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2화 〉범부가 싸우는 법
정비가 끝난 후, 나는 부상자에 대한 보고를 받았다.
경례를 올리고는 크게 외치는 병사.
"제스 천인대, 총원 1005명, 경상 194명, 중상 42명, 사망 29명입니다. 용병 중대의 피해는 경상 98명, 중상 31명, 사망 21명으로......"
천인대와 용병 중대의 사상자가 엇비슷했다. 그런데 부대 총원 차이는 7배 가까이 나니, 사실상 모든 매를 용병 중대가 맞은 셈이다.
멀리 있는 제이카 누나와 눈이 마주친다. 붕대를 감다가 물끄러미 바라보는 누나.
나는 입모양으로 마음을 전했다.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알면 됐다.'
제이카 누나는 피식 웃고는 다시 치료에 전념했다. 근처의 그리폰 용병단도 비슷한분위기다. 피해가 크지만, 개의치 않고 다음 전투를 준비하는 모습.
'평정심에서는 일반 부대보다 오히려 나아.'
아마 제5황자에 대한 충성이 있어서 그럴 것이다. 충성심은 때로 죽음조차 극복하게 해주니까.
보고를 올린 병사는 덧붙여 말했다.
"천인대의 사망자 대부분은 신입이었습니다. 중상자도 마찬가지로......"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원래 시간이 지날수록 신입만 죽는 법이야."
예를 들어 베테랑이 10명, 신입이 10명 있다고 해보자.
그러면 전투 후, 둘이 똑같은 비율로 죽지는 않는다. 일반적으로는 베테랑이 더 살아남고, 신입이 많이 뒤진다.
내 부대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부대원의 경험이 쌓일수록 신입과의 격차는 점점 벌어질 터.
나는 혀를 끌끌 차며 말했다.
"쯧쯧, 다들 제대로 훈련받았으면 되는데 말이야."
"그렇습니다!"
그런데 보고를 올린 병사가 떠나질 않는다. 이 녀석이 가야 편하게 누워서 쉴 텐데......
나는 병사를 향해 물었다.
"뭐 할 말이 더 있나?"
"예!!"
병사가 바로 반색한다. 나름 중요한 말인 모양이다.
"뭐길래, 그래? 말이나 해봐라."
"처, 천인장님의 침을 치료제로 쓰고 싶습니다!"
"......?"
잠시 뇌정지가 왔다. 그러다가 간신히 기억을 되살렸다.
'내 침!! 침으로 사람을 고쳤지, 참......'
천인장님의 침은 성수야! 라는 소문이 퍼지기도 했다. 그 믿음을 아직도 유지하는 모양.
내 인기를 유지하려면, 거짓을 밝히면 안 된다. 나는 밝게 웃으며 말했다.
"자, 가볍게 다친 병사들은 내 쪽으로 와라. 금방 끝낼 수 있으니까, 빨리빨리 움직여!"
그리 말하며, 열심히 옷을 찢어서 씹었다. 최상큼 포션이 붙어있는 자리. 입에 알싸한 향이 번지며 알딸딸하다.
저기서 팔이 부러진 녀석이 다가온다. 녀석은 기대감 가득한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팔이 부러지면.... 타박상은 아니잖아. 이것도 치료가 되나?'
일반 포션이라면 바르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입으로 먹어야 치료되는 것이다. 나는 한숨을 푹푹 내쉬며 최상급 포션이 붙은 옷자락을 씹었다.
그러고는 병사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외쳤다.
"입 벌려!"
"......?"
"성수 들어가니까 입 벌려!"
"예, 예!"
당황하며 입을 벌리는 여자 병사.거기다 대고포션을 모아서 강하게 뱉었다.
퉤ㅡ!
"으윽...."
"그대로 삼켜!"
울상을 지으며 삼키는 병사. 이어서 부러진 팔 근처에도 천을 문질렀다. 포션이 적당히 흡수됐으니, 내일쯤이면 말짱해질 거다.
"치료사한테 가서 고정만 잘해놔. 하루면 다 나을 테니까."
"예!! 버, 벌써 고통이 줄어드는 것 같습니다!"
"그래."
뭐 그렇겠지. 포션 먹으면 기분이 좋아지니까. 나는 대강 손짓하며 다음 병사를 불렀다.
이번엔 타박상이라 훨씬 쉽다. 천을 적당히 문지르자 상처를 눈에 보이는 속도로 아물었다.
"오오....! 역시 천인장님 침은 성수!"
"다음."
같은 식으로 몇몇 병사를 치료한다. 솔직히 최상급 포션이 무한한 게 아니라서, 조금 걱정이었는데, 다행히 에델이 차단해줬다.
"천인장님 제 상처도....."
"그만. 제스님의 침도 한계가 있습니다. 더 치료했다가는 입안이 헐 것 같군요."
"아아....."
맞다. 솔직히 침이 성수라고 해도 무한정 나올 리가 없잖은가.
에델이 제대로 짚어주자, 병사들은 아쉬움 가득한 눈으로 물러났다. 그냥 치료사에게 가서 처치를 받는 병사들.
나는 그모습을보다가 문득 에델에게 물었다.
"저거 그냥 하급 포션이라도 주면 되는 거 아니야?"
