥을 겸한다고 들었습니다."
"사냥......?"
"예. 예산을 아끼기 위해 병사에게도 경제 활동을 시키는 겁니다."

영지 한  잘도 돌아간다.
나는 툴툴거리며 바닥을 찼다. 저런 녀석들이랑 목숨을 걸고 임무하라고?
혹시 히폴리타는  목숨이 2개라고 생각하는  아닐까?

'아니지. 솔직히 목숨이 2개라도 아까운 거 같은데......'

내가 투덜거리는사이, 일단의 기사들이 다가왔다. 전쟁이 끝나면 우리 가문으로 편입될, '제스 기사단'이다.
이들의 숫자는 조금씩늘어서 지금은 딱 20명이었다.

"천인장님, 할말이 있습니다."
"여기서 해."

잠시 눈빛을 교환하는 녀석들.

"저희가...... 유인작전에 같이 참여하면 안 됩니까?"
"너희?"

나는 잠시 고민했다. 물론 제스 기사단이 있으면  생존 확률은 올라갈 거다.
이들이 목숨 걸고  지켜줄 건 당연했으니까.

'그런데 얘네도 분명 역할이 있을 텐데?'

난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히폴리타가 너희한테 시킨 게 있지 않나?"
"있습니다. 하지만 작전 성공 여부보다는 천인장님의 생존이 훨씬 중요한 일......"
"참모의 말을 들어."
"......"
"너희도 잘 알고 있지? 전쟁에 100%는 없어.하지만 더 유능한 사람의 승산이 높겠지. 그러니까 히폴리타의 말을 따라라."

제스 기사단은 더 반박하지 못하고 물러섰다. 불안함이 그들의 눈에 가득했지만, 나는 일부러 가슴을 폈다.

'우두머리가 당당한 모습을 보여야지.'

실제 마음이 불안하든, 죽을 수도 있다는 공포에 시달리든, 겉모습은 항상 당당해야 했다.
그게 내 역할이니까.

다음 날.
나는 삼백의 사병을 이끌고 리우 영지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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