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9화 〉히로인이 되기 전에..
기분이 굉장히 묘했다.
이렇게 수많은 이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클레어의 가슴에 손을 대야한다는 사실이 날 그렇게 만들었다.
심지어 흉터 위치도 문제였다.
이게 뭐 대각선으로 메는 가방끈 마냥 가슴 사이를 관통하는 식이 아니라 왼쪽 가슴서부터 아랫쪽을 향해 뻗어있는 식이다보니 크림을 바르려면 어쩔 수 없이 클레어의 가슴에 손을 대야만 했으니까.
'음..'
기세 좋게 손을 뻗다말고 움찔했던 건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생각해보니 이건 좀 아닌 것 같다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으니까.
누군가 지켜보고 있지 않았다면 이런 고민도 안했을 거다.
까짓거 더한 곳도 만져봤는데 가슴에 손 좀 대는 게 무슨 대수겠냐며 거리낌없이 손을 가져다 댔겠지.
허나 지금은 그렇지가 않지 않은가.
대충 슥 훑어봐도 어림잡아 열 명은 가뿐히 넘어갈 듯한 이들이 눈을 동그랗게 뜬채 나와 클레어를 지켜보고 있었다.
'뭔 구경났나..'
기대감이라는 걸 활활 불태우고 있었는데 갑자기 내가 딱 멈춰버리니 답답하기라도 했던 것일까.
얼굴로 날아와 꽂히는 시선들이 제법 따끔했다.
그래서 그런 지는 몰라도 재촉당하는 느낌이었다.
꼭 마치 누군가 얼른 하려던 거 안 하고 뭐하는 거냐고 귀에다 대고 속삭이는 것만 같은 그런 느낌이랄까.
그래서 더 망설여지는 것이기도 했다.
누가봐도 노골적인 욕망이 느껴지는데 어찌 망설이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문득 클레어의 반응은 어떨지 궁금해서 가슴팍을 오픈한 이후로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그녀의 얼굴을 들여다보기 위해 조심스레 몸을 숙여봤다.
솔직히 말하자면 처음에는 부끄러워서 그러는 줄 알았다.
헌데 알고 보니 그런 게 아니었다는 건 금방 확인할 수 있었다.
얼굴을 들여다보려 하기 무섭게 클레어의 몸이 앞으로 푹 고꾸라졌으니까.
"으으음.."
잠꼬대에 가까운 웅얼거림은 덤이었다.
잠기운에 취한 것하고는 별개로 활짝 열려있는 가슴팍 사이로 들어오는 바람이 쌀쌀하게 느껴졌던 모양이다.
쩝쩝하고 입맛 다시는 걸 반복하던 클레어가 이내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 모습을 보고 깨달았다.
클레어가 정말 제대로 취했다는 걸.
어찌보면 나 이상으로 민망해야할 사람이 그런 식으로 아무렇지도 않아보이니 그토록 신경썼던 게 민망해질 지경이었다.
해서 나도 더이상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어정쩡하게 멈춰선 채 애꿏은 허공만 더듬거리고 있던 손을 다시금 움직이기 시작한 건 그래서였다.
그렇게 많은 이들이 두 눈 동그랗게 뜬채 지켜보는 가운데 새하얀 크림이 덕지덕지 묻은 내 손이 마침내 클레어의 가슴과 맞닿았다.
물론, 만져진 쪽이 잠기운으로 푹 젖다 못해 절여져있는 상태다보니 처음에는 이렇다할 반응이 없었다.
내가 제 가슴을 건드리든 말든 꾸벅꾸벅 졸기 바쁘던 클레어가 처음으로 반응다운 반응을 내보인 건 내가 이왕 하는 거 제대로 하자는 마음으로 그녀의 가슴에 새겨져있는 흉터 위에다가 크림을 펴바르기 시작했을 때였다.
'쯧..'
대체 누가 한 짓인지는 모르겠지만 누군지는 몰라도 참 안목없는 인간이다 싶었다.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 육체에다가 상처를 낼 생각을 한단 말인가.
