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로인이 되기 전에 (221)화 (220/366)



〈 221화 〉히로인이 되기 전에..

자연스럽게 눈앞으로 들이밀어진 것들의 모양새를 확인한 순간 얼굴 위로 물음표를 띄워올릴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주문을 잘못 넣었나 싶었으니까.

'저게 어딜 봐서..'


 뚫는데 쓰는 도구란 말인가?

맘만 먹으면 귀는 물론 딱딱하기 그지없는 화강암까지 뚫어버릴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다.

대충 그런 느낌으로 접객원을 향해 의아해하는 시선을 던졌더니 반응이랍시고 돌아온 것또한 물음표였다.

자긴 요청받은대로 제대로 가져왔는데 무슨 문제라도 있냐고 묻는 듯한 그 시선에 그제서야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클레어가 고작 '귀뚫기'를 무서워했던 이유를 말이다.


솔직히 말해서 그 모습을 보며 나름대로 귀여운 구석도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귀 뚫자고 저런 걸 들이밀면..'

그야 당연히 겁이  수밖에.

사람인이상 분명 그럴 거다.

까닥 잘못하면 귀걸이용 구멍이 아니라 바람이 숭숭 통하는 구멍이 뚫리게 생겼먹었으니 말이다.

'아니, 그 부분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저걸로 뚫으면 사이즈가 많이 클  같은데?


저걸 어떻게 써먹을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그랬다.

해서 그건 또 어떻게  거냐고 시선을 통해 물으니 주섬주섬 챙겨온 것들을 늘어놓던 접객원에게서 그제서야 '아.'하는 음성이 흘러나왔다.

"제가 실수로 다른 걸 가져와버렸네요. 잠시만 기다려주시겠습니까?"

그럼 그렇지.


저만한 걸 무턱대고 귀에다가 들이밀리 없지.


암 그렇고 말고.


귓볼 사이즈가 태평양만하기로 소문난 유비라고 해도 귀뚫는데 저만한 걸 쓰진 않을 거다.

아마도 저건 개막식날 봤었던 몸 곳곳이 돌과 금속으로 이루어져 있는 이들 전용이 아닐까. 지금도 얼핏얼핏 보이는 저들 말이다.

그렇게 살벌하기 그지없는 비쥬얼을 가진 것이 퇴장하고 다시금 모습을 드러낸 접객원의 손에 들려 등장한 것은 아까 그가 들고 사라졌던 것에 비하면 한결 정상적으로 느껴지는 사이즈의 물건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봐줄만한 비쥬얼로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줄어든 사이즈만큼이나 더해진 날카로움은 보는 이의 오금을 저리게 만드는 구석같은 것이 있었다.


그렇기에 새삼 실감할 수 밖에 없었다.

딸칵하는 느낌으로 아주 간단하게 귀를 뚫을  있었던 현생의 케이스가 실은 굉장한 것이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머릿속으로  사실을 되새김질 하고 있으니 접객원이 교체한 연장의 소독에 들어갔다.


제대로 된 도구도 갖춰졌겠다 더는 지체하지 않고 바로 뚫어버리는 모양인데..


"괜찮겠어요?"

솔직히 괜찮을까 모르겠다.

그도 그럴 것이 접객원의 손에 들려있는 송곳 비스무리한 물건을 바라보는 클레어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있었으니까. 아까만큼은 아니어도 분명 그랬다.


"그럼.."

그래서일까?


접객원이 그리 말하면서 꼼꼼하게 소독을 끝마친 것을 클레어 쪽으로 들이민 순간, 그녀가 자길 향해 들이밀어지던 접객원의 손목을 덥썩 움켜쥐었다.  다급한 움직임이었고, 그래서 순간적으로 힘조절을 깜빡했던 모양이다.

뚜둑하고 딱딱한 뭔가가 꺾일 때나 들릴 법한 소리가 클레어의 손아귀에 잡힌 접객원의 손목 쪽에서 터져나왔다.

소리만 들으면 꽤나, 아니 상당히 아플 게 분명한 상황.


그럼에도 접객원은 얼굴 위에 띄워놓고 있던 미소를 잃지 않았다. 그야말로 프로라는 단어를 생각나게 하는 모습이었고, 덕분에 알  있었다. 왕국 연합 측 부스가 흥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말이다.


