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3화 〉나를 얼마나 존경합니까
눈을 떴을 때, 앨리스는 없었다.
대신에 가지런히 정리된 이부자리와 깔끔하게 입혀진 옷이 있었을 뿐이다.
앨리스가 붙였던 검은 천도 아직 있었다. 덕분에 푹 잔 듯하다.
내 기운은? 확실히 늘어났다. 정확히 말하자면 총량이 증가한 건 아니다. 앨리스의 음기를 흡수하며 나도 양기를 내뿜었으니까.
‘음양의 조화가 좋아졌어! 아마 앨리스도 비슷하겠지?’
섹스 한 번의 효과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다.
"킁킁."
냄새부터 맡았다. 앨리스가 언제쯤 사라졌는지 가늠하기 위함이다.
꽤 희미했다. 사실 섹스한 게 아니라면 아예 남지 않았을 정도.
'만으로 하루는 넘게 지났겠는데?'
하루 종일 잠만 자는 천인대장이라니..... 바람직하진 않다. 하지만 나는 신경 끄기로 했다.
어차피 내 능력으로 굴러가는 부대가 아니다.
'히폴리타, 앨리스, 에델..... 훌륭한 부관은 많아. 나는 심리적인 보상을 주는 존재지.'
멍하니 있자니, 아랫도리가 아렸다. 가만히 있어도 자꾸 욱씬거리는것이 심상치 않다.
절정을 100번이나 해서 그럴까. 잠에서 깨어난 상태인데도 몬스터는 한껏 풀죽은 상태였다.
여길 따로 치료하는 방법이 있던가? 딱히 없었던 거 같다. 그냥 오늘 정도는 고통을 감내해야 하리라.
나는짜증을 삼키며 바깥을 향해 갈라진 목소리로 외쳤다.
"무울!! 물 좀 줘."
"일어나셨습니까?"
말하면서 물을 가져온 건 에델이 아니라, 식사 보조였다. 웬 노예가 일을 하나 싶어서 생각하다가, 에델은 수련하러 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완전히 잠들었으니까 집중하기는 좋겠어.'
나는 시원하게 물을 들이켠 후, 식사 보조에게 물었다.
"너 혹시 부대 상황은 좀 아냐?"
"자, 잘 모르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미안할 건 없지. 식사 보조는 식사만 보조하면 되는걸."
물론 이번엔 너무 목이말라서 그냥 통째로 들이켰다. 난 그녀에게 말했다.
"분위기 정도는 파악할 거 아니야?"
"어...... 괜찮은 거 같습니다. 다만 에델님의 천막이 조금 살벌했습니다."
"그래?"
살벌한 에델이라...... 꿈에 그리던 마법 수련을 하는 시간인데 왜 살벌할까. 난 갸웃거리다가 몸을 일으켰다.
"흐으으, 부하들이나 살펴야지. 내일부터는 포상도 좀 필요할 거고."
전투에서 활약한 병사들이 많다. 16 대 1의 섹스처럼 격렬하게는 힘들어도 적절한 수준의 스킨십을 해주면 좋아할 거다.
몸까지 대강 씻고 부대를 시찰했다. 전투가 얼마 전이라서 그런지 농땡이치는 놈은 단 하나도 없었다.
'부대의 3할이 죽었어. 주변에 있던 놈들이 목숨을 잃었는데, 수련을 게을리하는 게 이상하지.'
만약 너무 압도적으로 졌다면, 오히려 허무주의가 스며들 수 있다. 우리가 뭘 해봐야 아무런 소용도 없다는 식이다.
하지만 이번 전투에선 활약도 있었고, 뭣보다 수련을 누구보다 열심히 했던 16인의 기사가 하나도 죽지 않았다.
'병사들 눈에는 그게 수련의 성과로 보인 모양이지?'
그런 분위기가 좀 있었다. 가장 열심히 실력을 갈고닦은 기사는 죽지 않았다! 라는 식이다.
약간 오해가 있었지만, 긍정적인 방향이라서 그냥 내버려 뒀다.
"중요한 건 앞으로의 일이지. 사실 우리는 지금 천인대가 아니라 칠백인대.....라고 해야 하잖아."
700명 남짓 남은 부대. 인원을 보충하거나, 이대로 싸워야 했다.
관자놀이를 툭툭 건드리는데, 뒤에서 누군가 부른다.
"동생!! 뭔 고민을 그렇게 해?"
"아..... 병력 보충."
한나 누나는 통짜 쇠로 된 철창을 이쑤시개처럼 휘두르면서 왔다. 진짜 힘이나 파괴력은 타고난 스타일이다.
'앨리스랑 싸우면 누가 이길까? 암만 그래도 앨리스....겠지?'
순수 파괴력은 한나 누나의 승리겠지만, 싸움은 다르다. 아마 앨리스의 기술 아래서 농락당하다 질 확률이 컸다.
해맑게 어깨를 감싸는 한나 누나.
"병력 보충? 아아, 천인대 말이지?"
"응. 보충을 받고는 싶은데......."
"그런데?"
당연히 병사를 더 배정받아서 1000명을 채우면 좋다. 내 생존확률도 올라갈테고.
"단합력이 마음에 걸려?"
"정확히 어떤?"
난 말을 골랐다.
지금 남은 700명의 천인대는 전원 용감하게 적진에침투했다. 모두 같은 추억을 공유했고, 그에 대한 자부심마저 있을 정도다.
