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화 〉제국의 보물 제스 홀란트!(5)
한편 총사령관은 정신이 없었다.
가장 눈치를 빨리 챈 사람이 앨리스다. 그조차도 알지 못했던 습격인 셈이다.
오크들은 물밀듯이 들어오고, 통합되지 않은 귀족의 사병들은 저마다 흩어져서 싸운다. 실력이나 숫자에 비해 형편없이 각개격파 당하는 중이었다.
총사령관 넬독은 치를 떨며 외쳤다.
"기사단!! 전세를 역전시킬 기사단 어디 있나!!"
"각하, 진정하십시오. 중앙 기사단은 이미 출진했습니다!"
부하의 말대로였다. 무게를 잡아주는 중앙 기사단은 진작에 출동한 상태였다.
지시가 떨어지기 전에 우선적으로 행동한 것이다. 넬독은 간신히 진정하며 물었다.
"중앙 기사단은 뭘하고 있나? 대체 뭘 하길래 전세가 이렇게....."
"늑대 기병을 저지하고 있습니다. 수적 열세를 극복하고 분투하는 중입니다."
"후우우."
그렇다면 나름의 역할을 한 셈이다. 문제는 식충이 귀족 사병들.
넬독은 진짜 귀족 자제들은 뒤로 빼두었다는 사실에 그나마 안도했다. 방탕한 자제들은 대부분 반프레 시의 '고급 회의장'에 있던 것이다.
'만약 놈들이 아직도 진지에 있었다면? 사병들이 저마다 자제들을 지킨다고 흩어졌을 거야.'
여기서 더 오합지졸이 된다? 상상만 해도 소름이 돋았다.
넬독은 비교적 차분하게 물었다.
"피해상황이랑 그나마 싸울 수 있는 부대를 말해봐라."
"예!"
부대의 참모진은 진작에 소환되었고, 각 천인대별로 전령이 달려와 상황을 전한 이후였다.
수석참모가 간략히 상황을 정리했다.
"일단 1~7연대, 직속대대 2개, 독립 천인대 1개. 총원 2만4천. 가장 먼저 충돌한 7연대는 궤멸했습니다.“
예상했던 일이다. 넬독은 차분히 다음 말을 들었다.
"근처의 5연대와 6연대는 분투 중입니다만, 이미 상당히 무너졌습니다. 아마 지시를 내릴 쯤에는......"
"알겠다. 그래서 괜찮은 건 1-4연대랑 독립대대 둘,독립 천인대 하나라는 건가?"
"다른 연대에도 피해가 없는 건 아니지만.... 일단 전투 가능한 건 그렇습니다."
"제스 홀란트! 녀석이 이끄는 독립 천인대는 아까 움직이던 것 같은데?"
수석참모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오크의 후방을 교란하는 중입니다. 성과가 있는지 화살이 날아오지 않습니다."
"보물이야, 보물."
"작전은 어떻게 짜시겠습니까?"
넬독은 냉정하게 생각했다. 여기서 보존해야 할 병력은 어디인가? 또 피해를 최소화하려면 뭘 선택해야 하지?
'제스 홀란트의 부대는 꼭 지켜야 해! 근데 하필 후방에 있어서......'
어지간한 부대를 보냈다가는 가는 길에 오크의 밥이 될 것이다. 넬독은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우선 5, 6연대 쪽에는 어떻게든 살아남으라고 전해라. 부담을 가지지 말고 도망치라고 해! 거길 지원해줄 수는 없으니까."
"예!"
"1연대는 자리를 사수하고, 2-4연대는 천천히 후퇴한다."
"그..... 희생입니까?"
1연대만 자리를 지킨다. 선 채로 죽으라는 소리였다. 전멸까지 하지야 않겠지만, 상당히 죽어나자빠질 거다.
넬독은 침중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다. 최소한의 정보만 있었어도 이 꼴이 되지는 않았을 텐데......."
"알겠습니다. 허면 독립대대 둘은 어찌하실 겁니까?"
