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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6화 〉모의전 (46/111)



〈 46화 〉모의전

모의전 전날.
히폴리타는 부하와 함께 전력을 점검했다.

"평균 실력은 어때?"
"제국군 정예병보다 우위에 있습니다."
"그건 당연하지. 기사와 병사의 비율은?"
"총원 150명, 기사 26명, 병사 124명입니다."

히폴리타는 책상을 툭툭 두들겼다. 상대측은 나름 정예병만 뽑을 거다. 즉, 기사를 많이 뽑을 테니 숫자에서  밀릴 수 있었다.

'하지만  정도 패널티는 안고 가는 게 재밌지.'

남은 기사를 전부 뽑아봐야 겨우 40명 남짓. 히폴리타가 예상한 숫자였다. 그마저도 체면이 있으면 전부 뽑지는 않을 거다.
결국 기사 숫자에서 30~40%의 차이만 극복하면 되는 싸움이다.
히폴리타는 굳은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머리싸움은무조건 내가 이겨."
"당연합니다."
"평생을 웅크린 사자? 그래 봐야 실전 경험도 없는 애송이야."

내기에 걸린 것을 떠올렸다. 자신이 이기면, 제스 홀란트의 몸을 독점한다. 즉, 부대 장악을 더 이상 못한다는 거였다.
히폴리타가 지면?

'내 몸을 녀석이 독점..... 대체  노리는 수였을까.'

아직 짚이는  없다. 그나마 있다면 임신 공격 정도.
자신을 임신시켜서 전쟁에 집중하지  하게 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히폴리타는 임신 따위로 꺾이지 않았다.

"그렇게 물렁한 여자로 봤다가는..... 크게 다칠 거야."
"공녀님, 내일 선택할 전략을 검토해주십시오."
"흐음."

히폴리타는 서류 몇 장을 가볍게 훑었다. 어차피 자신이 작성한 거라서 내용은 머릿속에 있다.
중요한  어떤 방법을 택해야 승리하는가. 살짝 불만 어린 목소리가 나왔다.

"아쉽네. 준비 기간이  달만 됐어도 진법을 쓸 수 있었을 텐데."
"그러게 말입니다."

진법. 병사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상대를 처치하는 수법이었다. 약속한 방향대로 위치를 계속 바꾸면, 상대는 아차 하는 순간에 와해되고 각개격파 당하기 일쑤였다.

"준비가 좀 짧았어. 결국 고급 전술은 긴 훈련 끝에 나오는 건데 말이야."
"상대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대단한 전략을 짜지는 못하겠지요."

이건 히폴리타도 동의하는 바였다. 고급 전술, 전략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남은 건 지휘력과 즉각적인 상황 판단.
순발력이 중요하다는 거였다.

'후훗, 통통 튀는 생각은 내 전문이잖아?'

아무리 생각해도 승리가 보장된 것 같다. 히폴리타는 나오는 웃음을 참기 힘들었다.

"참, 천인장 나리는 뭘 한다고 했더라?"
"제스 홀란트는 본인의 천막에서 두문불출입니다. 그의 수하인 제국의 백합이 훈련을 도맡고 있습니다."
"두문불출? 무슨 생각일까아."

새로운 게 나오려나? 히폴리타는 쿡쿡거렸다. 그러더니 결정한 듯, 서류  장을 흔든다.

"이걸로 가자. 고전적이면서  지휘력을 최상으로 끌어올리는 전법이야."
"......알겠습니다."

모의전 전날 밤은 그대로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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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히폴리타 체링겐과 제스 홀란트는 진지 근처의 평야에서 대치했다.
각자 앞에서는 150여 명의 정예 병사가 도열한 상태. 숫자는 적어도 군기가 삼엄해서 깔끔했다.

히폴리타는 재빨리 제스 쪽의 병력을 살폈다.

'궁병은 없어. 장창병은..... 해봤자 열  남짓이네. 방패병은 앞열을 간신히 채울 정도고, 나머지는 다 검병이야? 조합이  별로네.'