"예산이 없습니다. 게다가 전투력에 영향을 주지 않는 상처가 대부분인지라....."
"효율이 안 나온다는 소리군."
아까 치료한 녀석들 중에 팔 부러진 놈이 가장 심각했다. 더 크게 다친 녀석은 중상자로 분류될 거다.
사실 팔 부러진 것도 꽤 애매하긴 했다만......
몇 시간 후, 우리 부대는 재정비를 끝마쳤다.
그 와중에 나는 헤르파를 찾아갔다. 나를 쪼르르 따라온 히폴리타가 묻는다.
"지금 혼혈 뱀파이어를 찾는다는 건.....?"
"당연히 정찰할 생각이지. 더피백작이 어떤 상황인지는 봐야 할 것 아니야."
"호오, 괜찮네요. 저도 정보가 있어야 판단하니까요."
헤르파는 구석에서 간식을 집어 먹는 중이었다. 바삐 움직이는 병사들과 동떨어진 모습.
나를 보자마자 반색한다.
"오빠!! 보고 싶었어요오....."
"그랬어?"
와앙하고 내게 안기는 헤르파. 나는 그녀를 적당히 토닥거렸다. 그리고 아까 전투 중에 입었던 상처를 다시 터트린다.
뚝뚝-
피가 떨어지자 헤르파를 눈을 반짝였다.
"오빠 피...."
"얼른 먹어."
"헤헤."
할짝할짝 피를 빠는 헤르파. 나는 그녀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헤르파, 네가 처음으로 밥값을 할 때야."
"......?"
"저기 내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가면 성이 하나 나올 거야. 거기 병사들이랑, 주위를 포위한수인종 상태를 알려줘."
헤르파는 잠시 입을 떼더니 힘차게 끄덕였다.
"네에! 맡겨주세요!"
"믿을게."
내 피를 알차게 빨아먹은 헤르파는 안개로 변해 훨훨 날아갔다.
그토록 건방지게 굴었던 더피 백작.
'과연 방어는 어떻게 하고 있으려나?'
태도도 썩은 주제에 능력도 없으면 가차 없이 버릴 생각이었다.
헤르파가 가져오는 정보에 따라, 내 행보가 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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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더피 백작은 머리가 터질 지경이었다.
그녀의 영지민은 10만도 채 되지 않는다. 영지를 운영하고 황실에 세금까지 내면 정규군은 수백 단위가 고작이었다.
‘하아아, 그래서 병력이 더 필요했는데......’
병력을 조금이라도 더 쥐어짜겠다는 계획은 철저히 실패했다.거기서 죽지 않은 게 다행일 정도다.
"제스 홀란트라고 했나..... 정보가 너무 늦었어!"
그에 대한 소문은 미리 수집했다. 하지만 문제는 너무 예전의 소문이었다는 것.
익히 알려진 망나니라는 말만 듣고 죽일 계획을 짰다. 어차피 망나니 지휘관은 없는 게 나으니까.
"그런데 대체 언제 용장이 된 거야.... 게다가 호위나 참모진이나 전부 사기잖아..... 끄으음."
더피 백작은 극변방의 귀족. 영지의 크기와 관계없이 정보가 꽤 느린 편이었다.
덕분에 제스 홀란트의 천인대가 최정예라는 것도 듣지 못했다. 실은, 전서에는 '최정예'라고 적혀 있었는데 지휘관이 망나니라서 믿지 않은 것이다.
덕분에 지금 그녀의 병사들만 이끌고 수성전을 치르는 중이다.
이미 성 바깥의 영지민은 전부 성안으로 대피시킨 상태. 딱히 크지도 않은 성이 무너지면 참사가 벌어지리라.
그녀가 머리를 헝클이는 와중, 전령이 달려왔다.
“영주님! 답변을..... 가져왔습니다.”
“오, 뭐라는데?”
“그게......”
선뜻 말을 꺼내지 못하는 전령. 더피 백작은 여기서 벌써 직감했다.
‘일이 풀리지 않았구나! 제기랄, 내가 그렇게 굴었으니 당연한 일인가.’
한껏 일그러진 더피 백작의 얼굴 위로, 전령의 탄식이 쏟아진다.
“저, 전공을 세우면 도와주겠다고 했습니다.”
“갑자기 전공?”
“예..... 호족의 최고 전사를 잡았다고 합니다. 비슷한전과를 세워야 동료로 인정해준다고......”
호족! 어째 그 무서운 놈들이 보이지 않았더라니, 호족만 따로 돌렸던 건가.
그래도 막아서 다행이다. 더피 백작은 안도하는 동시에 절망했다.
“호족의최고 전사에 맞먹는 전적이면...... 나보고 다른 종족의 수장을 잡으라는 거잖아?”
“...그런 듯합니다.”
“우라질!!”
더피 백작은 성벽 너머를 바라봤다.
수인종 연합은 공성전을 치르고 있지 않았다. 단지 성 주변의 민가를 무자비하게 박살 낼 뿐.
전쟁이 끝나고도 사용해야 할 시설을 전부 짓밟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미처 빼돌리지 못한 식량도 나왔다. 식량이 있으면 공성 측에 유리해지는 것은 당연지사.
더피 백작은 끝없는 절망 속에 중얼거렸다.
“내가...... 성을 나가야 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