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8화 〉히로인이 되기 전에..
대체 얼마나 흥분한 걸까.
목덜미에 와서 흩어지는 숨결이 어찌나 뜨거운지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그곳에 물방울이라도 맺힐 기세였다.
숨결이 그 정도인데 하물며 손은 어떻겠는가.
이 순간만을 기다려왔다는 것처럼 자연스레 내 엉덩이를 움켜쥔 바이올렛의 손은 아까전부터 쉬지 않고 내 엉덩이를 조물딱대고 있었다.
덕분에 기분이 굉장히 묘했다.
주무르기만 해봤지 주물러진 적은 거의 없었으니까.
하물며 그냥 주무르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살이 도톰하게 붙은 여자 엉덩이도 아니고 남자 엉덩이가 뭐가 그리 마음에 든 건지는 모르겠지만 바이올렛은 내 엉덩이를 숫제 떡 주무르듯 주물러대고 있었다.
그것도 언제 어디서 사람이 튀어나올지 알 수 없는 길 한복판에서 말이다.
"...진정 좀 하시죠."
이러다가 여기서 일을 치루게 될 것만 같아서 싹 정색을 하며 내 엉덩이를 움켜쥐고 있던 바이올렛의 손을 옆으로 밀어냈다.
밀어내는 척만 하고 끝나면 굉장히 민망할 뻔 했는데 참으로 다행히도 순순히 밀려나주더라.
"왜에 부끄러워? 누가 보기라도 할까봐?"
대신 이번에는 손대신 날 놀리는 듯한 목소리가 내쪽을 향해 뻗어왔다.
"난 여기서 해도 딱히 상관없는데."
어느새 내쪽으로 바짝 다가선 그녀가 내 귀에 대고 속살거렸다.
"좋아하잖아? 바깥에서 하는 거."
그냥 흘려넘기기에는 너무나도 달콤한 속삭임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레이시아의 성벽에 어울리면서 자연스럽게 깨닫게 되었으니까. 야외노출만이 줄 수 있는 각별한 쾌감을 말이다.
언제 어디서 사람이 튀어나올지 모른다는 스릴감과 해서는 안 되는 짓을 할 때만 느낄 수 있는 배덕감.
거기에 여체가 주는 쾌감까지.
그것들이 어우러져 탄생한 것은 이런저런 자극에 익숙해졌다 자부하던 내게도 굉장히 자극적으로 느껴졌었다.
그런데 그런 걸 이번에는 레이시아가 아니라 바이올렛과 함께 한다?
원래 남자는 항상 새로운 여성에게 매력을 느끼는 법.
그래서 그런 지 몰라도 자꾸만 입 안에 침이 고였다.
가만히 내버려두면 입밖으로 새어나가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차오르는 침을 일단 목구멍 안쪽으로 밀어넣었다.
그러면서 난 소리를 들은 것일까.
"안에 들어가기 전에 여기서 한 번 하고 갈까~? 마침 눈여겨봐둔 골목이 하나 있거든."
바이올렛이 혀로 입술을 핥으며 어딘가를 가리켰다.
그에 그녀의 손가락을 눈으로 쫓아보니 눈으로 들어온 건 건물 사이에 자리잡은 좁은 골목이었다.
만약 내가 여기서 고개를 끄덕인다면?
바이올렛은 당장 날 저곳으로 끌고가겠지.
지금 그녀는 그 정도로 흥분한 상태였다.
그렇기에 오히려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래도 바이올렛하고는 이번이 처음 아닌가.
나중이라면 모를까 지금 당장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흐음.. 그래 뭐, 그건 나중을 위한 특식으로 남겨두지 뭐."
어쩌면 수긍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바이올렛은 순순히 그런 내 뜻에 따라주었다.
"명심해.. 이번만 특별히 참아주는 거야?"
그 뒤에 정말 선심썼다는 것처럼 내 귀에 대고 그리 속삭이기는 했지만.