병종의 균형. 히폴리타는 그걸 굉장히 중요하게 여겼다.
물론 소규모 전투이니, 굳이 혼합하는 게 악수일 수도 있었지만, 히폴리타의 의견은 달랐다.

"무조건 효율적으로 싸워야지!! 전투 참여 인원이 달라지잖아!"

종으로 10줄, 횡으로 10줄.  100명인 부대가 있다고 하자.
 부대가 그냥 싸우면 가장 앞쪽의 10명만 전투에 참여하게 된다. 즉, 100명인 부대지만 충돌하는 순간의 전투력은 10명과 다를 게 없어진다.

하지만병종을 다양하게 갖추면? 예를 들어 방패병을 앞세우고, 뒷열이 검으로 보조, 뒷뒷열이 장창으로 찌르면 벌써 전투 참여 인원이 30명이다.
게다가 궁병까지 가세하면 전투 인원이 40명, 50명까지 늘어날 수 있었다.

제스 홀란트의 부대는 그런 기본을 지키지 않았다. 물론 실력순으로 뽑느라 저렇게 된 거지만, 히폴리타는 속사정까진 몰랐다.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치다가 순간 경계하는 그녀.

'잠깐!! 이건 기본이야. 굳이 기본을 어겼다는 건....... 새로운 전술의 등장?'

그렇게 해석할 수밖에 없다. 망나니 연기를 하며 잔뜩 웅크렸던 사내다. 어떤 창의성을 지녔는지 책정하기 어렵다.
히폴리타는 잔뜩 경계하며 지시했다.

"진형을 바꿔라!! 산개 진형으로 간다!"
"전투 직전입니다. 괜찮으신 겁니까?"
"놈들은 아마 밀집대형을 대비했을 거야. 거기에 당하느니, 당장이라도 바꾸는  낫다."

지나치게 이상한 비율. 그리고 제스 홀란트에 대한 과대평가가 겹치자, 히폴리타는 스스로 악수를 두고 말았다.
그녀의 남자 병사들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녀의 지시를 따랐다. 빽빽해서 튼튼해 보였던 진형에 틈이 듬성듬성 생긴다.

"이상하다. 우리 밀집대형을 훨씬 훈련하지 않았나?"
"나도 몰라. 참모님이 천재라고 하니까 잘하시겠지."

휘하의 기사들도 그냥 넘어갔다. 히폴리타에 대한 신뢰 때문이다.
그렇게 히폴리타 측 부대는 알아서 진형을 해체하게 되었다.

이걸 보던 제스 홀란트는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고.

"뭐야? 갑자기 만만해졌는데?"
"그러게 말입니다."

앨리스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세부적인 위치를 교정했다. 전투가 시작되면, 지휘는 제스 홀란트가 맡아야 한다.
너무 빨리 무너지지 않도록 세심하게 조정하는 것이다.

모의전이 시작하는 시간은 오후 5시.
약 10분쯤 남은 시각이었다. 제스 홀란트는 이제껏 고이 모셔뒀던 방패를 들고 앞으로 향했다.

"천인장!! 천인장!! 천인장!!"

익숙한 연호가 그를 뒤따른다. 단합력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처지지 않는 부대였다.
제스 홀란트는 가장 앞쪽에서 방패를 굳게 들었다. 모의전이니 죽지는 않는다.
하지만 실전을 방불케 하는 투기가 사방에서 들끓었다.

'내가 이길 수 있을까? 저 여자를?'

해야만 한다. 제스 홀란트는 다짐을 거듭하며 크게 외쳤다.

"너희는 무엇을 위해 싸우나!!"
"천인장님을 위해 싸웁니다!!"
"그렇다면."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가 우렁차게 뱉는다.

"싸워서 쟁취하라아아아!!"
"와아아아!!"

하늘이 떠나가라 질러대는 함성. 150명짜리 부대라고 믿기 힘든, 그야말로 압도적인 기세였다.

