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로인이 되기 전에 (269)화 (268/366)



〈 269화 〉히로인이 되기 전에..

그 경악어린 목소리에 답을 해줄 겨를같은  없었다.


스스로의 몸 상태를 관조하기도 바빴으니까.

해서 그쪽은 디아나한테 온전히 맡기기로 했다. 은근히 말주변이 있는 그녀이니만큼 굳이 내가 나서지 않더라도 알아서 설명을  해놓을테니까.


'어디보자..'

본격적으로 몸을 움직이기에 앞서 일단 가볍게 손부터 움켜쥐어 보았다.

그리고 전율했다.

그 자그마한 몸짓 하나만으로도 어마어마한 거력이 몸 전체를 타고 흘렀으니까.

'진짜 몸 하나는..'


미쳤다는 말밖에 안 나왔다.


이 몸으로 돌아온 것이 오랜만이라서 더 그렇게 느껴지는 것일 수도 있었지만 지금 같은 몸 상태면 상대로 누가 튀어나온들 흠씬 두들겨패줄 수 있을 것 같았다.

확실한 건 예전같지는 않다는 점이었다.


그러니까 좋은 의미로 예전 같지가 않았다.

전회차로 묘사하자면 고위 사제만 사용할 수 있었던 능력 증강의 성법을 몸에 두른  같은 그런 느낌이랄까.

본신의 힘 외에도 몸을 타고 흐르는 이 미증유의 힘은 분명 바이올렛의 영향이겠지.


역시나 몸이 원래대로 돌아가더라도 표식은 그대론가 보다.

'하긴..'


원래대로 돌아갔다 해도 기본적으로 같은 몸이니까.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겠지.


그건 그렇다 치고..

'엄청 끼네..'

이런 일을 대비해 입고 있던 기사용 정복은 벗어두고 최대한 품이 넉넉한 옷으로 갈아입어 놨었는데 아무래도 그것만으로는 좀 부족했던 모양이다.


한계 직전까지 늘어난채 허벅지하고 사타구니 쪽은 물론, 팔뚝 부분에 철썩 들러붙은 것이 열심히 비명을 질러댔다.

아마  상태로 몸을 움직이기 시작하면 얼마 버티지 못하고  터져나가지 않을까.


몸을 움직이려다가 멈칫했던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혹시 몰라 몸 위에다가 커다란 천을 둘러놓은 상태라 만에 하나 진짜로 옷이 터져나가더라도 알몸을 드러내게 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지만 그래도 그건  아니지 않은가.


그래서 옷이 허용하는 한계범위 내에서 슬슬슬슬 몸을 움직였다.


그러다보니 알게 된 건 내심 우려했었던 부작용같은 건 감지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몸이 불과 몇 분만에 급격하게 늘어난지라 관절이나 근육같은 부분에 문제가 생겼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는데 말이다.

지금 당장은 딱히 문제가 없어보였다.


격렬하게 움직인다면 또 다를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내가 점검을 얼추 끝내가는 동안 나라는 상식 밖의 존재를 납득시키기 위한 디아나의 열변은 어느새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그냥 약을 잘못 먹어서 이리  거라고 말하고 끝내버리면 될 것을  저렇게 열정적으로 말을 토해내나 했는데 의외로 꽤 효과가 좋은  했다.


내가 막 변신을 끝마쳤을 때만 하더라도 나를 흡사 존재해서는 안 될 사악한 무언가나 귀신 바라보듯 바라보았던 이들이 어느새 눈물을 글썽거리고 있었으니까.


덕분에 나는 졸지에 위기에 빠진 동료를 구하려다가 대신 사고에 휘말려버린 비운의 천재로 둔갑하게 되었다.

'뭐, 완전히 거짓말은 아니긴 한데..'

웃긴 건 다름아닌 그 부분이었다.


디이나의 입에서 흘러나온 것중에 '거짓'은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그녀는 진실만을 말했다.

그 진실이라는 것들이 실제로 일어난 순서에 상관없이 교묘하게 짜집기 되어있어서 그렇지 발언 자체는 그랬다.


그런 식으로 이어지던 디아나의 발언이 마침내 끝이 난 순간, 내 정체 증명을 위해 이곳까지 불려온 이들로부터 상당히 격한 반응이 터져나왔다.

아무래도 무투대회를 위해 동원된 진행요원 중 대다수가 성기사단 출신이다보니 같은 기사로서 내가 겪은 사건에  이입이 되고 그랬던 모양.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디아나의 부름에 응한 세 명 중에 최선임으로 보이는 이가 사명감 비스무리한 것을 얼굴 위로 띄운 채 앞으로 나섰다.


"뭘 걱정하고 계신지 이해했습니다. 그렇지만 걱정하지 마십시오."


말하는 것만 보면 정말 사명감 때문에 저러는 듯 했지만, 꼭 그것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쯤은 금방 눈치챌 수 있었다.


'왜들 저리 힐끔대?'

힐끔대기만 했으면 그냥 그런 가보다 했을 것이다.


헌데 힐끔대는 것뿐만 아니라 짓고 있는 표정부터가 어째 심상치 않았다.

