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로인이 되기 전에 (251)화 (250/366)



〈 251화 〉히로인이 되기 전에..

다들 숨죽이고 있는 가운데 덩달아 긴장한 듯한 표정이  진행자가 문제의 지문을 읊기 시작했다.

"흔히 대전쟁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우는 할마가트 전쟁에서 가장 격렬한 전투가 펼쳐졌던 곳은.."


그것이 얼추 끝부분에 다다랐을 쯔음이었을 것이다.

"정답!"

제국 측에서 그런 외침이 터져나왔다.

자신이 말하려 하는 것이 정답임을 확신하는 듯한 그런 목소리였다.

"네, 정답은요?"


"마하르가트 평야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어딘지 모를 곳의 지명에 대해 읊는 제국 측 참가자의 얼굴 위에는 자신감이 흘러넘쳤다.


그 상태로 진행자를 바라보는데  모습이 꼭 '정답맞지? 얼른 정답이라고 말해.'라고 으스대는 듯 했다.


나야 관심없는 분야기도 하고, 배운 적도 없는 것인지라 저게 정답인지 아닌지 알지 못했기에 바로 옆에 앉아있는 알만한 사람에게 의견을 구했다.

"맞아요. 저거?"

"마하르가트 평야에서 격전이 치뤄진  맞긴 한데.."

역시나 디아나는 정답을 알고 있었다.

아무래도 전쟁과 관련된 것이다보니 배운 적이 있었던 모양.

아무튼  말대로라면 게임은 사실상 끝난 거나 다름없었다.

20점의 점수 차가 나는 상황에서 남은 문제라고는 세 문제 뿐인데 그 중에 하나를, 심지어는 15점짜리를 빼앗겨버리면 차이가 35점으로 벌어져버리고 마니까.

그 말인 즉슨 제국 측이 가져가고 남은 것을 제외한  문제가 모두 15점짜리고, 그걸 우리 쪽에서 싹다 맞춰버린다 해도 5점의 점수차가 나서 2등으로 끝나버린다는 뜻이었고.

물론, 제국 측에서 지금까지 딴 점수에 만족하지 않고  따보려다가 헛삽을 푼다면 이야기가 좀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은..

'그럴 리가 없지.'

미치지 않고서야 설마 그러겠는가.

이번 문제를 가져간다는 전제 하에서의 이야기긴 하지만 가져가기만 한다면 말 그대로 가만히 숨만 쉬고 있어도 1등은 확정인데 말이다.


그런데 섣부른 시도를 할까?

이미 바이올렛한테 살벌하기 그지없는 경고를 받은 적이 있는 상황에서?


'안 하겠지..'

간신히 되살아난 기대감이라는 놈의 손을 놓아버렸던 건 필시 그럴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래 뭐..'

2등도 잘 한 거니까.


점수는 없지만 말이다.

속으로 그리 중얼대며 곧 이어질 진행자의 발표만을 기다리고 있던 순간이었을 것이다.


요상한 광경이 눈으로 들어왔다.


그 요상한 광경이란 다름아닌 진행자의 얼굴이었다.

저 표정을 뭐라고 하면 좋을까.

안쓰러워 하는 듯 하면서도 터져나오려고 하는 웃음을 억지로 참는 듯한 그런 표정이 다른 곳도 아니고 진행자의 얼굴 위에 머물러있었다.

'뭐야..'

정답 아니었나?


왜 저런 표정이지?


라고 생각한 순간, 헛기침을   해 표정을 가다듬은 진행자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마하르가트 평야라고 하신 건가요?"


"네, 맞습니다."


"그렇습니다. 할마가트 전쟁 당시 격전이 치뤄졌던 곳의 이름은 마하르가트 평야죠. 그럼 이 마하르가트 평야에서 총  명의 사상자가 났을까요?"

진행자의 변화구에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 정답을 외쳤던 제국 측 참가자들이 상황을 따라잡지 못하고 어리둥절한 표정을 하고 있는 사이, 앞으로 치고 나온 이가 있었으니..

