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4화 〉히로인이 되기 전에..
어떻게?
설마 봤나?
싱긋 웃으며 건네진 바이올렛의 말이 귓가로 울려퍼진 순간,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다름아닌 그것이었다.
허나 그 생각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생각해보니 그럴 리 없다는 걸 깨달아버렸으니까.
바이올렛이 진짜로 나와 레이시아의 산책 현장을 목격한 거라면?
내가 야외에서 하는 걸 좋아한다는 말도 안 되는 착각을 할 리 없으니까.
그때 누가봐도 즐기고 있었던 건 레이시아였으니 말이다.
그러니까 이건.. 아마 표식 때문일 거다.
서로 감각이 연결되어 있는 탓에 그런 말도 안 되는 착각을 하게 된 것이겠지.
내가 궁금한 건 하나다.
그 감각공유라는 것이 어떤 매커니즘으로 이루어지는가.
'일단 실시간은 아닌 것 같은데..'
현실적으로 실시간일 것 같지는 않았다.
감각공유가 실시간으로 이루어지게 되면 서로의 감각이 뒤섞여서 일상생활이 불가능해질테니까.
실시간 방식이 아니면 필요에 따라서 껐다 켰다 할 수 있는 온오프 방식인 걸까.
개인적으로는 그쪽에 조금 더 무게를 두고 있는 상태긴 했다.
그게 가장 현실적이면서도 실용적이었으니까.
그것도 아니라면 서로가 느끼는 감각이나 감정의 격렬함이 일정 수준 이상을 넘어가게 되면 그제서야 그것이 상대방에게 전달되는 방식일 수도 있고.
그쪽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 같긴 했다.
필요에 따라서 껐다 켰다 할 수 있는 방식이라면 하필이면 그 타이밍에 바이올렛이 나와 감각을 공유하길 택한 게 너무나도 공교로우니까.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느라고 아주 잠깐 침묵하고 있었더니 그런 내 침묵이 바이올렛에게는 정곡을 찔려 그런 것이라고 여겨졌던 모양이다.
"왜? 너무 정곡이었나?"
어떻게 할까.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그럴 생각은 없긴 하지만 만약 내가 여기서 진실을 밝힌다 한들 먹힐 것 같지는 않았다.
저렇게 내 약점을 손에 쥐었노라고 자신만만해하고 있는데 내가 여기서 무슨 말을 한들 그녀에게는 변명으로밖에는 들리질 않을테니까.
그래서 일단은 그녀의 장단대로 어울려줘 보기로 했다.
내가 무엇을 한들 통하지 않는 상황이라면 차라리 그 편이 나을 수도 있을 거라 봤으니까.
무슨 일이 있어도 들켜선 안 되는 치부를 들키기라도 한 것처럼 슬며시 아랫입술을 깨물며 시선을 내리깔았다.
누가봐도 굴복한 것이 분명한 내 모습이 그리도 만족스러웠던 것일까. 바이올렛 쪽에서 '흐흥..'하고 만족감이 듬뿍 담긴 콧소리가 흘러나왔다.
그것과는 별개로 내 얼굴을 제대로 들여다볼 수 없는 건 별로였던 모양이다.
단숨에 몸 바로 앞까지 파고들어온 바이올렛의 손이 그대로 내 턱을 들어올렸다. 그것도 모자라 순식간에 입술을 점령한 것이 그대로 내 아랫입술을 부드럽게 문질렀다.
"입술 함부로 깨물지마."
처음에는 날 걱정해서 그런 줄 알았다.
헌데 그게 아니더라.
"난 내껄 남이 함부로 망가뜨리는 꼴은 절대로 못 보거든."
내꺼라니?
황당함과 의아함을 반씩 섞어서 바이올렛을 바라보니 그녀가 입꼬리를 슥 말아올리며 보란듯이 미소를 지어보였다.
"모르겠어? 무슨 뜻인지? 그 정도로 눈치가 없어보이진 않았던 것 같은데."
