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로인이 되기 전에 (231)화 (230/366)



〈 231화 〉히로인이 되기 전에..

클레어의 반응은 조용했지만 극적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눈을 크게  상태 그대로 굳어버렸으니까.


보아하니 내게 이런 식의 권유를 받게  거라고는 생각 못했던 모양이다.


금방이라도 뭔가가 터져나오기라도 할 것처럼 크게 뜨인 눈동자가 좌우로 흔들렸다. 거기서부터 시작된 시선이  팔 위에 걸쳐진 랑인족 여성의 전통복장에 그대로 내려꽂혔다.


클레어는 그 뒤로도 한참동안을 그곳에서 시선을 떼질 못했다.

그런 클레어만큼은 아니지만 제법 격렬한 반응을 보여준 이가 있으니 그건 다름아닌 바이올라였다.

생각치도 못했던 방식으로 성립된 커플룩 떄문에 모처럼 기분 좋게 커플이  것만같은 달달한 느낌을 만끽하고 있었는데 거기에다가 클레어를 끼워넣으려 하는 내 선택이 내심 못마땅했나 보다.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았다.


그게 아니고서야 저렇게 주둥이를 쭉 내밀고 있을 이유가 없으니까.

'저건..'


누가봐도 섭섭한 감정의 주둥이였다.

그만큼 댓발 튀어나온 바이올라의 입술 위에는 섭섭하다는 감정이 묵직하게 얹혀져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이올라가 내 행동에 딴지를 건다거나 제지를 하지 않았던 건 아까도 했었던 착각이 지금도 절찬리에 진행중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  클레어에게 점수를 따야한다는 착각 말이다.


덕분에 나야 편했다. 그녀가 제대로 헛다리를 짚어준 덕분에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수작질을 부릴 수가 있었으니까.


"혹시.. 마음에  드세요? 수련할 때 입으면 편할 것 같아서 이걸로 골라봤는데.."

일단 가장 먼저 시무룩해하는 척부터 해봤다.


내가 골라온 옷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클레어가 반응을 보이지 않는 거라고 받아들인 것처럼 보일 수 있도록 힐끔힐끔 그녀의 얼굴을 곁눈질을 하며 그녀로 하여금 보란듯이 어깨를  늘어뜨렸다.

그리 한 이유?


간단하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언제까지고 저 상태로 굳어있을 것만 같았으니까.


참으로 다행히도 귀찮음을 감수한만큼은 확실히 있었다.


그런 모습을 내보이기가 무섭게 살짝 얼이 빠진 듯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던 클레어가 언제 그랬냐는 듯 정신을 차리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었으니까.

"아, 아니.. 그건 아닌데.."

일단 정신을 차리긴 했는데 뭐라고 반응을 하면 좋을지  수가 없었던 건지 클레어가 어색하게 말꼬리를 늘어뜨렸다.


"그럼,  번 입어보시겠어요? 이게 보기보다 훨씬 편해요."

그런 내 말에 대고 한 마디를 더 얹은 건 다름아닌 바이올라였다.

여기까지 온 이상 상황을 무르거나 하는 건 무리라고 본 것인지 바이올라가 언제 주둥이를 댓발 내밀고 있었냐는 듯 얼굴 위에 미소를 가득 띄운 채 내 말에 대고 맞장구를 쳤다.

"맞아요. 저도 수련할 때 주로 이걸 입고 하는데.."


대충 그런 식으로 시작된 바이올라의 이야기는 결국 굉장히  어울릴 것 같다는 아부성의 멘트로 끝을 맺었다.

"아, 음.."


이미 내가 두 번이나 권했을 뿐더러 은근히 신경쓰이는 상대였던 바이올라까지 잘 어울릴 것 같다면서 거들고 나선 상황.


상황이 이렇다보니 여기서 물러나는 건 힘들 것 같았던 모양인지 내 얼굴을 힐끔거리며 은근히  눈치를 살피던 클레어가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내  위에 걸려있는 것을 가져갔다.

누가봐도 나와 바이올라의 강권에  이기는 척 받아들이는 듯한 모양새였고, 그렇게 옷을 챙겨든 클레어가 이내 주변을 눈으로 훑어대기 시작했다.

탈의실을 찾고 있는 것 같길래 클레어를 향해 손을 뻗어 그녀의 팔을 내쪽을 향해 살짝 잡아당겼다.


"탈의실은 이쪽이에요."

 딴에는 말 그대로 순수하게 안내 목적으로 그런 행동을 했던 것인데 클레어의 입장에서는 너무 갑작스러웠던 모양이다.

내 파상공세에도 불구하고 여태껏 꿋꿋하게 잘 버텨주었던 평정이라는 이름의 벽이 일순간 크게 흔들렸다.

그와 함께 드러난 감정은 다름아닌 동요였다.


붉은 입술이 꾸욱하고 서로 맞물리더니 턱 부근이 파르르 경련하며 그러한 감정을 있는 그대로 드러냈다.

