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4화 〉제국의 보물 제스 홀란트!(7)
일단은 도달했다.
그런데 상황이 내 예상과는 조금 달랐다.
'최상의 상태에서 씨족의 어머니만 노려도 모자란데!!'
아군을 살폈다. 병사와 기사들은 대부분 오크에게 묶인 상태고, 한나 누나는 제사장과 싸우는 중이다.
그나마 몸을 뺄 수 있는 건 앨리스와 일부 기사들, 그리고 그리폰 용병단까지.
이런 전력으로는 저 호위를 뚫을 수 없었다. 뭣보다 문신이 흉흉한 주술사만 수십이다. 게다가 늙은 오크의 곁에 있는 사나운 놈들은 또 어떤가.
난 히폴리타를 향해 간절히 외쳤다.
"히폴리타!! 무슨 수가 있는 거지? 지금은 우리가 인질극을 벌이는 게 아니라, 역으로 당하게 생겼다고!!"
침투와 포위는 한 끗 차이. 아까까지 침투라고 생각했는데, 씨족의 어머니가 등장하자 졸지에 포위가 돼버렸다.
앞쪽은 씨족의 어머니, 나머지는 오크 부대에게 둘러싸인 것이다.
내 외침에 침착하게 대답하는 히폴리타.
"걱정하지 마세요. 승산이 없었다면 진작 빼자고 했을 거예요."
"여기서 승산이 생긴다고......?"
대체 어떻게? 다시 의문을 토해내려던 때였다. 갑자기 우리를 둘러싼 포위망이 헐거워진다.
정확히는 왼쪽이었는데, 그쪽의 오크들이 혼란에 빠졌다. 기세 좋게 우리와 싸우다가 점차 손발이 어지러워지는 녀석들.
'뭐지......?'
고개를 갸웃거리는 찰나, 말을 탄 기사 하나가 등장한다.
"마법사!! 고위 마법사가 여기있소이까?"
푸르릉-. 말이 투레질을 한다. 오크를 뚫고 나타난 모습이 꽤 반가웠다.
이어서 포위망을 뚫고 속속들이 등장하는 기사와 병사. 족히 수백은 되는 지원 병력이 가뭄의 단비 같다.
그들은 하나같이 비슷한 말을 외쳤다.
"고위 마법사!! 마법사님 어디 있습니까?"
"마법사님을 찾습니다!!"
나는 살짝 혼란에 빠졌다.
'여기서 가장 강한 마법사는 에델인데..... 4위계인 에델을 구하려고 이렇게 몰려왔나?'
아니, 위계는 미뤄놓더라도 애초에 에델은 내 하녀였다. 저들이 신경 쓸 하등의 이유가 없다.
조금 당황하는 사이, 히폴리타가 재빨리 내 등을 떠밀었다.
"지금 빨리 스크롤 하나 더 써요!! 얼른!!"
"스크롤......!!"
폭풍 같은 위력을 보였던 트윈 싸이클론. 그리고 고위 마법사를 찾는 지원 부대.
두 가지가 단번에 연결된다. 무슨 상황인지 깨달았으니 다음은 이용해먹을 차례다.
"이왕이면 에델이 써야지. 진짜 마법사니까."
"나쁘지 않네요."
시선을 끌기 좋은 화려한 마법. 난 파이어번치가 새겨진 스크롤을 은밀하게 내밀었다. 물론 가능한 한 양기를 최대한 담은 채다.
'하멜의 양기까지 쓰기는 조금 아까워.'
얼떨떨하게 받아드는 에델. 그녀는 평소답지 않게 입술을 떨었다.
"제, 제스님? 이걸 왜....."
"지금부터 넌 6위계 마법사야!! 저 녀석들이 실망하는 것보다 잠시 속여서 사기를 진작시키는 게 훨씬 나아!"
아직 에델을 주목하는 녀석은 없다. 그러니 몰래 스크롤을 찢으면 괜찮다. 에델은 손을 벌벌 떨며 끄덕였다.
"아, 알겠습...."
"얼른!!"
"네."
촤아아악-
호쾌한소리와 함께 스크롤이 찢어진다. 에델은 쓸데없이 빛을 만들며 자신이 마법을 시전한 것처럼 외쳤다.
"파이어번치이이이!!"
화르르륵하고 불타오르는 화염들. 길쭉하게 생긴 화염 다발이 오크 진영을 향해 쏟아졌다.
오크가 백 단위로 죽은 건 아니었으나, 중요한 건 마법이 아주 화려했다는 점. 마법에 별 조예도 없을 저들을 속이는 데는 충분했다.
"고위 마법사다!!"
"찾았다!!"
"저분을 호위해라!!"
기사와 병사들이 우르르 달려온다. 난 에델을 껴안는 척하면서 스크롤을 하나 더 건넸다. 이제 남은 건 5위계 최상위급으로 한 개다.
"이거 줄 테니까 품에서 몰래 찢어."
"예."
"그리고 지금은 저기 늙은 오크한테 달려가!! 저놈들이 널 따라오면 자연스레 지원군이랑 늙은 오크의 호위병이랑 싸우게 돼!"
"알겠습니다."
꽤 중요한 역할이다. 에델은 결연히 입술을 깨물더니, 앞으로 튀어 나갔다.
누가 봐도 위험해 보이는 늙은 오크에게 말이다. 당연히 기겁하는 지원군.
"마, 마법사니이임!! 거긴 위험합니다!!"
