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로인이 되기 전에 (363)화 (363/366)



〈 363화 〉히로인이 되기 전에..

포근하고 안락하던 엄마 뱃속에서 빠져나와 세상 밖으로 나오게  것이 그리도 서러웠던 것일까.

우리 첫째 따님께서는 리파의 품에 안긴 채 방이 떠나가라 울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그런데 참 신기한 것이 그 모습마저도 밉게 느껴지지가 않았다.


대체  조그마한 몸 어디에 그만한 힘이 숨어있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얼굴을 잔뜩 찡그린 채 와앙하고 울어대는 모습마저도 그저 귀엽게 느껴지더라.

동시에 어떻게든 달래주고 싶어서 기분이  제멋대로 안달이 나고 초조해지는 것이 덕분에 새삼 깨달을  있었다.

대체 언제 그리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미 내 눈에는 콩깍지라는 것이 씌워지고 말았다는 것을.


"그··· 너, 너무 크게 우는  아닙니까? 혹시 뭐 문제가 있거나 그런 건···"


내가 생각하기에도 길었던 출산시간이 아이를 받는 입장에서도 그랬던 모양이다.

그렇기에 여러모로 지쳐보이는 이를 괴롭히고 싶지는 않았지만, 태어난지도 얼마 안 되서 서러울 것도 없는 애가 하도 서럽게 울어대니 그나마 전문가라 할 수 있는 사람을 채근하게 될 수밖에 없었다.

교국 측에서 파견해준 사제에게 매달리다시피 해가며 혹시 아이의 몸에 뭔가 문제가 있는  아닐지 걱정하듯 물었던 건 다름아닌 그래서였다.

참으로 다행히도 사제는 그런 내 질문을 무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그러는 것도 이해한다는 것처럼 빙그레 웃으며  한 마디만을 내놓았다.

"그럴 리가요."

짧은 것치고는 꽤나 단호한 한 마디.


그것만으로는 불안에 젖어있는 날 설득하기에는 부족할 것 같다고 여긴 것일까.


"음··· 제가  전문 산파거나 그런 건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많은 아이의 탄생을 옆에서 지켜봐왔습니다."

피곤하기 그지없는 몸상태에도 불구하고 자애로워 보이는 미소를 잃지 않으려 노력하던 여사제의 입이 슬며시 벌어지더니 갑자기 경력에 대한 어필이 흘러나왔다.

그러더니ㅡ

"그런데 날 때부터 이토록 건강하고 힘이 넘치는 아이는 저도 처음입니다. 솔직히 말하면 벌써부터 아이가 장성한 후가 기대될 정도입니다."

"그, 그렇습니까?"

눈에 의어 귀에도 콩깍지가 내려앉은  틀림없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날 칭찬하는 것도 아닌 말에 이리도 안심이 되고 기쁨이 뭉클뭉클 피어오를 이유가 없으니까.


그렇기에 되게 신기했다.


누군가에게 칭찬을 받는다는 행위에 더이상 자극을 받지 못하게 된지가 오래인데 그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감각이 이런 식으로 다시 깨어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으니까.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빈말이었어도 기뻤을텐데 말하는 표정이나 어조를 보면 꼭 빈말은 아닌  했으니까.

진심으로 궁금해하고 있는 게 눈에 보인다고 해야할까.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자꾸만 입꼬리가 근질거려서 참기가 영 힘들었다.

동시에 울컥하고 올라온 것은 다름아닌 불안감이었다.

그것이 순식간에 머릿속을 점령하고 앉은 순간 비로소 깨달았다.


삶과 죽음을  번이고 반복하면서도 여태껏 엔딩을 보겠다는 목표 외에 다른 곳에는 시선조차 주지 않고 오직 그것에만 맹목적으로 매달렸던 이유를.

그래, 난 이런 걸 걱정했던  틀림없었다.


그러니까··· 내게 씌워진 굴레가 다른 이에게까지 덧씌워지는 건 아닐지, 역병처럼 옮겨붙게 되는 건 아닐지 그걸 걱정했던 게 틀림없었다.


그래서 눈길 한 번 정도는 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엔딩에만 맹목적으로 매달렸던 것이겠지.


그렇기에 불안했다.


그 정체모를 여자가 내게 씌운,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이 천형이 혹시라도 이 아이에게까지 옮겨간 건 아닐지, 그래서 그로인해 이 아이가 나중에 나만큼 고통에 시달리게 되지는 않을지하는 걱정이 자꾸만 배 안쪽에서부터 끓어올라서 그 느낌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하필이면 아이의 성별이 여자라서 더 그러했다.


이 세계에서야 여자가 남자보다 우위에 서 있지만 다른 세계까지 그런  아니니까.

내가 지나쳐온 세계들 중에는 여자를 노예처럼 취급하는 곳도  군데 있었다.


