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5화 〉홀란트 가문 정기 보고서
노출될수록 강해져? 이게 뭔......
'소설 제목 같잖아. 노출될수록 강해져! 흥하려나?'
쓸데없는 생각은 재빨리 치웠다. 대신에 다른 가능성을 점쳤다.
일단 이 녀석은 보기 드문 '초능력자'다.
초능력자라고 하면 염동이나 발화, 투명화 따위를 생각하기 쉽지만, 종류는 무척 다양했다. 이 병사처럼 노출될수록 강해지는 것도 초능력의 일종이었고.
나는 흥미로운 목소리로 물었다.
"조건을 정확히 말해봐라. 개화한 지 오래됐다면 당연히 알 텐데?"
"그, 그게.... 일단 남자가 제 몸을 볼수록 강해져요."
"그리고?"
"이후에는 실험하기 힘들어서요....."
이마를 탁 쳤다. 남자가 귀하니까 병사 입장에서는 초능력 실험도 힘들었을 거다.
"일단 노출 부위가 많을수록 기세가 증가하는 것 같은데?"
"맞아요오...."
"남자의 인원은? 중요한가?"
노출증 병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잘 모르겠다는 뜻이다. 나는 대기하고 있던 남자 병사를 아무나 불렀다.
"거기!! 이리 오게."
"넵!"
남자 병사를 절도있게 걸어오더니 내 명령에 따라 노출증 병사를 관음했다. 사실, 대놓고 쳐다보니까 관음이라고 하기도 애매하다.
흥미로운 건, 점차 노출증 병사의 기세가 증가했다는 거다.
'미미한 수준이야. 그래도 차이는 있군.'
병사는 나에 비해 훨씬 약하다. 거기서 정도의 차이가 있나? 아니면 원래 두 번째부터는 증가폭이 작은가?
실험할 것이 산더미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너 선봉장이 되고 싶지 않나?"
"네에에?"
"제스 천인대에는 남자 병사들만 따로 뽑은 독립 부대가 있다."
"......!!"
"그 부대의 가장 앞에서 돌격하면? 자연스레 남자 병사의 시선이 너를 향할 거다. 그러면 너는 최강의 선봉장이 될 수 있어."
여자 병사의 눈빛이 꿈으로 부푼다. 그럴 수밖에 없다.
남자가 귀한 세상인데, 남자가 필요한 초능력이다. 이런 애매한 능력을 극대화시켜주는 지휘관은 드물 것이다.
나는 내친 김에 앨리스에게 부탁했다.
"앨리스경, 남자 부대를 전부 끌고 와줘. 어느 정도까지 강해질지 궁금해."
"알겠습니다."
앨리스의 발걸음이 빠르다. 그녀도 적잖이 궁금한 모양이다.
남자 부대가 오기 전까지, 나는 선별을 재개했다. 참고로 남자 병사는 어지간히 실력이 뛰어난 게 아니면, 뽑지 않았다.
"너는 면접을 보자."
"예!!"
"자네는 돌아가게."
"......네."
"너도 면접."
이렇게백 명 이상을 걸러냈을 즈음, 앨리스가 돌아왔다. 백여 명의 남자 병사를 이끌고 말이다.
'많이 줄었어. 저기도 보충이 필요하긴 하겠네.'
백 명이나 되는 남자를 본 노출증 병사는 잔뜩 흥분했다.
"저, 저 강해질 것 같아요옷!"
"크큭, 그러겠지."
비키니 아머가 살짝 출렁인다. 초능력에 걸맞게 압도적인 사이즈. 예상으로는 H컵이 아닐까 싶다.
'거기에 골반도...... 지구였다면 엉덩이 뽕을 넣었다고 의심했을 거야.'
물론 이쪽 세상에 뽕 따위는 없으니, 전부 진실이다. 나는 노출증 병사를 한쪽에 세워두고 남자 부대를 향해 외쳤다.
"자, 이 녀석은 너희의 선봉장이 될 수도 있는 녀석이다."
"......?"
불안한 표정을 하는 남자 병사들. 그야 딱 봐도 약하니까당연했다.
"참고로 초능력자다. 남자의 시선을 받을수록 힘이 증가하는 녀석이야."
"지, 진짜입니까?"
"그래. 그러니까...... 다들 최선을 다해 이 녀석의 몸매를 감상해라!!"
정말 말도 안 되는 광경이 펼쳐졌다.
병사라는 놈들이 눈을 부릅뜨고 비키니 아머의 사이사이를 관찰한다. 노출증 병사는 부끄러운 듯 몸을 움츠리다가, 나중에는 가슴까지 일부러 출렁였다.
"오오! 움직임이 저럴 수가!"
"더 봐주세요오....."
괴상한 광경 속에서 노출증 병사의 기세가 들끓어 오른다. 포물선을 그리며 점차 완만해지는 듯했는데, 어느 지점을 넘자 다시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고오오오ㅡ
노출증 병사 주위로 바람이 휘몰아친다. 단지 기운만으로 작은 소용돌이를 만든 것.
이쯤 되자 병사들도 질겁했다.
"사, 상승폭이......"
"초능력자라고 해도 이렇게까지 강해지나?"
"조건이 까다롭긴 해....."
