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7화 〉내 전속 하녀는 고위 마법사
"제스님......?"
한껏 야윈 에델이 황망하게 쳐다봤다. 뭔가 잘못한 듯한 느낌이라 괜히 움찔한다.
에델은 나와 2:1 비율 피규어를 번갈아 보다가 고개를 푹 숙였다.
"보, 보지 마십시오!!"
"미안....."
"나가주십시오!"
"으, 응...."
바로 뒤돌아서 멀찍이 떨어졌다. 이제 에델의 얼굴을 어떻게 보지? 아니, 솔직히 나는 가만히 있었고 에델이 뭔가를 한 셈인데......
에델이 있던 천막에서 뭔가 우당탕탕하는 소리가 들렸다.
"에델! 괜찮아? 뭐 도와줄까?"
"제발 가만히 계십시오!"
"응......"
우당탕하는 소리는 이후에도 몇 번이 더 들렸다. 이어서 부스럭거리며 뭔가 정리하는 소리가 들린다.
대략 10분이 지났을 무렵, 에델은 천막 바깥으로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들어오시렵니까?"
"응..... 근데 먹을 것 좀 갖다줄까? 몸이 너무 안 좋아보이던데."
"괜찮습니다. 미리 챙겨둔 게 있습니다."
역시 에델이다. 준비성 하나는 철저해.
천막 안으로 들어가자 어지럽게 널려있던 물약과 시약, 재료 등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다만 마법진은 아직도 빛이 난다.
에델은 차와 빵을 조금씩 뜯어 먹는 중이었다. 김이 모락모락 나오는 것으로 보아 마법으로 데운 모양.
"그거로 되겠어? 밥이 부실한데....."
"나중에 챙겨 먹겠습니다. 아침에요."
"그래..... 여기로 불렀다는 건, 일단 해명하고 싶은 거지?"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넘어가고 싶다면, 나를 쫓아내면 그만이다. 암만 그대로 전속 하녀에 대해 소문을 퍼트릴 멍청이는 아니었으니까.
'그건 지능 문제가 아니라, 인성의 문제지.'
에델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도 차와 빵은 계속 우물거린다.
"우물, 우물. 일단 가장 먼저 말하고 싶은 건, 필요한 마법이었다는 겁니다."
다시 빵을 베어 무는 에델. 보다 보니까 먹는 게 은근히 귀여웠다.
'눈앞에서 해주는 먹방인가?'
난 머리를 긁적이며 물었다.
"왜 필요한데? 에델, 너는 실용적인 마법도 꽤 익혔지만 기본적으로 전투 마법사잖아."
"우물, 예 맞습니다."
꿀꺽. 조금 배가 찼는지 빵을 내려놓는 그녀.
"저는 전투 마법사입니다. 그러니 아까 만든 것도 전투 인형이지요."
"어..... 굳이 나를 본떠서? 가문에 괜찮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전투 인형에 적합한 모델이 얼마나 많은가. 아버지를 본떠도 되고, 앨리스를 본떠도 된다. 하다못해 내 첫째 형도 나보다는 나을 거다.
그런데 에델은 내 말을 부정했다.
"제 상황 때문입니다. 전투 인형을 만드는 데는 생각보다 많은 재료가 필요합니다."
"얼마나 많은?"
"뭐..... 마법적인 재료는 잘모르실 테니 넘어간다고 쳐도, 제스님의 신체 조각이 5kg은 넘게 들어가야 합니다."
"와...."
내 신체 5kg이라. 당장 살을 떼어내도 그 정도면 죽을 거다.
"그래서 내 신체 5kg을 가져갔어?"
"아니요. 열심히 모았지만, 부족했습니다. 크기가 작지 않았습니까?"
하기야 2:1 비율이었다. 부피로 치면 8배 차이다.
"500g은 넘게 모은 모양이네?"
"......예."
"대체 뭐로?"
"머리카락, 손톱, 발톱, 가끔 흘리는 피, 전부 모았습니다."
에델이 날 모신 게 8년이다. 충분히 그럴 시간이 있었다.
'아니지.8년에 500g은 오히려 적어. 시작한 건 그 이후인 모양이네?'
나는 찰랑이는 머리카락을 움켜쥐며 말했다.
"조금 잘라줘?"
"......괜찮습니다."
"크큭, 그나저나 전투인형을 꼭 만들어야 하는 거야? 다른 마법을 갈고 닦아도 되잖아."
