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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3화 〉처절한 반격(2) (103/111)



〈 103화 〉처절한 반격(2)

타조족은 전통적으로 멍청했다.
그 대신에 신체 능력이 괜찮은 편이었지만, 멍청하다는 단점을 뒤엎을 정도는 아니다.
이런 이유로 수인종 연합 내부에서도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역할이었다. 심지어 비주류끼리 모인 이번 부대에서도 말이다.

타조족 부족장은 본인이 이끄는 300여 타조족에게 말했다.

"우리는 산골 가장 깊숙한 곳에 있는 마을을  거야."
"예? 깊숙한 곳이면 인간도 적게 사는 것 아닙니까?"
"아마도."
"왜 우리가 그걸 맡습니까?"

타조족 부족장은 자그만 머리를 갸웃거렸다.

"족장님은 더 좋은 마을을 맡았어."
"그래서요?"
"같은 타조족의 부족장인 나는 험한 일을 해야 한다는데?"
"그런가......"


부하들도 마찬가지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게 말이 되는 이유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따라야 하는 모양이다.


타조족 부족장은 힘차게 외쳤다.


"구우욱-! 아무튼 다들  봉우리에 올라간다!"
"구우우욱ㅡ!"


일제히 복창하며 부족장을 따르는 타조족 무리.
300이나 되는 전사가 돌진하자 주위의 산짐승은 죄다 도망치기 시작했다.


부족장은 달리면서 느긋하게 중얼거렸다.


"괜히 큰 영지를 공략했어."
"예?"
"쓸데없이 성이 있는 곳을 노려서 손해 봤다. 이렇게 자잘한 곳에도 인간은 많은데 말이야."
"맞습니다!"

부하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이런 소형 영지는 전략적 요충지가 아니니 굳이 노리지도 않았던 거지만, 그것까지 생각할 머리는 없었다.


타조족의 머리 속에는 '인간 사살=성과'라는 공식만 있을 뿐이었다.

"부족장님, 마을 크기는 얼마나 된답니까?"
"나도 몰라. 그냥 가라고 하던데?"
"좋습니다!"

어이없는 대화가 오간다. 작은 마을을 치는데 타조족 300이면 충분하고도 넘치는 게 사실이었으나, 정보가 없는 게 좋은 일은 아니었다.

타조족 부족장은 막연하게 어제의 일을 떠올렸다. 영지 하나를 초토화시켰던 전투.


'어제 마을에 있던 인간 숫자가 타조족 두 배였다. 그래도 쉬웠으니까 이번 마을도 쉬울 거다.'


설마 산골 마을의 인구가 천 단위겠나. 그리 생각하며 산을 내달렸다.
슬쩍슬쩍 방향만 확인하며 달리던 때였다.


이곳의 지휘관인 부족장마저 방심하고 있을 때, 느닷없이 돌덩이가 날아온다.
후우우욱ㅡ!


"음......?"


아니, 돌덩이가 아니었다. 얼핏 돌덩이처럼 보였던 물체는 가까이 올수록 본인의 부피를 자랑했다.
집채만한 바위가 타조족 무리를 향해 날아갔다.


"구우욱!!"


비상 신호와 함께 급하게 산개하는 타조족. 하지만 바위가 워낙 큰 탓에 거기에 깔리는 몇몇이 있었다.
쿠웅- 데굴데굴-
산비탈을 타고 구르는 바위. 삽시간에 타조족의 대형이 잔뜩 흐트러진다.


"습격이다!"
"사방을 경계......"


비상사태를 선포하기도 전, 투척물은 계속 날아왔다. 명사수가 쏜 듯한 화살이 타조족 머리를 관통한다.
푸슈욱ㅡ!
원체 작아서 맞추기 어려운 타조족 머리다. 하지만 머리가 작다는 점 때문에, 화살 하나에도 절명하고 말았다.


"끄어어..... 부, 부족장니임....."

부족장은 똑똑하지 않았지만, 야생의 본능이 있었다. 단번에 화살이 날아온 방향을 알아봤다.


"오른쪽으로 사선! 저기 붉은 바위 방향이다. 구우욱!"
"구우욱."


울음을 뱉으며 돌진하는 타조족 무리. 그들의 부리와 눈은 분노로 파들파들 떨렸다.


"얌전히 죽을 것이지!"
"구우욱."


투척물이 날아온 방향으로 열심히 달린다. 가장 앞선 건 당연히 부족장이었는데, 그는 갑자기 발밑이 허전해짐을 느꼈다.


"어.....?"

힘차게 땅을 박찼는데, 돌아오는 반탄력이 없다. 대신에 아래로 추락할 뿐.
1m쯤 되는 함정이 있던 것이다. 부족장을 비롯해 최선두를 달리던 타조족은 꼴사납게 나뒹굴었다.
쿠당탕탕-

"크으윽, 적당히 개겨야지!"
"구우우우욱!"


1m짜리 함정에 빠져도 죽지는 않는다. 대신, 바위에 더해 함정까지 맛보자 타조족 진형은 완전히 엉망이 되었다.
얼핏 오합지졸로 보이는 타조족 앞에 첫 번째 인간이 등장했다.


큼직하고 번쩍이는 방패를 든 사내.
제스 홀란트였다.

"날 봐라-!"

산 위쪽에서 훌쩍 뛰어내리며 외치는 제스 홀란트. 태양을 등져서 그런지 후광이 번뜩였다.
그의 얼굴을 알아본 타조족 무리는 흥분했다.