지금 이 순간 바이올렛은 뻔뻔하게 느껴지기까지 할 정도로 당당하게 선언하고 있었다.
새롭게 확보한 내 약점을 이용해 날 자기 마음대로 다룰 것이라고 말이다.
협박당하는 입장이라면 치가 떨릴 수밖에 없는 뻔뻔함이었고, 그래서 그녀로 하여금 보란듯이 몸을 부르르 떨어보였다. 몸 안쪽에서부터 울컥하고 솟아오른 분함을 어쩌지 못한 사람처럼.
"큿.."
동시에 소리까지 내 주니 효과가 아주 좋았다.
내 입에서 분함수치 100퍼센트를 찍은 소리가 튀어나간 순간, 바이올렛의 얼굴 위에 눌어붙어 있던 미소가 한층 더 진득해졌으니까.
어찌나 진득한지 찐득찐득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왜? 혹시 싫어?"
싫다면 한 번 말해보라는 듯 어깨를 으쓱거리는 꼴이 뭐랄까 좀 우스웠다. 장단에 맞춰주고 있는 쪽이 어느 쪽인지도 모르고 기고만장한 꼴이라니.
하지만 여기서 웃어버리면 기껏 연기를 펼친 게 다 수포로 돌아갈 게 뻔했기에 그것을 입밖으로 흘리는 대신 다시 한 번 입술을 깨물어보였다.
그러자 그런 내 행동을 발견한 바이올렛이 한숨과 함께 다시금 내 입술을 손가락을 이용해 문질러댔다.
"입술 깨물지 말라니까?"
이미 그러지 말라고 말을 한 적이 있음에도 그것을 들은 척도 안 하는 내 태도가 살짝 짜증나기라도 했는지 손길이 전보다 한결 거칠었다.
"아무튼 뭐, 표정을 보니까 이해한 것 같네."
그것도 잠시, 언제 짜증을 냈었냐는 듯 다시금 얼굴 위로 미소를 띄워보인 그녀가 나로 하여금 보란듯이 제 입술을 톡톡 두들겨보였다.
알아들었으면 눈치껏 행동하라는 뜻이 담긴 몸짓이었고, 그에 아주 잠깐 입술을 깨물고 있다가 그녀에게 입을 맞추려 했다.
바로 그 순간, 날 놀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바이올렛이 몸을 뒤로 빼지만 않았다면 필시 그렇게 됐겠지.
'아니..'
키스하라고 시킬 때는 언제고 하려고 하니까 뒤로 빼는 건 대체 무슨 심보일까.
황당한 마음에 눈을 크게 뜨고 바이올렛을 바라보니 그녀가 말없이 미소를 지어보였다.
뭐 어쩌라는 걸까.
대충 그런 눈빛으로 바이올렛을 바라보니 눈빛만으로는 설명이 충분치 않았다고 판단했는지 그녀가 입을 열었다.
"그냥하는 건 영 무드가 없잖아?"
그래서?
"우선 상대방의 의견을 물어야하지 않을까? 무턱대고 하면 실례잖아?"
그러니까 이건.. 자기한테 키스해도 되겠냐고 부탁해보라는 뜻이겠지?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았다.
그래서 머리가 띵했다.
'진짜 본 건 아니겠지?'
뭐든 뿌린대로 거둔다고 하더니만 레이시아를 상대로 했던 것을 지금 이 순간 내가 그대로 당하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그럴 리 없다는 걸 이미 알고 있음에도 바이올렛이 그 현장을 목격한 건 아닐지 순간적으로 의심이 불쑥 치솟았다.
아무튼 그걸 바란다고 하니 해줘야겠지.
무슨 말을 하는 게 좋을까.
입밖으로 꺼내들 말을 고민하다가 그냥 담백하게 가기로 했다. 바이올렛이라면 왠지 그 편을 더 좋아할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기 때문이었다.
"..제가.. 바이올렛님께 키스.. 해도 될까요?"
주저주저하는 것처럼 말을 내뱉으면서 중간중간에 텀을 두었다.
