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로인이 되기 전에 (237)화 (236/366)



〈 237화 〉히로인이 되기 전에..

뭔가 기억해낸 것 같은 얼굴을  카트린느를 앞장 세운 뒤 그 뒤를 따라가니 눈앞으로 나타난 것은 쓰이지 않고 방치되어 있는 테이블들과 의자였다.

개중에서 흠집이 없고 깨끗한 것들만 골라낸 뒤에 셋이서 힘을 합쳐 그것들을 옮겼다.


목적지는 아까 카트린느가 호객행위를 하고 있던 길가였다.


물론, 말만큼 쉽지는 않았다. 나름대로 저항이 있었으니까.


안 그래도 손님의 발길이 뚝 끊어져서 짜증나고 초조해 죽겠는데 참가자도 아닌 것들이 자기네 부스 앞에 뭔가를 차리기 시작하니 저 새끼들은 대체 뭐하는 새끼들인가 싶었겠지.


그래서 그런 지 몰라도 몇몇 이들이 지금 이게 뭐하는 짓이냐는 식으로 따지러 왔지만 그렇게 찾아온 이들은 우릴 찾아온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그대로 돌아서야만 했다.

 옆을 지키고 있던 클레어 덕분이었다.

술에 취해있는 와중에도 자릴 찾아온 이들이 우리에게 하등 도움이 되질 않는 인간들이라는  판단할 정신 정도는 남아있었던 건지 아니면 그냥 내가 위협당하는 듯한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저기 지금 이게 뭐하는.."

그들이 셋 중에서 그나마 만만해보이는 나를 골라서 무어라고 따지려 들기 무섭게 클레어가 먼저 나서서 그들을 쏘아보았으니까.

그러면서 알게된 사실은 클레어가 평소에 많이 억누른채로 지낸다는 것이었다.


술기운으로 머리가 알딸딸하니 더는 억누를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모양인지 당사자가 아닌 내가 느끼기에도 상당히 위협적인 기세가 우릴 찾아온 이들을 향해 날아들었다.

옆에서 그걸 받아낸 내 피부가  따끔거렸을 정도인데 그걸 정면으로 받아낸 이들은 어땠겠는가?

 잡고 무어라고 항의를 해대려던 이들은 기껏 벌려놓은 입에서 아무 말도 내뱉지 못하고 그대로 얼어버렸다.


"으.."

다들 하나같이 그런 소리만 내고 있던 가운데 개중에서 한 명이 간신히 우릴 찾아온 용건을 입밖으로 내뱉었다.


"지, 지금 이게 대체 뭐하는.."

솔직히 말하자면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얼굴만 보면 창백하기 그지없는 것이 금방이라도 픽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데 말이다. 앞에 선 여성들이 일종의 가림막 역할을 해줘서 그나마 좀 상태가 나았던 걸까.


그랬다.


우릴 향해 용건을 밝힌 이의 성별은 놀랍게도 남성이었다.


남자가 용기를 내어 나선 판국에 여성으로서 겁에 질려있을 수만은 없었던 걸까.

그  마디 뒤로 다른 이들의 목소리가 덧붙여졌다.

물론, 어렵사리 용기를 낸 것 치고는 그리 효과가 없었다.


정신이 말짱한 상태라면 모를까 취할대로 취해버린 클레어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어쩌라고?'


꼭 그리 묻는 듯한 클레어의 시선에 기껏 용기를 냈던 이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 팍 쪼그라들었다.


 시점에서 사실 유야무야 넘어가도 상관없긴 했지만 설명 정도는 해주기로 했다.

기껏 따지러 와서는 한데 모여 오들오들 떨고 있는 이들이 안쓰럽게 느껴져서 그런 게 아니었다.


나중을 생각해 명분을 쌓아두기 위함이었다.

해서 클레어를 향해 손을 뻗어 그녀를 진정시킨 뒤 그들의 앞으로 나섰다.


그래도 클레어보다는 내가 나았던 걸까. 앞으로 나선 내 얼굴을 확인한 이들의 얼굴이 한결 편안해졌다. 물론, 그렇다고  뒤에 버티고 선 클레어의 존재를 완전히 잊지는 않았는지 여전히 딱딱한 편이긴 했지만 말이다.


그렇게 그들의 얼굴이 한결 편안해진 타이밍에 맞춰서 설명을 시작했다.

우리가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음에도 이런 행동을 하고 있는 이유에 대한 것을 말이다.

생각했던 것만큼 손님이 몰리지 않아서 곤란함을 느끼고 있던 건 그들도 마찬가지였는지 다행히 반응이 그리 나쁘지 않았다.

개중에서 몇몇 이들은 이왕 이렇게   지푸라기라도 잡아봐야 겠다고 생각한 건지 자기들이 도와줄  없냐고 묻기도 했다.

물론, 기껍게 받아들였다.


다다익선이라고 노동력이야 많으면 많을수록 좋았으니까.


그런 그들의 조력에 힘입어 후다닥 세운 것치고는 제법 그럴 듯하게 생긴 간이부스가 길가에 차려졌다.