"정답! 15만 8792명!"

그건 바로 여태껏 잠자코 있었던 왕국 연합 측 참가자들이었다.


"네! 15만 8792명! 정답입니다!"


덕분에 제국 측 참가자들의 상황이 굉장히 우습게 되어버렸다.


20점으로 그나마 안정권이었던 우리와의 차이가 12.5점까지 좁혀지게 되었으니까.


사람이라면 당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그렇다보니 이어진 문제에서도 그들은 제대로 힘을 쓰지 못했다.

표정을 보면 무엇이 정답인지 알고 있는 것 같은데 바로 앞에서 대차게 헛발질을 해댄 탓에 그게 과연 정답이 맞을  스스로를 의심하게 된 것 같다고 해야할까.

그리고 우리 측 참가자들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그렇게 10점이 걸려있던 문제를 우리 쪽에서 가져옴으로써 점수차는 2.5점까지 좁혀지게 되었고..


결국 남은 한 문제를 어느 쪽에서 가져가느냐에 따라서 승패가 갈리는 상황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퀴즈를 푸는 입장에서도, 그것을 지켜보는 입장에서도 긴장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덕분에 대회장의 분위기가 기이할 정도로 조용해졌다.


"자, 그럼 마지막 문제입니다.."

그 가운데 진행자의 입에서 마지막 문제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마지막 문제답게 무려 15점이 걸려있는 문제였다.


그렇게 마지막 문제가 발표되었건만 아까처럼 황급히 정답을 외치는 이는 없었다.


아무래도 마지막 문제답게 난이도가 상당히 괴랄한 모양.

덕분에 그 누구도 정답일 외치지 않고 다른 이들의 눈치만 힐끔힐끔 살피는 상황이 한동안 지속되었다.


표정만 보면 다들 떠오르는 것 정도는 있는 모양인데 지금 머릿속을 맴돌고 있는 그것이 과연 정답이 맞을지 확신까지는 서지 않는 모양.

그 어색하기 짝이 없는 분위기를 깨고 마지막 문제를 가져간 건 바로..

"네, 정답입니다!"

"그렇지!"


놀랍게도 우리 쪽이었다.

덕분에 2.5점 차이가 났던 점수는 역으로 12.5점의 차이가 되었고 무투대회를 제외하면 사실상 마지막 종목이나 다름없었던 것의 점수는 그대로 우리 쪽에 흡수되었다.


"이러면 점수가.."

"아직 부스 쪽 결과가 확정이 나지 않은 상태니까 완전히 확정이라고 하기는 힘들지만.. 이러면 거의 동점이라고 봐야지."


그렇다는 건?

"우리만 이기면 이기는 거네요?"


"그렇지."


솔직히 말하자면 잘도 여기까지 왔다 싶었다.


교류전 초반만 하더라도 부스를 포함해서 여타 종목들을 죄다 제국 측에 빼앗기고 점수차가 압도적으로 벌어진 상황에서 무투대회만 간신히 건져서 꼼짝없이 졌잘싸엔딩을 보게  거라고 생각했는데 말이다.

졌잘싸가 아니라 이기고 잘 싸웠다라는 엔딩까지 노려볼 수 있게 될 줄이야.

'요기베라.. 당신이 옳았어..'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고 하더니만 지금 제국과 우리를 둘러싼 상황이 딱 그랬다.


그렇게 승부의 향방이 무투대회로 옮겨간 가운데 나와, 디아나, 앨리스, 그리고 클레어는 일찌감치 무투대회가 열리는 곳으로 자리를 옮겼다.

아침부터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던 진이 우리 옆으로 합류한  얼추 그 장소에 도착했을 때였다.


'또 어딜 다녀온거지?'

교국이 처음인 건 분명  놈도 마찬가지일텐데 말이다.


대체 어딜 저렇게 쏘다니는 걸까.


