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로인이 되기 전에 (246)화 (245/366)



〈 246화 〉히로인이 되기 전에..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더니 결국 결심이 선 모양이다.


"..알겠어. 뭐든 확실히해서 나쁠  없을테니까."

저리 말하는  보면 말이다.

중얼거리듯 말하며 고개를 끄덕이던 것도 잠시, 앨리스가 내쪽을 돌아보며 시선을 던져왔다.

그 시선이 꼭 자길 찾은 용건은 그게 전부냐고 묻는 듯 했다.

해서 그녀와 똑바로 시선을 맞추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아무래도 걱정이 됐거든요. 만약에 어딘가에 협조를 구했는데 거기에 사교도 놈들의 끄나풀이 숨어있기라도 하면.."


굳이 뒷말은 내뱉지 않았다. 아까도 말했드 말의 힘이라는 게 별 거 아닌  같으면서도 은근히 강력해서 때로는 생각없이 뱉은 말이 어떤 사건의 씨가 되기도 하니까.


뭐, 생략한 부분을 제외하더라도 내가 말하고자 했던 바를 이해하는데에는  무리가 없긴 했다.

"확실히 위험했을 수도 있겠네."

그 증거로 앨리스가 내 말에 동감을 표하듯 중얼거리며 고개를 끄덕였으니까.


그런 식으로  말에 맞장구를 치던 것도 잠시, 이내 그녀가 나로 하여금 보란듯이 씩하고 웃으며 날 향해 손을 뻗어왔다.


"그래서 걱정 많이 했어?"


내가 자신을 걱정했다는 사실이 그리도 기꺼운 걸까. 그리 묻는 앨리스의 얼굴에는 기쁨이라는 감정이 숨길 수 없을 정도로 또렷하게 묻어나오고 있었다.

안 그래도 고생하는 이를 상대로 튕길 이유는 없었기에 거기에 대고 순순히 고개를 끄덕여줬더니 꽤나 격렬한 반응이 돌아왔다.

"으으으.."

욕실에서 걸어나올 때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촉촉함을 간직하고 있는 앨리스의 붉은 입술 사이에서 끙끙 앓는 듯한 소리가 흘러나오더니 이내 그녀가 몸을 부르르 떨어대기 시작했으니까.

그것도 잠시 날 향해 뻗어진 그녀의 손이 내 머리칼을 거칠게 헤집어대기 시작했다.


덕분에 가지런하게 정돈되어 있던 머리가 흐트러지고 난리도 아니었지만 딱히 기분이 나쁘거나 그렇지는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런 만행을 저지른 이에게 그 업보가 고스란히 돌아갔으니까.

"아으.."

팔뚝이 까진 상태에서 그토록 격렬하게 그것을 움직여댔는데 팔이 안 아플 리 없지 않은가.

아니나 다를까 제법 거친 앨리스의 손놀림이 뚝하고 멎더니 앨리스가 울상을 지으며 제 팔을 다른 팔로 감싸안았다.


"으이구.. 이리 줘봐요."

팔뚝을 감싸쥔 채 마음에 들지 않는 거라도 있는 꼬맹이마냥 입술을 삐죽 내밀고 있는 모습이 한심하게 느껴지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귀엽기도 해서 피식하고 웃으며 그녀를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러자 앨리스가 기다렸다는 듯이 내  위에다가 제 오른팔을 턱하니 올려놓았다.

덕분에 전보다 한결 자세하게 들여다볼 수 있게  그녀의 상처는 멀리서 볼 때보다 훨씬 심각했다.


겉면만 살짝 까진 수준인 줄 알았는데 상처 부위가 움푹 패어있었으니까.

그래서 그런 지는 몰라도 까진 게 아니라 살점이 떨어져나간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대체 어쩌다가 다친 거에요?"


"말했잖아. 서두르다가 긁혔다고."

내가 걱정해주는 건 좋지만 그게 동정이 되는 건 싫었던 걸까.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았다. 그냥 이러다 다쳤다하고 답을 하면 끝날 문제를 저런 식으로  돌려서 답을 하는 걸 보면 분명 그런 거겠지.


그런 앨리스의 행동이 이해가 되지 않냐면 그렇지는 않았다.


아마 내가 그녀의 입장이었어도 동정을 사는 것만큼은 피하려 했을테니까.


물론, 그렇다고 원망스럽게 느껴지지 않는  또 아니었다.

'누군 걱정이 되서 팔자없는 눈물 연기까지   했구만..'

해서 살짝 응징을 해주기로 했다.

마침 딱 좋은 수단이  손안에 있기도 했고.


"알겠으니까  좀 고정시켜봐요."

앨리스를 상대로 그리 주문하고는 아까 건네받은 꾸러미를 풀었다.

'역시..'

디아나의 손을 거친 물건 답다고 해야할까.


꾸러미 안에는 외상을 치료할 때 쓰는 약들이  그대로 종류별로 들어있었다.

아무래도 일단 집히는대로 다 때려넣고 본 모양.

덕분에 내가 찾고 있던 것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었다.