"음...... 이건 다분히 마법적인 이야기가 되겠군요."
앨리스는 차분한 말투로 설명을 시작했다. 사실 그녀의 설명이 하도 길어서 나는 초반부터 멍 때렸다.
내 표정을 눈치챈 에델이 설명 수준을 몇 단계나 낮춘 끝에 겨우겨우 알아들었다.
"정리하자면, 5위계에 오르기 위해서는 5위계 마법을 아무거나 성공시켜야 한다는 거지?"
"예."
"근데 5위계 마법 중에서 가장 만만한 게, 시간을 들여서 전투인형을 만드는 거고?"
"정확합니다."
에델이라고 해도, 일반적인 5위계 마법을 성공시키려면 족히 몇 년은 걸린다.
훨씬 난이도가 낮은 5위계 마법을 선택한 것이다.
'전투인형의 부품 제작은 4위계, 자아 부여는 5위계...... 어떻게든 자아 부여에 성공할 계획이었구나.'
마침 전투 인형을 틈틈이 만들던 참이었으니, 일석이조인 셈이다.
나는 에델에게 완성률을 물었다.
"그래서 거의 완성한 거야?"
"예. 크기는 조금 작지만, 일단 자아만 부여하면 되니까요. 반쯤 성공한 느낌이었습니다."
"이런..... 내가 방해했나?"
에델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닙니다. 고작 누가 쳐다본다고 성공할 게 실패하지는 않습니다. 애초에 실패할 예정이었죠."
"흐음..... 시간이 더 필요한 거야?"
에델의 작전 자체는 괜찮아 보였다. 그럼 문제가 뭘까.
'아니, 사실 수련을 시작한 지 10일도 지나지 않았으니까 너무 급하게 물어본 셈이네.'
한 달도 아니고, 10일 만에 찾아와놓고는 느리다고 하다니..... 바로 후회했다.
에델도 마찬가지로 조금 어이없어했다.
"저..... 충분히 빠르다고 생각합니다."
"크흠, 크흠!! 아무튼 말이야."
난 한켠에 풀썩 쓰러져 있는 전투인형을 가리켰다.
"저건 실용적인가? 외관은 진짜 나랑 똑같기는 한데....."
"써봐야 알 것 같습니다. 일단.... 전투 기술은 제스님보다 나을 겁니다."
확신에 찬 대답. '기술'을 이야기하면 나는 입 닫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너무 치사하잖아? 나한테 힘밖에 모르는 바로라고 하는 것도 아니고....'
난 2:1 비율의 전투 인형을 꼼꼼하게 확인했다. 가까이 가서봐도 진짜 사람 같다. 만지면 질감이 조금 다르지만, 눈으로는 구별할수 없을 정도.
"이거 말도 할 수 있나?"
"......난이도가 놓고, 크게 쓸모없는 기능입니다."
"하기야."
성대같이 쓸데없는 기능을 넣긴 힘들겠지. 그렇게 납득하려는 순간이었다.
에델은 고개를 푹 숙이더니 작게 중얼거렸다.
"그런데..... 넣기는 했습니다."
"뭐? 성대를 넣었다고?"
"예....."
전투인형 맞지? 이런 눈빛을 담아 바라보자, 에델은 슬금슬금 시선을 피했다. 목덜미까지 발갛게 달아올라 있다.
좀 황당하긴 했지만, 목소리 기능까지 있다면 내가 생각한 걸 실현하기 좋다.
"그럼 이거 2:1 비율이 아니라, 본래 크기로 만드는 건 어때?"
"......? 그러려면 제스님의 신체가 훨씬 많이 들어갑니다만?"
"그래도 결과물이 더 좋잖아."
중요한 건 나와 똑같은 분신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환술 따위가 아니라 실체를 지닌.
'어떤 방식으로든 써먹을 수 있어!'
나는 분명 유명해질 것이다. 내 능력을 떠나서, 부대와 참모, 정예 기사를 생각하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리되면 나에 대한 관심도 늘어날 터. 에델의 전투 인형은 일종의 여벌 목숨이 될 수 있었다.
나는 당장 상의를 걷어 올렸다. 많지 않은 뱃살이 눈에 들어온다. 단도를 뽑아 지방을 잘라버렸다.
서걱ㅡ!
"제, 제스니이임!!"
"아..... 존나 아파....."
