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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1화 〉제국의 보물 제스 홀란트!(4) (61/111)



〈 61화 〉제국의 보물 제스 홀란트!(4)

앨리스는 눈부시도록 아름다웠다. 그래서 나는..... 충동적으로 앨리스의 손을 잡아당겼다.

"도련님......?"

 다가오는 그녀의 얼굴. 조금 놀란 듯한 눈과 오똑한 콧날, 다부진 입술이 보였다.
차가운 투구를 잡고 키스한다. 순전한 충동.
그럼에도 좋았다. 앨리스의 입술은 따뜻했고, 그녀의 존재는 든든하기 그지없었다.

짜릿한 감각이 척추를 타고 흐른다. 이만한 여자의 첫키스를 내가 가져갔다.

혀까지 섞는 진한 키스를 하고 싶었지만, 마지막 자제심이 있었다.

'전쟁터잖아. 이거면 충분해.'

입술을 맞대는 짧은 키스를 끝내고 앨리스를 떼어냈다. 그녀는 여전히 멍한 얼굴이었다.

"저, 저기....."
"신경 쓰지 마. 그냥 앨리스경이 너무 아름다워서  거니까."
"......!!"

철커덩-. 앨리스는황급히 얼굴 가리개를 내렸다. 얼핏 볼이 달아오른 것 같기도 했다.
앨리스는 뒤를 가리키며 물었다.

"어떤 분들입니까?"
"그리폰 용병단. 고용하자마자 고생한 친구들이야."
"감사합니다. 기병을 막아준 건 봤습니다."

앨리스는 작게 목례했다. 그리폰 용병단은 적당히 손을 들어 화답했다.

"아아, 돈 받으면 일하는 거지 뭐."
"이번엔 진짜 제대로 손해이긴 한데, 나라 지키려면 별수 있나."

다들 태연한 반응. 항상 목숨을 내놓고 사는 용병다웠다.
앨리스는 절도있게 뒤돌며 말했다.

"이제부터 길은 제가 뚫겠습니다. 참모님께 가십니까?"
"그래야지."
"따라오십시오."

앨리스는 왔던 대로 말을 몰았다. 그녀가 나서자 오크들은 다시금 주춤했으나, 아까처럼 마냥 물러서진 않았다.

"제기랄, 우리를 얼마나 만만하게 보면 대놓고 합류하겠나!!"
"맨 앞에 여자는 빼고 나머지를 노려!!"
"죽여라!!"

역시나 앨리스는 건드리지 않았지만, 그리폰 용병단을 노렸다.당황한 앨리스가 뒤돌려고 했는데, 내가 제지했다.

"빨리 길을 뚫어!! 그게 피해를 줄이는 길이야."
"......예."

앨리스 혼자 모든 사람을 커버할 수는 없다. 차라리 빨리 통과하는 게 나았다.

"커허억!!"

가끔 이런 비명도 들렸지만 애써 무시했다. 원래 희생 없는 승리는 없는 법이다.
그렇게 그리폰 용병단원이 다섯쯤 죽었을 때, 우리는 오크 기병을 통과할  있었다.

마침내 본대와 합류한 것이다. 히폴리타는 내 쪽으로 마중 나왔다.

"천인장님!! 그동안 어디를 가셨을까?"
"보다시피 아군을 섭외하고 왔지. 실제로 도움도 됐다고."
"흐으음, 알겠어요. 그나저나 전황 파악은 되나요?"

여기서 전황 파악이 될 리가 없었다. 만 단위의 병력이 충동하는데, 위에서 보는 게 아닌 이상에야 당연하다.

'아까처럼 점프로 되는 규모도아니고......'

히폴리타는 입을 열었다.

"내가 방침을 세우길 원하는 거겠죠?"
"으, 응....."
"우선 세 가지 경우가 있어요. 첫 번째는 아군이 우세할 경우! 그러면
어차피 이길 테니, 쭉 오크 부대를 파고들면 되겠죠?"

