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로인이 되기 전에 (232)화 (231/366)



〈 232화 〉히로인이 되기 전에..

탈의실에서 걸어나오는 클레어의 모습을 본 순간 결심했다.


이건 사야겠다고.


해서 값을 치르러가기 전에 바이올라가 입고 있는 옷과 잘 어울릴만한 것을 골라 그녀의 손에 쥐어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지금 입고 있는  잘 어울려서 다른 걸 고르기가  그랬다는 말만으로 넘어가자니 살짝 양심에 찔렸으니까.

참으로 다행히도 여우인지 뭔지 모를 것의 모피로 만들어진 흰색의 목도리 같은 것이 하나 있어서 그걸로 골랐다.

그것만큼 지금 바이올라에게 잘 어울릴 것 같은  또 없을 것 같았으니까.


'그리고 뭣보다..'

복장이 복장인지라 살짝 추워보이기도 했고.

다행히 그녀는 내가 고른 것을 상당히 마음에 들어했다. 이걸  번 해보는 게 어떻겠냐는 식으로 건네주기 무섭게 그것을 목덜미에다가 두르더니 그 상태로 잘 어울리냐고 물어왔으니까.

물론, 당연히 잘 어울렸다.

따뜻해보이기도 했고.


제 꼬리만큼은 못해도 모피의 보드라운 감각이 마음에 들었던 것일까.


아니면 내가 골라준 거라 그새 애착을 갖게 된 것일까.

 중에 어느 쪽인지는 모르겠지만 잘 어울린다는 내 말에 바이올라가 그것으로 입가를 가린채 흐흥하고 귀엽게 웃었다.


문제가 발생한 건 거기서부터였다.

이제는 네 차례라면서 둘이 저마다 들고  것을  향해 들이밀었으니까.


초롱초롱한 눈을 한채 건네지는 것들을 차마 거절할 수는 없어서 잠시 어울려주기로 했다.

그렇게 팔자에도 없는 인형놀이까지 했건만 소득은 딱히 없었다.


나야 그냥 편해보이길래 입었을 뿐인데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그 복장의 파괴력이 상당했던 모양인지 둘이 들고 온 걸로 갈아입고 모습을 드러낼 때마다 돌아온  살짝 애매하다는 반응이었으니까.


좋기는 한데 평소 입고 다닐만한 복장은 아닌지라 성에 차질 않아하는 느낌이라고 해야할까.

그렇다보니 결국에는 구매하지 않는 쪽으로 이야기가 되었고, 덕분에 클레어가 입은 것과 바이올라의 목덜미를 점령하고 있는 것의 값만 치루면 되었는데..


거기서 약간의 충돌이 벌어졌다.


누가 계산을  것인지를 놓고 클레어와 바이올라가 기싸움을 벌이기 시작했으니까.


먼저 포문을 연 것은 의외로 클레어였다.

오늘 안내해준 것도 있고 하니 그 보답도 할겸 여기서는 자신이 내겠다는 식으로 말을 하는 클레어의 행동에 바이올라가 싱긋 웃으며 그것을 맞받아쳤다.

"아뇨, 모처럼 방문해주셨는데 여기서는 당연히 제가 내야죠."

이래뵈도 내가 이곳의 호스트라 할 수 있지 않느냐.


그러니 내 손님에게 돈을 내게  수는 없다.


라는 식으로 말이다.

그런 식으로 시작된 둘의 기싸움을 보며  생각은 딱 하나였다.

'진짜..'

쓸데없는 걸로 기싸움을 한다고.


이러고 있을 시간에 그냥 아무나 내고 나머지 부스를 즐기는 편이 훨씬 더 나을텐데 저게 대체 뭐하는 짓이람.

한편으로는 그런 둘의 행동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되기도 했다.

스스로를 과시하고 싶어하는  인간의 본능이나 다름없으니까. 하물며 호감이 있는 이성 앞이라면?

말할 것도 없겠지.

그렇다고 둘다 자존심 때문에 저러는 건 아닌 것 같았다.

그런 느낌이라기 보단느 차라리 내가 입고 있는  어떻게든 자기가 계산하고 싶어하는 느낌?

아무래도 그런 느낌이라서 제법 치열하게 기싸움을 벌이고 있는 둘을 상대로 둘이 알지 못하는 사실을 일러주었다.


"제껀 이미 계산이 끝난 상태니까 그냥 각자 계산하시면 되지 않을까요?"


 그리 내뱉은 순간이었을 것이다.

둘의 얼굴 위로 '응..?'이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이 떠올랐던 것은.

미리 짜기라도  것마냥 둘이 거의 동시에 그런 걸 얼굴 위로 띄워보이더니 그건 또 무슨 소리냐고 묻는 듯한 눈빛을 보내오는데..

솔직히 조금 웃겼다.


타이밍이 너무 절묘해서 무슨 꽁트라도 보는 듯 했으니까.


