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2화 〉히로인이 되기 전에..
아무래도 볶음국수같은 느낌의 음식인가 보다.
'볶음국수라..'
뭐, 나쁘지 않지.
그러면 뭘 넣는 게 좋으려나.
길게 늘어서있는 사람들의 어깨 너머로 보이는 것들을 힐끔대며 그런 고민을 하고 있자니 어느새 나와 클레어의 차례가 돌아왔다.
"네엡~! 어서오세요! 뭘로 드릴까요~?"
그렇게 노점 앞에 선 우리를 맞이한 건 꽤나 활기찬 느낌의 여성이었다.
쇠주걱을 이용해 철판을 탁탁 두들기는 소리와 함께 던져진 그녀의 질문에 답을 하는 대신 여전히 제 귀를 꼬옥하고 움켜쥐고 있는 클레어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뭐, 따로 넣고 싶으신 거 있으세요?"
물론, 그녀를 대신해 주문을 해주기 위함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클레어는 손을 쓸 수가 없는 상황이었으니까. 한손은 귀를 꼬옥하고 움켜쥐고 있기 바빴고, 다른 쪽은 내가 건네준 귀걸이들이 든 종이봉투를 들고 있기 바쁜 탓이었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나라도 대신해줘야지.
뭐, 솔직히 말하자면 질문을 던지면서도 그런 걸 묻는 의미가 과연 있기는 할까라는 의문이 들기는 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게 지금 클레어의 상태를 보면 볶음국수에 뭐가 들어간들 넙죽넙죽 잘 받아먹을 것 같았으니까.
그만큼 지금 클레어는 행복해하고 있었다. 내가 건네준 종이봉투를 손으로 꼬옥하고 움켜쥔채 실실 웃고 있는 것이 어찌보면 살짝 얼빠져 보이기도 했다. 뭐, 그만큼 기본적인 표정관리조차 망각해버릴 정도로 기분 좋은 상태라는 뜻이겠지만 말이다.
"어? 아, 음.. 나는.."
기쁜 와중에도 내 질문에 반응할 정신 정도는 남겨두었던 것일까. 정신을 차린 클레어가 그때부터 노점에 쫙 깔려있는 것들을 하나씩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이내 그중에서 몇 개를 콕콕 찝어서 언급하는 그녀였다.
우스운 점은 그렇게 언급되는 것들 중에서 채소에 속하는 건 그림자조차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었다.
'진짜 애도 아니고..'
숨 쉬듯 자연스럽게 편식을 시전하는 클레어의 행동에 그녀가 고른 것들에다가 몇 가지 채소를 섞어서 주문했다. 채소보다 고기가 맛있는 거야 당연한 거지만 저렇게 대놓고 고기만 때려박으면 맛있는 것도 바래기 마련이니까.
그런 내 선택이 못내 불만스러웠던 건지 옆에서부터 불만어린 시선이 날아와 꽂히는 걸 느낄 수 있었지만 가볍게 무시했다.
"네에, 그렇게 2인분 말씀이시죠?"
"네."
그렇게 주문을 끝마치고 나니 비로소 알 수 있었다. 그들이 괜히 노점을 담당하고 있었다는 게 아니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후우하고 짧게 내뱉어진 숨소리에 맞춰서 불꽃이 확 피어올랐다.
그리고 그게 신호라도 되었는지 그때부터 불꽃이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이며 철판 위로 부어진 재료들 사이를 넘나들기 시작했다.
간단히 말하자면..
'보는 맛이 있네.'
딱 그랬다.
저렇게 해서 나온 음식맛이 어떨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금까지는 만족스럽다는 느낌이 강했다. 노점 음식치고는 제법 비싼 값을 치뤘음에도 그랬다.
줄이 줄어드는 속도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빠르더니만 음식은 말 그대로 순식간에 나왔다.
"뜨겁습니다~ 조심하세요~!"
돌을 깎아서 만든 듯한 용기에 아까 국자를 이용해 듬뿍 끼얹었던 소스를 먹어 윤기가 좌르르 흐르는 갈색으로 변모한 국수가 가득 퍼담겼다.
'이건 맛이 없기가 힘들겠는데..'
소스 맛이 최악이라면 또 모를까 아까 철판 위에서 자글자글 끓어오를 떄 간장 비슷한 냄새를 풍겼던 점을 고려하면 맛없기가 더 힘들겠지.
하물며 고기는 물론 새우와 관자같은 해산물까지 잔뜩 들어갔으니..
"수고하세요."
"네엡! 맛있게 드세요!"
저렇게 틀림없이 맛있을 거라는 식으로 자신만만하게 외쳐대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갔다.
"어디보자 자리가.."
앉아서 먹을 자리가 있으면 거기서 먹은 다음에 제국 쪽에서 차려놓은 부스로 넘어갈 생각이었는데 장사가 잘되는 곳인지라 비어있는 곳이 없었다.
해서 아쉬운대로 움직이면서 먹기로 했다.
물론, 쉽지만은 않았다.
아까도 말했듯 현재 클레어는 손을 제대로 쓸 수가 없는 상태였으니까.
"여기요."