각기 400명과 800명 규모의 독립대대. 최상위권 가문의 사병을 모아둔 곳이었다.
'아직 단합력은부족하지만, 실력만큼은 최정예인데......'
제스 홀란트의 천인대가 부대로써 최상급이라면 독립대대는 개개의 실력이 뛰어났다.
마냥 후퇴만 시키기도 아까운 것이다. 넬독이 고민하던 때였다.
정말 느닷없이, 오크 군대의 뒤편에서 소용돌이가 나타났다.
쿠오오오ㅡ
광폭하게 땅을 헤집으며 전진하는 소용돌이. 건장한 오크들이 하늘로 빨려 올라갔다가 그대로 처박힌다. 저기에 희생되는 숫자도 대단했지만, 무엇보다도 위용에 압도되었다.
넬독은 신음을 흘렸다.
"트윈 싸이클론......? 근데 5위계 마법이 어찌 저런 위력을?"
"저 정도면 6위계 마법 아닙니까?"
넬독은 고개를 저었다. 5위계라고 믿기 힘든 건 맞았지만, 6위계라고 하기도 애매하다. 그만큼 한 단계의 차이는 확연했다.
'조잡하게 표현하자면 준6위계쯤 되겠군. 황실의 궁정 마법사가 나타났나?'
제국에도 당연히 전투 마법사단은 있다. 하지만 그들은 죄다 최전방에 투입된 상태였다.
아군의 마법 지원은 생각지도 못한 상황이었는데, 선물이라도 받은 기분이었다.
넬독의 머리가 빠르게 계산을 마쳤다.
"트윈 싸이클론이면 수준 높은 마법사가 나타났다는 거다. 승산이 생겼어."
"그러면.....?"
"일단 후퇴가 아니라, 진형을 갖추라고 전해라. 자리를 사수하면서 싸우는 거다."
"예!"
"그리고...... 독립대대 둘은 마법이 생긴 쪽으로 보내라. 귀한 마법사를 방치할 수는 없지."
"알겠습니다!"
분명 황실에서도 잘나가는 마법사이거나, 어느 공작가의 수석 마법사일 것이다. 그런 인물을 신경 써주면정치적으로도 좋다.
넬독의 가슴은 조금씩 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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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 달려!!"
"우아아아!!"
"미친 듯이 달려서 심장에 닿아라!"
뻐엉-뻥! 나는 방패를 들고 허허벌판을 달리듯 하고 있었다. 전부 트윈 싸이클론 덕분이다.
마법이 오크의 후방을 어느 정도 무너뜨렸고, 뿔뿔이 흩어져 도망치는 놈들을 잡기만 하면 됐다.
나는 부하들이 잘 따라오는지 확인했다.
"서로 손잡고 있지?"
"예!!"
바람은 오크에게나 인간에게나 평등하다. 트윈 토네이도가 아군을 날릴 수도 있다는 거였다.
'그러니까 10명 단위로 꽁꽁 뭉쳐서 움직이는 거지.'
실제로 내 등에도 한나 누나가 업혀 있었다. 손에는 50kg짜리 방패. 등에는 한나 누나와 통짜 쇠로 된 철창.
10명은 아니어도 이쯤 되니까 딱히 날아가진 않았다.
'묘하게 한나 누나가 무거운 것 같기도 하고.....'
한나 누나의 무게가 내 방패의 2배를 넘는 것처럼 느껴지는 건 착각일 거다. 겉보기에는 늘씬한데 그럴 리가 없었다.
"누나, 혹시 무게를 숨겼어?"
"응? 헛소리하지 말고 저기 오크나 잡아!!"
"어, 어......"
우리는 계속 전진하다가 슬슬 바람이 약해지는 걸 느꼈다. 여기까지 꽤 파고들었지만, 아직 부족하다.
따지자면 목표점까지 삼 분의 이는 남았다. 잠시 걸음이 느려졌을 때, 히폴리타가 살짝 다가왔다.