뭐, 우스운 것하고는 별개로 답을 하긴 해야했기에 사실을 조금 각색한 것을 그대로 입에 올렸다.


"보자마자 마음에 쏙 들길래 바로 사버렸거든요."

실은 바이올렛이 사준 거라고 곧이곧대로 밝힐 수는 없는 노릇이었기에 대충 그렇게 둘러대니 바이올라와 클레어가 아쉽다는  살짝 입맛을 다셨다.


물론, 그건 어디까지나 잠깐에 불과했고 바이올라 쪽은 금세 뿌듯해하는 얼굴이 되었다.


마치 우리나라 음식을 맛있게 잘 먹는 외국인의 모습을 보는 듯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던 것도 잠시 바이올라가 클레어를 상대로 타협안을 내밀었다.

기싸움을 벌일 이유 자체가 사라져버렸으니 더는 기싸움을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모양.


그리고 그건 클레어또한 마찬가지였던 모양인지 그녀가 바이올라가 내민 타협안을 받아들였다.

덕분에 클레어가 걸치고 있는 것과 바이올라의 목에 둘러져있는 건 바이올라가 계산하게 되었다.


그렇게 제국에 소속된 온갖 종족의 복식을 판매하는 부스를 빠져나오고 나서도 계속해서 구경을 이어나갔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알게된 건 왕국 연합 측 부스하고는 본질적인 느낌 자체가 다르다는 것이었다.


왕국 연합측 부스가 몇 대째 한 분야에만 투자한 전문기업이 꾸려놓은 듯한 느낌이었다면 제국 측 부스는 뭐랄까 대기업 느낌이 났으니까. 그것도 그냥 대기업이 아니라 이런저런 분야에 죄다 발을 걸쳐두고 있는 초거대기업이 각 잡고 제대로 차려놓은 듯한 부스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만큼 온갖 종류의 부스들이 길을 따라 즐비하게 늘어서있었다.


개중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스는 뭐니뭐니해도 약학 쪽과 관련된 부스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다른 부스들도 이용객이 상당한 수준이었지만 그곳은 말 그대로 압도적인 수준이었으니까.


그렇다보니 시선이 안 갈래야  갈 수가 없었고, 그런만큼 많은 이들의 발걸음이 자연스레 그쪽을 향했다.


그야말로 사람이 사람을 불러모으는 꼴이랄까.


그래서  가볼 수가 없었다.


대체 뭐가 있기에 저토록 사람이 몰렸나 싶었으니까.


해서 바이올라와 클레어를 데리고 그곳으로 들어섰고, 그 안으로 들어서고 나서야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이렇게까지 사람이 몰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말이다.

일단 파는 품목부터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즐거운 '밤'을 보내는데 도움이 될만한 갖가지 약품들이 그곳을 가득 채우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부스를 채우고 있는 손님들 중 대부분이 여성이었다.

그렇다고 남성 손님이 적냐면 그건  아니었다.


여성 손님들에 비하면 적다는 거지 만만치 않은 수의 남성들이 부스 안을 채우고 있었으니 말이다.

  부류가 어우러지니 부스가  그대로 미어터지려고 했다.

여성들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남자들은 대체 뭘 보고 있길래 저토록 흥미진진해하는 표정을 하고 있는 걸까.

그 부분이 궁금해서 직접 다가가서 확인해보니 접객원 복장을 한 남성  명을 손님들이 둥글게 둘러싸고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점원이 팔고 있는 것은 웬 크림같은 것이었다.


화장품같은 걸까.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렇게 계속해서 피부에 좋다는 걸 강조할 이유가 없으니까.

웃긴 건 그를 둘러싼 손님들의 반응이었다.


점원이 뭔가를 할 때마다 생생하기 짝이 없는 반응이 손님들의 입에서 터져나왔다.


처음에는 물건이 좋아서 그런 건가보다 싶었는데 계속해서 지켜보다보니 자연스레  수 있었다. 저건 물건이 좋은 것도 있지만 직원 덕이 크다는 것을 말이다.


무슨 놈의 입을 말 그대로 쉬지않고 털어대는데.. 그냥 터는  아니라 굉장히 잘 털었다.


오죽하면 하나 정도는 사두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그렇게 약팔이 현장을 구경하고 있으니 문득 여성 쪽은 어떨까 싶어서 그쪽을 향해 고개를 돌려봤다.


그 순간 눈으로 들어온 건 은근히 그쪽을 힐끔거리고 있는 바이올라와 클레어의 모습이었다.

아까 여자 손님들이 몰려있는 곳을 지나칠 때 들었던 이거 하나면 화끈한 밤을 보낼 수 있다는 멘트가 마음에 걸리기라도 했던 모양이다.


차마 그쪽에서 시선을 떼어낼 생각을 못하는데..

"음, 저쪽도 한 번 가볼까요?"

많이 궁금해하는 것 같아서 둘을 향해 나름대로 조심스럽게 제안을 해봤더니 돌아온 것은 도둑이 제 발을 저리는 듯한 반응이었다.