바로 그 순간 살짝 흘러나온 땀을 훔치고 있던 카트린느 쪽을 돌아보며 물었다.


"그래서 이번에 팔려고 준비한  뭐에요?"


카트린느의 손을 거친 것이니 뭐든 보통은 훌쩍 넘겠지만 그래도 홍보하는 물건의 정체 정도는 알아둬야하지 않겠는가.

해서 그리 물었던 것인데 덕분에 알 수 있었다.

카트린느가 만든 약이라는 장사하는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치트키나 다름없는 물건을 들고도 그토록 손님이 뜸했었던 이유를 말이다.

"흉터 제거용 크림하고 미백제인데.."

최대한 많은 이들에게 팔아보겠답시고 나름대로 고심해서 품목을 결정했던 것 같은데 솔직히 말하자면 애매하다는 생각밖에  들었다.

정확히는 수수하달까.

손님의 이목을 확 잡아끌만한 포인트가 없었다.


효과야 뭐, 카트린느가 대충 만들지 않았다면 시중에 나도는 것에 비해 압도적일 것이다.

그렇지만 손님이  사실을 알  있겠는가.

당연히 알 리 없을 것이고, 그런만큼 기껏 차려놓은 부스에서 그런 것들이나 파는 모습을 보며 '굳이?'라는 생각밖에 하지 않았을테지.

그런만큼 시중에서도 흔히 구할 수 있는 물건을 굳이 여기서 사갈 필요성또한 느끼지 못했을 것이고 말이다.

그걸 깨는 방법은 간단하다.

같은 흉터 제거제라도 카트린느의 손을 거치면 얼마나 대단해지는지 알려주면 되니까.

마침 아까의 소란과 부스를 차린답시고 여러명이서 바쁘게 움직여댄 탓에 주변을 오가던 이들의 이목이 적당히 이쪽을 향해서 몰려있는 상황.

쉽게 말해서 밥상이 다 차려진거나 다름없는 상황이었기에 내가 할 건 거기에다가 숟가락하고 젓가락을 놓는 것 뿐이었다.


그리고 나면?


카트린느의 물건이 얼마나 사기적인지를 알아본 이들이 아라서 그쪽 부스로 몰려들겠지.


해서 카트린느와 클레어를 불러 시연용으로 쓸 물건을 가져다달라고 부탁했다.

사실 카트린느만 보내도 상관없긴 했지만 그럼에도 클레어를 딸려보낸 건 그쪽 부스를 지키고 있는 이들이 주제도 모르고 어깃장을 놓는 걸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얼마나 대단한 신분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클레어를 상대로 깝치긴 힘들테니까. 그 잠깐 사이에 장사가 안 된다는 부담감에 짓눌려서 홰까닥 돌아버리지 않았다면 분명 그럴테지.


그렇게 둘에게 물건의 조달을 부탁한 다음에 졸지에 조력자 신세가 되어버린 이들이 가져다  흰 천으로 뒤덮인 테이블에 앉아 주변을 지나다는 이들의 얼굴을 찬찬히 눈으로 훑었다.


당연히 시연대상을 고르기 위함이었다.


'누가 좋으려나..'

이왕이면 좀.. 호구같은 사람이었으면 좋겠는데.

속으로 그리 중얼거리고 있던 순간 눈으로 들어온 것은 굉장히 순박하게 생긴, 이제 막 20살 중반을  넘겼을  같은 액면가를 가진 여성이었다.

어찌나 순박하게 생겨먹었는지 벌써부터 호구의 냄새가 풀풀 풍겨왔다.

허나 천   속은 알아도 사람 속은 모른다고 저렇게 생겨놓고서는 내용물은 생긴 것하고 다를  있었기에 그녀를 내가 앉아있는 테이블로 불러들이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  테스트를 해보기로 했다.


"거기 누나!"

참으로 다행히도 그녀는 무사히 테스트를 통과했다.

내 입에서 그런 말이 튀어나가기 무섭게 그녀가 움찔하며 내쪽을 돌아보았으니까.


설마 자길 부른 건가하는 얼굴로 이쪽을 힐끔대는 그녀의 표정을  순간 확신했다.


사람 하나는 제대로 골랐다는 걸.


그만큼 전형적인 호구의 몸짓이었다.


현생으로 따지면 누가봐도 사이비나 다단계일게 분명한 이들의 권유를 받고도 그걸 쉽게 떨쳐내지 못하는 사람의 상이라고 해야할까.


 정도로 호구스러움이 철철 흐르는 관상이었다.


뭐, 그것하고는 별개로 그녀를 내 앞으로 불러들여야만 했기에 나는 여전히 정말 자길 부른 게 맞냐고 묻는 듯한 얼굴을 하고 있는 여성과 똑바로 시선을 맞춘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그녀의 얼굴은 뭐랄까..

'혹시..'하고 기대감어린 표정을 해보이는  또 호구스러웠다.


그야말로 떡줄 놈은 생각도 안 하고 있는데 벌써부터 김칫국을 들이키고 있는 꼴이었으니까.

