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로인이 되기 전에 (287)화 (286/366)



〈 287화 〉히로인이 되기 전에..

가슴 안쪽에서부터 뭔가가 쿵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동시에 턱에 제멋대로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당장이라도 입을 열어 외치고 싶었다.

네가 뭔데.


네가 대체 뭔데 이안을 그토록 친근하게 부르는 것이냐고.

묻고 따지고 싶었다.

허나 그러지 않았다.


그리 해버리면 기껏 훈훈하게 마무리 되어가는 이 자리의 분위기가 어찌될지야 뻔했으니까.


그래서 입술을 악물었다.

입술을 악문 채 이어질 성녀의 대답을 기다렸다. 사실 궁금한 건 그녀또한 마찬가지였으니까.


이안이 디아나를 비롯한 세 명에게 실려왔을때 그의 몰골은 말 그대로 숨이 붙어있는 게 신기한 수준이었다.

온몸은 몸 곳곳의 상처에서 흘러나온 피들로 빨갛지 않은 곳이 없었고, 왼팔에는 무언가에 관통당한 듯한 구멍이 뻥 뚫려 있었다.

 구멍이 작았기에 망정이지 조금만 더 컸다면 운반하는 도중에 끊어지고도 남았을 것이다.

그뿐만이랴?

갈비뼈또한 몇 대가 부러져있었다.

그게 금방이라도 폐를 찌르고 들어갈 것처럼 위태로운 상황을 연출하고 있었고.

뼈가 부러진 상태에서 무리한 움직임을 감행한 결과물이라나.

허나 그 모든 것들을 합쳐도 이안의 몸 전체를 점령한 독기가 해놓은 것에는 미치지 못했다.

나중에 그게 중화제를 중복 복용한 여파라는 걸 카트린느로부터 듣게 되었을 때는 정말..


미치는 줄 알았다.

그깟 교류전이 뭐라고 이안이 그 위험한 걸 스스로 들이마셨어야 했나 싶었으니까.

한편으로는 질투가 치밀기도 했다.

위험한 걸 알면서도 그런 일을 벌였다는  그만큼 바이올라라는 년을 지키고 싶었다는 뜻일테니까.


설령 그로인해 목숨을 잃게 되더라도 상관없다고 말하는 듯한 상황에 이가 절로 갈렸지만 참았다.


언제 숨이 끊어질지 모르는 사람 앞에서 쓸데없이 질투심이나 불태우고 있을 수는 없었으니까.

그때부터 사방으로 뛰어다녔다.

어차피 치료 상황에서 그녀가   있는 건 없었으니까.

마침 성녀가 이안의 치료를 자청하고 나선 덕분에 걱정은 되어도 안심하고 맡길  있었다. 다들 뒷수습 문제로 정신없이 바쁜 틈을 타 교국 측과 모종의 합의를 끝마친 진도 거기에 한손 거들겠다 했고.


그렇기에 무사히 치료가 끝났을 때를 대비하고 움직였다.

이안을 진단한 성녀가 말하기를 이안의 몸은 그릇이 깨지다 못해 산산조각난 상태라 그랬으니까.

교국의 은인이라 할 수 있는만큼 자신이 할  있는만큼 최대한 이어붙여 보겠다고 하기는 했지만..

-산산조각난 꽃병의 조각을 모두 모아 다시 이어붙인다고 해도.. 어딘가에는 구멍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꽃병이야 새걸로 사면 그만이지만.. 몸은 그렇지 않으니까요. 뿐만아니라 지금은 몸이 많이 망가진 상태라 자그마한 구멍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치명적인 상황이고요.

그렇기에 정말 최상의 최상의 결과가 나온다 해도 마음의 준비가 필요할 거라는 말을 그냥 흘려넘길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 구멍이라는  틀어막아줄  있을만한 수단을 찾기 위해 사방을 수소문했다.

물론, 카트린느도 적극 협조했다.


이안이 그리된  꼭 그녀 탓이라고는 할  없었지만 그렇다고 아니라고 하기도 힘들었기에 죄책감에 빠진 그녀를 위로할 수가 없었다. 그럴만한 정신도 없었고.


그렇게 최신 논문부터 시작해서 고대라는 단어가 앞에 붙을 정도로 오래된 서적까지 탐독해봤지만 걸려드는 게 없었다.

바이올렛으로부터 초대장이 도착한 건 그 와중이었고.

그렇기에 더욱 이안의 소식이 알고 싶었다.

어찌보면 이안을 그런 상황으로 밀어넣은게 자신인 것만 같아서 차마 그의 얼굴을 보러갈 엄두가 나질 않았으니까.


해서 같잖은 질투심같은  집어치우고 성녀를 향해 주의를 기울였다.


검소함을 강조하듯 딱봐도 꺼끌꺼끌해보이는 회색의 천으로 턱과 입주변을 제외한 다른 모든 곳을 감싼 그녀는 질문을 받았음에도 말이 없었다.


속으로 할 말을 고르고 있기라도  것일까.