어깨를 흠칫대는 둘의 손을 잡아끌고 여자들이 몰려있는 쪽을 잠시 구경하다가 그대로 그곳을 빠져나왔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리 하지 않으면 둘이 당장이라도 그곳에 진열되어 있는 걸 싹다 털어버릴 것만 같았으니까.


그런 식으로 중간에 약간의 헤프닝이 있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제국  부스 탐방은 굉장히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든 생각은 제국 측이 정말 준비를 잘헀다는 것이었고.

그야말로 거대한 집단의 힘이 올바른 방향으로만 오롯이 집중되었을 때 나올 수 있는 최상의 결과를 가져다놓은 듯한 느낌이라고 해야할까.

보면 볼수록 감탄이 절로 나왔지만 그렇다고 마냥 감탄하고 있을 수만도 없었다.

그도 그럴 곳이 명백히 따져보면 이곳은 적진이었으니까.

"음.."

해서 어떻게하면 이걸 이겨먹을 수 있을까 나름대로 고심하고 있으니 옆에서 걷던 바이올라로부터 질문이 날아왔다.


"왜?"

"아, 그냥.. 흥미로운 게 참 많다 싶어서요."

내 칭찬을 들으니 기분이 좋아졌는지 순식간에 우쭐해진 그녀가 가볍게 어깨를 으쓱거리며 이만한  준비하기 위해 자신들이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은근슬쩍 어필해오기 시작했다.


"그냥 물건들만 쭈르륵 나열해놓으면 보는 입장에서 무슨 재미겠어. 그래서 부스에 들리는 사람들이 최대한 그곳을 즐길  있는 방향으로.."

컨셉을 잡았다며 신나게 떠들어대던 바이올라가 이내 '아!'하고 탄성을 내뱉었다.

그러더니..

"혹시 술은 좋아해?"


 향해 그리 묻는 게 아닌가?


이 타이밍에 갑자기 술이라니.


너무 갑작스러운 질문이라 다른 것보다 당혹스러움이 앞섰지만 일단은 고개를 끄덕여 긍정을 표했다. 좋고 싫음을 따지자면 좋아하는 쪽이 맞긴 했으니까.


아무래도 그게 그녀가 원하던 대답이었던 모양이다.

질문을 던져놓고 내가 대답하기만을 기다리던 바이올라의 얼굴이 활짝 피어났다.

그 상태로 그녀가 이번에는 클레어를 향해 같은 질문을 내뱉었다.

"그.. 혹시  좋아하시나요?"


이미 내가 그렇다고 답을  상황에서 분위기를 깨뜨리긴 좀 그랬는지 조심스럽기 그지없는 목소리로 던져진 질문에 클레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그건 대체  물어본 걸까.

그건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소개시켜주고 싶은 곳이 있다며 바이올라가 나와 클레어를 어딘가를 향해 안내하기 시작했으니까.


그렇게 바이올라를 따라 움직인 끝에 도착한 곳은 다른 곳과 크게 다를  없는 부스였다.

적어도 겉모습만큼은 그랬다.

다만 내부까지 그렇지는 않은 듯 했다.

사람들로 북적북적해도 소란스러움 정도에 그쳤던 다른 부스들하고 다르게 지금 향하고 있는 곳은 안에서부터 새어나오는 온갖 소리들로 벌써부터 시끌벅적했으니까.

그러면서 동시에 꽃향기라던지 과일향같은 게 슬금슬금 콧속으로 흘러들어오기 시작하는데..


그걸 맡은 순간 깨달았다.


'술이네.'

 안에서 팔고 있는 물건의 정체를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바닥까지 드리워진 천을 걷어내며 부스 안으로 들어서니 눈앞으로 들이닥친 건  그대로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술을 한 곳에다가 모아놓은 듯한 풍경이었다.

"여긴.."

"제국 각지에서 생산되는 전통주를 체험해볼 수 있는 부스야."


역시나.

딱 예상했던 그대로의 내용물이었다.


그래서 나와 클레어를 여기로 데려왔다는 건.. 아마 한 잔 하자는 의미겠지.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기 무섭게 비슷한 내용의 제안이 바이올라의 입에서 흘러나왔고 그에 고개를 끄덕여 수락의 의사를 밝혔다.

안 그래도 한참동안이나 빨빨거리고 돌아다닌 탓에 슬슬 목이 마르던 참이었으니까.

'살짝 목만 축이는 정도면 뭐..'

괜찮겠다 싶어서 수락했던 것인데 아무래도 바이올라는 이왕 한 잔하기로 한 거 제대로 해볼 생각인 듯 했다.

"그러면 우선 같이 먹을 것부터  사올까?"

술자리라고 술만 마실 수는 없지 않겠냐면서 그녀가 체험부스 옆에 딸려있던 또다른 부스를 향해 나와 클레어를 잡아끌기 시작했다.

그렇게 바이올라에게 이끌려 옆부스로 넘어간 순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제국 측은 교류전에 진심이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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