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로인이 되기 전에 (228)화 (227/366)



〈 228화 〉히로인이 되기 전에..

어디 한 번 맛좀 보라는 뜻으로 경멸어린 시선을 던져봤더니 이게 웬걸?


반응이랍시고 돌아온 건 내 상상력의 미천함을 비웃기라도 하듯 그걸 가뿐히 초월하고 있었다.

"흐음..!"

순간적으로 안에서 울컥하고 솟아오른  억누르기라도 하는 듯한 음성과 함께 바이올렛의 몸이 살짝 떨렸다.


물론, 그건 어디까지나 잠시 뿐이었다. 참으로 다행히도 일반적인 반응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던 모양인지 바이올렛이 크흠하고 헛기침을 하며 흐트러진 표정을 다잡았으니까. 그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감탄이 다 나올 정도였다.

뭐, 그것하고는 별개로 골이 난 듯한 모습을 유지하는 걸 잊지 않았다.


"제가 옷을 벗고 있는 상태였다면 어쩌시려고 그렇게 무턱대고.."

방금 네가 한 행동은 결코 해서는  되는 굉장히 실례인 행동이었다.

라는 식으로 따지고 들어가기 위해 그리 말했던 것인데 그런  말이  끝을 맺기도 전에 뻔뻔스럽기 짝이 없는 대꾸가 돌아왔다.


"그럼 어쩔 수 없죠."

"어쩔 수 없다뇨?"


기가 차다는 표정과 함께 그게 지금 할 말이냐라는 식으로 응수하니 바이올렛이 가볍게 어깨를 으쓱거렸다.

"저라고 해서  수 있겠나요? 미혼인 남성의 은밀한 모습을 봐버렸으니 당연히 책임을 지는 수밖에 없지 않겠어요?"


생글생글 웃으면서 그리 말하는데 솔직히 좀 혼란스러웠다. 바이올렛이 굳이 저런 행동을 해대는 이유를 이해할 수가 없었으니까. 저런 말을 해버리면 내가 역정을  거라는 사실을 모르는 것도 아닐텐데 말이다.


헌데 굳이 저런 말을 입밖으로 뱉어댄다?

저래서야 내게 미움받고 싶어서 안달난 사람 같지 않은가.

내가 이해가 안 됐던 부분은 다름아닌 그것이었다. 보통이라면 지금쯤 어떻게든 내게 점수를 따보기 위해 잘 보이려고 애를 써야하는 상황인데 말이다. 여기서 오히려 점수를 깎아먹으려는 것처럼 행동을 하다니?


'반한 게 아닌 건가?'

아까 탈의실 안으로 막 들어섰을 때 보여주었던 반응을 떠올려보면 그건  아닌 것 같은데 말이다.

대체 뭘까.

무슨 목적을 가지고 저런 행동을 해대는 걸까.

나름대로 추측해보고 있던 것도 잠시, 속으로 아차했다. 그걸 생각한답시고 반응하는 걸 깜빡 해버리고 말았으니까.

"..하."

기가 차다는  코웃음을 쳤던 건 그래서였다.

다만 타이밍이 좀 늦었던 탓에 생각만큼의 효과는 없었다. 내가 코웃음을 쳐대건 말건 바이올렛은 어디서 개가 짖냐는 느낌으로 싱긋 웃고 있을 뿐이었으니까.

그 상태로 그녀가 날 향해서 손을 뻗어왔다.

"안 될 이유가 있나요? 이런 것도 공유하고 있는 사이인데."

천천히 다가오는 바이올렛의 손을 보며 흠칫한 척을 했던 것도 잠시 언제 그랬냐는  눈에 힘을 주어 그녀를 노려보았다.

바이올렛의 얼굴 위에 자리하고 있던 미소의 색이 한층 더 짙어진 듯한 느낌을 받았던 건 아마도  순간이었을 것이다.


분명 아까하고 달라진 것이 딱히 없건만 진득한 느낌으로 변해버린 것을 얼굴 위에 머금은 채 날 향해 손을 뻗은 그녀가 곧게 뻗어진 손가락을 이용해 내 목덜미 부근을 가볍게 톡 두들겼다.


거기에 새겨져 있는 걸 잊지 말라고 당부라도 하는 듯한 행동이었고, 그에 슬쩍 입술을 깨물어보였다.

왠지 그래야 할 것만 같았으니까.


다행히도 이번에는 그럭저럭 효과가 있는 것 같았다. 그림과 같은 호선을 그리고 있던 바이올렛의 입꼬리가 순간적으로 파르르 떨리는 광경을 볼 수 있었으니까.


그것도 잠시, 언제 그랬냐는 듯 원래 모습을 회복한 그녀가 뻔뻔스레 말을 덧붙였다.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으니  문제를 가지고 더 왈가왈부 해봐야 서로 감정만 상할 뿐 의미없지 않겠냐는 식의 이야기였다.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말이기는 했기에 그 말에 반박할 구석을 찾지 못한 사람처럼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아무튼 이리  와봐요. 도와줄테니까."