"제발 돌아오십....."
"지켜라!! 고위 마법사를 지켜!!"
이런 상황이 만들어지자, 늙은 오크는 눈살을 찌푸렸다.
"본녀 앞에서 아무도 무릎을꿇지 않는구나."
"어머니. 인간 잡것들이 뭘 알겠습니까?"
지들끼지 북 치고 장구 치는 오크들. 늙은 오크는 두툼한 손을 올려 지시했다.
"건방지게 이쪽으로 오는 것들을 처리해. 믿음이 강한아이들로 충분하겠지?"
"그렇습니다. 참으로 지혜로우십니다."
대체 어디서 지혜를 찾는다는 건지..... 난 잘 모르겠지만, 일단 오크 주술사들이 달려 나왔다.
"어머니를 위해!!"
"위대하신 분 아래 무릎 꿇려라!!"
오크 주술사는 대체적으로 덩치가 컸다. 그래 봐야 나보다는 좀 작았지만.
'아까 나보다 머리 하나쯤 컸던 제사장이 비정상이야. 그 자식은 진짜......'
슬쩍 확인하니까 한나 누나한테 실컷 얻어맞는 중이었다. 전신이 피투성이인데 쓰러지진 않았다.
조금 시간이 더 필요한 상태. 난 에델과 에델을 지키려는 지원군을 살펴봤다.
"마법사님!! 좀 멈추십시오오!!"
"빨리 따라오세요!"
호위대상은 도망치고, 호위 병력은 꽁무니 빠지게 뒤쫓는 광경. 웃기긴 했는데, 문제는 에델이 주술사와 먼저 마주친다는 거였다.
"저 여자가 아까 불을 쏟아낸 년이다!!"
"죽여어엇!"
주술사들이 성큼성큼 뛰어서 에델을 덮치려는 순간, 그녀를 중심으로 전격이 터졌다.
'이 타이밍에 스크롤! 기가 막히네!'
파지지직ㅡ
짧게 태우고 끝나는 게 아니다. 5위계 마법답게 변화가 좀 있었다. 에델의 손에서 연속적으로 전격이 뿜어져 나간다.
마치 광선을 쏘는 것처럼, 오크 주술사를 노리고 한 방씩. 전격이 번뜩일 때마다 문신을 한 오크 주술사들은 눈을 까뒤집었다.
"크아아악!!"
"꺼허어....."
저 정도면 진짜 고위 마법사라고 해도 믿을판이다. 당장 스크롤인 걸 아는 내게도 멋져 보이니까.
그리고 다른 녀석들은 확실히 속았다.
"마법사님!! 실력 발휘도 좋지만, 몸을 지키십시오!!"
"저희가 가겠습니다."
에델을 뒤따라 속속들이 합류하는 기사들. 병사는 조금 더 뒤처져서 따라왔다.
그들은 사방을 견제하며 에델을 찬양했다.
"역시 고위 마법사는 다르군요."
"어느 가문에서.... 아니, 황실 출신이십니까?"
"미르 공작가에서 한 번쯤 뵌 것 같습니다!"
난 터져 나오는 실소를 참았다.
'어쩐지...... 너무 열심히 지킨다 했어. 중요 인물이라고 생각했군?'
나에 대한 지시는 따로 받지 않은 게 분명하다. 받았다면 나를 이렇게까지 방치하진 않았을 테니까.
에델은 전격을 몇 번 더 뿌리더니, 스크롤의 효력이 다한 듯했다. 이내 무릎을 짚으며 연기하는 에델.
"허억, 허억..... 다음 마법까지 좀 시간이 걸릴 것 같군요. 다들 버텨주시겠습니까?"
"물론입니다!! 마법사님만 지키면 벗어나는 건 시간문제입니다!"
의욕 넘치게 대답하는 기사들. 순간 고위 마법사의 위력이 그 정도인가? 라는 의문이 들었는데 그냥 넘겼다.
'저 녀석들이 뭘 그렇게 잘 알겠어.'
이내 타격을 입은 오크 주술사와 지원군이 충돌한다. 오크 주술사는 여전히 강력했지만, 부상을 극복하진 못했다.
하나둘 죽어 나가는 녀석들.
"꾸에에....."
"어, 어머니!!"
뎅겅하고 목이 날아간다. 난 히폴리타와 시선을 교환했다.
"늙은 오크의 호위가 줄었는데?"
"네, 아주 순조롭죠."
"지금 앨리스한테 덮치라고 할까?"
히폴리타는 고개를 저었다.
"우리 천인대에는 믿음이 있어요. 어떤 믿음이죠?"
"어..... 이기면 내가 몸을 대준다는 믿음?"
"아니!! 그거 말고, 무력을 말하는 거예요."
무력이라..... 그건 내가 아니라 앨리스의 역할이었다.
"앨리스경과 함께라면 지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지."
"맞아요. 저기 씨족의 어머니 근처에 선 오크 둘 보이죠?"
보였다. 마치 쌍둥이처럼 거의 똑같이 생긴 오크였는데, 특이하게도 흉터가 없었다.
게다가 둘이 똑같이 쌍도끼를 차고 있다.
"뭔.....오크족 쌍도끼야? 쟤네가 왜?"
"오크 부대에서는 저 둘이 믿음이에요. 둘이 있는 한, 지지 않았다는 믿음."
"아......"
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오크족 쌍도끼를 해치우면 된다는 거네?"
목표 도달이 머지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