침묵이 길어질수록 초조함이 차올랐다. 순식간에 끝까지 차오른 그것의 압박감을 배겨내지 못하고 입을 열어 뭐라도 말좀 해보라고 말하려던 찰나였을 것이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일자를 그리고 있던 연한 색의 입술이 느릿하게 열렸다.


"낙관적이지는 않습니다."

자신도 치료에 힘쓰고 있기는 하지만 시시각각 몸에서 새어나가는 생명력을 벌충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빠듯한 상황이라는 말에 슬며시 입술을 깨물었다.

"그래도 고무적인 점이 하나 있다면.. 오늘 아침을 기점으로 외상만큼은 완벽하게 치료가 끝났다는 겁니다."


"그렇군요.."


그 말 덕분에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현재 이안의 몸상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신성력은 기본적으로 인간에게 이로운 기운이기에 상처에 신성력을 쐬게 되면 어지간한 상처가 아니고서는 금방 낫는 편이다.

하물며 성녀 정도 되는 최고위 성직자가 뿜어내는 신성력이라면 말할 것도 없었고.


헌데 그런 걸 듬뿍 쬐었음에도 불구하고 외상을 치료하는데만 일주일이라니.

그만큼 다른 곳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많다는 소리 아닌가.

"혹시 원기를 보충하는데 도움이 되는 약재가 있으면 치료에 도움이 될까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이런 경우는 저도 처음 접하는 것인지라 무어라고 확답을 드리기 어렵습니다."


그래도 자신도 있고, 또 성역 자체가 가진 이로운 기운도 있고 하니 여기서 더 나빠지지는 않을 거라고 이쪽을 안심시키려는 듯한 발언이 따라붙었지만 애석하게도 하나도 안심이 되지 않았다.

그 날의 대화는 거기까지였다.


이 이상 자리를 비워선 안 된다며 성녀가 그대로 자리를 떠나 자신의 거처로 돌아갔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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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누군가 사교도들을 상대로 대대적인 복수를 획책하고 있을 때, 누군가는 그야말로 문이 닳도록 이안이 위치해있는 성역을 드나들고 있었다.

 누군가란 다름아닌 디아나였다.

교국 내에서 성역이라 함은 기본적으로 여신의 대행자라 할 수 있는 성녀가 평소 기거하는 곳으로 본디 몇몇 이들에게만 출입이 허락된 사실상 불가침의 구역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런 곳을 디아나가 자유자재로 드나들 수 있는 것은 의식을 잃은 이안이 위치해있는 곳이 그 성역 안이라는 점과 그녀와 이안 간의 관계가 한몫했다.


"오늘도 오셨네요?"

성역 출입이 허가된  안 되는 인물 중 하나이자  한 명뿐인 성녀 직속 시녀가 미소와 함께 건넨 인사에 디아나가 입꼬리를 살짝 끌어올리며 웃었다.


그렇게 표정은 웃고 있었지만 마음은 전혀 그렇지 못했다.


성녀를 위해 성역을 관리를 담당하는 시녀의 품에 피로 빨갛게 물든 천들이 가득 안겨있었으니까.

딱봐도 열 장은 가뿐하게 넘을 것 같은 그 천들을 적시고 있는 새빨간 액체들이 누구로부터 비롯되었는지야 뻔했다.


저 정도로 피를 흘리려면 대체 얼마나 아파야하는 걸까.

기본적으로 강골을 타고난 덕분에 아파본 적또한 거의 없는 그녀로서는 감히 상상조차  수 없었다.


손에 들린 걸 빤히 바라보는 자신의 시선을 알아차린 것일까.


"앗.."


시녀가 애매하게 웃으며 손에 든 것을 황급히  뒤로 숨겼다.

"오늘도 이안 님을 보러 오신거죠?"

"..네."


"잠시만요. 이것만 금방 가져다놓고 안내해드릴게요."

주위를 지켜주는 담벽같은 것도 존재하지 않는 성역이 불가침의 영역으로 남을 수 있는 건 성역이라는 이름에 걸맞는 신비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성역 내에서 안내자 없이 혼자서 움직이게 되면 아차하는 사이에 성역밖으로 튕겨나가기 일쑤였고.


사실 전혀 괜찮지 않았지만, 이쪽은 괜찮으니 천천히 하라는 뜻으로 고개를 끄덕여보이니 허공에 녹아들듯 그대로 자취를 감추었던 시녀이자 성역지키미가 빈손이 된채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그럼, 가실까요."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녀가 안내하는대로 걸음을 옮기니 눈앞에 자리하고 있던 초원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자그마한 신전 하나가 눈앞으로 나타났다.

이안은 그곳에 있었다.


신전 중에서도 최심부에 위치한 성녀의 방.

이안의 방은 그 옆이었다.

몸 상태가 워낙 불안정하기에 혹시모를 상황에 바로바로 대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배치라는  이미 들어서 알고 있지만  방이 워낙  붙어있다보니 볼 때마다 신경이 쓰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또..'