허나 그걸 티내지 않고 웃는 낯을 유지한채 그녀를 내 앞까지 불러들였다.


은근한 기대감과는 별개로 살짝 낯부끄러웠던 모양이다. 발그레하게 물든 얼굴을  여성이 살짝 머뭇대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웃긴 건 그렇게 주저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면서도 내쪽을 향해 걸음을 내딛는 걸 게을리 하지 않았다는 점이었지만.


혹시 내가 마음을 바꾸기라도 할까봐 걱정이라도 됐는지 부지런히 걸음을 옮겨  앞에 도달한 그녀가 기대감으로 빛나는 시선을 던져왔다.

"앉으시겠어요?"

뭔가 착각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는  눈에 훤히 보였지만 굳이 정정하지 않고 그녀에게 내 맞은편 자리를 권했다.

그런 식으로 그녀를 자리에 눌러앉힌  적당한 화제를 꺼내 말을 붙였다.


그러다가 물건을 가지러 간 클레어와 카트린느가 돌아올 쯔음에..


"혹시 흉터 때문에 고민했던  없으세요?"


본론을 꺼내들었다.

"흉터요?"

"네."


혹시 없으면 어쩌나 했는데 참으로 다행히도 내 말을 들은 여성이 즉시 입고 있던 옷의 소매를 걷어올렸다.

그렇게 드러난 적당한 굵기의 팔에는 꽤나 커다란 흉터가 새겨져있었다.

생김새만 보면 뭔가에 베인 것 같은 모양새인데 말이다.


뭘 하다가 이런 흉악한 걸 몸에 달게  것일까.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속상해 죽겠다는 얼굴을 한채   위에 새겨진 흉터를 내려다보던 여성이 황급히 제 사연을 덧붙였다.

"이,  하다가 다친 거에요."

그러니 오해하지 말아달라며 그녀가 스스로 밝힌 그녀의 직업은 다름아닌 요리사였다.


"보세요. 여기 손에도.."

확실히 보란듯이 펼쳐보인 손에도 자잘한 흉터나 화상자국이 자리하고 있었다.


 모습을 확인한 순간, 이런 말을 하면 좀 그렇지만 정말 잘 골랐다 싶었다.

오죽하면 지금 당장 다시 고르더라도 이만한 시연대상을  만날 수 있을까하는 생각마저  정도였다.

흉터 때문인지는 몰라도 살짝 울적해진 여성을 적당히 달래주고 있으니 비로소 기다리고 있던 이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눈치 좋게 도착하자마자 하얀색 크림이 들어있는 통 하나를 내게 건네는 카트린느를 향해 엄지를 치켜세운  아까 전부터 상대하고 있던 여성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혹시 시중에 나온 흉터 제거제는 써보셨나요?"

안 써봤을 리 없었다.


흉터를 보고 저렇게 속상한 표정을 짓는 사람이 그걸 지우려는 노력을  했을 리 없으니까.

아니나 다를까 그리 물은 순간 여성의 얼굴 위로 번져나간 건 쓰디 쓴 미소였다.

"네, 뭐.. 비싼 것도 사서 써봤는데 딱히 효과는 없더라구요."

내 손에 들려있는 물건을 보고 비로소 내가 자기를 이 자리로 불러들인 목적을 눈치챈 것일까.

 말에 답을 하는 여성의 얼굴에는 '그러면 그렇지..'라고 말하는 듯한 자조적인 느낌이 가득했다.

"그렇지만 이건 좀 다를 겁니다."


내심 기대했던 것하고는 상황이 달라져버렸지만 이왕 이렇게 된 거  때 가더라도 체험이나 해보고 가자는 생각이 들기라도 했던 것일까.


이번에는 다를 거라는 내 말에 여성이 별 기대감없는 얼굴을 한채 날 향해 손을 내밀어왔다.


예의 그 흉터 가득한 손을 말이다.

무심하게 내밀어진 그 손을 잠시동안 내려다보다가 카트린느로부터 건네받은 통의 뚜껑을 열어 그 안을 채우고 있던 크림을 손으로 적당량 퍼냈다.

그리고는 그것을 그대로 여성의 손에다가 조심스레 펴바르기 시작했다.

내게 그런 마음이 없다는  이미 확인했지만 그럼에도 손이 잡히니 부끄러웠던 것일까.

여성의 얼굴이 금세 발그레하게 물들었다.

허나  풋풋하기 그지없는 반응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이내 여성이 표정을 찌푸리기 시작했으니까.

뭔가 걸리는 거라도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 괜찮은 거 맞나요? 따끔거리는데.."


 말에 즉시 제작자인 카트린느 쪽을 바라보니 나와 시선이 마주친 그녀가 자신감 넘치는 얼굴을 한채 고개를 위아래로 흔들어댔다.


보아하니 따끔거려야 정상인 모양.


어찌보면 제 3자라 할 수 있는 내가 자길 돕겠다고 이토록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판국에 가만히 있기 좀 그랬던 건지 카트린느는 그것도 모자라 아예 내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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