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3화 〉히로인이 되기 전에..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하지.
그 말이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메아리쳤다.
동시에 위기임을 직감한 뇌가 사이렌을 울리며 이 상황을 벗어날 수 있는 변명거리를 쥐어짜내기 위한 작업에 돌입했다.
허나 그렇게 시작된 작업은 채 완료되지 못하고 중간에 끝나버리고 말았다.
내 머리가 굴러가며 나는 소리가 바이올렛에게까지 들리기라도 했는지 그녀가 허튼 생각하지 말라는 것처럼 인질을 잡았으니까.
"윽.."
대체 언제 거기까지 움직인 것인지 소리소문 없이 다리를 타고 올라간 바이올렛의 손이 내 물건을 움켜쥐었다.
그건 애무보다는 차라리 위협에 가까운 행위였다.
그럼에도 그녀의 손길에 반응할 수밖에 없었던 건 남자라는 생물의 슬픈 숙명 때문이었고.
이 세계 여자들이 음담패설을 할 때 주로 쓰는 말 중에 하나가 아무리 기센 남자라도 일단 자지를 잡아버리면 꼼짝못한다는 말인데 지금 내 상황이 딱 그랬다.
물건이 바이올렛의 손에 잡힌 순간 반항은 커녕 다른 생각조차 할 수가 없었으니까.
그야말로 모든 감각이 일제히 물건 쪽으로 옮겨간 것만 같은 그런 느낌이라고 해야할까.
일반적으로 느낄 수 있는 감각은 분명 아니었다.
그렇다는 건 눈앞의 여자가 무언가 또 술수를 부렸다는 뜻이겠지.
꽈악하고 잡힌 물건을 타고 올라오는 쾌감에 몸이 조금씩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내 의지와는 하등 상관없이 벌어진 일에 슬그머니 입술을 깨무니 그 모습이 보기 좋았던 것일까. 바이올렛이 살짝씩 손을 위아래로 흔들어댔다.
스윽-
스으윽-
"응? 내가 물어봤잖아?"
대체 무슨 심리로 저런 질문을 던지는 걸까.
"기분 좋았냐고."
그렇지 않았다고 답을 하자니 어딜 감히 거짓말이냐고 한 소리 들을 것 같았고, 그렇다고 사실대로 기분 좋았다고 말을 하자니 무슨 일이 벌어질지 감히 상상조차 하기 두려웠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지금 내 물건을 움켜쥐고 있는 바이올렛의 손에는 힘이 어마어마하게 들어가 있었으니까.
물건에서 느껴지는 압박감이 하나의 목소리로 변해서 내게 속삭이는 듯 했다.
물건이 뚝 하고 부러지는 꼴을 보고 싶지 않다면 처신 잘하라고 말이다.
해서 무어라고 답을 하는 대신 침묵을 택했다.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간다는 말도 있으니까.
다행히도 완전히 틀린 선택은 아닌 듯 했다.
"그래서 상대는 누굴까?"
피식하고 웃은 바이올렛이 딱 이번만 봐주겠다는 것처럼 다음 질문을 입에 담았으니까.
상대가 누구냐.
그또한 쉬이 답할 수 없는 질문인 건 매한가지였다.
"그 금발 기사년인가? 이름이.. 디아나였나? 아니면 그.. 빨간 머리려나?"
저런 식으로 둘 중에 하나일 거라고 확신하듯 말을 하고 있는데 거기서 후보에도 들어가지 못한 레이시아의 이름을 입에 담는다?
단순히 숫자로만 따지면 둘에서 셋이 되는 것 뿐이지만 그건 숫자만 봤을 때고..
'분명 가만히 있지 않을 거란 말이지.'
디아나와 앨리스라는 두 명의 연적이 버젓이 내 옆에 자리하고 있음에도 바이올렛이 여태껏 여유로운 태도를 보일 수 있었던 건 그 둘이 아무리 난리를 피운들 결국 최종적으로 날 손에 넣는 건 자신이 될 거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외모나 능력같은 거야 그렇다 치더라도 신분 면에서 둘은 바이올렛의 상대가 될 수 없었으니까.
그렇기에 바이올렛이 경계하는 상대는 그녀의 동생이자 그녀와 같은 황녀라는 신분을 지니고 있는 바이올라가 유일했다.
헌데 여기서 갑자기 레이시아가 등판한다?
그것도 단순히 썸 타는 수준이 아니라 시도때도 없이 몸까지 섞어댈 정도로 매우 긴밀한 사이로?
'나같아도 가만히 안 있겠는데..'
생각이 딱 거기까지 다다른 순간 깨달았다. 필요 이상으로 침묵이 길어졌다는 걸.
그리고 그 기나긴 침묵 속에서 바이올렛은 한 가지 결론을 도출해냈다.
"둘 다 아닌가보네?"
그건 바로 앞서 댄 두 명 말고도 제 3의 연적이 존재할 가능성이었고, 그 가능성을 포착하는데 성공한 그녀는 사냥감의 흔적을 찾아내는데 성공한 사냥꾼마냥 순식간에 후보군을 좁히기 시작했다.