내 몫의 포크를 이용해 국수를 한웅큼 떠서 그녀를 향해 내밀었던 건 바로 그래서였다.
선물까지 받았는데 설마 '먹여주기'라는 황송하기 그지없는 대우까지 받게 될 거라고는 생각 못했던 걸까.
자길 향해 들이밀어진 것의 모습을 확인한 클레어의 얼굴 위로 일순간 당황이라는 감정이 떠올랐다.
딱 그 모습 그대로 굳어버리길래 그러지 말고 정신 차리라는 뜻으로 포크를 움켜쥔 손을 살짝 흔들어보였다.
"얼른요."
동시에 그리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주변에 사람이 하도 많아서 내 목소리가 닿기는 할런지 걱정이었는데 다행히도 무사히 전해졌던 모양이다.
"으, 응."
알겠다는 듯 고개를 주억거린 클레어가 이내 내쪽을 향해 천천히 몸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어느새 그런 그녀의 두 뺨 위에는 발그레하니 홍조가 어려있었다.
그런 우리 둘의 모습을 주변을 오가는 이들이 눈꼴 시렵다는 표정을 한채 쳐다봤고 말이다.
말 그대로 사방에서 쏟아지기 시작한 시선들 때문인지 클레어는 한층 더 민망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끝끝내 하고 있던 것을 포기하지 않았다.
천천히 몸을 기울인 끝에 마침내 국수 앞에 도달한 클레어가 꾹 다물고 있던 입을 슬며시 벌려 그것을 제 입 안으로 받아들였다.
스스로 생각해도 제법 많이 푼 것 같다고 생각했던 것이 그야말로 순식간에 클레어의 입 안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그러면서 난 소리라고는 호록하고 짧게 울려퍼진 소리가 전부였다.
그래서 맛은 어떨까?
아직 나는 맛을 보지 않은 상태였기에 어떤 맛일지 궁금하다는 식의 시선을 그녀를 향해 던지니 입 안으로 집어삼킨 것을 바지런히 우물대며 맛을 보던 클레어가 이내 콜록콜록하고 기침을 해대기 시작했다.
얼른 내게 감상을 들려주겠답시고 서두르다가 사레라도 들린 걸까.
아니, 이건 그보다는..
"매워요?"
그래, 그런 느낌에 가까웠다.
해서 그리 물으니 아니나 다를까 클레어가 콜록대면서도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아무래도 그 마지막에 뿌렸던 뭔지 모를 가루가 고추가루같은 거였나 보다. 그릇에 담기 직전에 뿌려대길래 꼼짝없이 파슬리나 깨같은 느낌일 거라 생각했었는데 말이다.
그래도 많이 맵지는 않은 것 같았다.
주체가 안 될 정도로 매웠다면 저렇게 콜록대거나 내 물음에 답을 하는 대신 물부터 찾고 봤을테니까.
'맵고 짭짤한 맛이라..'
그쯤되니 더는 궁금증을 참기가 힘들어서 나도 한 입 맛을 봤다.
그랬더니 혓바닥에 착하고 감겨온 건 어째 익숙한 것 같으면서도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것 같은 그런 맛이었다.
'아니, 왜 여기서..'
쟁반짜장 맛이 나는 거지? 불맛하고 양파가 들어가서 그런가?
물론, 완전히 똑같은 맛은 아니었다.
아닌가? 똑같은가?
솔직히 말하자면 확신하기가 힘들었다. 세월이 하도 지나서 쟁반짜장은 커녕 짜장면 맛이 어떤 맛이었는지조차 확실하게 기억이 나질 않으니까.
딱 하나 확실한 건 어딘가 그립게 느껴지는 맛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일까.
분명 맛은 있는데 더는 입을 대고 싶지가 않았다. 계속 먹으면 나도 모르게 묘한 기분에 휩싸이게 될 것만 같았으니까.
그렇다고 멀쩡하게 잘 만들어졌고 맛도 있는 음식을 버리기도 좀 그래서 내몫까지 열심히 클레어의 입 안에다가 퍼날랐다.
그렇게 바로 옆에서 걷는 클레어를 상대로 부지런히 '먹여주기'를 하면서 제국 쪽에서 준비한 부스를 향해서 나아가고 있던 순간이었을 것이다.
저 멀리 시야 끝에서부터 익숙한 실루엣이 아른거리기 시작했다.
제국 측 부스를 드나드는 수많은 사람들, 그들의 머리 위로 빼꼼하고 고개를 내민 건 나도 익히 잘 알고 있는 세모꼴의 귀였다.
중요한 건 저것의 주인이 내가 아는 둘 중에 어느 쪽이냐는 건데..
개인적으로 추측을 좀 해보자면 아무래도 바이올렛일 가능성이 커보이긴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바이올라는 기사 부문에 참가하는 걸로 알고 있으니까.
무려 황녀씩이나 되는 이가 일반 참가자일리는 없으니 필시 주장과 같은 포지션일 것이고, 그렇다면 당연히 대진표 추첨을 위해 불려간 디아나처럼 바이올라또한 추첨을 위해 불려가지 않았겠는가?
그러니 당연히 저건 바이올렛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안!"
