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7화 〉모의전(2)
"우리 동생의 잠재력은 어느 정도이려나?"
한나 홀란트는 즐겁게 구경하는 중이었다. 당장 모의전은 불리하게 흘러가고 있다.
제스가 대비를 열심히 했음에도 그랬다. 그럼에도 한나 홀란트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대규모 전투가 아니야. 고작해야 150명끼리 싸우는 전투. 전술도 중요하지만, 단합력이 그 어떤 요소보다 크게 작용해.'
그녀는 제스의 매력을 믿었다. 게으르고, 똑똑하지도 않은 동생이지만, 사람을 홀리는 매력은 타고났다.
25살이 될 때까지도 크게 홀대받지 않은 게 그걸 증명했다.
'바깥에야 안 좋은 소문이 퍼졌어도, 막상 제스를 접하고도 크게 싫어하는 사람은 드무니까.'
제스는 자신의 매력을 최대한 살려서 부대를 장악했다.
그 자신이야 단순한 성욕이라 생각할지 몰라도, 제스에게 성욕을 뛰어넘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나도 끌릴 만큼 말이야."
그에 비해 히폴리타 체링겐은 달랐다. 자신의 능력이 독보적인 것이다.
사람을 끌어당기는 재능과 홀로 빛나는 재능.
그 대결의 결과가 못내 궁금했다.
마침 제스는 적진을 돌파한 상태였다. 칼질 한번 못했지만, 일단 돌격 자체는 끝났다.
과연 어떤 선택을 취할까?한나 홀란트는 창에 기댄 채로 미소를 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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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기랄, 어떻게 흘러가는 거야?
혼란스럽다. 중앙돌파가 목표였는데, 상대가 도리어 갈라지며 길을 내준 것이다.
내가 방패를 들고 당황할 때, 기사 하나가 불쑥 나섰다.
"천인장님!!이럴 때는 상대의 후방을 공략해야 합니다."
"후방?"
"예, 돌격하면서 보셨겠지만 상대는 고전적인 병종 배치를 택했습니다. 뒷열일수록 사거리가 긴 무기를 배치하는 것 말입니다."
"아..... 긴 무기를 가진 놈들에게 달라붙자는 건가?"
"그렇습니다!!"
내가 난전에 들어가면 지휘는? 순간 의문이 들었는데, 마냥 망설일 수도 없었다.
얼핏 들리는 비명이 대부분 여자 목소리였기 때문이다. 내 부대는 전원 여자 병사. 불리하다는 뜻이었다.
'제길!! 비명으로 전황이 파악되는 게 좋은지 나쁜지도 모르겠네.'
난 이를 악물고 외쳤다.
"다들 후방을 노려라!! 아까 돌파했던 것처럼 이놈들을 다시 쪼갠다!!"
"예!!"
"두 덩어리로 흩어집니까?"
누군가의 질문. 내가 이끄는 건 20명 남짓의 기사였다. 반으로 나눠서 10명씩 뭉쳐도 충분히 강하겠지만.....
'안 돼. 핵심은 최대한 보존할 거야.'
아버지가 가끔 해주던 말이 떠올랐다. 분명.....
'완벽한 승리의 주인은 책사고, 평범한 승리의 주인은 병사며, 처절한 승리의 주인은 기사다.' 이런 말이었다.
나한테는 책사가 없다. 병사는 비명을 지르는 중이다. 남은 건 처절한 승리를 위한 기사뿐.
무조건지켜야만 했다.
"뭉쳐서 이동한다!! 전원 왼쪽으로 돌아라!!"
"예!!"
두두두-
기사를 이끌고 할버드를 든 병사들에게 쇄도했다. 잠시간 의논했던 탓에 상대측에서 대응할 시간은 있었다.
검병이 앞장서고, 할버드를 든 병사가 뒷줄에 선다. 대략 40명. 갑옷이 특이한 기사도 눈에 들어왔다.
그에 대항하는 우리는 전원 검을 든 기사. 이기는 방법은 처음부터 한 가지였다.
"날 봐라아아아!!"
팔씨름으로 신체 강화를 익혔다. 기운이 한껏 들어간 허벅지가 터질듯이 부풀어 오른다.
근육이 과부하를버틸 수 있을까? 그건모르겠지만, 내 부하들이 날 죽게 두지는 않을 것이다.
다음 동작은 신뢰의 도약.
파아앙ㅡ
멀었던 히폴리타 측 병사가 훅 커진다. 대응해서 내미는 할버드가 무서웠다. 날아오는 검격도 공포스럽다.
그래서 방패를 들었다.
살짝만 웅크리면 전신을 가려주는 크기. 날아가다 말고 방패에 몸을 숨긴다.
방패를 잡은 손에 거친 진동이 전해졌다.
까앙. 충격은 큼직했지만, 방패는 밀리지 않았다. 내가 휘두르는 방패의 무게는 50kg. 병사들의 칼질 따위에 밀리면 섭섭하다.
다만, 혼자 툭 튀어나온 꼴이라 집중 공격을 받았다.
"천인장이다!!"
"생포해!!"
"방패를 치워라!!"
걸걸한 목소리와 함께 공격이 쏟아진다. 할버드의 도끼날이 방패 상단을 맞추고, 누군가의 발차기가 강하게 날아왔다.
방패를 우회해서 날 노리는 검격도 있다. 휙-. 머리를 숙여 겨우겨우 피했다.