그를 상대하는 히폴리타마저도 살짝 표정이 굳어졌다.

"언제 저렇게까지 부대를 장악한 거지..... 지휘관을 위해 싸우는 부대라니."

물론 '천인장을 위해'는 '천인장을 따먹기 위해'였다. 성욕으로 지배한 것까지는 알았으나, 저들의 본능이어떤 수준인지 모르는 히폴리타가 오해한 것이다.
그녀는  한 가지를 주목했다.

"최전방? 저기서 전황을 확인할 수 있는 사람은 없어."

십존급이 아니고서야 불가능하다. 즉, 전체적인 상황을 조율하는 역할을 버리겠다는 뜻.
맹장으로서 전투에 임한다는 거였다.

그에 비해 히폴리타의 위치는 가장 안전한 후방. 전형적인 지략가의 위치였다.

'내 지략을 용맹으로 뚫겠다고? 어디   있으면 해보시지.'

살짝 자존심이상한다. 개인의 용맹에는 한계가 있었다. 저 남자가 얼마나 날뛰든 간에 이길  있으리라.

"중앙, 제스 홀란트가 있는 곳에 기사가 밀집했어. 일점돌파가 기본 전략이네."

그녀는 비뚜름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상대의 전략이 훤히 보인다. 알고도 지는  말이  되는 일.
마침 심판에 5시를 알렸다.

"모의전을 시작하시오!!"
"와아아아!!"
"돌겨어억!"

양측에서 함성이 터진다. 히폴리타의 부대는 약속한 대로 움직였다. 30명의 궁병이 첫 화살을 날리고 재빨리  방향으로 흩어진다.

"1소대는 이쪽으로 와라!!"
"2소대는 날 따라와!"

'하나로 뭉쳐서 몰살보다는 나뉘는 게 좋지. 열다섯이면 일제사격을 시도할 수도 있고.'

하나하나씩 저격할 실력까지는 없다. 대신에 일정 면적에 화살을 퍼붓는 거였다. 해당 면적에 있던 병사는 어쩔 수 없이 화살을 맞으리라.

이어서 간결한 명령을 내렸다.

"중앙을 비워라!! 상대의 돌파를 맞상대하지 마라!!"

제스 홀란트의 진형은 단순했다. 송곳처럼 중앙이 불쑥 튀어나온 진형.
가장 날카로운 중앙을 피하면, 나머지는 만만하다.

히폴리타는 지휘관의 이름을 하나씩 호명하며 일일이 지시했다. 신들린 듯한 지휘에 부대가  갈라진다.

탁탁탁탁-

이를 악물고 뛰던 제스 홀란트는 이런 걸 처음 겪어봤다.

"뭐야.....? 우, 우리 어디로 가야 해?"

중앙을 돌파한다는 우직한 계획만 있었다. 그런데 목표점이 사라진 것이다.
천인장이 당황하자, 주변 기사들에게도 영향이 갔다.

"처, 천인장님..... 저희 어떻게?"
"일단 멈추지 마십시오!! 속도를 줄이면 진형이 무너집니다!!"

정확한 지적이다. 별다른 지휘 없이 앞열에서 방향이나 속력을 바꾸면, 부대 전체가 혼란에 빠진다.
제스 홀란트는 부지런히 다리를 놀렸다.

"후훗, 요리하기 쉽네요."

히폴리타의 중얼거림이었다. 제스 홀란트는 모르겠지만, 이미 그의 부대 날개 쪽은 타격을 입는 중이었다.

양쪽으로 갈라진 궁병. 그에 더해서 병종의 다양성까지 있으니, 히폴리타의 부대가 이길 수밖에 없다.
약 20명가량의 부대원이 삽시간에 이탈되었다.

"빨리 다친 녀석들 운반해!! 여기서 중상자나 사망자가 나오면 안 된다!!"

점점 고조되는 분위기.
모의전은 절정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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