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3화 〉히로인이 되기 전에..
고소한 냄새가 났다.
그만큼 질좋은 기름 특유의 고소한 향이 천막 안에 그득하게 들어차 있었다.
코 밑을 맴도는 그 향기를 흠미하면서 천막 안으로 들어서니 한 발 늦게 제법 요란한 소리가 귓가로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어찌보면 비내리는 소리하고도 닮아있는 그 소리는 달궈진 기름에 뭔가를 튀기는 소리였다.
'안주로 튀김이라..'
어떤 튀김이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뭘 팔고 있는 걸까.
궁금한 마음에 살짝 발뒤꿈치를 들어올려 바이올라의 어깨 너머를 확인해보니 눈으로 들어온 것은 공장을 생각나게 하는 풍경이었다.
그만큼 철저하게 분업화된 현장이 그곳에 있었다.
개인적으로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 생각했다. 저런 식으로 공정을 철저하게 나눠놓으면 효율도 효율이지만 퀄리티를 일정하게 유지하기 수월하니 말이다.
다만 이 와중에 의아한 점이 하나 있다면 각 공정을 맡고 있는 이들이 열심히 주물러대고 있는 것이었다.
여전히 기름에 뭔가를 자글자글 튀기는 소리가 들려오는 걸 보면 튀김요리를 파는 게 분명한데 왜 저들은 빵반죽처럼 생겨먹은 걸 만지작거리고 있는 걸까.
라는 생각을 하기 무섭게 눈으로 들어온 광경은 꼭 솥뚜껑을 뒤집어놓은 것처럼 생겨먹은 둥글 넓적한 무쇠팬 안에서 새하얀 반죽들이 자글자글 튀겨지고 있는 광경이었다.
그 모습이 꼭..
'호떡?'
그래 그것을 생각나게 했다.
그것도 그냥 호떡이 아니라 부산같은데 가면 길거리에서 팬에다가 기름 잔뜩 부어놓고 대량으로 튀겨서 파는 것 있지 않은가.
비쥬얼이 어째 그것과 꼭 닮아있었다.
'안주로 호떡..?'
솔직히 말하자면 상상이 잘 안 됐다.
술 다 마시고 난 후에 디저트같은 느낌으로다가 한두 개 집어먹는 식이면 몰라도 메인 안주로 술과 함께 먹는다?
암만 생각해봐도 어울릴 것 같지가 않았다.
그리고 뭣보다 나는 짭짤한 안주를 선호하는 편이었다. 칼칼하거나 매운 건 그 다음이었고.
그래서 살짝 애매한 표정을 하고 있으니 자신을 알아보고 다가온 이를 손짓 몇 번으로 다시 돌려보낸 바이올라가 내쪽으로 돌아섰다.
"혹시 투구빵이라고 먹어봤어?"
투구빵이라니.
당연히 먹어본 적 없었다.
'투구빵..'
상황상 저걸 투구빵이라고 부르는 것 같은데 왜 투구빵일까. 빵 모양이 투구처럼 생긴 것도 아닌데 말이다.
아, 혹시 튀기는 팬이 투구를 뒤집어놓은 것처럼 생겨서?
고개를 가로젓는 것으로 바이올라의 물음에 답을 하면서 나름대로 추측을 해보고 있자니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잔잔한 미소를 입가에 머금은 바이올라가 내가 추측한 것과 비슷한 설명을 입에 담았다.
"전시 상황중에 조리도구가 없어서 급한대로 팬을 이용해 가지고.."
튀겨서 먹은 것이 이 요리의 시초라며 간단하게 설명을 마무리한 바이올라가 이내 내게 제안을 해왔다.
혹시 관심이 있으면 만드는 과정을 가까이서 확인해보지 않겠냐는 식의 제안이었고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말마따나 관심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니었고 그냥 거절하기 애매해서 그랬던 것이었는데..
가까이서 확인해보니 알 수 있었다.
