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로인이 되기 전에 (249)화 (248/366)



〈 249화 〉히로인이 되기 전에..

무투대회가 시작되는 당일이라 해도 아침부터 쭉 그것만 하는 건 아니었다.


예정된 일정이라는 게 있으니까.

덕분에 무투대회 개막 전에 정해진 일정을 소화해야만 했다.

사실 정해진 일정이라고 해봐야 거창한 건 아니고 무투대회 전에 잡혀있는 종목에 참가하는 이들을 응원하러 가는 것 뿐이긴 하지만 말이다.

카트린느의 공방을 빠져나가 숙소 앞에 모여있던 이들과 합류했던 건 그래서였다.

아마 교류전 초반이거나 교류전이 열리기 전이었다면 이런 일에 동원된다는 것에 다들 짜증스러워 했겠지만..


"이번에 이기면 점수가 어떻게 되는 거였지?"

"제국 쪽하고 동점되는  아니었어?"


"그래? 저번에 내가 대충 계산해보니까 그러기엔 점수가 좀 부족하던데.."


지금 주변에 자리하고 있는 이들에게서 그런 기색같은 건 찾아볼 수 없었다. 대신 제국 측을 상대로 경쟁심을 불태우는 분위기만이 가득할 뿐.

그 반응이 우스우면서도 재밌었다.


손가락까지 하나하나 접어가며 열심히 점수를 계산하고 있는 이들의 모습이  평소에 축구같은 데에는 관심도 없다가 월드컵같은 것만 열리면 축구에 목을 매는 것처럼 행동하던 이들과  닮아있었으니까.


한편으로는 저들의 반응이 이해가 되기도 하는 것이 듣자하니  세계에서는 국가와 국가간의 경쟁이 이렇게 온건한 형태로 이루어진게 이번이 처음이라 들었으니까.


그러니 다들 과열될 수밖에 없겠지.

다음에도 교류전이 열릴지는 모르겠지만 이번에 이기면 무려 초대 우승국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게 되는 셈이니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디아나또한 주변의 분위기에 휘말린 것 같은 느낌이었다.

얼굴이 무슨 찰흙 덩어리라도 되는 건지 시간이 지날수록 굳어지는 게 눈에 훤히 들어오는데 보는 내가 덩달아 긴장이 될 정도였다.

'그나저나..'

앨리스는 또 뭘 한다고 나타나질 않는 걸까.


설마 아직도 자고 있는 건 아니겠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오늘 같은 날 그러겠냐만은 상대가 앨리스다보니 쉬이 방심할 수가 없었다.


최근 들어 그런 모습이 없어져서 그렇지 사실 아무데서나 잘 자고  번 잠들었다 하면 그야말로 세상 모르고 자는 게 바로 앨리스니까.

여차하면 방으로 찾아가서 깨워야하나하고 고민하고 있던 순간이었을 것이다.


숙소 입구 쪽에서 앨리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간신히 출발 시간에 맞춰서 준비를 끝낸 듯한 몰골을 한채로 말이다.


'늦잠 잤구만..'

나와 디아나를 발견하고는 우리 쪽을 향해 뛰어오는 앨리스의 모습을 보며 뭐라 이루말할 수 없는 복잡한 심경을 느끼고 있자니, 그녀가  옆으로 와서 자리를 잡았다.

헌데 가까이서 보니 이게 참.. 멀리서 볼 때보다 한층 더 심각했다.

하도 오랜만에 입는 거라 입는 법을 까먹기라도 한 건지 삐져나와선 안 될 것들이 여기저기에서 고개를 빼꼼 내밀고 있었으니까.

 사실을 아는 지 모르는 지 늦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것처럼 헤헤 웃고 있는 앨리스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슬쩍 한숨을 내쉬며 그녀의 재단장에 손을 보탰다.

솔직히 말하자면 마침 잘 됐다 싶었다.


안 그래도 물어봐야  게 있었는데 이 기회를 빌어 자연스럽게 물어보면 되겠다 싶었으니까.


참으로 다행히도 앨리스는 내가 내민 도움의 손길을 굳이 사양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앨리스 본인도  몰골이 남이 볼 때 엉망이라는 사실 정도는 인지하고 있었던 모양.


선뜻 받아들인 것하고는 별개로 제대로 된 모습만 보여주고 싶은 내게 엉망인 몰골을 보여주는 것이 민망하긴 했는지 다가오는 동안 살짝 쭈뼛거리긴 했다.

그렇게 앨리스가 내 앞에 도달한 순간, 삐져나온 것을 정리해주는 척 하며 그녀를 향해 쭉 벼려왔던 질문을 던졌다.

"어떻게 됐어요?"


앨리스가 절대 그럴 리 없다고 자부했던 교국 측에도 사교도 놈들의 촉수가 뻗쳐있는 시점에서 우리 측이라고 마냥 깨끗하리라는 보장같은  그 어디에도 없었기에 일부러 주어같은 걸 최대한 생략하고, 목소리도 평상시와 같은 톤을 유지하려 노력했다

그럼에도 앨리스가 듣기에 무슨 뜻인지 알아듣기 충분했던 모양인지 순간적으로 그녀의 몸이 흠칫하고 떨리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물론, 그건 어디까지나 잠깐에 불과했고 순식간에 침착함을 되찾은 앨리스가  내려다보았다.


