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로인이 되기 전에 (365)화 (365/366)



〈 365화 〉히로인이 되기 전에..

한쪽은 그분이야말로 우리의 구원자라 떠받들고 있고, 다른 한쪽은 그년이 희대의 쌍년이라서 세상이 이 꼴이 났다고 주장하고 있는 상황.

문제는 어느 쪽이 진실을 말하고 있는 지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사교도 놈들이 하는 소리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겠지만 이번만큼은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사교도 놈들의 주장이라고 마냥 무시하기에는 걸리는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으니까.

마치 목에 생선가시같은 게 턱하고 걸린 느낌이라고 해야할까.


그렇다고 사교도 놈들의 주장을 믿기도 좀 그랬다.


세력 면에서도 명분이라는 측면에서도 기득권을 차지하고 있는 기존의 종교에게 밀릴 수밖에 없는 것이 사교이니만큼 놈들이 기본적으로 써먹는 방법이 이런 식이니까.


그러니까 기존의 종교가 가진 꼬투리를 잡고 그들을 까내리는 것 말이다.

그래야 사교에 투신한 사람들에게 당위성과 자신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믿음을 심어줄 수 있으니 아마 내가 방금 본 문구도 그런 목적으로 쓰일 것일 가능성이 컸다.


그러니 당연히 믿음이  갈 수밖에.


'흐으으음···'

어느 한쪽도 쉽게 믿을 수가 없는 상황.


그래서 둘 사이에서 갈팡질팡하고 있으니 나름대로 많은 것들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개중에는 날 대하던 성녀의 태도같은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내가  그녀는 남성이라는 존재에 지독할 정도로 익숙치 않아보였다. 그래서 날 어찌 대하면 좋을지 몰라하는 것이 성녀의 평소 태도에서 묻어나오곤 했다.

그런데도 성녀는 내게 접근하길 멈추질 않았다.

마치 거스르기 힘든 누군가에게 명령이라도 받은 것처럼 말이다.

문제는 그녀의 신분이다.


신의 딸이라 불리우는 성녀에게 대체 누가 그딴 식으로 명령을 내릴 수 있겠는가.


 바이올렛도 성녀를 상대할 때면 굉장히 조심스러워지는데 말이다.


설령 제국의 황제가 온다 하더라도 그건 똑같겠지.


아니, 오히려 황제기에 더욱 조심스러워지지 않을까.


제국의 황제가 여신교의 성녀와 대립각을 세웠다는 소문이 퍼지기라도 하는 날에는 그로 인한 후폭풍이 어마어마할테니 말이다.


그렇기에 성녀에게 명령을 내린다는  제국의 황제라도 할 수 없는 행동이지만, 이 세상에서  한  그런 일을 할  있는 존재가 존재했다.


'여신.'

그래서 내가 여신교의 경전에 적혀있는 걸 곧이곧대로 믿을 수가 없는 거다.

신들이 괜히 성녀를 딸이라고 부르는 게 아니다.

그들에게 있어 성녀라는 존재가 그만큼 중요하기에 굳이 그런 호칭을 사용하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진짜 미친 놈이긴 해···'


자기한테 용사라는 직함과 성검을 내려준 것만으로 신이 존재한다는 것쯤은 알 수 있을텐데 그럼에도 신이 딸이라고 부르는 존재를 억지로 범할 생각을 하는 새끼는 대체 뇌가 어떻게 생겨먹은 새끼인걸까.

문득 전회차에서 용사라는 이름으로 불리웠던 놈팽이의 재수없는 면상이 떠올랐지만 고개를 가볍게 가로젓는 것으로 머릿속을 비웠다.

아무튼 딸이라고 부른다고 해서 성녀를 실제로 자신의 딸처럼 생각하는 신은 드물겠지만, 신들에게 있어 성녀는 그만큼 중요한 존재라는 거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지상에 직접 간섭하는 것보다 성녀라는 라인을 거치는 편이 몇 배는 효율적이니까.

나도 정확히는 잘 모르지만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말을 조합해서 추측해보면 아마 직접 간섭을 한 번 행하는데 들어갈 힘이면 성녀를 이용한 간접 간섭을 최소 열 번은 할 수 있을 거다.


들어가는 품 자체가  정도로 차이가 나니 당연히 귀히 여길 수밖에.

그리고 뭣보다 성녀는 여차할 때 강신이라는 수단을 사용할  있는 매개체기도 했다.


헌데 이 세계를 다스리는 여신은 그토록 귀히 여겨야할 존재를 한낱 도구 쓰듯 써먹고 있었다.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음에도 그랬다.

어찌보면 멸망이라는 운명을 앞에 두고 그만큼 급했다는 뜻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말이 안 돼.'

신탁이랍시고 퍼진 것에 누락된 부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서의 이야기긴 하지만,  신탁 어디에도 세상의 구원자가 될 이의 어미될 사람에 대한 언급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예언의 남성과 동침하라고만 했을 뿐.

