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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5화 〉다종족의 약점(2) (95/111)



〈 95화 〉다종족의 약점(2)

"끄아아아!! 한나 누나는 잘하고 있겠지이이이?"
"입만  자는 아니니 괜찮을 겁니다."
"제바아알!!"

나는 열심히 방패를 휘두르는 중이었다.
성동격서.
우리의 작전은 기본적으로 성동격서였다.
뭉쳐있는 수인종의 식량 창고에서 엉뚱한 곳을 공격한 후, 진짜 목표인 고기 창고를 터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게 헤르파의 정찰력, 그리고 소란 떠는 부대의 전투력, 또 창고를 터는 부대의 신속함이지.'

다행히도 헤르파는 식량 창고를 금방 찾아냈고, 창고 터는 부대에는 에델과 한나 누나가 있으니 괜찮을 거다.
문제는 내가 소란 떠는 부대에 있다는 거다.

'제기랄! 가장 오래 버틸  같다는 이유로 여기에 배정되다니!'

나는 천인장이다. 분명히 부대의 최고 지휘관인데, 내 배치를 앨리스가 결정했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다. 결과적으로 앨리스가  옆에서 싸우기는 했다만......

"설마 옆에 두려고?"
"도련님, 헛소리할 시간에 방패가 휘두르십시오."
"아, 알았어!"

뻐어억ㅡ!
수인종 하나가 다시금 날아간다. 나는 소수의 기사, 그리고 앨리스와 함께 수인종의 공세를 버티는 중이었다.
창고 경비 병력이라고 해서, 적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는 훨씬 많다.

방패를 급격히 끌어당기며 공격을 막았다. 팅-! 티딩-! 따위의 소리가 들리며 방패가 흔들린다.
물론 뚫리는 일은 전혀 없었다.

'그래도 슬슬 흠집이 나기 시작했어. 상대의 수준이 올라간다는 거지.'

홀란트 가문에서 최고급 방패를 가져왔다. 하지만 이게 어디까지 통할런지는 모르는 거였다. 실제로 '씨족의 어머니'를 상대로는 두 대도 버티기 힘들었으니까.

나는 방패를 조심스레 다루며, 눈을 빼꼼 내일었다.
카아앙-

"으으, 죄다 수인종이야. 앨리스경! 우리 도망치는 게 낫지 않을까?"
"짐승 놈들을 조금만 잡고 가겠습니다."

앨리스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10  1의 전투를 하는 중이었다. 항상 혼자 빛나는 녀석이다.

'쳇, 나는 뚜둘뚜둘 맞기만 하는데 말이야.'

앨리스가 상대하는 수인종 중,다섯은엽표(치타)족, 둘은 타조족, 둘은 랑족, 하나는 묘족이었다.
그들은 각자의 장점을 살리며 열심히 앨리스는 몰아쳤다. 그러니까......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앨리스가 방어하는 듯했다.

의기양양하게 외치는 수인들.

"이년을 죽여!"
"실력 좀 있는  같은데, 목을 자르면 분명 인간들 사기가 떨어질 거다!"
"목을 분리할 때까지 방심하지 마!"

승리를 확신하는 분위기다. 하기야 10  1에서 열 명을 맡고 있으면 자신감이 넘치긴 할 거다.
하지만 나는 놈들이 불쌍했다.

'분명 앨리스가 파악 완료, 이딴 말을 하고학살할 텐데......'

내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정확히 10초 후, 앨리스가 이렇게 중얼거렸기 때문이다.

"파악했다. 수인족도 별거 없군."
"뭐라는 거냐, 건방진......"

뎅겅ㅡ!
마치 안부인사처럼 내민 검에 수인 하나의 목이 잘린다. 나머지 수인은 경악했으나, 그건 시작일 뿐이었다.
서걱-서걱-. 소름 끼치는 소리와 함께 팔다리가 하나씩 날아간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앨리스와 싸우던 수인은 전부 바닥을 기었다.

"끄으으으..... 대체 무슨......"
"보, 보이질 않아...."

앨리스는 붉은 기운을 끌어올려서 피를 증발시켰다. 그녀의 보검은 항상 그랬듯,깨끗하게 빛났다.
쓰레기 보듯이 깔아보는 그녀.

"너희들 수준에 맞는 죽음을 선사했을 뿐이다."
"개, 개년이....."

견족이랑 사이가 안 좋나? 실없는 생각을 하는 중, 앨리스가 내 곁으로 다가왔다.
그녀가 오자 방패에 쏟아지는 공격이  사라진다. 죄다 주춤거리며 물러났던 것이다.

"괴, 괴물...."
"최고 전사보다 강한 거 같은데......"
"묘족 제사장이 와야 했는데."

나를 상대로는 신나게 공격하던 놈들이 지금은 잔뜩 쫄았다. 나는 괜히 의기양양해져서 방패를 번쩍 들었다.

"앨리스경, 계속 몰아칠까?"
"아까는 언제 후퇴하냐고 묻지 않으셨습니까."
"그렇기는 한데..... 이제 갈까?"