"공성전의 원수!"
"저 자식 때문에 우리가 또 바보 취급당했다!"


사실, 제스 홀란트가 등장했으면 매복임을 깨닫고 도망치는 게 맞겠지만, 역시 타조족은 멍청했다.
전황에 대한 판단보다는 당장 복수할  있다는 생각이 눈이 뒤집힌다.

"저거 갈기갈기 찢어!"
"잡아서 부리로 2천 번쯤 쪼아버려!"


사납게 달려드는 타조족 무리. 제스 홀란트는 항상 그랬듯, 빛나는 방패를 믿고 마주 뛰었다.

"저 인간 실력은 별거 없었어!!"

타조족이 자신만만하게 외치는 순간이었다. 냉랭한 목소리가 전장에 울려 퍼졌다.


"근력 강화, 반응 속도 상승, 천근추."

보조 마법이 다발로 펼쳐진다. 일반 병사에게 쓰기엔 효율이 안 좋고, 기사에게 쓰면 기사가 본래 검술을 펼치지 못해서 애매한 마법.
보조 마법은 신체 능력은 최상급이되, 기술은 부족한 제스 홀란트에게 최고의 효율을 발휘했다.

파앙ㅡ!
제스 홀란트가 땅을 박찬다. 타조족 전사가 볼 수 있었던 건 거기까지였다.
바로 다음 순간, 방패에 치여 하늘을 날았으니까.


"끼에에엑!!"
"또 덤벼."

기존의 신체 능력으로도 마음껏 날뛰었던 그다. 고위 마법사, 에델의 보조가 더해지자 타조족 사이를 제집 드나들듯 했다.


"비리비리하게 생긴 게!"


타조족 하나가 부리를 내리찍는다. 완벽히 뒤를 노리는 공격.
하지만 제스 홀란트는 간발의 차이로 피하며, 다리를 걷어찼다.
뻐억-

"크힛?"
"짐승은 산맥 너머로 꺼지라고!"

육중한 방패를 종잇장처럼 휘두르며 타조족을 날린다. 삼백의 타조족이 제스 홀란트를 어쩌지 못했다.
그러는 와중, 진짜 공격이 들이닥쳤다.

"단장 앨리스 외 백합기사단 10인, 지금부터 침략자를 처단한다."
"예!"

전원 여자로 구성된 홀란트 가문의 자랑이 달려든다. 정원인 20명의 절반이었지만, 그걸로도 충분했다.
타조족 멍청함 대신 얻은 용맹마저 잃을 지경이었다.

"우리는 마, 마을을 공격한다고......"
"부족장니이임! 이야기가 다릅니다!"

백합 기사단은 기사들 사이에서도 두려운 이름일진대, 평범한 타조족 앞에서는 사신이었다.


촤아악.
칼날이 번뜩이면 붉은 피가 치솟았다. 그야말로  떼에 늑대가 난입한 꼴.


"구우욱! 정신 차려라. 일단 후퇴해서......"

부족장이 어떻게든 타조족을 수습하려던 때, 뒤에서도 일단의 무리가 등장했다.
16인의 제스 기사단. 실력은 백합 기사단에 비해 확실히 처졌으나, 숫자는 더 많았다.


재빨리 기동해서 퇴로를 틀어막는 이들.


"천인장님을 뒤따라라!"
"위하여!"

부족장은 정신이 혼미했다. 객관적으로 전력이 밀리는지, 아닌지 구분이 가질 않는다.

'자꾸 적이 늘어나..... 얼마나 숨었던 거냐! 구우욱.....'


가끔 날아오는 화살도 거슬리기 짝이 없었다. 혼란스러운 와중, 누군가 화룡점정을 찍는다.


"새대가리를 박멸해라ㅡ!"

할버드를 든 여전사, 더피 백작이 등장한 것이다.

그녀는 이때까지 참고 참았다.
본래 가장 먼저 등장해서 깽판을 치고 싶었지만, 철저하게 단계적으로 등장하자는 계획 때문에 참을 수밖에 없었다.

지켜만 보고 있었던 한을 담아, 죄없는 영지민을 희생시켰던 굴욕을 담아, 기다란 할버드를 휘두른다.
쐐애액- 뎅겅!

"킷....?"

의아한 표정을 하고 목이 떨어지는 타조족.
더피 백작은 한을 터트리며 외쳤다.

"백성들이여, 복수해라!! 죄 없는 이웃의 피를 갚아라!"

더피 영지의 영지병들이 눈빛을 불태운다. 수성전을 통해 지독히도 얻어맞았던 그들이다.
최소한 지금은, 여기서는, 인간의 우세.
영지병은 저마다 무기를 치켜들며 달렸다.

"내 딸이, 딸이 죽었어어!!"
"어떻게 얻은 남편이었는데에에!!"

각자의 한이 담긴 말을 외친다.
늘상 인간을 무시하고, 숫자만 많을 뿐이라 여겼던 타조족은 처음으로 공포를 느꼈다.
기다란 다리를 놀리지도 못하고 주춤주춤대는 놈들.


그들 위로 단죄의 칼질이 쏟아졌다. 한이 담겨 매섭기 그지없는 칼날.
 아래에서 하나둘 목숨을 잃어간다.

"구우욱......"
"마을, 마을이라며....."

최후까지 남은 타조족 부족장이 쓰러졌을 때, 더피 백작은 무릎 꿇고 오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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