피가 철철 흘러내린다. 에델이 당황해서 아무 마법이라도 쓰려고 했는데, 그냥 잘라낸 지방을 넘겨줬다.
그러고는 중급 포션을꺼내 통째로 들이붓는다.
치이이. 격한 소리와 함께 아무는 복부. 포션은 이런 단순한 외상에 효과가 아주 좋았다.
"잘 받았지?"
"예? 아, 예...... 그렇긴 합니다만."
"오늘은 그것밖에 못 하겠다. 무게가 어느 정도야?"
"이, 이백 그램....?"
손을 달달 떠는 에델. 그녀는 내 지방을 받아들고 어찌할 줄을 몰라 했다.
"얼른 전투 인형에 넣어. 손톱 같은 것보다 나을 거 아니야."
"아, 알겠습니다!"
에델은 황급히 전투 인형을 마법진 위에 올려놓았다. 그러고는 지방과 다른 재료들을 섞어서 주문을 외운다.
우우웅-. 잠시간의 진동, 그리고 빛이 번쩍이더니 재료가 전부 사라졌다.
"조금 커졌네?"
"예..... 감사합니다."
"응?"
그냥 내 여벌 목숨을 만들고 싶었던 건데, 왜 저러지. 내가 입을 열기도 전에 에델의 눈물샘이 터졌다.
"흐흐흐흑, 하.... 하녀를 위해서 가주님의 양기도 주시고-흐끅- 제, 제스님의 살도 직접 잘라주시고....."
쿠웅-!
땅에 머리를 박는 에델. 그녀는 납작 엎드린 자세로 울먹였다.
"흐끅..... 충성!! 평생 충성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이거 초치면 안 되겠지?
오해를 사는 것 따위보다 에델의 감동을 깨는 게 더 심각한 범죄 같았다.
'그래, 사람의 감정은 소중하지. 잘 지켜주자.'
에델은 엎드린 자세에서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미천한 저를 위해 살까지 잘라주시는..... 흐끅! 감사합니다. 제 일생의 주인으로 모시겠습니다!!"
"그, 그래."
여기까지는 괜찮았다. 사실 살을 잘라주면 누구라도 감동할 테니까.
그런데 갑자기 에델의 몸에서 검은 기운이 치솟았다. 그녀의 가슴 부근을 옥죈 검은 기운은 하나의 '선언'과 함께 폭발했다.
"나, 에델은 맹세한다. 제스 드 홀란트의 생명이 다하는 순간,나도 죽음을 맞이하리라."
검은 기운이 나와도 연결된다. 나는 경악하고 말았다.
'생명의 서약!! 서약의 조건에 따라 반동으로 보상을 얻는......'
마법사는 서약을 맺고, 대신해서 보상을 얻을 수 있었다. 다만 아무렇게나 하는 게 아니라, '서약'으로 내거는 건 반드시 목숨이어야 했다.
방금 에델도 나와 죽음이 연결되는 서약을 맺은 것이다.
‘서약의 조건 때문에 죽으면 영혼이 다른 곳으로 빨려간다나 뭐라나......’
다만, '내가 죽을 때'라는 조건은 비교적 널럴한 편이었다. 그나마 안심하려고 하는데, 에델이 조건을 추가한다.
"또한 제스 드 홀란트가 내게 죽음을 선언하더라도, 내 생명이 다하리라."
이런 미친! 내가 명령만 내리면 바로 죽는다는 뜻이다. 이건 어마어마하게 빡센 조건이다.
그렇다면 보상은......
"그리하여 서약의 대가를 바라노니, 20년 수련하여 얻을 힘을 당장 얻겠다!!"
20년? 에델의 재능으로 20년.....?
검은 기운은 폭발했다. 불규칙적으로 여기저기 찌르더니 에델의 전신을 감싼다.
마치 검은 번데기 같다.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지난 후, 에델은 검은 번데기를 깨고 나왔다.
콰직-스스스.
에델의 몸에서 은은한 연기가 흐른다. 그리고 눈빛도 완전히 달라졌다.
이전에는 그저 침착했다면, 지금은 침착 속에 여유가 가득하다.
“에델, 너......”
그녀는 방긋 웃었다.
“감사합니다.”
“......?”
“제스님이 퍼트린 헛소문, 사실이 된 듯합니다.”
나는 입을 쩍 벌렸다.
제스 홀란트, 6위계 고위 마법사를 전속 하녀로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