"그럼 그때 그 자리에 있었던 이들 중에 한 명이라는 소린데.."
그게 누굴까.
바이올렛이 이쪽으로 하여금 들으라는 듯이 그 말을 중얼거렸다.
"대체 누구 보지길래 그토록 기분 좋았던 걸까? 정신 못 차리고 이걸 놀려댈 정도로?"
꾸우우욱-
물건을 움켜쥔 바이올렛의 손에 조금씩 힘이 실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몸을 움직여 완전히 침대 위로 올라온 그녀가 담요로 덮여있던 내 허벅지 위로 올라탔다.
꾸욱하고 몸에 착 달라붙는 흰색의 바지에 감싸인 탱탱한 엉덩이가 허벅지를 사정없이 짓눌러왔다.
도망쳐봐야 아무 소용없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도망따위 진작에 포기한지 오래지만 이런 식으로 그 가능성이 완전히 봉쇄되어 버리니 뭔가 숨이 턱 하고 막혔다.
그렇게 내 몸 위로 올라탄 그녀가 상체를 꼿꼿하게 세운 채 예의 그 호박빛 눈동자로 날 내려다봤다.
기분이 요상했다.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저 묘한 빛을 흩뿌리는 눈동자 속으로 그대로 빨려들어갈 것만 같다고 해야할까.
해서 눈을 돌리려 하니 그건 용납할 수 없다는 것처럼 바이올렛이 내 턱을 손으로 움켜쥐어 그 자리에 고정시켰다.
"..이러지 마시죠."
"겁 먹었어?"
"제가 언제까지 가만히 당하고만 있을 거라고 생각하시는.."
"가만히 안 있으면?"
바이올렛의 눈이 초승달 모양을 그리며 사르르 접혔다. 그러면서 생겨난 아주 자그마한 틈 사이로 얼핏 보인 샛노란 눈동자 속에는 묘한 빛이 일렁거리고 있었다.
광기라고 해야할까.
흔히 달에는 마력이 있다고들 하는데 그건 달을 닮은 바이올렛의 눈동자또한 마찬가지였다.
거미줄에 걸린 나비의 심정이 이러할까.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내 몸을 칭칭 휘감는 듯한 느낌에 그녀에게 짓눌린 채 옴짝달싹도 할 수가 없었다.
"응? 가만히 안 있으면 어떻게 할 거냐니까?"
다시 한 번 눈꼬리를 접으며 살살 녹는 미소를 지어보이는 모습이 그리도 살벌할 수가 없었다.
마치 거대한 늑대가 내 앞에서 이빨을 드러내보인 채 으르렁대고 있는 걸 마주하고 있는 듯한 그런 느낌이라고 해야할까?
"소리라도 지르려고?"
"..그럴 수도 있죠."
"그래? 그럼 한 번 해봐."
진심으로 한 소리일까.
놀랍게도 그런 것 같았다. 적어도 지금 그녀의 표정만 보면 그랬다.
"제가 못 할 줄 알고 그러신 거라면.."
착각하고 있는 거라고 말을 해주려고 했는데 그녀가 한 발 더 빨랐다.
"그렇게 생각 안 하는데? 소리 지르는 게 뭐 그리 어렵다고."
바이올렛은 말만으로 그치지 않았다. 아까 전부터 내 턱을 제쪽으로 고정하고 있던 손을 움직여 엄지로 내 아랫입술을 꾹하고 누른 그녀가 그것을 이용해 내 입을 손수 벌려주었다.
"자 이제 배에 힘 줘서 내뱉기만 하면 되겠네?"
참 쉽지 않냐고 생글생글 웃는 모양새가 날 혼란 속으로 밀어넣었다.
이래뵈도 난 위기에 빠질 뻔한 교국을 위기에서 건져낸 교국의 은인이자 바이올라의 목숨을 구해낸 은인이다.
헌데 내가 여기서 소리를 질러서 누군가 이 현장을 목격하게 된다면?
아무리 바이올렛이라도 쉽게 넘어갈 수는 없을 거다.
그 사실을 모르지 않을텐데도 날 말리기는 커녕 이토록 부추기는 이유가 뭘까.
여전히 날 향해 미소를 지어보이고 있는 그녀에게서 위기감같은 건 찾아볼 수 없었다.
뭔가 믿는 구석이라도 있는 사람처럼.
그게 뭘까.
대체 손에 무엇을 쥐고 있길래 저리도 자신만만한 것일까.
눈동자가 팽팽 돌아가는 걸 느끼고 있던 순간이었을 것이다.
"응? 안 질러?"
그녀가 고개를 갸웃하며 날 향해 물었다. 그러더니..
"아쉽네."
그리 말하며 입맛을 쩝하고 다시는 게 아닌가?
그 광경을 목도한 순간 목덜미에 송골송골 맺혀있던 것이 등골을 따라 쭈욱하고 미끄러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방금 그게 그녀가 손수 준비한 함정이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질러줬으면 참 좋았을텐데-"
그리 말하며 내 턱을 움켜쥐고 있던 손을 푼 바이올렛이 그것을 이용해 내 볼을 살살 쓰다듬었다. 그런 그녀의 얼굴에는 진심으로 안타까워하는 기색이 서려있었다.