만약 이 아이가 그런 곳으로 떨어져버리게 된다면···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만 같아서 눈을 질끈 감고 있으니 그 순간 귓가로 울려퍼진 리파의 목소리가 바닥이 보이질 않는 수렁 속으로 빨려들어가던 내 몸을 건져냈다.


"···이안?"


"아, 리파."

그 목소리를 듣고 나서야 깨달았다.

쓸데없는 생각에 빠져서 정작 가장 중요한 걸 놓치고 있었다는 걸.


"괜찮아요? 몸은···"


해서 바로 입을 열어 리파의 안부에 대해 물으니 그녀가 누가봐도 많이 힘들어보이는 낯짝을 하고서  또 그런 걸 걱정하냐는 것처럼 씨익하고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 모습이 애써 괜찮은  하는 것만 같아서 더 안쓰러웠다.

그래서 산모에게 좋은 음식이  있었나하고 열심히 머리를 굴리고 있으려니ㅡ


"한 번 안아보겠느냐? 왠지 아빠를 찾고 있는 것 같구나."


눈을 번쩍 뜨이게 하는 제안이 귓속으로 흘러들어왔다.

난 그런 기색따위는 느끼지 못했는데 엄마는 뭔가 좀 다른 걸까.

묘한 확신이 담겨있는 목소리에도 선뜻 손을 뻗을 수가 없었으니까.

그도 그럴 것이 불안했으니까. 뭔가 좀··· 면몫이 없기도 했고.

그래서 차마 손을 뻗지 못하고 우물쭈물하고 있으니 그런 내가 답답하기라도 했는지 내 뒤에  있던 누군가 내 등을  떠밀었다.

그리 세지도, 약하지도 않은 손길에 떠밀려 마침내 침대 앞에 도달한 순간 내가 도착하기만을 기다렸다는 것처럼 리파가 후후하고 웃으며 아이를 끌어안고 있던 손을 내쪽을 향해 뻗었다.


역시나 애써 괜찮은 척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


 향해 천천히 내뻗어지는 리파의 손은 무슨 탈진이라도  사람처럼 달달 떨리고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나도 불안하게 느껴져서 망설이는 것따위는 집어치우고 그대로 아이를 받아들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아이의 몸을 감싼 두터운 포대기 위로도 또렷하게 느껴질 정도로 따뜻한 것이 품 안으로 포옥하고 들어옴과 동시에 방이 떠나가라 울어대던 아이가 언제 그랬냐는 듯 울음을 뚝 그쳤다.

"역시 아빠를 찾고 있었던 모양이구나. 참··· 정작 힘들게 나아준  난데 말이야."


 말을 부정하기에는 타이밍이 너무 절묘했다.


어쩌면 진짜로 날 찾고 있었던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렇게 나와 내 품에 안긴 아이를 보며 쓴웃음을 짓고 있는 리파가 아이 때문에 살짝 불편하게 하고 있던 자세를 편하게 뉘였다.

"후우···"


그러더니 지친 듯 한숨을  내쉬는 그녀와 아이를 번갈아 바라보고 있으니 눈을 감은 건지 아니면 뜨고 있는 건지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애매한 모습을 하고 있던 아이가 이내 입술을 오물오물대기 시작했다.


그 모습마저도 신기하더라.


몸이 이렇게나 작은데 대체 어떻게 저리 세세하게 움직일 수 있는 걸까 싶었으니까.

한편으로는 처음으로 이런 몸이  것에 감사함을 느꼈다.

만약 몸이 옛날과 같았다면 이렇게 자연스레 아이를 안아들긴 힘들었을테니까.


보나마나 아이를 안아들었다가 힘조절을 잘못해서 아이를 다치게 하는 건 아닐지 불안해했겠지.

그에 비해 이 몸은 어떤가?


힘은 예전만 못해도 아이를 안아들기에는 딱 좋았다.


그렇게 아이를 품에 꼭 끌어안고 있으니 갑자기 주변에 있는 모든 것들이 세균덩어리로 보이기 시작했다.


심지어는 나도 그랬다.

어느새 곁으로 몰려와  안에 안겨있는 아이를 신기한 것 바라보듯 구경하기 시작한 여성들을 손을 휘휘 저어 쫓아내고 바로 욕실로 직행했던 건 다름아닌 그래서였다.


아이를 품에 안더니 갑자기 태도를 싹 바꿔버리는 내 행동에 잘 구경하다가 졸지에 방밖으로 쫓겨나게 된 이들이 뭐 그리 유난이냐고 불만을 표해왔지만 싸그리 무시했다.

사제는 다른 아이들보다 월등히 건강하다고 하긴 했지만, 그래도 인생에서 가장 뭔가에 취약할 때 아닌가.


조심해서 나쁠 건 없었다.


그런 식으로 크고 작은 부분에서 변화가 일어났다.


그또한 신기했다.

아직 자기 머리조차도 제대로 가누지 못한  작은 것이 주변에 이렇게까지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신기하더라.

아, 아이 이름은 린으로 하기로 했다.