그 말은?

여자는 아무나 상관없다는 거다.


그렇다면 굳이 내 앞으로 성녀를 들이밀 이유가 없었다.

그냥 내버려두면 알아서 멸망을 막아줄 존재가 뿅하고 튀어나올테니 말이다.


그럼에도 여신은 굳이 성녀의 등을 억지로 떠밀기까지 해가며 내게 접근하도록 만들었다.


그 이유는 아마도··· 욕심 때문이겠지.


신의 힘은 신앙에서 나온다.


헌데 지금 여신교에 대한 신앙은 역대 최저를 달리고 있는 상태였다.


여신으로서는 당연히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 것이고, 어떻게든 그 상황을 만회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 와중에 떠올린 방법이 여신교 내에서 구원자를 배출해내는 것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억지로 성녀의 등을 떠밀었던  아닐까.


생물의 행동에는 그 생물이 지닌 성정이 어떤 식으로 묻어나오기 마련이다.

그러니 성녀의 등을 억지로 떠민 시점에서 여신이 탐욕스러운 성정을 지녔다는 것쯤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있었다.


 정도로 탐욕스러운 존재가 자신이 세상에서 유일한 신이 될  있는 존재를 그냥 두고 보고만 있었을 리는 없겠지.

틀림없이 뭔가 농간을 부렸을 것이고, 그 결과가 지금과 같은 현실이라면?

'흠..'

 모르겠다.

해서 이 세계의 토박이의 의견은 어떨지 물어보기 위해 다시금 서류에 집중하고 있는 바이올렛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타악하고 책을 덮는 소리에 반응한 것일까.


바이올렛의 귀가 쫑긋하고 떨리더니 서류를 향해 있던 시선이 내쪽으로 돌아왔다.


"다 봤어?"

그 말에 가볍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중간에 심상찮은 문구가 나와서 잠시 멈추긴 했지만 아직 못 확인해보지 못한 부분의 3분의 2정도 남아있었으니까.

"흠, 표정을 보아하니 그 부분을 봤나 보네."

바이올렛이 말한  부분이라는 것이 어디를 가리키는 것인지 추측하는 것쯤이야 그리 어렵지 않았다. 끝까지 다 본  아니긴 했지만, 솔직히 뒤에 나올 이야기야 안 봐도 비디오니까.

보나마나 가열차게 여신교를 까내리면서 자기네 종교를 믿어야 구원을 받을  있느니 어쩌느니하는 거나 적어놨겠지.


해서 그렇다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더니 피식하고 웃은 바이올렛이 들고 있던 서류를 다시 책상 위로 되돌리며 몸을 한껏 뒤로 젖혔다.


"그래서 네 생각은 어때?"

"솔직히 아직 잘 모르겠네요. 그래서 말인데···"


"내 생각이 듣고 싶다고?"

"네."

솔직하게 고개를 끄덕이니 바이올렛이 분홍빛 입술을 손가락으로 툭툭 두들기며 고민에 잠겼다.


그렇게 '흐음···'하는 소리를 내며 고민하던 것도 잠시, 바이올렛이  똑바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궁금한 게 내 생각이야? 아니면 둘 중에 어느 쪽이 진실이라 생각하는지야?"


비슷한 듯 하면서도 다른 질문이었다.

그래서 일단은 후자라고 말을 하니 다시 한 번 '흐음···'하는 소리를 낸 그녀가 이내 피식 웃었다.


"뭐, 사교도 놈들의 주장이니만큼 신뢰하기 어려운 건 사실이지."


역시나 그렇게 생각하는 건가.

라고 생각하기 무섭게 바이올렛이 말을 덧붙였다.


"그렇다고 여신교의 경전에 적혀있는 내용을 곧이곧대로 믿기 힘든 것도 사실이긴 해. 석연찮은 구석이 한두 군데가 아니니까."


석연찮은 구석이라.

"그게 뭔데요?"

"음, 글쎄···"


그리 말하며 다시금 자신의 입술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들겨대던 바이올렛이 이내 입술을 부드럽게 문지르며 말을 이었다.

"그··· 일단 하나 확실한 게 있다면 과거에는 여신 뿐 아니라 다른 신들도 멀쩡히 존재했다는 거잖아?"


"···그렇죠."

그 부분은 아마 진실일 거다.

여신교의 경전에서도 지금  손바닥에 짓눌리고 있는 사교의 책에서도 다른 신들의 존재에 대해 언급하고 있었으니까.


차이가 있는 건 그들이 자의로 사라지기를 택했느냐 아니면 통수를 찐하게 얻어맞고 퇴장했느냐 정도이고.

"그렇게 생각하면 뭔가  이상하지 않아?"


"뭐가 말입니까?"

