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5화 〉그리폰 용병단 (55/111)



〈 55화 〉그리폰 용병단

"내 돈으로 용병을 고용하라고?"
"응."

나는 그 말에 조금 머뭇거렸다. 사실 돈 자체는 크게 문제 되지 않는다.

'전력이 늘어나면 내 생존율도 올라가겠지. 돈으로 목숨을 사는 거니까 괜찮아.'

중요한 건 용병의 신뢰도.
이곳으로 올 때, 봤던 산적만 해도 그렇다. 녀석들은 기본적으로 용병 활동을 하는 동시에 나라를 팔아먹었던 블랙 용병이었다.
새로 고용하는 놈들도 그렇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다.

"조금 곤란해...... 만약에 용병이 배신이라도 하면, 돈은 돈대로 깨지고 전력 손실마저 생겨. 게다가 정보가 새어 나가서 역으로 당할 수도 있고."
"흐으음, 가장 걱정되는 게 뭐야? 돈이야, 신뢰도야."
"신뢰도지."

믿을 수만 있다면 돈이야 쓸  있다. 그리 말하자 한나 누나는 호탕하게 웃었다.

"파하하, 신뢰도는 걱정하지 마! 내가 믿을만한 놈들로만 고를 수 있어."
"믿을만한 녀석.....? 어떻게?"
"으음, 이렇게 말하면 쉬우려나."

한나 누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슬쩍 다가왔다.  귓가에서 속삭이는 목소리.

"그리폰 용병단 출신이야."
"......!!"

나는 새삼 한나 누나를 다시 봤다.
그리폰 용병단. 제국에 용병단이야 넘쳐나고, 강한 용병단도 많았는데그리폰 용병단은 그중에서도 특히 유명했다.
바로 설립자가 제국의 제5황자였기 때문이다.

'황위 계승과는 상관없는 서열. 그래서 다양한 일을 즐기다가 용병단까지 설립했었지......'

 5황자 본인의 무력도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가 설립한 그리폰 용병단은 타국과의 전쟁에 동원되는 것으로 유명했다.
황실 출신이 세운 거라서 신뢰도 최상, 실력도 보장.
누구나 고용하고 싶어 하는 용병단이다.

'문제는 아무나 접촉할 수 없다는 거지. 제 5황자 본인이 지시하거나, 특별한 사람의 요청만 받아주는데.......'

난 침을 꿀꺽 삼키며 말했다.

"누나 설마 그쪽...... 용병단 출신이야?"
"내가? 쿠쿡, 그랬으면 지금 어떻게 나왔겠니. 거긴 불구가 돼서 나오거나 은퇴해서 나오는 수밖에 없어."
"그러면 어떻게 부른다는 거야?"

 방법이 있지. 한나 누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능청스레 말하는 누나.

"얼른 결정해. 고용할 거야, 안 할 거야? 참고로 돈은 어마어마하게 깨진다."
"해, 해야지......"

그리폰 용병단의 가장 약한 단원도 십인장 정도는 되는 실력이다. 거절할 이유는 전혀 없었다.

"좋아. 일단 돈부터 줘봐."
"응? 고용을 해야 돈을......"
"아니. 네가 전부 고용하지 못할 거 아니야. 일단 예산을 주면 알아서 구해온다는 거지."
"아......"

사기인가? 문득 든 생각이었다.

'선입금하라는  전형적인 사기 수법인데......'

물론 한나 누나가 사기꾼은 아닐 거다. 뭣보다 가문 출신이니 말이다.
나는 떨떠름하게 돈주머니를 건넸다.

"여기."
"이게 끝이야?"
"나머지는 에델한테 가서 받아. 돈관리는 어차피 내가 하지도 않아."
"흐음, 돈관리는 에델. 병사 관리는 히폴리타와 앨리스.주변 청소는 노예들이 하네? 넌  하고 사니......?"

갑자기 말로 후두려패는 한나 누나. 잠시 멍하니있다가 얼버무렸다.

"원래 이렇게 살았어! 누나 믿고..... 아니지. 나도 같이 가자."
"같이......?"
"응, 내  써서 고용할 사람들인데 얼굴 보고 골라야지."
"......"

갑자기 한나 누나의 눈초리가 사나워진다. 왜 그러는지 갸우뚱거리는데, 누나가 경고했다.

"이번엔 '몸'이랑 '얼굴'보고 고르면 안 된다. 그리폰 용병단에서도 알짜배기를 뽑아야 해."
"아아..... 나도 알지."

그걸 걱정하는 거였나. 참, 목숨이 걸린 일에서 성욕을 염려하다니 과한 걱정.....

'생각하니까 과하지는 않네. 한나 누나 말대로 했을 수도 있겠어.'

그래도 누나가 일깨워줬으니 다행이다. 우리는 사이 좋게 에델에게 돈을 받으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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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델이 일하는 곳은 멀지 않았다. 나는 그녀를 보자마자 외쳤다.