내가 자길 힐끔대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지 모르는 지 주인공 년은 합류한 줄곧 굉장히 진지한 얼굴로 뭔가를 고심하기 바빴다.


그 표정이 하도 진지하다 보니 지나가듯 질문을 던져서 은근히 떠보는 행동도 하기 힘들었다.


내가 여기서 그런 행동을 한다고 한들 저 놈, 아니 저 년이 제대로 답을 해주지 않을 것 같기도 했고.


그래서 힐끔거리는 것만으로 만족하고 있으려니 무투대회가 열리는 장소에서 미리 대기하고 있던 교국 측 사람들이 우리를 어딘가로 안내하기 시작했다.


그런 그들을 따라 움직인 끝에 도착하게된 곳은 분장실처럼 생겨먹은 곳이었다.


'음, 설마..'


나란히 늘어서있는 거울들과  앞에 배치되어있는 의자들의 모습을 확인한 순간 속으로 설마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우리를 이곳까지 안내한 이들이 그 자리를 권하기 시작했다.

거절할 수는 없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볼텐데 되도록 좋은 인상을 남겨야하지 않겠냐면서 굉장히 조심스러운 어조로 자리에 앉길 권하는데 웃는 낯에 침 못뱉는다고 거기에 대고 싫다고 하기가 좀 그랬으니까.

'뭐, 화장정도야..'


필요에 따라 못할 것도 없긴 했지만 솔직히 좀 그랬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분장을 위해 대기하고 있던 인원들이 죄다 남성들 뿐이었으니까.


'어우..'

덕분에 얼굴에 뭔가가 발라질 때마다 남자의 손길이 얼굴을 스치고 지나가는데..

그걸 꾹 참고 견디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


난 그랬지만 다른 이들은 나하고는 다른 이유로 불편해했다.


경기를 앞두고 마음을 다스려도 모자랄 판국에 이런 일에 시간을 써야한다는 사실이 좀 거슬리기는 해도 주최측에서 요구한 거니 참는다는 느낌?

그렇게 분장을 끝마치고 대기 장소를 향해 움직이니 마주치게 된 것은 우리와 비슷한 타이밍에 도착한 듯한 제국 측 참가자들이었다.


어쩜 타이밍이 이리도 그지 같은지 대기 장소로 들어서기 직전에 딱 마주쳐버린 바람에 졸지에 대치구도 비슷한 상황이 되어버렸다.


그런 분위기에서 유일하게 자유로운 이가 있었으니 그건 바로..


"이안!"

저쪽의 대장이라  수 있는 바이올라였다.

이렇게 보니 반갑기라도 했던 것일까.

날 발견한 그녀의 입에서 쾌활하기 그지없는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꼬리도 반가움을 표현하듯 격하게 좌우로 흔들리고 있었고 말이다.

주변에 흐르고 있던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는 그녀의 행동에 날카롭게 날이 서 있던 분위기가 약간이지만 누그러지는  느낄 수 있었다.

물론, 그건 어디까지나 제국 측에 한정된 이야기였다.


바이올라의 행동에 그녀의 옆을 지키고 있던 세 명이 피식하고 웃은 반면에 우리 측 여성들은 웃기는 커녕 표정하고 눈빛이 전보다  날카로워졌으니까.

둘의 기세가 어찌나 살벌한지 한 발 비켜 서 있는 내 얼굴이 다 따끔거릴 정도였다.

나조차도 그랬을진데 둘의 집중포화를 맞은 바이올라는 어땠겠는가.

디아나와 앨리스의 눈총을 받고 나서야  옆에 서 있던 둘의 존재에 대해 알아차린 것인지 둘의 모습을 확인한 바이올라가 순간적으로 얼굴을 딱딱하게 굳혔다.

그것도 잠시 디아나나 앨리스에게 지지 않겠다는 것처럼 바이올라가 둘의 시선을 맞받아치기 시작했다.