이곳에서는 엄마 쪽의 성을 따르는 게 일반적이니 성까지 합치면 류린이 되겠지만, 이름이야 아무렴 어떤가.

건강하기만 하면 그만이지.

그리고 린은 시간이 지날수록 첫만남의 그 쪼글쪼글한 모습을 벗어던지고 우리가 흔히 아기라고 하면 떠올리곤 하는 예의 그 뽀송뽀송한 모습으로 환골탈태했다.

쪼글쪼글할 때도 아찔할 정도로 귀여웠던 것이 뽀송뽀송해지니 진짜 말이  될 정도로 귀엽더라.

그래서 밥을 먹을 때하고 잘때만 빼고 린을 품에서 놓아주지 않았다.


"그렇게 좋아?"

"귀엽잖아요. 혹시 리파는 우리 린이 안 귀여워요?"


"아니 나도 충분히 귀엽게 느껴지긴 한다만은···"

딸바보라고 해도 어쩔 수 없었다.


아니, 딸바보라고 부를테면 부르라지.


어쩌겠는가 그게 사실인 것을.

'이래서 딸이 최고라고 하는 거구만.'

린은 심지어 아기 치고 굉장히 순했다.

첫날 보여주었던 모습은 어디까지나 강렬한 인상을 남기기 위한 신고식이었다고 주장하기라도 하듯 잘 먹고, 잘 자고, 심지어는 잘 웃기까지 했다.


눈앞에 손가락을 가져다대고 좌우로 살짝 흔들어주기만 해도 안그래도 빵실빵실한 볼을 살짝 부풀리기까지 해가며 꺄르르 웃어대는데 그 모습에 함락당한 이가 한둘이 아니었다.


그 와중에 살짝 의외였던 건 다름아닌 바이올렛의 태도였다.


독점욕이 어마어마한 그녀이니만큼 린을 좋지 않게 생각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그녀는 먼저 린을 챙기는 모습을 보였다.

본인의 입장에서는 내키지 않을 제안까지 해가면서 말이다.

그게 지금 린이 리파가 아닌 바이올렛의 가슴에 매달려 있는 이유기도 했다.

아직 뱃속에 있는 아이도 먹지 못한 것을 다른 아이에게 먹이려니 뭔가 좀 싱숭생숭하기라도 했던 것일까.

한 차례 쓰게 웃은 그녀가 린에게 자신의 가슴을 물렸다.


맨날 빠는 게 아니라서 낯설게 느껴지기라도 했던 것일까.


"이잉···"

하는 소리를 내며 낯설음을 표하던 것도 잠시, 나도 한 번 맛본 적 있는 고소하고 진한 것이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기라도 시작한 모양인지 린이 언제 표정을 찡그리고 있었냐는 듯 바이올렛의 가슴을 쪽쪽 빨아대기 시작했다.

"으, 음···"


엄마꺼랑 모양이 좀 달라서 낯설텐데 어쩜 저리도 잘 빠는지.

아기도 몸에 좋은 건 아는 건가 싶더라.


그렇게 저어기 제국의 건국 신화에 등장하는 초대 황제처럼 인간의 몸으로 랑인족의 모유를 섭취한다는 위업을 성취해내는데 성공한 린은 정확히 그 때부터 무럭무럭 자라나기 시작했다.

'역시 초대황제가 인증한 아기 전용 보양식이구만···'

성능이 어찌나 확실한지 벌써부터 힘이 장난아니었다.


품에 안고 얼러주면 꺄르르 웃으면서 내 손가락을 두 개 합쳐놓은 것보다 작은  같은 손으로 내 뺨을 찰싹찰싹 두들겨대는데  손길이 제법 매서웠다.

일류 격투가가 될 자질이 엿보인다고 해야할까.

'나중에 호신술도 가르쳐야 되긴 하는데···'

그런 식으로 내가 린을 돌보는데 푹 빠져있는 동안 참으로 많은 것들이 바뀌고, 또 변화했다.


우선 배가 홀쪽해진 리파와는 달리 바이올렛과, 레이시아, 디아나의 배가 조금씩 부풀어오르기 시작했다.

그와 더불어 일전에 바이올렛이 언급했던 왕실 소유의 공유지에 나중에 우리가 들어가서  궁의 뼈대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물론, 기존에 존재하는 철도를 연장하기 위한 공사도 첫 삽을 푼  마찬가지였고.


결혼식은 궁이 완성되고 난 후에 그곳에서 올리기로 한 만큼 동시에 시작된  공사를 마찬가지로 동시에 끝내는 걸 목표로 하고 있다는데···


솔직히 가능할지는 잘 모르겠다.

그도 그럴 것이 둘다 워낙 대공사니까.


그렇게 린을 살뜰하게 돌보는 한편ㅡ

'이번에는 찾아낼 수 있었으면 좋겠는데···'


그동안 신경도 쓰지 않고 있었던 것에 대해 조사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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