히폴리타는 오크 본대를 가리켰다. 궁병을 궤멸시켰으니, 본대로 돌격할  있다.
하지만 아까 본 광경이 마음에 걸렸다. 목책이 무너지고, 오크의 공세를 막기도 버거웠던 모습.

"우세하진 않을 텐데......"
"두 번째로 있어요. 백중세일 경우! 이때는 기동력 높은 병력을 정리하면 돼요. 백중세에서 한쪽만 잔재주를 못 부리면, 결국 이길 테니까."
"으음, 마지막은?"
"세 번째는 불리할 경우! 일단 후퇴를 상정해야 하는데......"

히폴리타는 아미를 잔뜩 찌푸렸다. 고운 얼굴에 그늘이 드리운다.

"아군에 제대로 도망칠 수 있도록..... 우리가 호위해야 할 거예요."
"후퇴할  피해를 줄이는 역할? 그거 제일 정예 부대가 맡는 거잖아?"
"네. 지금 우리보다 정예인 부대가 어디 있죠?"

순간 할 말을 잊었다. 적어도 귀족 사병 사이에서는 우리가 정예였다.

"하지만 아군의 후퇴를 도우려면, 다시 빙 둘러서 가야 해. 기동력은 충분한 거야?"
"조금 문제긴 하죠."

이미 궁병을 습격할 때, 기동력을 충분히 사용했다. 전부 썼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히폴리타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라는 투로 한 가지를 제안했다.

"방금 말한 세 가지는 전부 실행할 수가 없어요.첫 번째와 두 번째는상황이 안 맞고,  번째는 기동력이 부족하니까."
"그런데?"
"따로 괜찮은 방법이 있긴 하죠."

생긋 웃는 히폴리타. 그녀의 입에서 나온 내용은 아주 대조적이었다.

"우리가,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보지 않을래요?"
"......천인대 하나를 가지고?"
"궁병을 박살 내고도 멀쩡해요."

멀쩡하다라. 순전히 히폴리타의 기준이었다. 벌써 1할의 전력이 깎였던 것이다. 내가 보기엔 큰 감소였다.

가용인원은900여 명. 그리폰 용병단을 합쳐서 그 정도였다.

"구백 명으로 뭘 하려고?"
"후훗, 간단해요. 이번 습격의 주인공이 누구 같아요?"

나는 멈칫했다. 그야 당연히 오크 아닌가. 오크 제국의 병사.....
내 표정을 본 히폴리타는 웃음을 흘렸다.

"후후, 단순한 병사는 아니에요. 사실 국경을 넘어서 침범한다는 건, 반쯤 전멸을 각오한 짓이죠."
"그래서?"
"아무나 이런 일을 맡지 않아요. 오크 제국 측에서 밀어내고 싶은 세력...... 즉, 걸림돌이 되는 세력이 맡는 거죠."
"오크 제국의 걸림돌.....?"

대체 누구지. 곰곰이 생각해봤다. 그러자 대충 대답이 나온다.

'오크는 모계 사회..... 제국인 동시에 씨족을 이루어서 세력을 일군 놈들도 있지. 제국 입장에서는 방해꾼!!'

오크 씨족의 통치자. 일종의 지방 호족이란 뜻이다.
황제의 권력이 강해지기 위해선 사라져야 하는 세력이었다.
그러자 어렴풋이 아까의 인질극이 이해되었다.

"설마 아까인질극도 씨족이라서 먹힌 거냐? 친척 어른을 인질로 잡으면 차마 죽일  없어서?"
"오, 이해가 빠르네요."

히폴리타는 방긋방긋 웃더니 천진하게 말했다.

"그러면 씨족의 통치자, 모두의 어머니를 잡으면 어떻게 될까요?"
"이놈들이.... 물러난다?"
"가능성이 커요. 최소한 분열되겠죠."

씨족이니까 그 통치자를 사로잡자. 그럴 듯한 이야기다.
중요한 건.....