내가 생각한 것하고는 조금 다른 음식이라는 걸 말이다.
호떡은 내용물을 반죽 안에다가 넣고 그걸 동그랗게 싼 다음에 납작하게 꾹 눌러서 만드는 식인데 투구빵인지 뭔지 하는 이건 그런 식이 아니었으니까.
첫 번째 사람이 빵실빵실하게 부풀어오른 커다란 반죽에서 떼어낸 것을 옆으로 넘기면 그 옆에 자리한 사람이 그걸 동그랗게 만들어서 옆으로 굴린다.
세 번째 사람이 그걸 받아서 커다란 밀대를 이용해 쭉쭉 밀어서 최대한 길게 편 뒤에 옆으로 넘기면 그 옆에 위치한 사람이 넓적하게 펼쳐진 반죽 위에다가 일정한 간격으로 내용물을 늘어놓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섯 번째 사람이 그걸 김밥 말듯이 동그랗게 만 다음에 원통형으로 변한 그것을 꾹 눌러주면 납작하게 변한 그것을 자작하게 부어놓은 기름에 튀겨서 완성하는 식이었다.
"속 종류가 되게 많네요?"
눈에 보이는 것만 해도 대충 9가지는 될 뿐더러 속에 아무 것도 넣지 않은 플레인 버전도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가짓수만 해도 총 열 개였다.
그렇게 다양한 맛들의 투구빵들이 철저히 분업화된 공정을 거쳐서 양산되고 있었다.
놀라운 점은 그런 식으로 만들어지는 양이 상당함에도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었다.
그만큼 어마어마한 수의 손님들이 부스 입구 쪽에 마련된 가판대 앞을 왔다갔다 거리고 있었다.
그야말로 만드는 족족 팔려나가는데 솔직히 말하자면 튀기는 담당이 안쓰럽게 느껴질 정도였다.
사방에 배치된 팬에 둘러싸여서 밀려들어오는 반죽들을 정신없이 튀겨대는데 낮은 온도에서 오랫동안 튀겨내는 방식이라서 망정이지 고온에서 튀기는 방식이었다면 진작에 탈수든 탈진이든 하지 않았을까.
그 사람이 안쓰러워서라도 섣불리 주문을 넣기가 좀 그랬는데 바이올라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손짓으로 공정을 총괄하고 있던 이를 제 앞으로 부르더니 그 상태로 그녀가 날 향해 고개를 돌렸다.
"혹시 먹어보고 싶은 맛 있어?"
먹어보고 싶은 맛이라.
맘 같아서는 한 종류씩 골고루 맛보고 싶었지만 이렇게 눈코 뜰새없이 바쁜 판국에 그 말을 입에 담자니 살짝 눈치가 보여서 잠시 고민했다.
'그래도..'
술이랑 같이 먹는 거니까 짭짤한 맛이 좋을 것 같아서 소고기와 돼지, 양고기 중에서 고민하고 있던 순간이었을 것이다.
내가 보인 잠깐의 망설임은 고르기 어려워서 그런 것이라 보았는지 뭘 그런 걸 고민하냐는 느낌으로 씩하고 웃은 바이올라가 정 그렇게 고민이 되면 하나씩 다 먹어보면 되지 않겠냐는 식의 발언을 입에 담았다.
그러더니..
"들었지? 종류마다 세 개씩 챙겨서 옆 부스로 가져다줘."
듣는 입장에서 상당히 무자비한 주문을 아무렇지도 않게 넣어버리는 게 아닌가?
정확히 그 순간이었을 것이다.
하늘같은 황녀 앞이라고 어떻게든 좋은 인상을 남기기 위해 최대한 웃는 낯을 유지하고 있던 담당자의 얼굴 위로 살짝이지만 경련이 일어났다.
아마 바이올라가 앞에 없었다면 '바빠 죽겠는데 왜 와서 지랄이람.'이라고 꿍시렁대지 않았을까.
