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4화 〉나를 얼마나 존경합니까(2)
총사령관은 조금 황당해했지만, 딱히 반대하지 않았다.
뭣보다 내가 '어떤 방식'으로 선정할지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마도 알았으면 내 평판이 낮아지지 않을까?'
사실 면접에 대한 소문이 퍼지면 내 평가가 뒤바뀔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게 뭔 상관인가.
어차피 '제국의 보물!!' 따위로 불리는 지금이 너무 과대평가일 뿐이다.
'거품을 조금 빼자고..... 제발.'
다만 총사령관은 조금 다른 부분을 지적했다.
"으음, 다 좋은데 조금 사소한 문제가 있네."
"뭡니까?"
"지원자가 너무 많을 거 같아."
"......?"
의문에 찬 눈길을 보내자, 총사령관은 살짝 웃었다.
"제스 천인대가 어지간히 활약했어야지. 저기 황실까지 소문이 퍼졌네. 이런 상황에서 자네가 신병을 뽑으면 수천 명이 지원할 걸세."
"아아......"
수천 명의 가슴 관람? 좋기는 한데..... 동시에 징그러웠다.
"실력 제한을 두겠네. 1차적으로 거르고 자네에게 보내지."
"으음, 알겠습니다."
거참, 인기가 너무 많아서 문제라니. 난 혀를 내둘렀다.
그나저나 단지 실력 제한을 두는 건 너무 재미없지 않나?
'양기에 버티는 여자로? 아니면 환장하는 여자로?'
그걸 다 테스트하는 것도 한세월일 거다. 조금 궁리하던나는 적절한 방법을 떠올렸다.
쭉 세워놓고 음기를 방출하게 한다. 지나가면서 내 기분이 좋아지는 병사만 뽑으면 그만이었다.
'수천 명의 음기도 흡수하고, 곁눈질로 얼굴도 확인하고! 일석이조네.'
그야말로 최상의 방법. 나는 싱글싱글 웃으며 말했다.
"이틀 뒤에 지원자를 전원 부대 앞에 세워주십시오. 직접 보고 1차로 거르겠습니다."
"허어...... 수천 명을 전부 보겠다? 어지간히 신경 쓰는구만?"
"어..... 그런거죠."
설명하기도 귀찮다. 난 고개를 끄덕이고는 부대를 나왔다.
한나 누나를 찾는데,누나 옆에 반가운 얼굴이 있었다.
"헤르파?"
"오빠....."
오는 길에 주웠던 벰파이어 혼혈인 헤르파였다. 부대를 장악할 때녀석을 쏠쏠하게 써먹었는데, 정작 전투 이후에는 까먹었다.
다시 본 헤르파는 볼이 해쓱했다.
"누가 굶겼어? 꼴이 왜 그래."
"오빠가...... 피를 안 줬어요오."
"아, 맞다."
내 전투 전까지는 내 피를 꼬박꼬박 챙겨줬다. 덕분에 헤르파도 매일매일 성숙해지고 성장했다.
그런데 일주일 넘게 피를 굶겼으니 저런 반응도 당연하다.
재빨리 손끝에 상처를 내고 내밀었다.
"얼른 먹어."
"헤헤......"
손끝을 할짝대는 그녀. 조그맣던 키는 변하지 않았는데 몸은 확실히 성장했다.
'나중에 작전을 나가면 헤르파가 중요하긴 할 거야. 훌륭한 정찰병이니까.'
그녀는 축 처진 눈꼬리를 더욱 휘며 웃었다.
"오빠 마시써....."
"피라고 정확히 좀 말해라."
옆에서 한나 누나가 고개를 갸웃거린다.
"흐으음, 뱀파이어가 몸은 다 컸는데 아직 능력 발현이 안 된 거지?"
"뭐 아는 거 있어?"
"아니...... 확실해지면 말할게."
어깨를 으쓱이는 누나. 뭔가 찜찜한 반응인데 일단 넘어갔다.
주위의 모든 걸 알아보기엔 너무 귀찮다.
"달달해애......"
헤르파의 중얼거림을 들으며 부대로 복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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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후.
지난 이틀 동안 꽤 부지런히 살았다. 방패술 수련은 물론이고, 밀렸던 포상도 적절히 내려준 것이다.
이제 천인대에 들어올 신병을 선발하러 갈 시간. 아침을 먹고 천막을 나가는데, 앨리스와 마주쳤다.
"도련님."
"응?"
요새 앨리스의 피부는 꽤 반짝거렸다. 정확히는 나와 밤을 보낸 이후부터다.
그녀는 쭈삣대다가 옆에 와서 귓속말을 했다.
"다음.... 밤은 언제입니까?"
"풉, 효과가 괜찮았던 모양이네?"
수줍게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
"예, 확실했습니다. 수련보다 수십 배는 효율이 좋습니다."
"수십 배......?"
갑자기 무서워진다. 앨리스가 저런 효과를 누린 것은 순전히 무한 츠쿠요미 사정 교환 때문이었다.
'지옥의 쾌락...... 몽롱함 속에서 뿌리까지 잡아 뽑히는 기분이었어.'
어찌 보면 무서울 정도의 경험이다. 앨리스는 그 경험을 다시 원하는 거였다.
"도련님, 내일은 어떻습니까?"
"내, 내일? 그...... 너도 기운이 꽤 고갈되지 않았어?"
"그렇긴 합니다만, 앉아서 기운을 모으는 것보다 밤을 보내는 게 더 좋습니다."
"츠쿠요미 재경험은 조금......"