꼭 마치 뭔가에 홀린 듯한 그런 얼굴이라고 해야할까.

단순히 선임만 그런 것이 아니라 그 옆에 서 있는 나머지 둘의 표정도 얼추 비슷했다.


그렇기에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왜들 저러나 싶었으니까.

설마 왕국하고는 다르게 성국에서는 나같은 타입이  먹히기라도 하는 걸까.


'아니면..'


페로몬?


그렇지만 원래 몸으로 돌아왔는데?

설마 변신하기 전에 흘러나온 것을 맡고 저러는 건..

어쩌면 그런 걸지도 모르겠다라는 생각이 아주 잠깐동안 머릿속을 맴돌긴 했지만 그뿐이었다.

그것 때문이라고 보기에는 저들의 앞에서 쇼타모드로 있었던 시간이 그리 길지가 않았으니까.


차라리 지금 들어와있는 이곳이 밀실이었다면  얼마 안 되는 양의 페로몬이 배출되지 않아서 그런 거라고 볼 수라도 있었을텐데 그렇지도 않았다.


교국 건물답게 이곳도 통풍이 어마어마하게 잘 됐으니까.

창문은 커녕 사방이 벽으로 꽉 막혀있는데 대체 어디서 그렇게 바람이 들이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덕분에 아까전부터 자꾸만 뒤집어지려고 하는 천을 단속하느라 상당히 고역이었다.

'그리고 뭣보다..'

 바라보는 저들의 시선이 대신 증명해주고 있었다.

페로몬 때문에 저러는  아니라는 걸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다들 하나같이 내 얼굴이 아닌 내 머리카락쪽을 쳐다보고 있었으니까.


'다들 머리카락 패티쉬라도 있나?'

오죽하면 그런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비록 얼굴이 아닌 머리카락 쪽을 향하고 있다지만 시선이 워낙 노골적이다보니 셋의 시선이 지속될수록 디아나의 얼굴 위로 불편함이라는 감정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밤 사이 내리는 함박눈마냥 한 번 내리기 시작한 그것은 순식간에 쌓였다.


어느새 입술 위까지 쌓인 그것이 디아나의 분홍빛 입술을 꿈틀거리게 만들었지만 그럼에도 그녀는 그걸 겉으로 드러내거나 그러지 않았다.

 정체 증명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라도  앞에  있는 세 명과 불필요한 충돌을 빚어선 안 된다고 판단한 걸까.


아무래도 그런 모양이다.

휘몰아치는 감정을 다스리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옷깃을 있는 힘껏 움켜쥐는 걸 보면.

"크흠!"

그 상태로 디아나가 크게 헛기침을 했다.

정신 차리라는 의미가 듬뿍 담긴 행동이었고, 시기적절하게 들어간 그것의 효과는 확실했다.


내 머리칼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던 이들이 그제서야 좀 정신을 차리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었으니까.

정신이 들고 보니 자기들이 얼마나 무례한 짓을 했는지를 깨닫게 된 것일까.

그때부터 다들 나와 디아나의 눈치를 보며 쩔쩔매기 시작했다.


"죄, 죄송합니다. 그.. 너무 찬란한 금발이어서 저도 모르게.."

진짜 머리카락 패티쉬같은 거라도 있는 모양이다.

굳이  부분을 콕 집어서 말하는 걸 보면 필시 그런 거겠지.


정확히는 금발 패티쉬라고 불러야  것 같긴 했지만.


교국에서 금발은 여신에 대한 신실함의 상징이자 여신이 자신을 굽어보고 있다는 증표라고 하더니만 설마 그것 때문에 다들 저러는 걸까.


디아나에게 한 소리 들은 거나 다름없는 상황인만큼 조금이라도 자제하는 모습을 보일 법도 한데 어째 세 명 모두 힐끔거리는 걸 끝까지 놓지 못하고 있었다.


덕분에 분위기가 굉장히 묘해진 건 말할 것도 없었다.


그 분위기 속에서 저쪽 최선임이 다시금 입을 열었다.


"그.. 이 부분에 대해선 제가 책임지고 진행본부에 전해놓도록 하겠습니다."


"아, 네. 잘부탁드리겠습니다."

그리고 그 대화가 마지막이었다.

잘 부탁한다는 듯 꾸벅하고 고개를 숙여보이는 디아나를 상대로 고개를 마주 숙여보인 그녀가 그대로 자신의 후임들을 데리고 방을 빠져나갔다.

그래도 혼자 가서 증언하는 것보다는 여러명이 함께 진실을 전하는 편이 본부 쪽에서도 신뢰해줄 거라 생각한 모양.

한쪽을 떡하니 차지하고 있던 세 명이 빠져나가자마자 뒤집어 쓰고 있던 천부터 벗어던졌다.


갑작스러운 내 행동에 디아나가 기겁을 해댔지만 어쩔  없었다.


그새 옷이 줄어들기라도 했는지 죄어드는 느낌이 하도 강해서 이제는 거의 뭐 피도 안 통할 지경이었으니까.