심지어 바이올라는 거기다 대고 한 마디를 더 얹었다.
"최대한 빨리 부탁할게. 시음하면서 같이 먹을거거든."
"..아, 네. 알겠습니다."
이게 바로 권력의 맛이라는 걸까.
실무자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무자비하기 그지없는 쑤셔박으면서도 바이올라는 아무렇지 않아보였다.
그게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 그녀의 태도 덕분에 새삼스레 실감할 수 있었다. 기본적으로 털털해보이고 때로는 얼빠져 보이는 그녀지만 저래뵈도 제국의 몇 안 되는 황녀라는 걸 말이다.
그렇게 확보한 안주거리의 값은 클레어가 치루기로 했다. 안주값을 낸 것만으로는 조금 부족하다 여긴 건지 클레어는 옆부스에서도 자기가 돈을 냈다.
여러 코스들 중에서 가장 많은 종류의 술들을 맛볼 수 있는 최상급 코스를 체험할 수 있게 되었던 건 그 덕분이었다.
"정말 괜찮으시겠어요?"
그래도 맨입으로 얻어먹긴 좀 그래서 클레어의 지갑사정을 걱정하는 척 그리 물었더니 순간적으로 움찔한 그녀가 이내 거드름을 피우기 시작했다.
"이 정도야 뭐.."
분명 싼 가격은 아니었다.
옷 부스하고 방금까지 있었던 음식 부스에서 쓴 돈을 합쳐도 방금 클레어가 지출한 것에 미치지 못했으니까.
왕국 연합에서 쓴 돈을 합치더라도 그건 마찬가지였다.
그만큼 비싼 코스였고, 그런만큼 분명 클레어에게도 적지 않은 지출이었을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이번 교류전에 인솔역으로 따라나서면서 출장비 명목으로 지급받았다던 걸 이번에 다 털리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척을 하는 건 돈 쓰면서 벌벌 떠는 꼴을 보이자니 모양이 빠져보일 것만 같아서 그랬던 것이겠지.
나랑 단둘이 있었어도 자존심 때문에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을텐데 하물며 이 자리에는 바이올라까지 함께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 더더욱 자존심을 세울 수밖에 없었을 거다.
뭐 덕분에 나야 좋았다.
시음이라고는 하지만 비싼 술을 맛볼 수 있게 되었으니까.
그래봐야 술이 다 거기서 거기라고 주장하면서 취하기만 하면 되는데 비싼 술을 왜 마시는 건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는데 그거야말로 비싼 술 맛을 몰라서 할 수 있는 소리였다.
모름지기 비싼데는 다 이유가 있는 법.
특히나 술같은 게 그랬다.
그렇기에 기대가 될 수밖에 없었다.
'자..'
과연 어떤 술들이 등장해서 날 즐겁게 해줄까.
이 순간만큼은 관찰같은 걸 잠시 내려놓고 즐겨도 될 것 같아서 손을 살살 비비면서 은근히 기대감을 드러내고 있던 순간이었을 것이다.
음식보다는 술을 먼저 맛보게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음식이 먼저 나왔다.
아무래도 황녀가 직접 넣은 주문이다보니 우선적으로 처리했던 모양.
덕분에 갓 튀겨져 허연 김을 풀풀 피워올리는 튀긴 빵들이 테이블 위를 가득 채웠다.
아무리 생각해도 튀김, 그것도 갓 튀겨져나온 것이 풍기는 냄새만한 게 또 없는 것 같았다.
숨을 들이킬 때마다 지독할 정도로 매혹적인 냄새가 콧속으로 흘러들어오며 침샘에서 침이 콸콸 흘러나와 입안을 적셨다.
'어우..'
이런 건 막 나왔을 때 바로 맛봐줘야 하는 건데 말이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둘은 술이 나올 때까지 기다릴 것 같은 눈치라서 눈물을 머금고 거기에 편승할 수밖에 없었다.
쉽지는 않았다.