이런 상황에서 신입이 들어오면? 묘한 이질감이 생길 수 있었다.
"치열한 전투를 같이 겪은 병사랑, 아닌 병사 사이에서 분열이 일어날 수 있지."
"하기야, 따돌림까지는 아니어도 은연중에 차별하긴 할 거야."
"딱 그거야."
부대가 분열되느니, 차라리 병력 보충을 안 받는 게 낫다.
이게 고민이었다.
한나 누나는 잠시 턱을 괴고 궁리하다가 탄성을 내질렀다.
"아아!!조건을 걸고 받으면 되겠네!"
"조건......?"
"너도 '제스 천인대'가 유명한 건 알잖아?"
"그렇긴 하지."
"유명세를 이용하는 거야. 조건으로 '제스 홀란트를 무한히 존경하는 자.' 이런 걸 넣는 거지!"
"오....."
나를 존경하는 병사라. 그거면 확실히 동질감은 생길 거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 부대는 나에 대한 애정으로 유지되던 곳이었어!'
나쁜 방법은 아니다. 다만 걸리는 점은.....
"나를 존경하는 걸 어떻게 측정하지? 객관적인 척도가없어."
"면접은 어때?"
300명에 대한 면접.... 물론 가능했다. 어차피 업무를 부하들이 대신해주니까 시간은 남았다.
하지만 난 고개를 저었다.
"300명도 넘는 사람을 시험하고, 이 사람들을 줄 세우는 건 지극히 어려워. 특히 면접에서는!"
"까다롭네, 우리 동생?"
조금 귀찮은 듯한 한나 누나. 저렇게 노려볼 때면 나는 재빨리 누나의 가슴으로 시선을 옮겼다.
항상 봉긋하게 솟은 게 아주 보기 좋다.
'저걸 마구잡이로 주물러서.... 아니지, 앨리스처럼 절정을 느끼게 할 수도 있고.'
이런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데, 한나 누나가 내놓은 아이디어는 놀라운 거였다.
"야!! 항목은 만들면 되지."
"항목? 해봤자, 제스 홀란트를 존경합니까? 이런 거?"
필연적으로 조작 답변이 나오게 되는 질문이다. 거짓말을 치는데 전혀 부담이 없는.
한나 누나는 버럭했다.
"아니지!! 시키면 되는 거야. 물어보는 게 아니라, 진짜 제스 홀란트를 존경하면 이런 것도 해봐라! 이런 느낌이야."
"오...... 그럼 변태짓?"
나는 떠오르는 대로 뱉었다.
"1단계 제스 홀란트 앞에서 상의 탈의. 2단계 무릎 꿇고 제스 홀란트를 펠라하기. 3단계 제스 홀란트 앞에서 전신 탈의 후에 자위해서 절정에 도달하지. 4단계......"
몇 가지를 더 말하다가 적당히 마무리했다.
"이렇게 해서 몇 단계 이상인 병사만 통과한다. 괜찮지?"
"너는 면접에서도 성욕을 충족시켜야겠냐?
난 당당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를 존경하면 그 정도는 해야지. 못하면 전부 가짜 존경이야!!"
"대단한 사상이다, 진짜."
비꼬는 것 같았는데, 가볍게 무시했다. 뭐 어쩌라는건가.
기회가 있는데 쓰지 않는 게 머저리다.
갑자기 가슴이 들떴다. 수백 명의 병사들을 면접하는 상황이 떠오른다.
'처음 보는 여자가 나를 존경한다면서 가슴을 보여줘. 그리고 펠라까지 해. 크으으으!!'
너무 좋아서 기절할 기세다. 나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같이총사령관한테 찾아가자."
"진짜 하려고?"
"응! 면접 일정이나 잡아야지."
황당해하는 누나를 이끌고 총사령관의 천막에 도달했다. 같은 진지 안이라서 별로 오래 걸리진 않는다.
가서 기사를 아무나 붙잡았다. 예전이라면 내 얼굴만 알아봤을 기사가 반갑게 경례한다.
“제스님 아니십니까!! 충성!”
“아..... 그래.”
'씨발, 귀족도 무명은 무시당하고 유명하면 인정받는군.'
활약하기전과 지금의 태도가 확실히 다르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 전에는 살가울 필요가 없었다는 뜻이다.
나는 씁쓸함을 삼키며 말했다.
“총사령관을 뵈러 왔다.”
“지금 계시기는 한데...... 바로 물어보겠습니다.”
천막으로 들어가는 기사. 대답은 금방 돌아왔다.
“들어오라고 하십니다!!”
“좋아.”
2중 호위를 지나고, 천막 안의 천막으로 들어간다. 총사령관은 피곤에 쩔은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아, 무슨 일인가?”
“제스천인대 병력 보충 건으로 왔습니다.”
“보충...... 할 때가 됐지.”
총사령관은 펜을 잠시 내려놓았다.
“어떻게 할 겐가? 가장 실력 좋은 놈들로 뽑아주면 되겠나?”
“아닙니다. 제가 직접 면접을 볼 테니까, 지원자를 받아주십시오.”
“면접?”
“예. ‘제스 홀란트를 누구보다 존경하는 사람’을 뽑는 면접입니다!”
더불어 좋은 구경도 하고 말이지.
나는 기분 좋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