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로인이 되기 전에 (366)화 (366/366)



〈 366화 〉히로인이 되기 전에..

그 와중에 더 환장하겠는건 아직 의문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상태라는 거다.

 세계가 이 꼴이  것이 여신의 탓이라고 치자.


그렇다면 이 세계를 원래대로 되돌리기 위해서는 어떤 식으로든 여신과 대립각을 세워야 한다는 소린데 여신은 그 역할을 나와 어떤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가 수행하게  거라고 예언했었다.


그 부분까진 그렇다고 치자.


문제는 여신이 그 구원자라는 존재를 성녀의 배를 빌어 태어나게 하려 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 부분이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해가 되질 않았다.

언젠가는 자신과 대립하게될 존재를 자신의 손으로 만들어내려고 한다니?


키워서 먹는다는 심보도 아니고 대체 무슨 생각인걸까.

 여신은.

'아니면 혹시···'


구원자를 배출해내는게 아니라 구원자라는 존재를  손바닥 위에 놓고 좌지우지하는 게 목적이었나?

그게 아니면 구원자라는 존재가 꼭 여신과 맞서야만 이 세계를 둘러싼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르지.

나야 문제의 원인 자체를 때려부수는 해결방식이 익숙해서 그쪽부터 떠올렸지만 어쩌면 여신은 다른 방법을 알고 있을지도 모르는  아니겠는가.

이를테면 공석이 되어버린 자리를 채운다던지 하는 식으로 말이다.


'흠···'

생각해보니 그쪽도 가능성이  있긴 했다.

물론, 그리되면 지금처럼 이 세상 사람들이 바치는 신앙을 혼자서 몰아받긴 힘들어지겠지만 그 대가로 수족처럼 부릴 수 있는 하위신들을 얻게 된다면 오히려 남는 장사 아닐까.


그리스 로마 신화만 봐도 주신인 제우스를 가장 두려워하고 신앙하지 않던가.


생각이라는 걸 하면 할수록 그것이 질서정연하게 정리되기 보다는 난잡해지는 느낌이라 일단은 그쯤에서 생각을 끊어냈다.

"마저 읽으려고?"

"일단은요."

그리고는 바이올렛이 공수해다준 책을 마저 읽기 시작했지만, 역시나라고 해야할까 뒤에는 딱 내가 예상한 내용밖에는 적혀있지 않더라.

그래서 눈으로 대충 훑은 다음에 그것을 집어들어 방 한쪽에 자리하고 있던 벽난로를 향해 휙 던졌다.

책이 제법 묵직해서 중간에 떨어지는 건 아닐지 걱정했는데 참으로 다행히도 책은 무사히 벽난로 속으로 안착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벽난로에서 타닥타닥하는 소리를 내며 타오르고 있던 불이 제 안으로 파고 들어온 책을 슬그머니 끌어안기 시작했다.

그렇게 옮겨붙은 것이 책 전체로 번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넘겨볼 때부터 느낀 거긴 하지만 딱 타기 좋게  말라있다 싶더라니만 책은 아주 그냥 잘도 탔다.

활활 타오르는 것이 수련회 마지막날 하는 캠프파이어의 모습을 생각나게 할 정도였다.

"여신말고 다른 신과 관련된 유적이나 유물에 관련해서는 나름대로 조사해도록 할게."


"그래줄래요?"

"응, 나도 솔직히 좀 궁금하긴 하니까."

그런 식으로 바이올렛의 도움을 받아 어쩌면 진실에 가장 가까운 것일지도 모르는 것에 근접하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딱히 달라지는 건 없었다.

여신이 수백년동안, 어쩌면 수천년에 걸쳐 내린 것일지도 모르는 뿌리는 그만큼 두터웠고 깊게 파고 들어있었으니까.

제대로 준비도 안 하고 덤벼들었다간?


파멸하는 건 여신이 아닌 이쪽이 되겠지.

신이 실제로 존재할 뿐더러  존재감마저 굉장히 뚜렷한 세계에서 신과 맞선다는 건 그런 의미였다.

아마  수 있는 준비를 모두 다 한다고 쳐도 높은 확률로 파멸이라는 결과를 맞이하게 되겠지.


일전의 테러로 인해 여신교의 세가 예만 못해졌다지만 그래도 세계 도처에는 여전히 여신을 신앙하는 이들이 깔려 있었으니까.

그런만큼 지금은 우리를 지지하고 있다 해도 우리가 여신은 사실 쌍년입니다를 외치면 망설이지도 않고 등을 돌릴 이들이 수두룩했다.


그렇기에 일단은 거기에 맹목적으로 매달리기 보다는 기반을 탄탄하게 하는데 집중했다.