"나 죽겠다, 자식들아."
그리고 아주 짧은 시간을 버티자, 내가 기대했던 반응이 나왔다. 여기사들 사이에서 치솟는 살기.
"천인장니이이이임!!"
"저것들 죽여어어!!"
"대장님부터 지켜어어어!!"
"털끝 하나라도 상했다가는 네놈들 대가리를 날려주마!"
히폴리타 측의 몇 배는 되는 기세. 마치 가족의 원수를 만난 듯한 분노에 상대측은 적잖이 당황했다.
"뭐 저런 기세가....."
살짝 주춤하는 놈들. 이 기회를 놓칠 생각은 없었다. 일부러 방패를 살짝 치웠다. 마침 날아오던 연습용 할버드가 쇄골을 직격한다.
퍼어억-
"끄윽!! 이 자식들이!!"
과장된 비명. 효과는 확실했다. 거의 도달한 여기사들의 눈이뒤집어졌던 것이다.
"천인장니이이임!!"
"안 돼애, 소중한 쇄고오올!!"
평범한 기사였던 이들이 거진 광전사로 전직한 상황. 일반병이 받아낼 수 있을 리 만무했다.
분명 연습용 칼을 휘두르는데도, 예기가 서린 것만 같다. 어버버거리던 히폴리타 측 병사 하나는 칼을 내밀지도 못하고 기절했다.
"커헉....."
"둘러싸!! 다섯 명은 천인장님을 호위하고, 나머지는 이 잡것들을 쓸어버린다!!"
"좋아!!"
삽시간에 내 주변을 기사 다섯이 철통같이 호위한다. 며칠 전에 광란의 밤을 보냈던 이들이다.
그들은 내게 등을 보이며 사방으로 검을 겨눴다. 눈빛에는 아무도 용서할 수 없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천인장님, 맞은 곳은 무사하십니까?"
"뭐, 괜..... 찮지 않아!! 부러질 것 같다고!"
내가 아파할수록 여기사(광전사)의 전투력은 올라간다. 내 불평을 들은 이들의 검격이 더 날카로워졌다.
갑옷은 입은 기사조차 아군 기사에게 밀려서 얼마 못 버티고 퇴장당했다.
검을 떨어뜨린 기사가 경악한다.
"끄어억..... 실바, 너 이 정도 아니었잖아!! 무, 무슨 일주일 만에 실력이....."
"지킬 게 있는 사람은 강해진다."
상대 기사를 퇴장시킨 녀석은 실바였다. 본래 친분이 있었던 모양이다.
실바는 곁눈질로 나를 확인하더니 미소를 날렸다.
'당신의 검이 되겠습니다.'
저런 말을 입모양으로 전달한 것 같다. 뭐 나야 환영할 일이다.
이후로도 전투의 양상은 비슷했다. 아군의 검격이 휘몰아치고, 상대는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채 퇴장.
기사가 섞인 40명을 처리하면서 입은 손실은 고작 5명이었다.
'8 대 1. 기적의 교환비야.'
상대 150명 중에서 40명을 처리했다. 남은 건 많아 봐야 110명.
난 기쁨에 차서 중얼거렸다.
"좋아, 이제 수적 우위를....."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천인장님."
내 말을 부정하는 여기사. 그녀는 우리 측 진영을 가리켰다. 뭔가 굉장히 초라해 보이고, 그냥 분투하는 느낌이다.
얼핏 봐도 숫자는 50명이 채 되지 않는다. 상대는 족히 그 두 배. 완전히 포위당한 형세였다.
당황해서 무언가 말하려는 찰나, 아군의 본대로 화살이 날아가서 또 몇 명이 퇴장당했다.
"뭐야.....? 이렇게 밀린다고?"
"예, 저희가 아군의 최정예입니다.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최정예가 허허벌판을 돌파하느라 시간을 빼앗겼다. 본대는 사실상 앙꼬없는 찐빵의 느낌.
밀리는 게 당연했다.
나는 진열을 재정비했다.
"1분!! 1분만 쉬었다가 다시 몰아친다. 포위망을 뚫고 합류하는 거야."
"예!!"
철커덕-철커덕-. 묵직한 갑옷 소리가 들렸다. 확인하니 가리개를 내린 실바였다.
그녀는 내 옆에 든든하게 서더니, 다른 기사들에게 말했다.
"천인장님은 나 혼자 지키겠다."
바로 반발하는 기사들.
"무슨 소리냐!! 아까처럼 최소 다섯은 있어야...."
"다섯이 빠지면? 열 명이서 싸우겠다는 소리냐? 천인장님도 방패가 있어. 방패로 감싸지 못하는 다른 부분은 내가 지킨다."
"......"
다른 기사들은 반박하려다가 실바의 얼굴을 확인하고 물러났다.확실히기사를 일 대 일로 물리친 활약이 인상 깊었던 모양이다.
잠시 숨을 고른 후, 난 돌격을 명령했다.
"전원 돌겨어어억!! 끝까지 남은녀석들에겐 포상이 기다릴 거다!!"
"포사아아앙!!"
두두두두-. 마치 말이 달리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갑옷까지 입어 육중한 무게의 기사들이 점차 속도를 올렸다.
나중에야 알게 됐지만, 이때 아군의 숫자는 오십 명 이하. 상대는 백여 명.
대부분은 내 패배를 예상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