평소의 그녀와 하등 다를  없는 모습.


"찾아본다고 찾아봤는데.."


심지어 목소리도 평소와 같았다.


허나 입술 사이에서 흘러나온 내용만큼은 달랐다.

목소리 크기도 평소보다 살짝 작은 편이었고.

그나저나 슬쩍 말끝을 흐리는 걸 보면.. 뭔가 이렇다할 성과가 없었나?

아무래도 그런 모양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토록  꺼내길 망설일 이유가 없으니까.


"..걸리는 게 없더라."


아니나 다를까 예상 범위를 벗어나지 못한 대답이 금방이라도 말을 할 듯 말 듯 달싹거리던 앨리스의 입술을 뚫고 튀어나왔다.

그런 류의 대답이 나올 거라고 예상했지만 품고 있는 내용만큼은 예상 범위 밖에 있었다.


걸리는 게 없다니.

'그럴 리가 없을텐데?'


혹시 조사를 대충한 건 아닐까라는 의문이 곧바로 목구멍까지 치솟았지만 그걸 입밖으로 내는 우는 범하지 않았다.

지금 이 타이밍에 그런 말을 입밖으로 내봐야 피차 감정만 상할뿐 도움될 게 하등 없었으니까.

대신 조금  자세히 알아보기 위한 말을 입밖으로 내뱉었다.


"걸리는 게 없었다는 말은.."

"깨끗해. 혐의점이라고는 하나도 없더라."


"네? 그런.."

그게 가능하긴  거냐고 반문하려하니 앨리스 쪽에서  발 먼저 선수를 쳤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점이 마음에 걸리더라고. 그래서 따로 사람을 붙여놨어."


그러니  금발머리가 애먼 짓을 하거나 수상한 인물과 접촉할 경우 바로 소식이 들어올거라며 앨리스가 날 안심시키려는 듯한 말을 내뱉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조금 놀랐다.

다른  때문이 아니라 그 금발머리한테 사람을 붙여놨다는 앨리스의 발언 때문이었다.


교국이 앨리스의 홈그라운드라는 사실 정도야 이미 인지하고 있었지만 앨리스가 교국 내에서 다른 사람을 부릴 수 있을 정도의 위치에 있는 줄은 몰랐으니까.

보나마나 혈혈단신으로 조사에 임하고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말이다.

'흠..'

뭐, 팀장이나 단장쯤 되는 위치인 걸까.


교국 내에서 앨리스의 위치가 어느 정도일지 나름대로 추측해보면서 부지런히 손을 놀렸다.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였으니까.

곧 있으면 각국의 귀빈들은 물론이거니와 세계 각지에서 찾아온 관람객들 앞에 서야할텐데 이렇게 엉망인채로 방치해둘 수는 없었으니까.

그런 식으로 앨리스를 재단장시키고 있자니 나올만한 이는  나온 것인지 주변에 옹기종기 모여있던 이들이 선두를 맡은 이를 따라 우르르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고 있던 걸 빠르게 마무리 지은 뒤 그런 그들을 따라서 움직이니 눈앞으로 나타난 것은 일전에도  번 방문한 적 있는 곳이었다.


흡사 거대한 노천 극장과도 같은 형태를 하고 있는 이곳은 일전에 세계역사와 관련된 종목의 퀴즈대결이 치뤄질  사용되었던 곳으로 평소에는 주로 사제들이 교국민들이나 순례자들을 상대로 연설을 펼칠 때 사용되는 곳이라는 게 앨리스의 설명이었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그리 높지도, 낮지도 않은 단상하고 제법 멀리 떨어져있는 내 자리에서도 단상 위에 있는 이들의 목소리가 제법 또렷하게 들렸다.

저번에는 준비하는데 시간이 꽤 걸리더니만 그래도   해봤다고 그새 숙련이 된 모양이다.

순식간에 들어찬 관객들을 오래 기다리게 할 생각따위는 없다고 주장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저번에 왔을 때도 본  있는 진행자가 단상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 그녀의 뒤를 따라 각국에서 참가자랍시고 내민 이들이 줄지어 등장하기 시작했다.


"여기서 이기면 점수가 정확히 어떻게 되는 거였죠?"

"제국이 이기면  벌어지는 거고 우리가 이기면 거의 동점."

클레어의 말만 들으면 참가하는 곳이 제국하고 우리 측뿐인 듯 했지만 이번만큼은 교류전에 발을 담군 4곳 모두가 참가를 외친 상태였다.

그렇기에 저번에 들렸을 때하고는 다르게 참가자들로 이루어진 줄또한 총  개였다.


개중에서 어디가 제국 측이고 어디가 우리 측인지 알아보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잘 보면 네 줄 중에서 유난히 긴장하고 있는 곳이 딱  곳 있었으니까.