갑작스레 등장한  맨살에 기겁을 하면서도 은근히 그것을 훔쳐보는 디아나에게 갈아입을 옷을 전달받고 나서야 비로소 사타구니의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그렇게 움직이기 편한 옷으로 갈아입자마자 다시금 몸을 움직여가며 몸 상태를 점검했다.

아까는 입고 있는 옷이 터질 것 같아서 하지 못했던 점프부터 시작해서 제자리에서나마 가볍게 뜀박질까지 하고 있으려니 그런 내 행동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디아나가 어쩐지 조마조마해 보이는 표정을 한채로 입을 열었다.

"어때? 괜찮은  같아?"


바로 조금 전에 그토록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였더니 혹시 뭐 문제라도 생긴  아닐지 걱정이 됐나 보다.


 상태에 대해 묻는 것이 분명한 그 질문에 잠시 고민하다가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가슴께를 움켜쥐었다.


"윽..!"

고통어린 신음성을 내주는 것도 빼먹지 않았더니 상당히 격렬한 반응이 디아나로부터 튀어나왔다.


"이, 이안?!"

당황한 듯 몸을 크게 움찔한 그녀가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왔다.

"어디 아파? 혹시 부작용이.."

귓가로 울려퍼지는 그녀의 목소리를 들으며 몸을 한층 더 웅크렸다.


그러자 바로 앞에서 안절부절 못하는 기색이 전해져왔다.

"이, 일단.."

갑작스러운 상황에 그만 패닉에 빠져버리고 만 것일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길래 앓는 듯한 소리를 내며 웅크렸던 몸을 살짝 폈다.


디아나가 정신을 차린 것도 그때였다.

일단 어디가 아픈 건지 확인부터 해야겠다고 판단한건지 거침없이 뻗어온 그녀의 손이 내 몸을 더듬기 시작했다.


그 타이밍에 맞춰서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어올렸다.

그리고는 그대로 씩 웃어주려고 했는데..


그럴 수가 없었다.


디아나의 눈가에 방울방울 매달려있는 투명한 색의 구슬들 때문이었다.

"장난이었는.."

생각치도 못한 광경에 살짝 멍한 느낌으로 그리 중얼거리고 있자니 그제서야 내게 속았다는 걸 깨달았는지 걱정을 가득 품은  묵직하게 내려앉아있던 디아나의 눈꼬리가 확 치솟았다.

"장난?"


그 상태로 침묵하던 디아나의 입술을 뚫고 튀어나온 건 싸늘하기 그지없는 목소리였다.


"장난해?"

"아니, 저는.. 그.. 긴장도 풀어드릴겸 안심시켜드리려고.."

서둘러 변명을 내뱉어봤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대신 돌아온 건..

퍽-!


"컥..!"

화끈하기 그지없는 스매쉬였다.


분명 가볍게 휘둘러진  같은데 그것이  등짝에 닿은 순간 파멸적인 쓰라림이 등을 강타했다.

그야말로 정신이 번쩍드는 통증이었고 그에 나도 모르게 숨을 삼키며 단말마 비스무리한 걸 터뜨리니 세컨드 웨이브가 등으로 날아와 꽂혔다.


퍼억-!

보통 저런 식으로 손바닥을 쫙 펼쳐서 때리면 쩌억이나 짝같은 소리가 나야 정상인데 말이다.


왜 주먹으로 때린  같은 소리가 나는 걸까.


소리가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고통또한 주먹에 얻어맞은 듯한 수준이었다.


덕분에 확신할 수 있었다.

등에 디아나의 손자국이 문신처럼 새겨질 거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렇게 등에 불이 날 때까지 등짝을 내어주고 몇 번이고 사과를 건네고 나서야 단단히 토라진 디아나의 마음을 풀어줄 수 있었다.


"다음부터는 그러지 마."


"네엡."

순간적으로 확 치솟았던 감정이 가라앉고나니 자신이 내 등에다가 새겨놓은게 걱정이 되기 시작했나 보다.


"등좀 봐바."


한숨과 함께 디아나가 그것을 주문했다.


아직은 그녀의 눈치를 봐야하는 상황이었기에 주문대로 순순히 등을 내어주니 옷 안으로  파고들어온 것이 그대로 옷을 풀어헤치기 시작했다.

그 상태로 얼마나 지났을까.


등에 찰싹 달라붙어있던 디아나의 손이 움찔거리며 동요를 드러냈다.

덕분에 굉장히 궁금해졌다.

대체 등의 상태가 어떻길래 저렇게까지 당황하는 건가 싶었으니까.

"어때요?"


그 말에 디아나는 답을 하지 않았다.


대신 풀어헤쳤던 옷을 주섬주섬 원래 상태로 되돌리기 시작했다.

"네?"

그에 재차 질문을 던지니..

와아아아아-


바깥에서부터 거대한 환호성이 들려왔다.

그리고 그 뒤로 따라붙은 건 디아나를 찾는 누군가의 목소리였다.


"앨런 경? 혹시 안에 계십니까?"


그 소리를 들은 순간 직감했다.

결승전이라는 이름의 운명의 순간이 코앞까지 다가왔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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