"그럼, 출발할까?"
이러고 있는 시간조차 아깝다는 듯 바이올렛이 곧바로 내 손을 잡아왔다.
대체 얼마나 흥분한 걸까.
마주잡은 손이 어마어마하게 뜨거웠다.
그렇게 그녀에게 끌려가다시피하며 걸음을 옮기려던 순간이었을 것이다.
"아, 잠깐만."
잠시 깜빡한 거라도 있는지 막 걸음을 내딛으려던 바이올렛이 다시금 내쪽으로 돌아섰다.
그러더니 허리춤으로 손을 뻗어 그 안에서 뭔가를 꺼내들었다.
그렇게 등장한 것은 그녀의 손바닥만한 크기의 가죽 주머니였다.
안에 뭔가가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빵빵하게 부풀어있는 주머니 안으로 손을 집어넣은 바이올렛이 그 안에 들어있던 것을 한웅큼 움켜쥐었다.
역시 그때 그 가루가 재등판하는 것일까.
곧 이어질 바이올렛의 행동을 대비해 눈을 꼬옥하고 감고 있던 순간이었을 것이다.
"하아.. 아쉬워 죽겠네.."
바로 옆에서 속삭여진 듯한 중얼거림과 함께 표식이 새겨진 부분 위로 뜨거운 숨결이 흩뿌려졌다.
그에 감고 있던 눈을 슬쩍 떠보니 바이올렛이 상체만 앞으로 기울인 채 내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고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너는 모를거야. 너한테서 얼마나 달콤한 냄새가 나는 지.."
그리 중얼거린 바이올렛이 슬쩍 혀를 내밀어 내 목덜미를 핥았다.
"윽.."
까슬까슬한 혀가 목덜미 옆쪽에 자리한 연한 살을 짓누르며 지나가는 느낌이 굉장히 오싹오싹했다.
소리를 내지 않고서는 배기기 힘들 정도로.
"그런데.. 내가 해준 거 다 없어졌네?"
시간이 지나서 지워진 건가?
라고 중얼거리던 바이올렛이 이내 입을 크게 벌렸다.
한껏 벌어진 입술 아래로 빼꼼하고 고개를 내민 송곳니가 날 향해 인사를 건네왔다.
그러더니..
"읏.."
그대로 내 목덜미를 베어무는게 아닌가.
혀로 열심히 핥아진 탓에 평소보다 민감해져있던 목덜미를 뾰족한 것이 꾸욱꾸욱하고 짓눌러왔다.
덕분에 확신할 수 있었다.
이번 걸로 키스마크와는 차원이 다른 표시가 내 몸에 새겨질 거라는 걸.
한 번으로는 만족할 생각따위 없는지 그 뒤로도 한참을 내 목덜미를 잘근잘근 깨물던 바이올렛이 이내 내게서 몸을 떨어뜨렸다.
어느새 번들번들하게 변해버린 그녀의 분홍빛 입술과 내 몸 사이로 투명한 실이 길게 늘어지다가 그대로 툭 끊어졌다.
전과는 비교를 불허할 정도로 또렷하게 남은 자신의 흔적이 꽤나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흐흣하고 작게 웃은 바이올렛이 뾰족한 이빨에 짓눌러 움푹 들어간 부분을 손가락을 이용해 천천히 훑었다.
"혹시 문신같은 거 할 생각 없어?"
그러더니 뜬금없이 그리 묻더라.
설마 지금 자기가 새겨놓은 이빨 자국대로 문신이라도 하라는 걸까.
"지워진다고 생각하니 아쉽네."
놀랍게도 그게 맞았다.
"평생 지워지지 않도록 문신이라도 새겨서 내꺼라고 남들한테 알려주고 싶은데.."
몸에 문신을 새기는 취미따위 내게는 없었다.
아니, 오히려 그런 행위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 편에 가까웠다.