"에델, 돈  줘!!"
"도박이라도 하셨습니까?"

정말 안색 하나 변하지 않고 되묻는 에델.

"가장 가능성 높은 게 그거야?"
"경험으로 비추어 보아 그렇습니다."
"하...... 이번엔 달라. 용병을 고용할 거라고!"

순간 에델의 미간이 좁혀진다. 나와 비슷한 걱정을 하는 게 틀림없었다.
난 에델에게 다가가서, 한나 누나한테 들은 설명을 옮겼다.

"......해서 믿을  있어."
"정말입니까? 한나 홀란트가 그들과 접촉할 수 있습니까?"

믿기 힘들다는 반응. 나도 놀랐으니 이해했다.

"그럼! 내 생각보다 대단한 인생을 살았나 보지."
"......"

에델은 뭔가 마음에 안 드는  눈썹을 움찔거렸지만, 이내 승낙했다.

"좋습니다. 예산을 전부 내드리겠습니다."
"음? 부대는 어쩌고?"
"괜찮습니다. 우리는  촉망받는 부대입니다."

촉망받는 부대...... 예산을 달라면  준다는 뜻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지? 다들 열심히 하지않아?"
"열심히는 하지만, 정작 단합이 되질 않습니다."
"총사령관이 이것저것 계책을 썼을 텐데?"

분명 총사령관이 멍청한 귀족 자제를 쾌락으로 묶어 두었다. 그들에게 지휘권을 박탈시키기도 했고.
그걸 지적하자, 에델은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지휘권은 넘겨받았지만, 하나가 되는 건 다른 이야기입니다. 제스님 같은 방식이 아니면 힘드니까요."
"하...... 명령은 듣는데, 서로 손발이  맞는다.  말이지?"
"정확합니다."
"좋지 않아."

단순히 아군이 허약하다는 개념이 아니었다. 귀족가의 사병들은 이번에 새로 투입되는 병력이다.
이들이 약할수록, 천인대가 돋보이고 위험한 작전에 투입될 확률도 높아진다.

'썩을...... 진짜 목숨 제대로 챙겨야겠네.'

나는 에델이 넘겨준 돈주머니를 꼼꼼하게 챙겼다. 주머니를 하나씩 열어서 확인하니까 상당한 양의 금화와 은화가 있었다.
확실히 천인대 하나에 투자하기엔 많은 양.

"진짜로 우리한테 거는 기대가 큰 모양이네."
"예."
"후우우."

한숨을 쉬며 돌아서는데, 에델의 당부가 귀에 꽂혔다.

"제스님, 이번에는 부디!! 위쪽에 달린 머리로 생각해주십시오."
"위쪽에 달린 머리.... 말이지? 알았어."

나는 등 뒤로 손을 흔들었다. 이런 위기상황에서는 나도 정신을 차리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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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누나와 함께 향한 곳은 반프레 시였다.
아군 진지 근처에 있는 도시다. 소위 '고급 회의장'이 있던 곳이기도 하고.
생각보다 가까운 곳이라서 조금 놀랐다.

"용병단이 여기까지 직접 온 거야? 전선 근처잖아."
"맞아. 사실상 전쟁에 참여할 생각인 거지."
"하기야."

설립자가 제5황자인 용병단이다. 전쟁을  몰라라 하는 게 말이 안 됐다.
반프레 시는 나름 번화한 곳이라 넓은 거리가 많았는데, 한나 누나는 골목길만 골라서 들어갔다.
사람 서넛이 지나가는 골목길에서 두셋이 지나갈 법한 골목으로.
다시 사람 한둘이 지나가면 꽉 차는 골목으로, 점점 으슥해진다.

나중에는 낮인데도 어두침침할 정도였다.

한나 누나는 같은 곳을 빙빙 돌다가도 갑자기 방향을 틀어서 후다닥 달렸다.
겨우겨우 따라가는데, 어느 순간 건물 안으로 들어가더니 반대편으로 나왔다. 그러고는 다시 골목을 한참 헤맨다.

"누나, 대체 언제까지......"
"쉿. 다 왔어."
"응?"

한나 누나의 목소리는 뒤에서 들려왔다. 분명 아까까지 앞에 있었는데.....
몸을 돌리자 안대가 눈을 덮친다.

"뭐, 뭐야!!"
"조금만 기다려."

잠깐 발버둥 치는 사이, 내 몸은 꽤 이동했다. 얼마나 지났을까, 골목길을 헤맨 지  시간, 안대를 쓰고 옮겨진 지는 10분쯤지났을 때가 돼서야 한나 누나는 멈췄다.
스륵. 안대가 풀린다.

"자, 여기가 그리폰 용병단 지부야."
"이건......"

나는 눈을 의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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