그러는 동안 사교도 놈들의 잔당을 색출해내는 작업도 나름대로 수월하게 진행되었다.


물론, 말이 그렇다는 거지 굴곡이 아예 없지는 않았다.


리파의 협조를 얻어 대초원 쪽을 틀어막긴 했지만, 그럼에도 남은 잔당 중 대부분이 왕국 연합 쪽으로 탈출하는데 성공했으니까.


이왕 칼을 뽑은 거 이 참에 제대로 정리할 필요가 있었기에 그 사실을 인지하는 즉시 바이올렛이 동맹을 대표하여 왕국 연합 측에 사교도 토벌에 협조하라는 공문을 보냈지만···

"뭐래요?"


"연합의 영토 내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자기들이 알아서 처리할테니까 신경 끄라는데?"


역시나 돌아온 반응은 그리 협조적이지 않았다.


서한에는 우리 쪽으로 기어들어온 애들은 우리가 알아서 처리할테니 굳이 힘을 빌려주지 않아도 된다고 적혀있었지만, 실제 뉘앙스는 그게 아니었으니까.

개수작부릴 생각하지 말고 우리  일에는 신경 끄라면서 누가봐도 보여주기에 불과한 토벌만 진행해대는데 그게 사교도 놈들을 보호하겠다는게 뜻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 시점에서 바이올렛은 바톤을 성녀에게 넘겼다.


개인적으로 나쁘지 않은 판단이라 생각했다.

성녀가 왕국 연합을 상대로 사교도 척결의 필요성을 호소한다면 파급력 자체가 다를 수밖에 없으니까.


사교도 놈들이 무슨 수작질을 부린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 어떤 나라보다도 교국을 따르는 듯 했던 왕국 연합 측이 언제 그랬냐는 듯 교국따위 개나 주라는 태도를 고수하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아직은 여신교를 믿는 이들이 연합 곳곳에 남아있는 상태였으니까.

간절하게 협조를 요구하는 성녀의 선언은 왕국 연합 내에 존재하는 각 교구를 징검다리로 삼아 연합 내로 퍼지기 시작했고, 덕분에  그래도 뒤숭숭하던 연합의 분위기가 발칵 뒤집어진  말할 것도 없었다.


동맹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사교의 잔당을 척결하는 것 뿐이며 연합을 무력적으로 위협한다거나 할 생각은 없다는 성녀의 맹세 때문이었다.

덕분에 동맹을 연합 내부로 들였다가 갑자기 그들이 돌변해서 연합의 안위를 위협하거나 그러면 어쩔 생각이냐는 명분을 내세워 협조파를 찍어누르고 있던 반대파가 주춤한 건 말할 것도 없었다.

그렇게 동맹에게 협조할 것인지를 놓고 왕국 연합측 고위층 사이에서 연일 정쟁이 벌어지던 가운데 레이시아가 크게 한 건을 해냈다.

대체 어떤 방법을 쓴 건지는 모르겠지만 왕국 연합 측 변경에 자리하고 있던 몇몇 귀족들을 포섭해 굳게 닫혀있던 문을 활짝 열어젖히는데 성공한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들의 적극적인 협조 덕분에 임시적으로 동맹으로 소속을 옮긴 병력들이 왕국 연합 측 영토 내로 물밀듯이 밀고 들어갔고, 그렇게 확인하게  왕국 연합의 실체는 가관도 그런 가관이 또 없었다.

"끔찍하군···"

"어떻게 이런 짓을···"


대표랍시고 교류전에 얼굴을 내비췄던 이가 사교의 끄나풀이었던 시점에서 어렴풋이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아니나 다를까 왕국 연합측 고위층 중 대부분이 사교도 놈들에게 넘어간 상태였다.

심지어는 우리에게 협조하자고 주장했던 이들 중 몇몇도 그렇더라.


고위층의 꼬락서니가 그러하니 아래는 어땠겠는가.

여신교야말로 사도이고 사교야말로 진리라고 철썩같이 믿는 이들이 태반이었고, 덕분에 동맹의 군대는 곳곳에서 사교도 놈들에게 세뇌당해버린 이들과 맞서게 되었다.


자기들은 사교의 끄나풀이 아니라며 협조하는 척 통수를 때리는 건 기본이요. 동맹의 군대가 밀고 들어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며 망명했다가 야영지 안에서 자살테러를 감행하는 일마저 있을 정도였다.

덕분에 생각치도 못한 피해가 스멀스멀 누적되었고, 참다 못한 바이올렛과 레이시아가 이를 악물고 진심 모드를 선언했다.

줄곧 레이시아의 옆을 지키고 있던 근위대장과 하릴 없이 놀고 있던 클레어, 그리고 바이올라를 필두로 한 실력자들이 전선으로 투입되었고, 그에 사교 놈들도 가만히 있지만은 않았다.