그리고 그럴 때마다 양심의 가책이라는 것이 가슴을 콕콕 찔러왔다.

이안은 그날부터 단 한순간도 의식을 찾지 못하고 있는데 자신은 쓸데없이 질투나 하고 있다는 게 참.. 한심하게 느껴졌다.


그런 자신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천진난만하기 그지없는 얼굴로 이안의 방 앞에 도달한 시녀가 조심스레 문을 두들겼다.


그녀는 매번 저러곤 했다.


대답이 들려올리 없다는 것쯤이야 알고 있을텐데..

순간 머릿속으로 떠오른 생각에 흠칫하며 표정을 굳히고 있는 사이, 일종의 의식같은 행위를 끝마친 시녀가 조심스레 문을 열어젖혔다.

그리하여 마침내 마주하게된 이안은 침대 위에 조용하게 몸을 뉘이고 있었다.

온몸에 붕대를 칭칭 휘감은 채로.

활짝 열린 창문을 통해 쏟아지는 햇빛을 맞으며 고요하게 누워있는 이안의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왠지 모르게 울컥하고 눈물이 나오려 했다.

저 모습을 보는 게 처음이 아님에도 어쩜 매번 이랬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흰것들에 감싸인채 누워있는 이안의 모습은 왠지 모르게 그대로 어딘가로 사라져버려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을 주었으니까.


"그.. 괜찮으신가요?"

들어가라고 문을 열어줬더니 들어가지는 않고 문앞에서 옴짝달싹도 안 하는 자신이 걱정되기라도 한 것일까.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던져진 물음에 손을 들어올려 눈가를 훔쳤다.


 건드리면  안에 가득 찬게 콸콸 쏟아질 것만 같았지만 그렇다고 울 생각은 없었다.


이안에게는 웃는 모습만 보여주고 싶었으니까.


물론, 그런다고 이안이 그 모습을 볼 수 없다는 사실쯤이야 당연히 알고 있다.


하지만 혹시 또 모르는 일 아니겠는가.

밝은 목소리로 말을 걸다보면 1초라도 더 빨리 정신을 차릴지도 모르지.


지금 바라는  딱 그게 전부였다.

이안이 정신을 차리는 것.

그 모습을 볼  있다면 시무룩한 모습까지 보여가며 간신히 확보한 소원권이 그대로 날아간다 해도 상관없을 것 같았다.


'그러니까..'

일어나란 말이야.


그렇게 침대 위에 누운 이안을 내려다보며 살짝 입술을 깨물고 있으니 눈으로 들어온 건 제법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활짝 열려있는 두 창문이었다.

"창문은 왜.."

"아! 그게.. 성녀님께서 특별히 지시하신 사항이라서요."

"성녀님이요?"

"네, 조금이라도 더 신선한 공기를 쐬는 편이 몸을 회복하는데 도움이 될 거라고 하시면서 손수 여셨어요."


시녀의 설명에 신선한 공기도 좋지만 이러다가 감기라도 걸리면 어쩌냐고 우려를 내비치려던 순간이었다. 자신이 그런 반응을 보일 거라 예상하기라도 한듯 시녀가 잽싸게 설명을 덧붙였다.


"추위 때문이라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지금도 보세요. 문이 저렇게 활짝 열려있는데 하나도 안 춥죠?"

 말을 듣고 보니 그랬다.


커튼이 저렇게 흔들릴 정도로 바람이 불고 있는데 춥기는 커녕 오히려 훈훈하기만 했으니까.

이또한 성역의 힘중에 하나일까.


고개를 끄덕이고 있으려니 이쪽을 배려한 것인지 아니면 아까 급하게 내려놓고 온 빨랫감들을 해결하기 위함인지 시녀가 총총걸음으로 방을 빠져나갔다.

혹시 자신이 필요하면 방에 달려있는 줄을 잡아당기면 된다는 말은 덤이었다.

그렇게 방 안에 단둘이 남겨지게된 순간, 옆에 놓여져있던 의자를 끌어와 이안이 누워있는 침대 옆에 앉았다.


그 상태로 이안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으려니 갑자기 불안감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고요히 누워있는 이안을 향해 조심스레 손을 뻗었던 건 그래서였다.

그렇게 뻗은 손을 움직여 그의 코밑에다가 손가락을 가져다댔다.

그리하고 나서야 비로소  불안감이 가시는  했다.


이게 벌써 몇 번째인지..

쓴웃음이 절로 나왔지만 어쩔 수 없다 생각했다.

침대 위에 누워있는 이안에게서는 자그마한 미동조차 찾아볼 수 없어서 잠시 한눈 팔기라도 하면 그대로 숨이 끊어져버릴 것 같았으니까.

의식이라도 되찾는다면 그나마 좀 안심할 수 있을텐데..


'그러니까..'


일어나. 제발..

오늘도 다짐을 지키지 못했다 자조하면서 조심스레 이안의 볼을 쓰다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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