그렇게 찾아낸 것을 그대로 꾸러미 안에서 끄집어내자 그저 좋다는 것처럼 헤실헤실 웃고 있던 앨리스의 눈동자가 거칠게 흔들렸다.


"그, 그건.."


"자, 소독부터 해야죠?"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지금 내가 꺼내든 건 상처부위의 소독에 쓰이는 물건으로 기사부에 소속된 이들 사이에서는 더럽게 따갑기로 유명한 물건이었으니까.

그럼에도 다들 이것에 대해 알고 있을 정도로 유명한 것은 그만큼 효과도 좋아서 자주 쓰이기 때문이었다.

그것을 손에 쥔채 앨리스를 향해 다가서니 그녀가 살짝 질린 듯한 표정을 얼굴 위에 띄운 채 그대로 백무빙을 쳤다.

"자, 잠깐만.."

물론, 그런다고 해서 이미 버젓이 존재하는 소파 등받이가 사라지는  아니었다.


앨리스의 뒷편에 든든히 버티고 선 그것의 존재 덕분에 앨리스의 도주는 채 한 걸음도 지속되지 못하고 허무하게 끝나버렸다.

소파 등받이의 존재를 잠시 잊고 있었던 걸까. 도주로가 차단되어버린 탓에 당황한 그녀가 그대로 어색하게 굳어있는 틈을 타 잽싸게 그녀의 무릎 위로 올라갔다.


물론, 추가적인 도주의 가능성을 원천봉쇄하기 위함이었다.


효과는 나쁘지 않았다.

내가 무릎 위로 올라타자마자 금방이라도 소파에서 몸을 일으킬 것처럼 들썩이던 앨리스의 엉덩이가 언제 그랬냐는 듯 얌전해졌으니까.

동시에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는 것이 아무래도 자세가 자세인지라 살짝 민망했던 모양이다.


그걸  숨기고 싶었던 건지 앨리스가 빨갛게 물든 얼굴을 내게서 감추려는 듯 고개를 슬쩍 옆으로 돌렸다.

뭐, 나야 좋았다.


덕분에 그 무엇의 방해도 받지 않고 목표를 달성할  있을 것 같았으니까.


그래서 앨리스의 무릎 위에 단단히 버티고 앉은  손에 움켜쥐고 있던 것의 뚜껑을 땄다.

꽤 단단히 밀봉되어 있었는지 입구 부분을 봉하고 있던 마개 부분을 살짝 힘을 줘서 잡아당기니 '뽕-!'하고 상황과는  어울리지 않는 경쾌한 소리와 함께 알싸한 냄새가 주변으로 퍼져나갔다.

왠지 모르게 병원을 생각나게 하는 그런 냄새였다.


그것이 코밑 부분을 살살 간지럽히는  느끼면서 미리 준비해놓은 깨끗한 천에다가 조심스레 부었다.

곱게 개인 흰 천 위로 짙은 색의 얼룩이 번져나가는 걸 가만히 바라보다가 적당히 젖은 그것을 앨리스의 팔을 향해 가져갔다.


물론, 앨리스도 가만히 있지만은 않았다.

내게 동정을 사기 싫다는 듯 이 정도 상처쯤이야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처럼 행동할 때는 언제고 막상 치료의 순간이 코앞으로 다가오니 그만 쫄보가 되어버린 것일까.


그녀가 황급히 팔을 들어올려 그것을 목표로 삼아 나아가던 내 손의 움직임을 회피했다.

그러더니 어디 만질테면 만져보라는  팔을 머리 위로 높게 들어올리는 게 아닌가?


"아니.."

 행동이 하도 황당해서 나도 모르게 어처구니가 없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니 앨리스가 고개를 뒤로 젖히며 내 시선을 회피했다.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팔 이리 내놔요."

그런 앨리스의 저항을 깨부수는데에는 딱 한 마디면 충분했다.

"가만히 내버려뒀다가 덧나기라도 하면 큰일이잖아요."

일부러 걱정하는 듯한 목소리를 쥐어짜내서 그리 말했더니 내 눈치를 살피듯  얼굴을 힐끔힐끔 훔쳐보던 앨리스가 이내 높이 들어올리고 있던 팔을 천천히 내렸다.

그렇게 그것이 내 눈높이까지 도달한 순간,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놀고 있던 손을 이용해 그것을 꽉 움켜쥐었다.

"자, 이러면 이제 도망  치겠네요?"

"아앗..!"


잘 걸렸다는 뜻으로 그녀를 향해 씩 웃어보이니 그제서야 속았다는 걸 깨달은 앨리스가 아차하는 표정을 지어보였지만 그 순간 이미 내 다른손은 목표를 향해 움직이고 있었다.


소독약으로 촉촉하게 젖은 천이 앨리스의 상처부위에 닿았다.


"윽..!"

움푹 패인 그것을 곱게 개인 천의 끝부분이 슬며시 짓누른 순간 앓는 소리와 함께 앨리스가 몸을 크게 움찔거렸다.


아무래도 자기가 생각했던 것보다  따가웠던 모양.


앨리스의 수난은 그 뒤로도 한동안 이어졌다.


하도 따가워하길래 중간에 적당히 멈춰주고 싶었지만 만일을 생각해서라도 그럴 수가 없었다.