그런 생각이 안 들 수가 없을 정도로 가까이서 들여다본 클레어의 상체는 잘 짜여진 아름다움을 갖추고 있었다.
군데군데에 자잘자잘한 생채기가 새겨져있음에도 그랬다.
딱 하나 유일한 흠이 있다면 바로 지금 내가 건드리고 있는 커다란 흉터였다.
다른 흉터들은 그래도 크기가 짜잘짜잘한 편이라 야성미라는 걸 덧대주기라도 하는데 이건 뭐 그저 안쓰럽게 느껴질 뿐이니까.
해서 내 나름대로 성심성의껏 크림을 펴발랐더니..
"으응.."
클레어의 입에서 묘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동시에 몸을 잘게 떨어대는데 그 반응 덕분에 알 수 있었다.
클레어가 생각보다 민감한 편이라는 걸 말이다.
술에 취하면 보통 감각이 무뎌진다고들 하는데 그럼에도 이 정도 반응이라면 평소에는 대체 얼마나 민감한 걸까.
'어쩐지..'
수련을 할 때마다 알몸을 고집하더라니만.
'하긴..'
수련복이 까끌까끌한 편이긴 하지.
아마 민감한 몸을 가진 그녀로서는 몸을 움직여댈 때마다 수련복 특유의 까끌까끌한 천이 몸 곳곳을 스치며 지나가는 느낌이 견디기 힘들었던 게 아닐까.
나름대로 추측을 이어나가면서 동시에 부지런히 손을 놀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나저나..'
괜찮을지 모르겠다.
처음 시연대상이 되었던 이가 보여주었던 반응을 떠올려보면 악효가 나타나기 시작하면 꽤나 따끔거리는 것 같던데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기 무섭게 걱정했던 반응이 클레어로부터 튀어나왔다.
"으.."
좋아하는 느낌이라기 보다는 괴로워하는 듯한 느낌에 가까운 음성이 클레어의 입술을 뚫고서 튀어나옴과 동시에 그녀의 몸이 느낄 때하고는 조금 다른 느낌으로 움찔거렸다.
재밌는 건 클레어가 아니라 그녀의 몸이 보인 반응이었다.
이런 걸 두고 몸은 솔직하다고 하던가.
괴로워하는 그녀하고는 달리 그녀의 몸은 은근히 '기쁨'을 내비췄다.
그 증거로 처음 모습을 드러낼 때만 하더라도 별다른 존재감을 보이지 못했던 두 개의 돌기가 조금씩 꼿꼿하게 변해가고 있었다.
그뿐만이랴?
아예 흠칫흠칫 떨리기까지 하는 게 그토록 음란하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그 광경을 보고 그런 느낌을 받았던 건 나뿐만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아까 전부터 은근히 들려오던 숨소리들이 조금씩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본인들은 나름대로 남들에게 들리지 않도록 볼륨을 조절한 것 같은데 그런 게 몇 개나 겹쳐지다 보니 기껏 볼륨을 조절한 게 아무 의미가 없었다.
덕분에 처음의 그 민망한 느낌이 조금씩 되살아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주변을 둘러싼 이들 중에 남성이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이렇게까지 민망함을 느끼진 않았을 것이다.
헌데 지금 나와 클레어를 둘러싼 이들은 어째 하나같이 전부 여성들 뿐이었다.
남성이라고 흉터가 생기지 않는 것도 아닐텐데도 그랬다.
게다가 그 여성'들' 중에 카트린느가 포함되어 있어서 더 문제였다.
안그래도 닭살이 팔을 따라 돋아날 정도로 민망한데 그녀의 존재가 그 느낌을 한층 더 배가시키고 있었으니까.
'뭐하는 거야 진짜..'
질투심에 자기가 대신 나선다던가 그랬다면 차라리 이해가 되었을 것이다.
얼마든지 할 수 있는 행동이고,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니까.