그러고 있으니 내밀어진 것은 도움의 손길을 가장한 뻔뻔하기 짝이 없는 수작질이었다. 그에 그것을 내밀어온 상대를 지그시 바라보니 그런 내 시선을 받은 바이올렛이 다시 한 번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럼 혼자 하려고요? 힘들어 보이던데.."

"..."

"잘 안되서 끙끙대던 거 밖에서 다 들렸거든요."


그때 내 반응은 어땠을까.


개인적으로는 민망한 꼴을 들켜버린 사람처럼 얼굴이 달아오른 상태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것만큼 완벽한 반응도  없을테니까.

다만 다른 건 몰라도 그 부분만큼은 아무리 나라도 자유자재로 컨트롤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에 그 상황에서 내가 할  있는 것은 그렇게 보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뿐이었다.


그래서 티나지 않을만한 선에서 얼굴에 살짝 힘을 준채 내려꽂히는 바이올렛의 시선을 피하는 척을 해보였다.

참으로 다행히도 바이올렛이 보기에 그리 어색하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아무튼 줘봐요. 묶어줄테니까."

 말과 함께 목덜미를   톡 건드리고 뒤로 물러났던 그녀의 손이 다시금 내쪽을 향해 뻗어왔으니까.


줘보라고 했으면 조금이라도 기다리던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팔쪽에서 덜렁덜렁 흔들리던 가느다란 끈을 움켜쥔 바이올렛이 반대편 손으로 움켜쥔 끈과 그것을 서로 교차시키기 시작했다.


남성의 것이라고는 하나 같은 랑인족의 전통의상이다보니 나름대로 그것에 익숙한 걸까.

능숙한 솜씨로 끈을 매듭지은 그녀가 그것을 이용해 살짝 헐렁한 느낌을 풍겨대던 소매를 단단히 고정시켰다.

내가 보기에는 그냥 끈을  잡아당긴 것 같은데 바로 조금 전까지 불편할 정도로 헐렁거리던 소매가 끈과 함께 깔끔하게 정리되는 광경이 그리 신묘할 수가 없었다.


그에 나도 모르게 홀린 듯 바라보고 있었더니..

"우리 종족 전통복장이 익숙치 않은 사람한테는 좀 난해하긴 하죠."

그런 내 심정을  안다는 것처럼 바이올렛이 미소와 함께 그리 덧붙였다. 그러면서 은근슬쩍 덧붙여진 말이 이것도 많이 개량이  거란다.

"그, 그렇습니까."


그에 당황한  말을 더듬거리고 있자니 바이올렛이 제대로 고정되었는지 마지막으로 한 번 더 확인해보겠다는 것처럼 아까도 잡아당겼던 끈을 다시 한 번 잡아당겼다.

문제는 아까하고는 다르게 그것이 고정된 상태였다는 점이다.

그녀가 잡아당기는대로  딸려갔던 아까하고는 다르게 고정된 상태에서 그러니 이번에는 끈이 아니라 내 몸이 그녀를 향해  달려갔다.

그대로 그녀의 품 안에 폭 안겨버리기라도 할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몸이 기울어지기 시작한 순간 든 생각은 하나였다.


'일부러 이런 건가?'

"아, 괜찮아요?"


저리 말하는 목소리에 살짝이지만 당황이 섞여있는  보면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에도 착실히 기울어진 몸이 이내 바이올렛의 몸과 부딪혔다. 그와 함께 얼굴에 부딪혀온 것은 겉을 감싼 천 만큼이나 보드라울  같은 감촉을 가진 무언가였다.


'이건 꽤.. 아니 상당히..'


솔직히 다른 건 몰라도 볼륨감만큼은 동생인 바이올라가 앞선다고 생각했었는데 말이다.


역시 쌍둥이는 쌍둥이인가 보다.

풀어헤치면 굉장할 것 같은 감촉이 얼굴을 꾸욱꾸욱 눌러왔다.

맘같아서는 언제까지고 그 감촉을 만끽하고 싶었다.

허나 상황상 그럴 수가 없어서 황급히 바이올렛에게서 몸을 떨어뜨렸다.

"너무 세게 잡아당겼나 보네요."

그에 맞춰 앞으로는 조심하겠다는 뉘앙스를 품은 말이 귓가로 울려퍼졌다.

"..이만 나가주시죠."


그런 그녀의 시선을 피하면서 이제 나 혼자서도  수 있다는 것처럼 말했다.


물론, 바로 반박이 돌아왔다.

"등도요?"

거기도 정말 혼자 할 수 있겠냐고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그리 묻는데 귓가로 울려퍼지는 그 목소리가 그렇게 얄밉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확실히 다른 곳은 몰라도 그 부분만큼은 혼자서 해결하는게 불가능한 것이 맞았기에 침묵하고 있자니 여기서 더 밀어붙이면 역효과겠다 싶었던지 바이올렛이 타협안을 내밀어왔다.

"그럼 등만 도와주고 나갈게요."


괜찮죠?

 그렇게 묻는 것처럼 타협안을 내밀어온 바이올렛이 그대로 날 향해 손을 뻗어왔다.


애초에 내 대답같은 건 들을 생각도 없었던 모양.