사실 그것만 따로 떼놓고 본다면 문제가 될  딱히 없었다. 전문 연기자도 생각치도 못한 상황과 직면하게 되면 동요하기 마련이니까. 연기를 업으로 삼은 이조차 그럴진데 하물며 클레어는 그런 것도 아니지 않은가.


표정의 변화가 극히 드문 편이라 표정관리를 잘 하는 것처럼 보여서 그렇지 그녀는 어디까지나 연기의 '연'자도 모르는 일반인이었다.

그러니 생각치도 못한 상황이 동요하더라도 이상할  없었다.

그저 그냥 타이밍과 상황이 문제였을 뿐이다.

하필이면 바이올라가 그녀의 얼굴을 힐끔대던 와중에 그런 반응을 보여버린 탓에 바이올라의 눈을 가려주고 있던 것이 깨어지려고 했으니까.


내가 클레어의 정체에 대해 알려준 이후 처음으로 클레어를 바라보는 바이올라의 시선 속에 의구심이라는 감정이 어렸다.


 마치 '..응?'이라고 말하는 듯한 느낌이라고 해야할까.


아무래도 방금 클레어가 보인 반응 때문에 스스로가 만들어낸 착각에 살짝 금이 가버리기라도 한 모양인데..

그걸 그냥 방치하기는 좀 그랬다.

딱히 내가 유도하거나 빚어낸 건 아니었지만 그렇기에 더욱 쏠쏠하게 도움이 되던 것이었으니까. 그리고 뭣보다..

오늘만큼은 느긋하게 즐기고 싶었다.

최대한 신경전같은  신경쓰는 일 없이 말이다.

바이올라의 팔을 움켜쥐고 있던 손쪽에 힘을 실어 그녀의 팔에 꾸욱하고 압박을 가했던  다름아닌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하고 나서 조금 더 힘을 줬어야했나라고 생각했는데 참으로 다행히도 효과는 있었다.

내가 압박을 가한 즉시 클레어가 정신을 차리고 원래 표정을 회복했으니까.


뿐만 아니라 제법 나쁘지 않은 대응을 보여주기도 했다.

"..저게 탈의실이라고?"

자기가 본 걸 믿을 수 없다는 듯한 뉘앙스의 발언이 클레어의 입술 사이에서 흘러나왔다.

뭔가 특별한 의도를 가지고서 내뱉은 건지 아니면 그냥 생각나는대로 내뱉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클레어의  한 마디는 상황을 완전히 뒤바꿔놓았다.

클레어의 입에서 그 말이 흘러나온 순간 바이올라의 발등 위로 불똥이 떨어졌으니까.


언제 의아해하고 있었냐는 듯 바이올라의 얼굴 위로 '아차!'하는 표정이 떠올랐다.

그러더니 그녀가 황급히 변명을 주워섬기기 시작했다.


"그.. 아무래도 임시적으로 만들다 보니까.."

여건이 허락하질 않아서 저런 식으로 조치할 수밖에 없었다.


왠지 모르게 군대 냄새가 나는 발언이 바이올라의 입술 사이에서 흘러나왔다.

"흠.."


그래도 성에 차지 않았는지 여러모로 의미심장하게 들리기 충분한 소리를 내며 커다란 천을 둘러쳐서 만들어놓은 간의 탈의실을 지그시 바라보던 클레어가 이내 그곳을 향해 걸음을 내딛었다.

그렇게 클레어가 탈의실 안으로 사라진 것과 바이올라의 입에서 안도의 기색이 담긴 한숨이 새어나온  거의 동시였다.

일단은 어찌어찌 넘어갔다고 본 모양.


그런 식으로 안도하던 것도 잠시, 클레어가 자리를 비운 이 상황을 그냥 흘려보내기 아까웠는지 바이올라가 날 향해 힐끔힐끔 시선을 던져대기 시작했다.


하는 행동이 궁금한  있는 사람하고 꼭 닮아있어서 순간적으로 의아해졌다.

대체 뭐가 궁금하길래 저러나 싶었으니까.


'아, 설마..'


자길 위해 고른 옷의 정체가 궁금한건가?


'어쩌나..'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아서 살짝 난감해졌다.

클레어의 옷을 골라놓고 바이올라의 것으로 넘어가려던 찰나에 바이올렛이 습격해온 탓에 그녀 몫은 고르질 못했으니까.

'이걸 어쩐다..'


저렇게나 기대감으로 가득 차 있는데 거기에 대고 사실 아직 못 골랐다고 사실대로 말을 해버리면?

분명 실망할 것이다.

어쩌면 실망을 넘어 섭섭함까지 느낄지도 몰랐다.

그렇기에 사실대로 말하는 것이 꺼려졌다. 대체 뭣 때문에 그런 느낌이 들었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모르게 그랬다.


그렇다면 뭐라고 해야할까.

뭐라고 해야 바이올라가 섭섭함을 느끼지 않는 선에서 일을 마무리지을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을 하고 있자니 슬금슬금  눈치를 보던 바이올라가  예상했던 그대로의 질문을 꺼내들었다.

"그 내껀.."

이더 있냐고 그녀가 날 향해 물었다.