일순간 인파가 걷히며 그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건 바이올렛이 아닌 바이올라였다.
그렇기에 순간적으로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대진표 추첨은 어쩌고 여기 있는 건가 싶었으니까.
'설마 끝난 건가?'
참가하는 팀이라고 해봐야 다합해서 네 개 뿐이니 오래 걸릴 구석도 없기는 하다만, 그렇다고 생각하고 넘어가기에는 아직까지 디아나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것이 설명이 되질 않았다.
혹시 우리를 찾지 못하고 헤매고 있기라도 한 걸까.
'아니면 혹시..'
바이올렛이 대신 갔나?
그런 식으로 수많은 의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던 가운데 여기 있으니까 자길 봐달라고 외치기라도 하는 것처럼 제자리에서 폴짝폴짝 뛰며 날 향해 열심히 손을 흔들어대던 바이올라가 나와 클레어를 향해 쪼르르 달려오기 시작했다.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날 기다리려니 속이 터질 것 같기라도 했던 모양.
그렇게 바이올라가 인파를 헤쳐가며 우리를 향해 다가오기 시작한 덕분에 인파에 가려서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바이올라의 복장같은 것이 그러했다.
여성들만 부스에 방문하는 것이 아니다보니 오늘을 위해 나름대로 차려입은 것일까. 바이올라의 복장은 평소하고는 달랐다. 그러니까 지역색이라고 부를만한 요소가 조금 더 첨가된 느낌이라고 해야할까.
뿐만 아니라 평소보다 훨씬 더 시원시원한 느낌이기도 했다.
딱봐도 통풍이 어마어마하게 잘 될 것 같은 구조랄까. 특히나 하체 부분이 그러했다. 무슨 차이나 드레스마냥 옆 부분이 탁 트여있어서 그 사이로 탄력적인 허벅지의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나있는데..
'오우야..'
바이올라가 성큼성큼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허벅지를 이루고 있는 근육들이 탄력적인 움직임을 선보이며 건강미라는 것을 사방으로 흩뿌렸다.
그야말로 시선이 절로 가는 광경이라고 해야할까.
그 와중에 한층 더 신경쓰이는 점이 있다면..
'입은 건가?'
다름아닌 그 부분이었다.
옆부분이 그냥 트여있는 것이 아니라 흔히 팬티라인이라 부르는 허벅지의 경계선이 드러날 정도로 탁 트여있다보니 자꾸만 그쪽으로 시선이 갔는데 어째 마땅히 보여야할 것의 모습이 보이질 않았으니까.
얇은 끈같은 거라도 보였다면 참으로 과감한 선택을 했다고 생각하고 넘어가기라도 했을텐데 그런 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냥.. 없었다.
애초에 입지를 않은 것처럼 보이는 게 없었다.
그렇기에 자연스레 궁금해질 수밖에 없었다.
바이올라의 허벅지 사이로 커튼마냥 길게 드리워져 있는 저 흰색의 천을 걷어냈을 때 그 아래 어떤 광경이 숨어있을지가 말이다. 그 부분이 너무 궁금해서 맘같아서는 당장이라도 확인하고 싶을 정도였다.
'그나저나..'
저렇게 입고도 괜찮을지 모르겠다.
암만 햇볕이 쨍쨍 내리쬐고 있다해도 가을인지라 기본적으로 서늘한 편인데 말이다.
전혀 문제 없다는 것처럼 저렇게 성큼성큼 움직여대는 걸 보면 문제없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래도 보는 나까지 다 추워지는 복장인지라 자꾸만 신경이 쓰이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그런 내 속내를 아는지 모르는지 바이올라는 등뒤로 보이는 꼬리를 붕붕 흔들며 날 향해 다가오기 바쁠 뿐이었다.
시시각각 줄어들기 시작하는 거리에 비례하여 시시각각 표정이 불편해지는 이가 있었으니 그건 다름아닌 클레어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을 거다.
클레어의 입장에서 보면 한창 즐기고 있는 와중에 방해가 들어온 셈이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클레어가 보인 행동은 살짝 눈썹을 찡그리는 것이 전부였다.
보아하니 그 이상으로 제 감정을 드러내는 건 선을 넘는 행동이 될 거라고 자체적으로 판단했던 모양.
이쪽을 향해 다가오던 바이올라가 내 옆에 서 있던 클레어를 발견한 것은 그녀가 그런 식으로 얼굴을 굳히고 있던 와중이었다.
누가봐도 일행이라는 걸 알 수 있을 정도로 나와 딱 붙어서 선 클레어를 발견하자마자 바이올라가 한 행동은 내게 시선을 던져 설명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옆은 누구냐.'
꼭 그리 묻는 듯한 바이올라의 시선에 속으로 쓰게 웃으면서 그녀가 가까이 다가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리고는 그녀가 내 앞에 도달하자마자 입을 열어 클레어의 정체를 밝혔다.
"여기서 뵙네요. 바이올라님."
"응, 그런데 옆에 계신 분은.."
"아, 이 분은 제 스승님이세요."
정확히 그 순간이었을 것이다.
바이올라와 클레어의 반응이 극명하게 갈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