그런데 저렇게 질투심으로 가득 찬 표정을 얼굴 위에 띄워놓고서는 나서지 않고 가만히 지켜보기만 하는 건 대체 무슨 생각인걸까.
내심 그런 의문을 느끼면서도 손을 놀리는 것만큼은 결코 멈추지 않았다.
분위기가 요상하긴 하지만 이왕 시작한 것을 흐지부지 끝내버릴 수는 없었으니까.
그렇게 손가락으로 꾹 누르면 얼마 들어가지 못하고 그대로 튕겨져나올 것만 같은 탄력을 지닌 클레어의 옆가슴을 크림이 묻은 손으로 문지르다가 가슴골 사이로 손을 밀어넣었다.
물론, 클레어의 몸에 난 흉터의 궤적을 따라가기 위함이었다.
"으으응.."
그런 식으로 흉터의 궤적을 따라 부지런히 크림을 펴바르고 있자니 클레어가 다시 한 번 묘한 소리를 냈다.
뿐만 아니라 이번에는 몸을 뒤틀어대기까지 했다.
아무래도 첫 시연대상이었던 여성에는 견디기 쉽지 않을 정도로 따끔따끔한 느낌이 클레어에게는 딱 좋을 정도의 자극이었던 모양.
그래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느새 그녀의 목덜미는 벌겋게 물들어있었다.
이 정도면 아무리 잠기운에 취했어도 깰법도 한데 말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참 잘도 잔다고 속으로 푸념하고 있으니 묘한 광경이 눈으로 들어왔다.
눈으로 들어온 그것은 자그마한 떨림이었다.
어찌보면 경련이라고도 부를 수 있을 것 같은 그것은 길게 늘어진 앞머리 아래로 얼핏 보이는 클레어의 입꼬리 안에 깃들어있었다.
그 탓에 파르르 경련하는 클레어의 입꼬리를 목도한 순간 깨달았다.
잘 자고 있었던 게 아니라 그런 척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상황이 상황이다보니 이 타이밍에 자신이 눈을 떠버리면 안 그래도 묘한 분위기가 더욱 묘해질 것만 같아서 자는 척을 하고 있었던 걸까.
아니면 내 손길을 합법적으로 만끽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기 싫어서?
둘 중에 어느 쪽이 진실일지는 모르겠지만 난 이토록 고역을 치르고 있는데 홀로 거기서 자유로운 모습이 그토록 괘씸하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사무적으로 놀리고 있던 손길에 변화를 준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우선 손끝부터 세웠다.
원래 손끝으로 살살 자극당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자극적으로 느껴지는 법이니까.
어찌보면 별 것도 아닌 변화였지만 그 자그마한 변화가 클레어의 반응을 완전히 뒤바꿔놓았다.
"읏.."
곧게 세워진 손가락 끝이 다른 곳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얇을 수밖에 없는 피부 위를 스치며 지나가는 느낌이 퍽 견디기 힘들었던 모양이다.
여태껏 꿋꿋하게 연기를 펼쳐왔던 모습이 무색하게도 내가 태세를 바꾸고 얼마 지나지 않아 클레어의 입에서 달콤한 신음성이 새어나왔다.
역시 검사라고 해야할까.
허벅지서부터 시작되는 클레어의 허리라인은 그야말로 예술품이나 다름없었다.
디아나의 것하고는 그 느낌이 또 달랐다.
그쪽하고는 달리 이쪽은 살짝 그을려있었으니까.
그런 것이 내가 손을 움직일 때마다 흠칫흠칫거리며 떨리는데 그 광경을 보고 있자니 내 심장이 다 떨렸다.
'미치겠네 진짜..'
주변에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는 이들만 없었어도 어떻게든 했을텐데 말이다.
보는 눈이 한둘이 아니다보니 지금 이상으로 섣불리 뭔가를 시도할 수가 없었다.
'나중에.. 나중에..'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건 나중을 기약하는 것뿐이었다.
그 말을 속으로 몇 번이고 되뇌이면서 남은 부분또한 착실하게 덧칠해나갔다.