"천인장님, 아까 같은 물건 또 없나요?"
"음..... 있기는 한데."
나는 스크롤을 생각했다. 남은 스크롤은 3장이었지만, 트윈 토네이도처럼 적절한 마법은 없었다.
'범위가 문제야. 위력은 똑같아도 범위가 줄면 전쟁에서 쓰기 힘들잖아......'
제 5황자는 적절하게 쓰라고 종류별로 챙겨준 모양이지만, 정작 지금은 아쉬웠다.
내가 사정을 설명하자 히폴리타는 미간을 조금 찌푸렸다.
"그러면 돌파할 때가 아니라 나중에 써야겠네요."
"돌파할 방법은 있고?"
"당연하죠."
슬슬 바람이 거의 사라지고, 오크도 재정비를 시작하던 때였다. 앨리스는 뒤에서 진형을 갖추라고 지시하는 중이었고.
히폴리타는 앨리스에게 한 가지를 부탁했다.
"앨리스경, 최대한 화려하게 싸울 수 있어?"
"화려하게 한다는 게......"
"힘을 아끼지 말고 단번에 여럿을 처리하거나, 검기를 쓸데없이 길게 뽑거나 하는 거."
앨리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가능합니다. 다만, 그래봐야 도련님이 쓰신 마법에 비하면 화려함은 떨어질 겁니다."
"괜찮아. 마법과 인간이 주는 공포는 다른 법이니까."
그때 한나 누나가 불쑥 나섰다.
"나, 나도 할래!!"
"......?"
"마법과도 같은 투창은 어때? 겁나서 아무도 접근하지 못할걸?"
나는 묵직한 한나 누나를 땅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할 수 있으면 뭐든 해. 저기 중심부까지 가려면 아직도 멀었어."
"후훗, 보고 놀라지나 말라고."
한나 누나는 항상 애용했던 철창을 집었다. 다루기 힘들 정도로 크고 두꺼운 창이었는데, 잘만 다루는 편이었다.
터벅터벅ㅡ
걸어가는 소리가 괜히 크게 들린다. 아군도 진형을 다시 갖춘 상황. 내 천인대는 한나 누나의 뒷모습을 흥미롭게 바라봤다.
옆에 떨어진 그리폰 용병단은 저들끼리 쑥덕거렸다.
"드디어 '그걸' 볼 수 있는 건가?"
"이야, 눈호강은 제대로 하네."
대체 뭐길래 저러는 거지.....? 내가 의문을 가질 때, 한나 누나의 발걸음이 점차 빨라졌다.
탁탁탁ㅡ
반쯤 뛰는 속도가 되더니 창을 잡은 손을 뒤로 쭉 뻗는다. 그러고는 갑자기 속도를 올린다.
파앗-! 인영이 살짝 흐릿해질 정도의 속도. 다음 순간, 한나 누나는 한쪽 발로 급정지를 했다.
끼기긱거리는 소리와 함께 발이 멈춰 선다. 하지만 상체를 여전히 튀어 나가는 상태. 얼핏 누나의 근육이 엿보였다.
다리부터 시작해서 허리, 어깨, 팔까지 차례대로 수축한다. 이미 창에는 이글거리는 기운이 한껏 담겨 있다.
달려가던 속도에 투척 속도를 더한다. 철창은 빗살 같은 속도로 오크 진형을 향해 날아갔다.
쐐애애액ㅡ.
"크아악!"
"어어....?"
비명과 의문 소리가 동시에 들린다. 투창. 단지 한 번의 투창일 뿐인데 오크 부대에 휑한 길이 생겨버렸다.
'모세의 기적? 바닷물 갈라지듯 오크 진형이 갈라졌..... 아니, 그냥 투창 경로에 있는 오크들이 죄다 뚫렸어!!'
창으로 만든 기적. 한나 누나는 의기양양하게 돌아보며 외쳤다.
"어때?마법 같지 않아?"
대체 뭘 하다가 온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