지금 이 상황이 너무나도 분하지만 약점이 잡힌 탓에 어쩔 수 없이 따를 수밖에 없는 것처럼 보일 수 있도록.
"흐음, 어쩐다.. 호칭이 별로 마음에 안 들긴 하는데.."
그러면 뭐 자기나 당신이라고 불러주길 바라기라도 했던 걸까.
황당한 마음을 눈속에 그대로 담아 바이올렛을 바라보니 그런 내 시선을 받은 그녀가 쿡 소리를 내며 작게 웃었다. 그러더니..
"뭐, 특별히 허락해줄게."
뻔뻔하기 짝이 없는 표정을 한채 제 분홍빛 입술을 툭툭 두들겨대더라.
문제는 아까 열심히 내 목덜미를 물고 빨고 했던 탓에 그곳이 침으로 번들거리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렇게 번들거리는 곳이 손가락에 꾸욱하고 짓눌렸다가 원래 모습으로 돌아갈 때마다 츠적츠적하고 음탕하고 노골적인 소리가 방 안으로 울려퍼졌다.
되도록 뻔뻔한 모습으로 있으려고 해도 그 소리가 민망하게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던 걸까.
변함없는 표정과는 다르게 바이올렛의 귀는 하늘을 향해 쫑긋하고 치솟은채 세모 모양을 그리고 있었다.
얼굴이 근질근질한 느낌을 영 견디기 힘들었던 모양이다.
"자, 얼른."
재촉이 이어졌고, 그에 다시 한 번 입술을 살짝 깨물어보인 뒤 뒤로 물려놓았던 고개를 다시금 바이올렛을 향해 기울였다.
그렇게 그녀에게 입을 맞췄다.
평소처럼 입술이 닿자마자 혀부터 밀어놓고 보는 농밀한 키스가 아니라 협박때문에 정말 어쩔 수 없이 키스한 것처럼 입술만 가져다대는 느낌으로 그리했는데..
역시나 바이올렛의 성에는 차지 않았나 보다.
맞닿아있던 그녀의 입술이 묘한 움직임을 보이더니 그녀가 그대로 손을 움직여 내 머리를 단단히 고정시켰다.
그렇게 혹시라도 내가 도망치지 못하도록 퇴로부터 봉쇄한 바이올렛이 그대로 입을 벌려 내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윽.."
계속 다물고 있고자 한다면 그러지 못할 것도 없긴 했지만, 뾰족한 그녀의 송곳니가 입술을 파고들며 올라오는 고통을 참지 못한 것처럼 고통어린 신음성과 함께 슬며시 입술을 벌려보였다.
그 찰나의 틈을 바이올렛은 놓치지 않았다.
먹잇감을 향해 짓쳐드는 늑대마냥 벌어져있는 내 입술 사이로 쑤욱하고 파고들어온 그녀의 혀가 그대로 내 입안을 헤집어대기 시작했다.
당하는 입장에서 이런 말 하긴 좀 그렇지만 꺼끌꺼끌한 것이 입 안을 마구잡이로 헤집어대는 느낌이 상당히 좋았다.
근질거리는 곳을 시원하게 긁어주는 느낌이라고 해야할까.
그 느낌이 기꺼워서 몸을 살짝 떠니 '후훙.'하고 기꺼워하는 기색이 듬뿍 담긴 콧소리가 바이올렛으로부터 흘러나왔다.
허나 그건 말 그대로 시작에 불과했다.
내 몸 상태가 성치 않다는 이유로 그동안 자기가 참아온 게 얼만데 고작 키스만으로 만족이 될 것 같냐고 항의라도 하는 것처럼 그녀가 내 물건을 움켜쥐고 있던 손을 움직여대기 시작했다.
서걱-
침과 침, 혀와 혀과 뒤섞이며 나는 질척질척한 소리들 사이로 천같은 것이 잘려나가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그와 함께 찾아든 것은 물건을 휘감는 서늘한 공기였다.