앨리스는 잠시 머뭇거렸다. 나도 비슷한 생각이었는데, 왜냐면 체감상 시간은 충분히 끌었지만 '신호'가 올라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에델이 탈진이라도 했나? 아니면 작전 실패?'

창고 터는 부대를 확인할 수가 없다. 걱정이 스치던 때, 밤하늘을 가로지르는 불덩이가 있었다.
슈우우욱- 퍼어엉ㅡ!

파이어볼이 마치 폭죽처럼 터진다. 고위 마법사의 기교.
에델에 보낸 신호인 셈이다.

에델과 나는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숨을 들이쉬었다가 크게 뱉는다.

"전부 퇴각!! 싸우던 놈도 놓고 물러나!"
"예!"

기사들은 차근차근 물러났다. 수인종들이 당연히 사납게 덤볐으나, 내 방패에 한두 대 얻어맞으니까 추격할 생각을 못 했다.
사실 뒤에서 버티는 앨리스가 더 무서웠을 수도 있다.

"인간을 쫓아라!"
"무슨 소리냐, 우리는 창고를 지키는 역할이야!"
"제길......"

호위 때문에 차마 우릴 뒤쫓지 못하는 수인종들. 그들 입장에선 당연했다.
상대는 아직 고기 창고가 당했다는 사실을 모른다. 그러니 작금의 상황은 침입자를 성공적으로 격퇴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아마 우리가 목표 달성을 못  줄 알겠지?'

사실은 이미 달성했다. 애초에 식량 창고 전체가 아니라, 고기 창고가 목표였으니.
추격도 없다. 우리는 신나게 달려서 약속 지점으로 향했다.

달리는 와중에 육식동물 몇몇을 봤는데, 놈들은 하나같이 뭔가를 쩝쩝거리고 있었다.
그걸 보고 고개를 주억거리는 앨리스.

"에델이 성공한 모양입니다."
"그치. 신호도 떴으니까...... 그나저나 진짜 잘 먹네."

히폴리타의 계획은 성동격서로 끝이 아니었다. 고기 창고를 후, 고기의 처리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고기가 너무 많아. 우리가 옮길 수 있는 양도 아니고, 에델이 전부 운반할 수도 없어.'

그렇다고 태워서 없애자니, 정작 불에 잘타지도 않는다. 결국 선택한 게 이거였다.
근방 육식동물 서식지에 넓게 넓게 뿌려서 고기를 집어먹게 하자는 것.

운반 거리도 훨씬 줄어들고, 힘들이지 않아도 동물이 알아서 해치운다. 이보다 좋을 수가 없었다.

우리는 고기를 집어 먹는 육식 동물을 구경하며 합류지로 달렸다.
타다닥-.

"앨리스경, 이제 랑족은 어떻게 될까?"
"뻔합니다. 개인 식량과 사냥으로 조금 버티다가 탈주하겠지요."
"후훗, 숫자가 많으면 뭐 해. 싸우지 않고 상대하는 법이 있는데."

나는 만족스레 웃을 수 있었다.
합류지에 도착할 즈음, 함박웃음을 짓는 에델이 보였다.

"제스니임! 성공했습니다!"
"그래..... 잘했다."

우리는 성공을 자축하며 복귀했다.
오늘 밤은 근방의 육식동물에게는 파티일 거고, 랑족에게는 악몽이 되는 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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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나는 전투로 피곤했기에  자고, 해가 중천에 왔을 즈음 일어났다.
부스스한 머리를 쓸어넘기며 걸어간다.

'나 진짜 열심히 일한다. 가문에서 있을 때도 이렇게 일했으면, 평판이  달라졌을까?'

부질없는 가정이다. 사람은 원래 상황에 따라 변한다.
전쟁이라는 압박이 없었으면, 내가 성실해지는 일도 없었으리라. 어쩌면 평생 망나니로 살다가 죽었을 수도 있다.

"그 인생도 나름대로 편한데 말이야......"

내가 중얼거리면서 걷는데, 에델이 황급히 달려왔다.

"제스님, 가보셔야 할 곳이 있습니다."
"응? 나는 다 했어. 진짜 어제 작전 완료하고 여기까지 복귀하느라 죽는 줄 알았다고......"

내게 일을 더 시킬 기세라서 일단 방어했다. 수인종의 창고는 여기서  멀었다.
전투 후에 그 거리를 쉬지 않고 뛰었으니, 적어도 며칠은 쉬어야 한다.
이런 논리가 머릿속에서 완성될 때였다.

"제스님, 일을 시키는 게 아니라 손님이 온 겁니다."
"손님? 누가 전선까지 찾아와?"

고개를 갸웃거리며 에델을 따라간다. 에델이 안내하는 곳에는 기사들이 몰려 있었다.
나를 보고 재빨리 길을 터주는 기사들.

"충성!"
"그래그래. 대체 누가 왔길..... 더피 백작?"

나는 입을 헤 벌렸다. 이번에 공적을 세운 더피백작.
그녀가 직접 날 찾아온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놀라운데, 신기한 점은 또 있었다.

"그...... 옷은 왜 그런 거요?"
"워, 원래 좋아합니다!"

얼굴을 붉히며 대답하는 더피 백작.
그녀는, 속살이 훤히 비치는 시스루를 입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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