흉터를 지우기 위한 목적으로 행해진 거라면 모를까 단순히 남들에게 과시하기 위해 몸에 문신을 한다?
내게는 그것만큼 이해하기 어려운 행위가 또 없었고,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라는 눈빛으로 바이올렛을 노려보았던 건 사실 그 탓이 컸다.
만약 약점같지도 않은 약점을 가지고 내게 그걸 강요한다면 그대로 뒤집어엎을 생각이었는데..
"아니다. 그건 그것대로 아까울 것 같네."
그런 내 내심을 짐작하기라도 한 것처럼 바이올렛이 곧바로 자신의 제안을 철회했다.
그러더니 하던 거나 마저 하자며 아까 전에 주머니 안으로 들어갔다 나왔던 손을 내 머리 위로 위치시켰다.
"기분 나쁘더라도 좀만 참아. 우리집 강아지가 코가 너무 좋아서 이런 식으로 미리 대비를 해두지 않으면 분명 냄새맡고 찾아와서 시끄럽게 앙앙 짖어댈 게 뻔하거든."
우리집 강아지라고 하면 분명 바이올라를 말하는 거겠지.
역시나 그녀의 후각을 경계하고 있었던 건 바이올렛또한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뭐라 답을 하면 좋을 지 알 수가 없어서 바이올렛의 말에 침묵으로 일관하니 그런 내 침묵을 긍정으로 받아들인 것인지 바이올렛이 꼬옥하고 움켜쥐고 있던 손을 살살살살 움직여대기 시작했다.
"눈은 감고."
그에 슬쩍 뜨고 있던 눈을 감으니 머리 위에서부터 가벼운 뭔가가 몸 위로 떨어져내리는 듯한 감각이 엄습해왔다.
꼭 마치 싸라기눈을 맞고 있는 듯한 그런 감촉이라고 해야할까.
한 번만으로는 바이올라의 레이더망에서 벗어나기 힘들 거라 보았는지 바이올렛은 그 뒤로도 같은 행동을 몇 번이나 반복했다.
덕분에 빵빵했던 주머니가 순식간에 홀쭉해졌다.
"자, 끝."
이윽고 울려퍼진 그 말에 감고 있던 눈을 뜬 순간, 바이올렛이 곧바로 내 손을 잡아당기며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녀가 잡아당기는대로 속절없이 끌려가니 이내 눈앞으로 등장한 건 꽤 눈에 익은 건물이었다.
정문과 쪽문.
바이올렛의 선택은 다름아닌 쪽문이었다.
미리 수하들을 부려 사람들을 치워놓기라도 한 것인지 그녀의 방 앞에 도달할 때까지 다른 누군가와 마주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쿵-!
바이올렛에게 이끌려 방 안으로 들어선 순간, 문 닫히는 소리가 났다.
그에 정신을 차리고 방 안의 풍경을 살펴보니 그녀가 얼마나 이 순간을 고대해왔는지 알 수 있었다.
그야말로 남녀가 관계를 맺을 때 필요할만한 물건들이 모조리 방 안에 구비되어 있었으니까.
욕망이 노골적으로 담겨있는 방 안의 모습을 보였다는 사실에 민망해할 법도 한데 방 안을 가로질러 침대로 향하는 바이올렛의 걸음걸이는 당당하기 그지없었다.
풀썩-
침대 앞에 도착해 그대로 그곳에 걸터앉은 그녀가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빛을 한채 날 향해 시선을 던져왔다.
"..이리와."
이윽고 짐승이 으르렁대는 듯한 목소리가 그녀의 분홍빛 입술을 뚫고 튀어나왔다.
파앙파앙하고 제 옆자리를 손으로 두들기는 소리는 덤이었다.
그에 바이올렛으로 하여금 입술을 한 차례 꾹 깨문 뒤 천천히 그녀를 향해 걸어갔다.
그렇게 그녀의 앞에 도달한 순간이었을 것이다.