"그걸 내 천인대가 맡으라는 거지?"
"할  있어요."
"......"

이 대화는 근처의 사람들도 전부 들었다. 앨리스는 차분하게 말했다.

"통치자 근처엔 강자가 많겠군요. 강자와의 생사결을 원했습니다."
"하......"

그리폰용병단도  마디 던졌다.

"이미 동료들이 꽤 죽었어. 여기 최고 대가리가 어떤 놈인지 얼굴은 한 번 봐야지."

 천인대의 기사들, 광란의 밤을 보낸 16인의 기사도 동의했다.

"저희는 어딜 가나 천인장님을 지킬 겁니다. 다음 밤을 위해서요."
"미치겠군....."

옆에서 큭큭거리며 웃는 한나 누나.

"푸흐흐,동생아. 네 부하들은 하나같이제정신이 아니야."
"그런 것 같아."

혹여 반대하는 부하가 있지 않을까? 이런 의미로 천인대를 훑었다.그런데 녀석들은 다르게 해석한 모양이었다.

"천인장! 천인장! 천인장!!"
"대체 뭐 때문에 연호하는 거냐?"
"그냥 얼굴만 봐도 좋습니다!"

하여간 모쏠 자식들......
내가 황당해하는 사이, 한나 누나가 은근슬쩍 뒤로 돌아갔다. 냉큼 백허그를 시전하는 누나.
물컹한 감각에 몬스터가 반응했다. 전쟁터에서 불끈 고개를 드는 몬스터.

"왜,  그래!!"
"우리 동생이 믿음이 없는 것 같아서 말이야. 어때? 내 가슴을 맛보니까 믿음이 좀 생겨?"

가슴 가지고 믿음은 개뿔...... 다만 마음은 조금 진정되었다.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이판사판이다. 고작 1만 후반대의 오크한테 2만4천의 귀족 사병이 지면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야.'

어쩌면 전투의 패배가 전쟁의 패배로 이어질 수 있다.
그래서는 안 된다.

나는 열심히 찾아놨던 스크롤을 꺼냈다. 제 5황자가 선물했던 스크롤.
5위계 최상위 마법인 트윈 싸이클론이 새겨져 있다.

소용돌이 두 개가 소환되어 난장판을 만드는 파괴마법. 막장을 향해 달려가는 전쟁터에서 이보다 어울리는  없으리라.
히폴리타가 눈을 빛낸다.

"귀한 걸 가지고 계셨네요?"
"어쩌다 얻었어."
"후훗, 겸손하시긴."

아, 또 내 평가가 올라가는 소리가 들린다. 진짜로 어쩌다가 제 5황자에게 선물로 받은 건데.

모르겠다. 내 평판이든, 오크 놈들이든 될 대로 되라지.
나는 오크 본대 쪽으로 달려갔다. 그러는 동시에 양기를 스크롤에 한껏 압축시킨다. 내가 할  있는 최대한을 담은 후, 하멜의 양기도 꺼내서 5%쯤 추가했다.

'원래도 5위계 최상위 마법. 이렇게까지 기운을 담았으면 위력은..... 그 이상!!'

오크 본대 앞으로 달려간 후, 시원하게 스크롤을 찢었다.

"트윈 싸이클로오온!!"

이제껏 모았던 양기가 단번에 쭈욱 빨려 나가면서 마법진이 발동한다.
허공에서 느닷없이 생기는 구름, 그리고 소용돌이. 바람이 광폭하게 대지를 긁는다.
소용돌이가 만드는 상승기류에 오크들이 허공을 날았다. 팔다리를휘젓는 모습이 애처롭다.

'좌토네이도, 우토네이도. 좋구나!!'

소용돌이를 양쪽에 낀 채, 나는 힘차게 외쳤다.

"가자!! 이 전투를 승리로 이끌 시간이다!!"
"충성!"

세상에서 가장 믿음직스러운 부하들이 진군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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