재수없으면 손톱보다도  작은 상처로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것이 사람이라는 생물이었으니까.

이 정도 쯤이야 별 거 아니라 생각해서 방치해뒀다가 그대로 훅 가버린 놈들을 본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보니 쉬이 안심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이만하면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 때까지 소독을 반복하다가 흉터 제거는 물론 상처 치료에도 효과가 있는 카트린느의 특제 연고를 상처 위에다가 꼼꼼하게 펴발랐다.

그리고는 그곳을 붕대로 칭칭 감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적어도 딱지가 앉기 전까지는 무리하면  되는 거 알죠?"


"으음.."


확답을 피하는 걸 보면 약속을 지킬 자신이 없는 모양이다.


하긴, 상황이라는  항상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니까.


"그나저나 큰일이네요.  있으면 시합인데.."


"그때까지는 낫지 않을까?"


"글쎄요."


무리하지 않고 회복에만 집중한다면야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그럴 생각이 없어보였으니까.

가능할지 모르겠다.

그래도 카트린느의 손을 거친 연고를 듬뿍 발라두었으니 여기서는 그 괴물같은 솜씨를 믿는 수밖에 없겠지.


"하필이면 또 오른팔을 다치셔가지고는.."

오른손잡이가 오른팔을 다친 꼴이니 이건 제법 타격이 크다 말할 수 있었다.

싸울 때는 기본적으로 양손을 모두 활용하는 앨리스지만 그래도 정확도나 위력같은 부분에 있어서는 오른팔이 차지하는 역할이 클 수밖에 없으니까.

"그, 그런데 디아나 선배는? 둘이 같이 있지 않았어?"

이 주제로 더 이야기 해봐야 제가 일방적으로 얻어맞는 모습밖에 그려지지 않았던 것일까.

앨리스가 어색하기 짝이 없는 목소리로 화제전환을 시도해왔다. 심지어 그녀에게는 그리 달갑지 않을 것까지 꺼내들어가면서 말이다.

"음, 글쎄요.. 저도 잘.."

"응?"


"보니까 무슨 일이 생긴 것 같더라구요."


약 가지러 간다며 떠났는데 정작 약을 가지고  건 디아나의 부탁을 받은 다른 사람이었다는 점까지 밝히니 앨리스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래? 그 정도면 꽤 급한 일이라는 건데.."

그리 중얼거리던 앨리스가 이내 날 향해 시선을 던져왔다. 혹시 넌 무슨 일인지 알고 있냐고 묻는 듯한 그런 시선이었다.

"말했잖아요. 저도  모르겠다고."

답은 그리 했지만 짐작가는 것마저 없냐면 그건 또 아니었다.


나는 디아나가 남들 몰래 저지른 짓 하나를 알고 있었으니까.


아마 모르긴 몰라도 이번에 급하게 자리를 비운 것과 본국에 있는 레이시아에게 몰래 편지를 부쳤던 것이 서로 관련이 있지 않을까.


그걸 뒷받침해줄 근거같은 건 단 하나도 없긴 했지만 왠지 그럴 것만 같았다.


그렇지만 앨리스에게는 모르는 척을 했다.

"아마 시합과 관련해서 뭔가 일이 생긴 거 아닐까요?"


"흠, 그러려나.."

교류전의 총 책임자라는 권력을 휘두르지 못해서 안달이었던 외무대신 아줌마가 최근 들어 잠잠한 걸 보면 분명 뭔가 서프라이즈를 준비하고 있는 모양인데 그렇다면 순순히 당해줘야 예의일테니까.


그렇기에 디아나가 급하게 자리를 비운 것을 두고 딱히 걱정하거나 그러지 않았다.

내가 짐작하는 게 맞다면 금방 돌아올 거라 생각했으니까.

분명 그랬어야 하는데..


어쩐 일인지 디아나는 새벽이 다 되어서도 돌아오질 않았다.

'이상한 일에 휘말린 건 아니겠지..'

슬슬 그런 걱정이 고개를 들어올리기 시작했을 무렵이었을 것이다.


숙소와 마주하고 있는 정원 저 편에서부터 기다려마지 않았던 이가 마침내 모습을 드러냈다.

급하게 뛰쳐나갔다던 심부름꾼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는지 디아나는 어제 입고 있었던 옷을 그대로 입고 있었다. 그럼에도 흐트러지거나 구겨진 곳이 거의 없이 단정한 걸 보면 일단 엉뚱한 일에 휘말린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뿐만 아니라 그녀는 굉장히 피곤해보이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꼭 마치 명절에 명절음식과 함께 잔소리를 고봉밥으로 얻어먹은 듯한 그런 얼굴이라고 해야할까.

무언가에게 질린 기색이 역력한 얼굴을 하고 있던 디아나가 이내 손을 들어올려 제 얼굴을 쓸어내렸다.

그대로 복귀하자니 표정이 살짝 신경쓰였던 모양.

그렇게 숙소로 복귀한 디아나를 맞이하기 위해 밑으로 내려갔다.

왜 기다리고 있었냐고 물어오면 뭐라고 답을 하면 좋을지 속으로 고심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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