"신하면 흔히 떠오르는 게 뭐야?"

신하면 흔히 떠오르는 거라.


그 질문을 받은 순간 사제, 공양, 위대한 존재같은 단어들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해서 떠오르는대로 나열해봤지만 그것들은 바이올렛이 원하는 대답이 아닌 듯 했다.

"···혹시 신전?"


"그래."


"신전···"


"물론, 그 신들은 전부 소멸한 상태이니 그 신들을 모시는 신전또한 더는 존재하지 않겠지만··· 건물같은 건 본디 어떤 식으로든 흔적을 남기기 마련이니까."

확실히  말대로였다.


하물며 그냥 건물도 아니고 실제로 존재하는 신을 모시는 신전 아닌가.


그러니 다른 건물에 비하면 압도적인 규모를 자랑했겠지.

튼튼하기도 튼튼했을 것이고 말이다.

그 정도면 아무리 세월이 지났다고 해도 그 흔적이라도 존재해야 정상이었다.

허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다른 신과 관련된 유적이 발견되었다거나 존재한다는 이야기 혹시 들어본 적 있어?"

그래, 그런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다른 신들의 흔적을 지웠다?"

"그게 아니고서야 그런 것이 단 하나도 발견되지 않을 리가 없지."


그렇다면 그런 일이 가능한 존재, 혹은 집단은 대체 누굴까.


그야 단 하나 뿐이었다.


애초에 앉은 자리에서  대륙 구석구석에 영향을 끼칠  있는 존재는  한 명 뿐이니까.

여신 말이다.

그 말은?

"바이올렛은 이 책에 적혀있는 게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닌 거지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건 대체 뭘까.


나도 모르게 어처구니 없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더니만 바이올렛이 제 3의 대답을 내놓았다.


"···어쩌면 둘다 진실을 말하고 있을 수도 있고."

"둘 다 진실이라는 말은···"


"소멸에 가까운 수면이라 묘사해놓긴 했지만, 어찌되었건 수면을 택했다는 건 언젠가는 깨어날 생각이었다는 뜻 아니겠어?"

"확실히···"

그건 그랬다.


죽음이 아니라 잠은 언젠가는 깰 수밖에 없는 것이니까.

"그래서 나중에 자신들을 깨워줄 이를 남겨두고 수면에 들어갔는데···"

"깨우기로 한 사람이 깨우질 않았다?"


"그랬을 수도 있고 아니면 잠들  뭔가 수작질을 부렸을지도 모르지."


정확히 그 순간이었을 것이다.

어디까지나 내 생각은 이렇다는 투로 귓속으로 흘러들어온 바이올렛의 말을 들은 순간 여기저기 흩어져있던 조각들이 하나로 합쳐졌다.

그렇게 완성된 것에 따르면 내 가정은 이렇다.

'우선···'

아마 여신은 배신자가 맞을 거다.


깨우기로 약속해놓고 깨우질 않았든 아니면 신들이 수면을 택할 때 무언가 수작질을 부렸든 간에 그 사실 하나만큼은 변치 않겠지.

그리고 다른 신들의 흔적을 찾아볼 수가 없는 건···


그것도 아마 여신이 손을 쓴 결과일 거다.


아마 수면 상태인 신들을 완전히 소멸시켜버리기 위해서 그랬던 게 아닐까.

사교도 놈들의 책에 적혀있던 것에 따르면 놈들은 여신이 다른 신들의 통수를 까고 그들을 모두 죽여버렸다고 했지만 사실 그건 불가능하다.


신쯤 되는 존재를 소멸시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니까.


0.5신 정도 되는 마왕을 소멸시키기 위해 별의  쌩쑈를 다했음에도 결국에는 다섯 번이나 실패해버린 것도 다 그래서였다.

하물며  영역을 가지고 있는 온전한 신이라면?



그것도 다수라면?


제 아무리 같은 신이라해도 그런 일이 가능할 리 없겠지.


그러니 여신이 노린 건 아마도 자연적인 소멸일 가능성이 크겠지.

아무리 강대한 신성을 지녔다해도 신이라는 존재는 그냥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힘을 소모한다고 내가 아는 유일한 신이 그랬으니 수면을 택한 이들은 시시각각 힘이 깎여나가고 있을 거다.


그리고  상황이 지속된다면 언젠가는 잔고가 바닥이 날테고 그리되면 신성을 대신해 신체가 붕괴하다가 이내 완전히 사라져버릴테지.

만약 그 현상이 세상이 이 모양 이 꼴이  거하고 관련이 있는 거라면···?


'시발 그러면 어떻게 해야하지?'


마왕은 이미 여러번 적으로 만나봤다.

허나 마왕이 아니라 세계를  손안에 넣고 주무르는 신을 최종보스로 맞닥뜨리게 된 건 맹세코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래서일까.


여태껏 단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상황에 그만 정신이 아득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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