다 도망쳤다고 생각했더니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곳곳에 자기들의 끄나풀들을 숨겨두고 있었던 모양인지 왕국 내에서 대규모 공사가 진행 중이라는 걸 귀신같이 알아차리고는 교국에서 그랬던 것처럼 폭탄테러를 뻥뻥 터뜨려대는데···

"벌레같은 것들이···"


"전력을  더 투입하는 게 좋겠네요."

그 탓에 그쪽이 투자를 참 많이  이들의 눈이 뒤집혀버렸다.

그랬다.

사교도 놈들은 놀랍게도 기적을 일으키는데 성공했다.


거의 개와 고양이나 다름없던 바이올렛과 레이시아로부터 단결이라는  이끌어내는데 성공했으니까.

그게 기적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렇게 눈깔이 뒤집혀버린 둘이 '끝까지 간다!'를 외쳤고, 몸조리가 끝나자마자 린을 내게 맡겨두고 부족 내의 일을 정리하러 떠났던 리파가 전과 비교하면 한결 자신감이 넘치는 모습을 한채 전사들을 이끌고 합류한 건 그 즈음이었다.


"꼭 직접 가야겠어요? 린도 있는데···"

"린이 컸을  감히 아빠를 노린 놈들을 이 손으로 직접 혼내줬다는 이야기를 들려주려면 가야지."


그에 내 품 안에 안겨 리파를 향해 손을 허우적대던 린이 활짝 웃으며 '아부!'하고 박수를 짜자자자작 쳐댔고, 왠지 모르게 리파의 말에 맞장구를 치는 듯한 린의 행동에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리파에게 린을 넘겼다.


아기들은 얼굴을 금방 까먹는다고 하더니만 린은 좀 달랐던 모양인지 리파의 품에 안기게된 린이 활짝 웃으며 엄마의 볼을 손바닥으로 찰싹찰싹 두들겨댔다.

"···음, 역시 너와 내 딸이야. 벌써부터 힘이 장난이 아닌걸."


덕분에 볼이 린의 손모양대로 빨갛게 변한 리파가 쓰게 웃으며 린을 다시 내게 넘겼다.

"틀림없이 좋은 전사가 될 거야. 린은."


흐뭇하게 웃으며 받아주더니만 얼얼하긴 했던 것일까.


빨갛게 달아오른 볼을 살살 문지르며 그리 말하는 게 귀여우면서도 웃겼다.


그렇게 리파는  곁으로 복귀하자마자 다시 곁을 떠나게 되었지만 참으로 다행히도 우려했던 일같은 건 벌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리파의 합류로 토벌에 더욱 탄력이 붙었는지 하루가 멀다하고 승전보가 쏟아지는데···

공사가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지도 위에 자리하고 있던 사교를 상징하는 말의 수가 그에 맞춰서 줄어들었다.

물론, 사교도 놈들도 가만히 당하고 있지만은 않았다.


공사 현장을 노려봐야 이쪽의 분노를 자극하기만 할뿐 그리 실효가 없다는 걸 깨달은 것일까.

차라리 가능성은 낮아도 이쪽을 직접 노리는 편이 더 효율적이라고 보았는지 자꾸만 이쪽을 노려대는데 애석하게도 단 한 번도 성공하질 못하더라.

성녀의 결단과 마침내 원래 소속으로 복귀한 앨리스의 활약 덕분이었다.

여기서 이쪽에 문제가 생기면 한창 진행중인 토벌에 차질이 생길 거라는 걸 모르지 않았던 것일까.

성녀가 교국 최초로 봉쇄령을 선언했다.

거기에 원래 소속으로 복귀한 앨리스가 사교도 놈들이 기어들어올만한 구멍을 싸그리  틀어막은 탓에 놈들이 준비한 비수가 나나 레이시아, 혹은 바이올렛에게까지 닿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그 와중에 딱 하나 고역이었던 점이 있다면 아쉬워하는 디아나를 달래는 것이었다.

이제 몇달 뒤면 출산인데 남들이 활약하는 모습을 보니 몸이 달아오르기라도 했는지 자꾸만 몸을 들썩들썩하다가 이내 그럴  상태가 아님을 깨닫고 시무룩함을 넘어서 우울해하는데 어쩔 수 없이 특제 순애섹스로 달래주었다.

그렇게 사교도 놈들의 촉수를 하나하나 걷어내는 사이 마침내 놈들의 본단으로 추정되는 곳을 특정해낼  있었고, 거길 둘러싸고 최후의 항전을 부르짖는 것들까지 깔끔하게 전부 치워버리고  후에야···

'결국 결혼을 하긴 하는 구나.'


결혼이라는 현실을 마주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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