그러다보니 알게 된 의외의 사실은..
"흣..!"
클레어의 배꼽 부분이 민감하다는 것이었다.
흉터의 크기가 워낙 크다보니 배꼽 위쪽에도 살짝 걸쳐져 있었는데 별 생각 없이 그곳을 건드렸다가 생각치도 못했던 소리가 튀어나와버린 바람에 나도 모르게 화들짝 놀라서 손을 떼어냈었는데..
그 모습을 보고들 좋다고 히죽대더라.
카트린느의 얼굴만큼은 그렇지 않긴 했지만 말이다.
대충 그런 분위기 속에서 크림 도포 작업을 끝마치니 이제는 그걸 닦아낼 차례였다.
원래대로였다면 다 바른 다음에 약효과 나타날 때까지 시간을 두고 기다렸겠지만 이번만큼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바르는 내내 사방에서 알게 모르게 방해가 들어와서 생각했던 것보다 시간이 몇 배는 더 걸렸으니까.
다만 크림을 발라놓은 위치가 위치다보니 이전처럼 물을 확 끼얹는 식으로 처리할 수는 없었다.
그랬다간 벗다가 만 상태로 클레어의 몸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져있는 것이 홀딱 젖어버릴테니까.
해서 대체 무슨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아까 전부터 구경에 여념이 없는 카트린느에게 적당한 천과 물을 요구했다.
그리고는 그녀가 허둥지둥 건네준 것들을 건네받아 그걸 이용해 클레어의 상체를 조심스레 닦아냈다.
"흐으.."
간지러움, 그리고 따끔따끔함, 그리고 다시 간지러움으로 이어지는 콤보는 클레어의 몸을 제대로 달궈놓았다.
그 정도로 클레어의 입술 사이에서 새어나오는 숨결은 뜨끈뜨끈했다. 오죽하면 입고 있는 옷 위로도 그 뜨거움이 느껴질 정도였다.
그러면서 동시에 술 냄새가 확 났다.
그렇지만 불쾌하지는 않았다.
바이올라의 것이 그러했듯 클레어의 숨결 속에도 과일의 것인지 꽃의 것인지 모를 달콤한 냄새가 절묘하게 섞여있었으니까.
몸을 살짝 앞으로 수그린 채 숨을 포옥하고 내쉰 클레어가 이내 자세를 바로했다.
그와 함께 드러난 풍경은 그녀가 처음 상의를 풀어헤쳤을 때하고는 완전히 달랐다.
아무래도 워낙 깊은 흉터다보니 첫 시연대상이 되었던 여성에게 일어난 변화만큼 극명하게 달라지진 않았지만 누가봐도 효과가 있었다는 걸 알 수 있을 정도로 흉터가 옅어졌으니까.
처음부터 지켜봤던 이라면 감탄할 수밖에 없는 변화였고, 덕분에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이들의 입에서 일제히 탄성이 새어나왔다.
그리고 그건 곧 구매로 이어졌다.
커다란 흉터에도 제대로 효과가 있다는 걸 확인도 했겠다 더는 구매를 망설일 이유가 없어진 이들이 일제히 제 지갑을 내놓기 시작했다.
하나같이 몸 곳곳에 크고 작은 흉터가 있는 이들이었다.
그들이 포문을 열어준 덕분에 다른 이들또한 하나둘 구매행렬에 동참했다.
그 열기가 어찌나 뜨거운지 클레어와 카트린느가 챙겨온 수량이 순식간에 동이 나 버릴 정도였다.
그리고 그 분위기에 이끌린 이들이 하나둘씩 끼어들기 시작하더니..
"더 가져와..! 아니, 다 가져와!!!"
"크르르르.. 못 참겠다.."
"내놔!! 내놓으라고!!"
물건을 더 받으러간 카트린느가 돌아오는 걸 기다리지 못하고 말릴 수 없는 충동에 휩싸인 이들이 우리가 차려놓은 부스를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