결국 최종 승패를 결정짓는 것은 무투대회의 결과가 될 가능성이 크긴 하지만 피차 점수가 동등한 상황에서 승부를 겨루는 것과 점수 차가 꽤 나는 상황에서 승부를 치루는 건 많은 차이가 있는 법.


특히나 이 종목의 승패가 어찌되느냐에 따라서 무투대회에 참가키로 한 이들이 느낄 부담감과 받을 중압감의 정도가 달라질테니 당연히 저들로서도 부담이  수밖에 없겠지.


그 정도로 저들의 마음이 십분 이해가 되었지만 그럼에도 이겨줬으면 했다.


나야 솔직히 점수 차가 나던 말던 내  일만 다하면 된다는 입장이었지만 다른 이들은 그렇지 않을테니까.


특히나 제국 측 참가자들이 그럴 거다.

무려 고귀하신 황녀님께서 참가자 중  명으로 참가하는 종목일 뿐더러 여기서 승리를 따내지 못한다면 결국에는 패배해버린다는 중압감이 시시각각 그들을 괴롭힐테니 말이다.


그런 상황에서 제 실력을 낸다?

어지간한 멘탈로는 힘들 터.


그러니 부디 이겨서 제국 측 참가자들의 어깨를 무겁게 만들어줬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소망하고 있자니 자신들을 보기 위해 몰려든 관객들을 상대로 정중하게 허리를 숙여보인 참가자들이 각자 자리로 흩어졌다.

그렇게 시작된 퀴즈대결의 방식은 저번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전과는 다르게 이번에는 새로운  하나가 도입되었다는 것 정도?

저번에는 누군가 정답을 맞출 때까지 기회가 사실상 무한정 제공되는 식이었다.

덕분에 긴가민가한 상태에서 무턱대고 지르고 보는 경우가 굉장히 많았는데..

아무래도 진행을 맡은 교국  인사들이 보기에 그 모습이 좀 없어보이기라도 했던 모양이다.


오답을 외칠 때마다 문제에 배정된 점수의 반절만큼의 차감이 이루어진다는 규칙을 추가한 걸 보면.


"이렇게 되면 아무 것도  하고 가만히 있는 쪽이 오히려 상위권으로 치고 나가게 될 가능성도 있겠는데요?"

"뭐, 문제 난이도에 따라 충분히 그럴 수도 있겠지만.. 아마 가능성은 낮지 않을까? 다들 각국에서 한가닥씩 하는 사람들이잖아."

디아나가 설마 그렇겠냐며 부정적인 견해를 내놓았지만 내 생각은 좀 달랐다.


"흠.. 그러려나요."

변수가 많아도 너무 많았으니까.


그중에서도 특히나 수많은 관객들의 존재는 상당히 치명적이라 할  있었다.

지금 무대 위에 선 저들도 나름 각국에서는 내놓으라하는 양반들이니 당연히 이런 상황까지 대비하여 훈련같은  했겠지만..

아무리 각국에서 전폭적인 지원을 해줬어도 고작 연습에 이만한 인파를 동원할 수는 없었겠지.


그런만큼 느껴지는 압박감자체가 연습때 느꼈던 것하고는 차원이 다르게 느껴지지 않을까.


그 점을 고려하면 오히려 교국 측이나 왕국 연합측 참가자들이 선방을 펼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시작부터 상당한 부담을 떠안고 시작하는 우리 측 참가자들이나 제국  참가자들과는 다르게 그 두 곳의 참가자들은 표정이 한결 편해보였으니까.


굳이 승부에 목맬 이유도 없으니 크게 부담감을 느끼지 않는 듯한 느낌?

진짜 맘같아서는 어디서 유사 우황청심환같은 거라도 찾아다가 던져주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던 순간이었을 것이다.

드디어 모든 준비가 끝이 났는지 진행을 도맡은 이가 얼굴에 화색을 한가득 띄워올린  앞으로 나섰다.


그런 그녀의 우렁차기 그지없는 목소리와 함께 많은 것을 결정지을 퀴즈대결의 막이 올랐고..


"허허.."


그렇게 시작된 퀴즈대결은 그것을 지켜보는 이들에게 헛웃음을 짓게 만들었다.

그만큼 대환장의 연속이었으니까.

하도 긴장한 나머지 머릿속이 수능 끝난 고3마냥 깨끗하게 포맷되어버리기라도  걸까.


제국 측, 혹은 우리 측 참가자들이 입을 열어 뭔가를 외칠 때마다 그들 앞에 적혀있는 점수가 하향곡선을 그렸다.


덕분에 퀴즈대결이 초반을 넘어 중반을 넘어갈 쯔음에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러니까..


"어.. 그럼 중간 점검 결과를 발표하겠습니다.."


내가 생각없이 뱉었던 말이 무슨 예언이라도 되는 것마냥 그대로 실현되어 버린 것이다.


'아니, 이게 무슨..'

이게 뭐냐고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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