"앗-"
홱하고 뻗어온 그녀의 손이 그대로 내 몸을 잡아당겼다.
그와 함께 몸을 덮쳐온 아찔한 느낌에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떠보니 어느새 내 허벅지 위에 올라타있는 바이올렛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내 얼굴 옆을 양손을 이용해 짚어서 혹시라도 내가 도망치지 못하도록 퇴로를 단단히 틀어막은 그녀가 시선을 굴려 내 몸을 위에서부터 아래로 쭉 훑었다.
"넌 꿈에도 모를 거야."
"..."
"내가 그동안 얼마나 참아왔는지."
그 말이 거짓이 아님을 증명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어느새 날 내려다보는 바이올렛의 호박빛 눈동자는 열기로 잠식되어 흐리멍텅하게 변해 있었다.
"사교도 놈들한테 고마워 해야겠네."
바이올렛의 중얼거림에 이를 악무는 척을 했다.
"덕분에 널 손에 넣을 수 있게 되었으니까."
이 상황이 너무나도 만족스럽다는 것처럼 그녀가 분홍빛 입술을 말아올리며 웃었다.
그러더니..
"키스."
다짜고짜 명령해왔다. 어느새 살짝 앞으로 내밀어진 입술은 덤이었다.
아무래도 바이올렛은 내가 직접 몸을 움직이는 모습이 보고 싶었던 모양이다.
초승달을 생각나게 하는 눈웃음을 눈가에 머금은 채 내가 움직이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그녀를 올려다보며 얼굴을 찌푸리고 있다가..
"후.."
한숨과 함께 천천히 상체를 들어올려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쪽-
그건 키스라기 보다는 차라리 뽀뽀에 가까운 행위였다.
당연히 만족스럽게 느껴질 리 없건만 바이올렛의 얼굴 위에는 어느새 만족스러움이 맴돌고 있었다.
내가 스스로 입을 맞춘 게 그리도 만족스러웠던 걸까.
허나 그것만으로는 살짝 부족한 듯 했다.
만족스러움과는 별개로 무언가에 대한 결핍과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욕망이 날 내려다보는 바이올렛의 눈 속에서 휘몰아치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 욕망은 그녀를 움직이게 했다.
"읍..!"
팔굽혀펴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대로 몸을 밑으로 내려 내 위에다가 제 몸을 포갠 그녀가 그대로 내 입술을 훔쳤다.
순식간에 입 안으로 밀고 들어온 혀가 거침없이 내 입 안을 누볐다.
츄웁, 츠웁하고 추잡스러운 소리를 내며 살짝 숨이 막혀올 때가지 내 입안을 탐닉하던 바이올렛이 이내 내게서 몸을 떨어뜨렸다.
날 밑에다가 깔아뭉개고 하는 키스가 퍽 마음에 들었나 보다.
어느새 얼굴이 새빨갛게 변한 그녀가 입을 살짝 벌린 채 연신 달콤한 숨을 토해냈다.
그 뒤로도 그녀는 몇 번 더 내게 입을 맞추었다.
그 모습이 내게는 꽤나 의외였다.
하도 급해보이길래 방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날 덮치고 볼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이왕 이렇게 된 거 하나하나 꼼꼼히 맛을 보면서 제대로 즐기기로 한 것일까.
그런 생각을 하기 무섭게 투두둑하고 천 같은 게 끊어지는 듯한 소리가 귓가로 울려퍼졌다.
그와 함께 가슴팍을 스치고 지나간 서늘한 공기에 시선을 밑으로 내려보니 바로 조금 전까지 내 몸을 덮고 있던 것들이 천쪼가리로 변한채 침대 위를 나뒹굴고 있는 광경을 목격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날 무장해제 시킨 바이올렛이 내 몸을 눈으로 훑으며 보란듯이 입맛을 다셨다.
그러더니..
"그럼.. 잘 먹을게?"
속삭이듯 내뱉은 말과 함께 그녀가 날 향해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