대체 뭐가..
"그러면 그 소리를 듣고 달려올 모두에게 알려주려고 했거든."
살살살살 볼을 쓰다듬던 바이올렛의 손이 슬금슬금 밑으로 향했다.
그렇게 밑으로 내려간 그녀의 손에 그대로 내 목을 움켜쥐었다.
조르기라도 하려는 것일까.
곧바로 손아귀에 힘이 들어가길래 그런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라.
츠업-
날 향해 고개를 기울인 그녀가 혀를 내밀어 손으로 채 다 감싸지 못한 부분을 느릿하게 핥았다.
"읏.."
촉촉함과 꺼끌꺼끌함, 어찌보면 서로 상반된 속성을 지닌 것이 목덜미의 연한 부분을 훑으며 지나가는 느낌은 참으로 기묘했다.
그래서 같은 걸 몇 번을 겪더라도 적응이 되지 않을 것 같았다.
그 정도로 기묘했다.
나도 모르게 소리를 내지 않고서는 배기기 힘들 정도로.
그런 내 반응이 바이올렛에게는 오히려 기꺼운 것이었던 모양이다.
마치 맛이라도 보는 것처럼 그녀가 쉬지 않고 내 목덜미를 핥아댔다.
핥다보니 핥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게 느껴지기라도 했던 걸까.
"하아.. 하아.."
잠시 내게서 얼굴을 떨어뜨리고는 보기 좋게 부풀어오른 가슴을 들썩이며 가쁘게 숨을 몰아쉬던 바이올렛이 다시금 내 목덜미를 탐하기 시작했다.
방금 전까지의 느낌이 핥짝핥짝이었다면 재개된 것은 쪼옥쪼옥에 가까웠다.
그 정도로 그녀는 내 목덜미에 쉬지 않고 키스를 퍼부어댔다.
아니, 그건 키스라 할 수 없었다.
키스라기 보다는 내 목덜미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는데 치중되어 있는 행위가 몇 번이고 반복되었다.
근처에 거울이 없어서 당장 확인해볼 수는 없었지만 아마 모르긴 몰라도 지금쯤 내 목덜미는 그녀가 새겨놓은 키스마크로 울긋불긋하게 물들어 있겠지.
"아쉬워.."
그 중얼거림이 들려온 건 그 와중이었다.
그것을 들은 순간, 내심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대체 뭐가 그리 아쉽다는 건지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으니까.
설마 여기서 본방까지 치룰 생각인 걸까.
방금과 같은 모습을 생각하면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네가 소리를 질렀다면 널 온전히 손에 넣을 수 있었을텐데.."
아무리 그래도 거기까진 아니었던 모양이다.
이해할 수 없는 중얼거림과 함께 그녀가 내 목덜미에 대고 크게 숨을 들이켰다.
그건 내 냄새를 맡는 느낌이라기보단 차라리 내 목덜미에 자신의 냄새가 제대로 묻었는지 확인하는 작업에 가까웠다.
어떻게 좀 만족할만한 결과가 나왔던 것일까.
바이올렛이 흐릿한 미소를 얼굴 위에 머금은채 내게서 몸을 떨어뜨렸다.
"궁금하지 않아? 내가 뭘 하려고 했는지?"
당연히 궁금했다.
대체 무슨 짓을 할 생각이었길래 방금과 같은 말을 지껄인 건지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으니까.
정상인에게 있어서 광인의 사고방식이 이해가 불가능 무언가인 것처럼 내게는 바이올렛이 딱 그러했다.
문제는 궁금하다고 여기서 고개를 끄덕여도 되냐는 것인데..
그러한 망설임이 내 얼굴 위로 고스란히 묻어나오기라도 했던 모양이다.
내가 커다란 살점이 붙어있는 뼈다귀를 앞에 놓고 주인의 눈치를 보는 강아지처럼 보이기라도 했는지 귀엽다는 듯 쿡쿡하고 작게 웃은 바이올렛이 손가락을 이용해 내 볼을 쿡하고 찔렀다.
"소리를 질러서 누가 찾아오면 알려줄 생각이었거든."
알려주다니?
말만 들어보면 내 약점이라도 손에 쥐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것도 그냥 약점이 아니라 결코 남에게 알려져선 안 되는 치명적인 것 말이다.
레이시아의 경우로 비유하자면 노출벽과 같은 경우랄까.
'나한테..'
그런 게 있었던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떠오르는 게 없었다.
그렇기에 헛웃음이 절로 나왔고.
본인도 모르는 치명적인 약점이라니.
그런 게 과연 존재하기는 할련지 모르겠다.
그래서 고개를 갸웃해보였던 것인데 바이올렛에게는 그런 내 행동이 다 알면서 시치미 떼는 것으로 비춰졌던 모양이다.
시치미를 떼는 내 모습이 같잖다는 듯 픽하고 가볍게 웃어보인 그녀가 스스로의 타액으로 번들거리는 분홍빛 입술을 보란듯이 끌어올렸다.
"네가 야외에서 야한 짓을 좋아하는 발정난 숫캐라고 말이야."
네?
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