마지막 말이 맞았다. 발동 조건이 자신에게 달린 게 아니라, 다른 이에게 달렸다.
'철저히 수동적인 능력이야. 팀워크가 없으면 그냥 무너지는 종류.....'
하지만 그 반동으로 보상은 확실했다. 노출증 병사의 현재 기세는평기사를 확실히 웃돌았기 때문이다.
황실기사 수준? 그리 봐도 좋았다.
'괜찮네. 한계는 있겠지만, 아직 도달한 것 같지도 않고.'
선봉장으로는 차고도 넘친다. 뭣보다 나는 한 가지가 기대되었다.
한창 날뛰는 기세의 노출증 병사 근처로 다가간다. 음기를 흡수하는 게 아주 짭짤했다.
"이봐, 너 처녀인가?"
"네에엣?"
"묻잖아. 처녀냐고."
"마, 맞아요오...."
역시. 그렇다면 전신을 노출한 적은없다는 뜻이다.
내가 이 녀석을 따먹으면? 전신이 노출된 노출증 병사는 어디까지 강해질까. 그 과정에서 얼마나 흡수할 수 있을까.
'벌써 입에 침 고이네.'
나는 녀석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었다.
"흐익!"
"면접 때 보자. 통과다."
"가, 감사합니다!!"
녀석과 남자 병사들은 부대로 돌려보냈다. 이후에도 선별은 계속했는데, 특이한 녀석은 없었다.
철저한 기준 속에 4천 명 가까운 인원을 전부 선별했다.대략 3천 5백이 탈락, 5백 명만 남았다.
다음 순서는 면접이었다. 난 선별된 5백의 병사들을 향해 크게 외쳤다.
"3일 후에 보자. 면접 때는 충성심을 시험하기 위해 기상천외한 일을 시킬 수도 있다. 각오가 부족한 놈들은 아예 오지도 말도록!"
"예!!"
"자신 없으면 당장 꺼져라. 나갈 사람 있나?"
"없습니다!!"
단 한 명의 낙오자도 없다. 나는 흡족하게 웃고는 해산시켰다.
시간은 벌써 저녁. 해가 저물어 노을이 붉게 물들었다.
"밥이나 먹어야지."
배고파 죽겠네. 나는 천막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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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시각, 하멜 홀란트의 집무실.
하멜 홀란트는 명실상부 제국의 강자, 십존급의 강자였다.
홀란트 가문의 명성과 힘이 그에게서 나온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의 최근 고민, 아니 십 년을 넘게 지녔던 고민은 단 한 가지였다.
'막내야...... 어떻게 하면 너 같은 자식이 나오는 거냐.'
자신의 핏줄은 말할 것도 없이 훌륭하고, 아내의 핏줄도 마찬가지다. 제스의 두 형들이 그걸 증명했다.
전부 가주 자리를 이어받아도 이상하지 않은 아들들.
그에 비해 제스 홀란트는 어떤가. 그는 하멜의 골칫거리였다. 자신을 비롯해 가문의 누구도 고치지 못한 큰 골칫덩이.
마침 제스 홀란트에 대한 보고서가 올라온 참이다.
하멜은 5분째 보고서를 열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마치 판도라의 상자 같다. 희망과 각종 악한 것들이 뒤섞인 물건.
제스 홀란트의 어떤 기행이 적혀있을지 두려웠다.
'그래도 0군단이 요청했던 건은 잘 처리했다고 하던데......'
물론 전후 사정을 알아본 결과(제스가 팔았던 산적 노예를 하멜이 다시 사들여서 정보를 얻었다.), 상당한 운이 들어간 거였다.
운이 계속 좋았으면..... 막내에게 행운이 따랐으면..... 하멜은 한숨을 푹 내쉬며 보고서를 열었다.
<홀란트 가문의 파병 부대에 대한 보고서>
-작성자: 에델-
강녕하셨는지요, 가주님? 직접 뵙지 못하고, 서신으로 인사드려 송구합니다.
본 보고서의 목차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제스 홀란트의 공적
2. 제스 홀란트의 용병술
3. 제스 홀란트의 군단 내 평가
4. 제스 홀란트의 위기대처능력.
5. 제스 홀란......
하멜은 순간 눈을 의심했다. 아니, 목차에 죄다 '제스 홀란트'가 들어간 것도 황당한데, 공적이니 위기대처능력이니 용병술이니 하는 것들은 뭐란 말인가.
"기행이나, 징계 목록이 아니라.....?"
10개에 달하는 목차 중, 9개가 제스 홀란트에 관한 내용이었고, 마지막 하나에만 앨리스와 백합기사단을 담았다.
혹시 에델의 정신이 나갔나? 마법을 펼치다가 회로가 꼬인 걸까?
많은 생각이 스쳤는데, 일단 고개를 내저었다.
"읽고 나서 판단하는 게 옳겠군."
하멜은 깊은 눈빛으로 보고서를 탐독했다. 그리고 하나씩 읽을 때마다 이게 정녕 자신이 아는 막내가 맞는지 의심했다.
전부 읽었을 무렵, 하멜의 결론은 이거였다.
"막내가 전쟁 체질이었군."
그렇다면 앞으로도 전쟁을 계속 시켜야지.
제스 홀란트의 미래 행보가 결정되는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