"예?"
눈을 질끈 감았다. 적절한 변명이 없을까. 마침 제스 기사단에게 아직 포상을 안 줬다는 게 떠올랐다.
녀석들도 거친 건 만만치 않지만, 앨리스 정도의 지옥은 아니다.
"나, 나는 기사단이 있잖아? 녀석들도 챙겨줘야 해."
"아..... 생각이 짧았습니다."
"그래그래, 좀 나중에 다시 말하라고."
간신히 앨리스를 밀어냈다. 앨리스는 여전히 사랑스럽지만, 잠자리는 조금 부담된다.
'최상의 컨디션에서 버틸 수 있을 때 하자.'
내가 거침없이 걸어가자 앨리스가 행선지를 물었다.
"어기 가십니까?"
"부대 앞에 신병 지원자들 서 있잖아. 선발하러 가는 거지."
"그렇군요. 같이 봐도 됩니까?"
"마음대로."
앨리스는 기운의 컨트롤이 최상급이다. 평소에는 전혀 흘리지 않는다는 뜻.
같이 있어도 앨리스 때문에 다른 병사의 음기가 묻힐 염려는 없었다.
저벅저벅-. 큼직한 천막을 하나 넘어가자 갑자기 시야가 트였다. 그리고 죽 늘어선 병사들.
'삼천? 사천? 경쟁률이 얼마나 되는 거야.....?'
귀족 사병의 부대가 처음에 2만4천이었다. 이번 전투로 어마어마하게 줄었는데, 그중에서 3~4천 명이 지원했으면 엄청난 거였다.
새삼 인기를실감하며 그들 앞에 섰다. 뭔가 대단한 지휘관이 된 기분이다.
"다들 와주어서 고맙다. 본인은 제스 홀란트라고 한다."
"와아아아!!"
소개만 했을 뿐인데 크나큰 함성이 퍼진다. 귀를 막고 싶은 충동을 참았다.
조금 잠잠해졌을 즈음, 다시 입을 열었다.
"전원 내 휘하에 들어오고 싶은 게 맞나?"
"맞습니다!!"
"귀관들은 두 번의 시험을 치를 것이다. 첫 번째는 실력, 두 번째 관문은 충성도다. 동의하나?"
"예!!"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대답. 과연 '충성도'가 어떤 방식으로 측정되는지 알아도 저럴까?
조금 궁금하긴 했다. 나는 천천히 걸어 나갔다.
"충분히 간격을 벌려라. 귀관들을 한 명씩 지나치겠다. 내가 앞을 지나가면 기세를 최대한 뿜도록."
"예!!"
"나를 오크라고 생각해라. 기세가 마음에 드는 놈들만 통과할 수 있을 거다."
병사들은 저마다 간격을 벌렸다. 이럴 때는 꼭 못 알아듣는 놈이 있어서 벌써 기세를 뿜기 마련인데, 그런 놈들은 어쩔 수 없이 탈락이다.
'말귀를 못 알아듣는 놈처럼 답답한 게 없지.'
나는 끄트머리부터 시작해서 천천히 걸었다. 열심히 얼굴과 음기를 확인한다.
"흐으읍!!"
얼굴이 시뻘게지도록 힘을 주며 집중하는 병사. 기세는 나쁘지 않았는데, 외모로 탈락이었다.
애초에 실력도 합격점인 거지 내가 아쉬운 수준은 아니다. 녀석이 뿜은 음기만 쪽 빨아먹고 말을 뱉었다.
"자네는 돌아가게."
"......예."
첫 탈락을 보자 병사들이 더욱 긴장한다. 다음 병사는 전신을 부들부들 떨었다.
"하아아압!!"
"음....."
집중하는 상태에서도 얼굴이 빛난다. 그런데 음기가 빈약했다.
'그리고...... 마음(가슴)도 빈약하네.'
냉정하게 고개를 젓는다.
"자네도 돌아가게."
"아, 아......"
고개를 푹 수그리는 병사. 돌아서는 발걸음이 조금 처량했다. 이후로도 과정은 비슷했다.
얼굴과 실력이 다 괜찮으면 통과.
외모는 조금 아쉬워도 실력이 압도적이면 통과.
외모와 마음(가슴)이 전부 출중하면 통과였다.
병사 하나씩 지나칠 때마다 음기가 차오른다. 은은하게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 나쁘지 않았다. 덕분에 지루한 작업인데도 질리지는 않았다.
그렇게 반복 작업을 계속할 무렵.
이상한 녀석이 눈에 들어왔다.
솔직히 기세는 합격점 한참 아래고, 외모는 무난. 그래서 넘어가려고 했는데, 의상이 너무 눈에 띄었다.
비키니를 강철로 만든 듯한 의상. 소위 비키니 아머를 입고 있었던 것이다.
'씨발, 이거 입고 어떻게 싸우는 거지? 애초에 이런 갑옷이 허용되기는 하나?'
의문을 품고 녀석을 관찰할 때였다. 매끈한 허벅지부터훑고, 잘록한 배를 눈으로탐미한 다음, 압도적인 사이즈의 가슴을 구경하는데 점점 녀석의 기세가 오른다.
아까는 합격점 아래였던 녀석이 지금은 근처까지 올라왔다.
'뭐지.....? 실시간으로 강해져?'
고개를 갸웃거리는 찰나, 비키니아머를 입은 병사가 수줍게 말했다.
"더...... 더 쳐다봐 주세요."
"응?"
"나, 남자한테 노출될수록...... 강해집니다아....."
노출증 병사의 등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