덕분에 그나마 좀 누그러졌던 분위기가 다시금 팽팽하게 당겨졌다.


그렇게 다시 시작된 대치상황은 다른 팀들이 도착하고 나서야 끝이 났다.

물러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물러나기는 하지만 그냥 물러나긴 좀 그랬던 걸까.


바이올라가 자신들을 위해 준비된 대기 공간으로 들어가며 날 향해 한 마디를  던졌다.


대충 나중에 보자는 식의 내용이었고, 그에 우리 측 여성들이 분개한  말할 것도 없었다.

허나 따져야할 대상은 이미 자기네 방으로 내빼버린 상황.


무투대회 시작이 얼마 남지도 않은 상황에서 거기까지 기어들어가서 따지긴 아무리 둘이라도 좀 그랬던 모양인지 둘이 씨근덕대며 우릴 위해 준비된 대기 공간의 문을 박차고 그 안으로 들어갔다.


남들이 신경전을 벌이든 말든 잠자코 침묵을 지키고 있던 진이 그 뒤를 따랐고 마지막은 나였다.

그렇게 대기하라고 마련해놓은 공간 안에서 아직 결정짓지 못한 자질구레한 것들을 결정짓고 있으니 문 두들기는 소리와 함께 곧 행사가 시작될테니 준비하고 있어달라는 누군가의 요청이  안으로 울려퍼졌다.


그에 그 잠깐 사이에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빠르게 가다듬으니 이번에 들려온 건 이제 올라가야 한다는 말이었다.

그 말을 듣고 곧장 방을 빠져나가  발 앞서 대기하고 있던 다른 팀들과 합류했다.


그리고는 교국 측에서 보낸 이의 인도에 따라 기나긴 복도를 걷기 시작했다.

'이야..'

바깥에서 볼 때도 크다고 느끼긴 했지만 이렇게 안으로 들어와서 살펴보니 규모도 복잡성도 상상했던 것 이상이었다.

만약 무투대회장에서 뭔가 일이 벌어진다면 이 구조의 복잡함이 어떻게 작용하게 될까.

그런  생각하다보니 어느새 바깥으로 통하는 입구가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한낮이라 그런 지 몰라도 무슨 천국으로 통하는 입구마냥 하얗게 빛나고 있는 그곳을 통해 복도를 빠져나오니 들려온 것은 귀가 떨어질 것 같은 환호성과 박수소리였다.


얼마 기다리지도 않았던 것 같은데 관객석은 그새 빈틈이라고는 한 곳도 없이 빼곡하게 채워져있었다.

덕분에  그대로 사방에서 쏟아지는 환호성을 받으며 중앙에 마련된 단상을 향해 나아갔다.


그렇게 시작된 행사는 말이 행사지 딱히 별 거 없었다.

거창한 연설같은 건 이미 개막식때 해버린지 오래였으니까.

그래서 간단하게 참가자들을 소개하고 그 다음으로 각국의 귀빈들을 소개하는 식으로 행사가 진행되었다.


역시라고 해야할지 귀빈들 중에서 관객들로부터 가장 좋은 반응을 이끌어냈던 건 다름아닌 성녀였다.

관객들을 향해 고아하게 고개를 숙여보이는 그녀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자니 성녀가 등장하기만 하면 내빼기 바빴던 주인공 년이 오늘도 내뺐을지가 궁금해져서 슬쩍 뒤를 향해 시선을 던져봤다.

딱 그 순간이었을 것이다.

이제 우리 측 귀빈에 대한 소개만 남았으니 보나마나  꼬장꼬장하게 생긴 아줌마가 올라올 거라 생각했는데..

'아니, 벌써 나온다고?'


정작 모습을 드러낸 건 전혀 다른 이였다.


레이시아.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듯한 그녀가 우리 측 귀빈석에 당당히 자리하고 있었다.

원래 자기 자리였다는 것마냥 관객들을 상대로 여유롭게 손까지 흔들어 보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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