삼켜도 삼켜도 침이 쉬지 않고 흘러나와서 그게 은근히 고역이었으니까.
그 소리가 들리기라도 했던 걸까.
언제 나오나하고 점원이 사라진 방향을 살피고 있던 바이올라가 내쪽을 돌아보며 제안을 해왔다.
"보니까 준비가 끝나려면 좀 걸릴 것 같은데 우선 이것들부터 맛좀 보고 있을까요?"
사양할 이유는 없었다.
안 그래도 기껏 산 볶음국수를 죄다 클레어의 몫으로 떠넘겼던 탓에 거의 공복이나 다름없는 상태로 지금까지 방치되었던 위장이 자긴 대체 언제 챙겨줄 생각이냐면서 비명을 질러대고 있던 참이었으니까.
꼬르르륵-
조금 더 방치해두면 옆에 앉아있는 바이올라나 클레어한테까지 들릴 정도로 커질 것 같아서 곧바로 고개를 끄덕여 그녀의 제안을 수락했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앞접시와 식기가 내 앞에 준비되었고, 그렇기에 나는 어떤 걸 맛볼지만 선택하면 됐다.
'일단 처음에는..'
안에 아무 것도 들어가지 않은 기본이 괜찮을 것 같았다.
어쩌면 밋밋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 상태라면 뭘 먹어도 맛있게 느껴질 것 같기도 했고.
해서 기본이라 표시되어 있는 걸 골라 내 앞으로 가져왔다.
그리고는 시간이 꽤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뜨거운 김을 풀풀 피워올리고 있는 그것을 집게를 닮은 식기를 이용해 집어들어 그대로 입쪽으로 가져왔다.
'어우야..'
멀리 떨어져있을 때도 그랬는데 가까이서 맡으니 더 참기가 힘들었다.
해서 곧바로 입을 크게 벌려 그것을 한 입 베어무니..
빠자자작-
듣기만해도 정신이 아찔해지는 바삭한 소리와 함께 내 이빨에 짓눌린 것이 그대로 부숴져내렸다.
그렇게 노릇노릇하게 튀겨져 갈색으로 변한 겉면을 뚫고 안으로 들어가니 내부는 느낌이 또 달랐다.
우선은 부드러웠다.
동시에 촉촉했다.
그런 것들이 겹겹이 겹쳐져서 층을 이루고 있었다.
덕분에 부드러움에도 살짝 쫀득쫀득한 느낌이 났다.
거기다가 속살을 씹으면 씹을수록 버터 특유의 고소한 맛이 혀에 착하고 감겨오는데..
'손님이 많을만 하네.'
그런 생각이 절로 들었다.
거기에 은근히 힘을 보태고 있는 것이 겉면에 살짝 흩뿌려진 설탕이었다.
무슨 핫도그에 바르듯이 허옇게 변할 정도는 아니고 지나가다 묻은 느낌으로 발려있는 것이 간간히 훅 들어오는데 덕분에 질릴 새가 없었다.
"어때? 괜찮아?"
그걸 지금 질문이라고 하는 걸까.
질문을 받은 즉시 고개를 끄덕이니 바이올라가 다행이라는 듯 얼굴 위로 미소를 띄워보였다.
그런 식으로 허기진 속을 달래고 있자니 테이블 위로 등판한 것은 상당히.. 특이한 색의 음료였다.
혹시 이 세계에도 신호등같은 게 있는 걸까.
식전주 느낌의 가벼운 느낌이라며 들고 온 것들의 색이 어째 심상치가 않았다.
점원이 가져온 건 총 세 병이었는데 순서대로 빨간색, 노란색, 연두색의 액체가 병 안을 채우고 있었으니까.
묘하게 어떤 치킨을 생각나게 하는 색 조합이라서 불안해하고 있으니..
뽕-!
경쾌하기 짝이 없는 소리와 함께 달큰하면서도 우유를 생각나게 만드는 냄새가 콧속으로 흘러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