비어있는 내 손이 안 보이는 것도 아닐텐데도 그녀는 얼굴 위에서 기대라는 감정을 지우질 않았다.

잠시 어디다가 두고 온 거라고 철썩같이 믿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그 얼굴을 보고 있자니 더욱 쓴웃음이 나왔다.

'음..'

진짜 이걸 어쩐다.

고민하고 있던 순간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것이 있었고, 그걸 고스란히 입으로 옮기기로 했다.

"아, 그게 실은.."


일단 말끝부터 흐렸다. 이런 말을 하기 난감하다는 듯 뒤통수쪽을 긁적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아마도  순간이었을 것이다.

내 태도에서 불안한 예감같은 거라도 받았던 모양이다. 기대감으로 반짝반짝 빛나던 바이올라의 얼굴이 처음으로 흐려졌다.

그걸 더 방치하면  될 것 같아서 황급히 아까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던 말을 그대로 입에 담았다.

"지금 입고 계신  너무 잘 어울리셔서.."

뒤통수를 긁적거리고 있던 손을 얼굴 쪽을 옮겨왔다. 그리고는 그걸 이용해 볼을 긁적이면서 슬쩍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그녀의 얼굴을 보며 이런 말을 하자니 부끄러워서 시선을 마주치기 힘들어하는 모습으로 보일 수 있길 내심 간절히 기도하면서 그리 말했더니 참으로 다행히도 일단 반응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언제 표정을 흐리고 있었냐는 듯 바이올라의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으니까.


내 칭찬이 상당히 듣기 좋았던 모양이다.

바이올라는 얼굴을 붉힌 채 어쩔 줄 몰라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나와 그녀 사이로 내려앉은 살짝 어색한 것 같으면서도 풋풋한 분위기를 만끽하면서 하려던 말을 이어나갔다.

"그래서 다른 걸 고르기가 어렵더라구요.."

지금 네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아서 그래서 차마 고를 수가 없었다.


그런 식으로 이야기를 마무리 지으니 바이올라의 입에서 흘러나온  "으.."하고 앓는 듯한 소리였다.

아무래도 자기도 모르게 그런 소리를 내버렸던 모양이다.

그 소리가 귓가로 울려퍼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바이올라가 흠흠하고 헛기침을 해댔다.


그렇게라도 민망한 걸 어떻게 해보려는 것처럼 말이다.


'이야..'

낯이 근질근질했다. 너무 근질거려서 맘같아서는 벅벅 긁고 싶을 정도였다.


그런 느낌을 받았던  나뿐만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얼굴이 근질근질한 느낌을 견디기 힘들었던 건지 아니면 그제서야 간과하고 있던 사실 하나를 떠올린 것인지 바이올라의 입에서 '아..!'하고 탄성 비스무리한 것이 새어나왔다.

"잠깐만.."


그러더니 내게 양해를 구하고는 탈의실 쪽을 향해 다가가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클레어가 들어간 탈의실 앞에 선 바이올라가 안에 들어가있는 클레어에게 말을 걸었다.


혼자 입기 힘들텐데 괜찮냐는 식의 내용이었고, 그 말이 바이올라의 입에서 흘러나오기 무섭게 탈의실 안에서 들려온 건 '끄응..'하고 난감함이 느껴지는 음성이었다.


"그, 힘드시면 제가 도와드려도 될까요?"

그런만큼 클레어는 바이올라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내민 제안을 거절하지 않았다.


바이올라가 탈의실 안으로 들어서고 얼마나 지났을까.

먼저 모습을 드러낸 건 역시나 바이올라였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등장한 건..


'어우..'

바이올라처럼 허벅지 옆 부분이 훤히 트여있는 옷을 몸에 걸치고 있는 클레어였다.

평소에 바지만 입고 다니다보니 지금 입고 있는 것처럼 아래쪽이 휑한 건 적응이 되질 않는 걸까.

클레어의 얼굴은 민망함으로 빨갛게 변해있었다.


이런 차림이 어색해서 죽겠다는 얼굴을 한채 다리 사이를 가려주고 있는 흑색의 천을 손으로 잡고 꾹꾹 눌러대는 모습이 보는 이를 두근거리게 하는 뭔가가 있었다.

평소 모습하고 갭이 어마어마해서 더욱 그랬다.


평소에는 자길 막을 것 따위는 없다는 듯 위풍당당하게 걷던 여자가 지금은 혹시라도 다리 사이의 풍경이 드러나기라도 할세랴 허벅지를 안쪽으로 꼬옥하고 모은 채 엉거주춤하게 걷고 있었다.


이런데 어떻게 두근거리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해서 클레어의 모습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으니 엉거주춤한 걸음걸이를 한채 내 앞까지 도달하는데 성공한 클레어가 예의 그 수줍은 얼굴을 한채 날 향해 시선을 던졌다.


그 눈빛이 꼭 내게 질문이라도 던지는 듯 했다.

'어때?'

꼭 그리 묻는 듯한 그녀의 눈빛에 아무 말 하지 않고 그녀를 향해 엄지를 치켜세웠다.

역시 내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고 자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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