'거참..'

이럴 거면 왜 물은 거람.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일단은 잠자코 있었다. 그녀가 내밀어온 타협안을 받아들인 것처럼 말이다.


아마도 그 순간이었을 것이다.


이것만 해주고 나가겠다는 것처럼 말한 것치고는 바이올렛의 손길은 느릿하기 그지없었다.

그에 한소리 하려던 찰나 불만 가득해보이는 내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함이었는지 아니면 이 안에서 버틸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늘려보기 위함이었는지 바이올렛이 여상하기 그지없는 목소리로 관심이 갈 수밖에 없는 주제를 꺼내들었다.


"그나저나 궁금하지는 않아요? 어떻게 됐는지?"

솔직히 말하자면 처음에는 그녀가 말하는 게 뭔지 알아듣지 못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게 주어라고는 죄다 생략되어 있는데 그걸 어떻게 알아먹는단 말인가.


그게 내 얼굴에도 묻어나왔던 걸까.


바이올렛이 목소리를 낮춘 채 생략했던 부분을 덧붙였다.

"그.. 있잖아요. 화장실에서.."

"아."


그제서야 그녀가 무엇에 대해 말하고 있는지를 알아차린 나는 살짝 놀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볼  밖에 없었다.


적어도 이번만큼은 진심이었다.


이 타이밍에 이런 주제를 꺼내든다는  뭔가 소득이 있었다는 뜻일테니까.

앨리스가 이제 막 조사에 착수했음을 고려하면 빠르다는 말로도 부족한 속도였다.


'하긴..'

한편으로는 그토록 빠르게 움직일 수밖에 없었던 게 이해가 되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때 화장실에서 주워들었던 말들을 떠올려보면 사교도 놈들의 목표는 바이올라일 가능성이 컸으니까.

바이올렛으로서는 결코 좌시할 수가 없었겠지.

개인적으로는 동생의 일이고 크게는 자국의 황녀와 관련된 일이니까.

그래서 대체 무엇을 알아낸 걸까.


궁금했지만 대놓고 캐묻기는  좀 그랬다. 어찌보면 기밀이라 할 수 있는 정보였으니까.

침묵을 택했던 건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참으로 다행히도 바이올렛은 내 침묵이 관심의 또다른 형태라는  알아차릴 눈치 정도는 충분히 지닌 상대였다.


덕분에  들을 수 있었다. 그녀가 무엇을 알아냈는지를 말이다.


다만 그냥 들을 수는 없었다.

모처럼 내 관심을 끄는데 성공한만큼 그 상황을 그냥 넘길 생각따위는 없었는지 바이올렛은 실컷 즐기고 나서야 내게 답을 알려주었으니까.


"전부 다 알려줄 수는 없지만.."


이런 식으로  안에서 보내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늘려보겠다는 걸까.

말꼬리를 쭈욱하고 잡아늘리는 행동에서 왠지 모르게 그런 의도가 느껴졌지만 알면서도 모르는 척 해줬다.


사실 저 정도야 귀여운 수준이었으니까.

그리고 뭣보다 바이올렛의 완급조절이 완벽했다.

누가봐도 시간을 끌겠다는 의도가 엿보여서 열이 받긴 하는데 그게 선을 넘을만한 수준이 되면 바로 끊어버렸으니까.

"일단 남자 쪽의 소속이 왕국 연합이라는 것 정도만 알고 있어요."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슬슬 열이 받으려고 하던 찰나에  들려온 바이올렛의 발언에 눈을 가늘게 좁혔다.


무슨 근거로 그러한 결론에 다다르게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바이올렛의 말이 사실이라면 앨리스의 추측이 맞았다는 뜻이엇으니까.


그렇기에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그건 어떻게.."


"알아냈냐고요?"


아무래도 바이올렛은 내 입에서 그런 질문이 흘러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말을 꺼내려 하기 무섭게 저런 말이 튀어나오는 걸 보면 필시 그랬던 거겠지.


확실한 건 그냥 알려줄 것 같지는 않다는 점이었다.

그 증거로 날 향해 질문을 던지는 바이올렛의 목소리에 약간이지만 장난기가 배어있었으니까.


알고 싶다면 뭐라도 내놓으라는 뜻일까.

그렇다면 뭘 줘야할까.


고민하고 있으니 등쪽에 달린 끈을 손에 쥔채 열심히 그것을 꼼지락대고 있던 바이올렛이 대뜸 내 겨드랑이 사이로 제 팔을 밀어넣었다.

덕분에 뒤에서 끌어안긴 꼴이 되어버린 건 말할 것도 없었다.


"잠.. 이게 지금 무슨.."


해서 갑작스러운 그녀의 행동에 당황한 척을 하며 그녀를 뿌리치려던 순간이었을 것이다.


"쉬이-"

어느새 내 어깨 위를 점령한채 제법 묵직한 느낌을 자아내던 바이올렛의 얼굴에서부터 그런 말이 흘러나오더니..

"가만히 좀 있어봐요. 쓸데없이 움직이지 말고."

어쩐지 야릇하게 들리는 속삭임이 그 뒤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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