덕분에 깨달았다.
바지로 덮여있던 내 물건이 무장해제 상태가 되었다는 걸.
대체 어떻게 자른 걸까.
의아함과 섬찟함을 동시에 느끼고 있으려니 서늘한 공기에 휘감겨있던 물건을 따뜻하고 보드라운 손이 감싸왔다.
그걸 그대로 그냥 흔들자니 좀 뻑뻑할 것 같았던 걸까.
정신없이 내 입 안을 탐닉하던 바이올렛이 내게서 입술을 떨어뜨렸다.
그렇게 그녀와 내 입술 사이로 은빛의 실이 길게 늘어지가다 툭 끊어졌다.
"하아.. 후우.."
키스에 푹 빠져 잠시 소홀했던 숨쉬기에 열중하던 바이올렛이 묘한 미소를 머금은 채 날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이미 딱딱하게 선 내 물건을 손으로 잡고 살짝 흔들며..
"벌써 딱딱하네?"
천천히 손장난을 쳐대기 시작했다.
손가락을 길게 세운 바이올렛이 그것을 이용해 내 물건을 천천히 훑어내리기 시작했다.
살짝 뾰족한 손톱이 물건을 따라 내려가는 느낌이 참으로 기묘했다. 아픈 듯 하면서도 오싹오싹하달까.
"읏.."
덕분에 반응을 안 할래야 안 할 수가 없었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내 입술 사이에서 새어나온 소리와 함께 물건이 앞뒤로 꺼떡거렸다.
어느새 물건 끄트머리에는 투명한 액체가 방울진 채 맺혀있었다.
"하여간에 안 그런척 하면서 음탕하기는.."
여자한테 저런 소리를 들으니 뭐랄까..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남녀의 정조관이 역전된 세계임을 머리로 분명히 이해하고 있음에도 그 부분만큼은 어쩔 수가 없더라.
"이대로 잡고 흔들어줬으면 좋겠지? 응? 기분 좋게 퓻퓻하고 싸지르고 싶지?"
어느새 물건을 휘감은 손이 살짝 힘을 품은 채 꾸욱하고 압박감을 전해왔다.
딱딱하게 선 물건 위로 그런 식으로 압박이 전해지니 적지 않은 쾌감이 몸을 타고 올라오며 물건이 제멋대로 움찔움찔거렸다.
그 모습이 귀여워 보이기라도 했던 것일까.
콧소리를 내며 작게 웃은 바이올렛이 다시 한 번 내 물건을 위아래로 흔들어댔다. 무슨 시식이라도 시켜주는 것처럼 딱 한 번으로 끝나긴 했지만.
설마 또 부탁해보라는 걸까.
어느새 얼굴 위에 걸려있는 미소를 보면 왠지 그런 느낌이긴 했다.
"변태같은 새끼.. 누가 볼지도 모르는데 정신없이 허리나 흔들어대고.."
자기는 날 걱정해서 참았는데 정작 내가 바깥에서 그런 짓이나 하고 돌아다녔다고 생각하니 화를 참을 수가 없는 모양이다.
말을 하는 바이올렛의 표정은 사납기 그지없었다.
그래서 더 꼴렸고.
"응? 싸고 싶냐니까?"
얼른 애원해봐.
그녀가 날 향해 속삭이듯 말했다.
그에 내가 아주 잠깐 망설이는 척을 하다가 막 입을 열려던 순간이었을 것이다.
똑똑-
"그.. 들어가도 될까요?"
노크 소리와 함께 최근 들어 퍽 익숙해진 목소리가 문 너머에서부터 들려왔다.
말할 것도 없이 성녀의 것이었다.
바이올렛으로서는 그야말로 딱 좋은 상황에서 훼방이 들어온 상황.
당연히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다.
그래서일까.
내 물건을 움켜쥐고 있던 바이올렛의 손에 힘이 바짝 들어가며..
"쯧..!"
혀 차는 소리와 함께 그녀의 얼굴이 짜증으로 구깃구깃하게 구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