"그, 손님? 죄송하지만 놓아주시겠습니까?"

심지어 그는 혹시라도 클레어가 민망함을 느낄세랴 잡힌 손목을 놓아달라고 할 때도 아프다는 말은 단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저 이렇게 자신의 손목을 잡고 있으면 부탁받은 걸 할 수 없다는 식으로 에둘러 곤란함을 표출했을 뿐.


그럼에도 불구하고 클레어는 잡은 손목을 놓지 않았다.

내 앞에서 쫄은 모습을 보이기가 그래서 일단 수락하고 봤는데 막상 닥치고 보니 이건  아닌 것 같았던 모양.

클레어의 정체를 아는 사람이 본다면 칼침도 여러  맞았을 양반이 고작 귀 하나 뚫는 걸 가지고 뭐 저렇게까지 유난일까하는 생각이 들기에 충분한 광경이었지만 이해가 아예 안 되냐면 그건 또 아니었다.

개인적으로 두려워하는 것과 개인의 무용은 명백히 별개의 것이니까.

생각해보면 내가 만났던 놈들 중에서 미쳤다라는 말에 가장 부합하는 정신상태와 무력을 지녔던 놈도 고양이를 무서워하곤 했었으니까.

적이 몇 십명 달려들어도  하나 깜빡  하는 놈이 고양이랑 마주치기라도 하면 쥐라도 된 것마냥 딱딱하게 굳어버리는 게 그렇게 웃길 수가 없었다. 하물며 고양이가 달려들기라도 하는 날에는  죽을 것처럼 벌벌 떨어대기까지 할 정도였으니..


그런 모습을 옆에서 지켜봐왔던 나로서는 클레어가 저러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갔다.


물론, 이해가 되는 것과 본의 아니게 행패 비스무리한 것을 부리고 있는 그녀 때문에 오는 쪽팔림은 명백히 별개의 것이었지만 말이다.


우리의 안내를 도맡은 접객원이 튼튼한 몸을 지녔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아마 진작에 손목이 아작나지 않았을까.

이대로 가면 접객원의 손목이 아작나던 클레어가 긴장으로 까무룩 기절하던 둘 중에 하나는 필히 벌어질 것 같았기에 곧바로 그쪽을 향해서 손을 뻗었다.


그리고는 접객원의 손목을 꽈악하고 틀어쥐고 있던 클레어의 손부터 풀어냈다.


손등이 희게 질릴 정도로 힘을 주고 있길래 어쩌면 순순히 떨어지지 않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는데 생각 외로 그녀는 순순히 손을 풀었다.


그렇게 접객원의 손목이 아작날 가능성부터 제거한 다음에 그가 들고 있던 송곳 비스무리한 것을 건네받았다.


겉으로 티를 내지는 않았어도 아프긴 했던 모양이다. 자유를 되찾은 접객원이 아까보다 어정쩡한 미소를 얼굴 위에 머금은 채 바로 조금 전까지 클레어의 손아귀 안에 잡혀있던 제 손목을 어루만졌다.

손목에 해당하는 부분을 돌조각같은 것이 감싸고 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고 평범했다면.. 아마 지금쯤 그곳에는 매 발톱같은 손자국이 남아있었겠지.


그런 식으로 은근히 내게 부담이라는 이름의 짐을 지우는 접객원을 뒤로한채 클레어를 향해서 돌아섰다.


내 덕분에 당황 속에서 빠져나오고 나니 바로 조금 전까지 제가 얼마나 쪽팔린 짓거리를 하고 있었는지를 깨닫게 된 것일까.


눈으로 들어온 클레어의 얼굴은 수치심으로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하던 걸 계속 이어나가는 건 무리일  같아서 건네받았던 걸 치우려고 하던 찰나였을 것이다.

꼬옥-


옷깃을 잡아오는 손길이 있었다.

혹시라도  기분이 상했을세랴 조심스럽기 그지없는 태도였다.


그 상태로 날 멈춰세운 클레어가 슬금슬금 내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점원이 아니라 내가 해주면 괜찮을  같다고.

'아니..'

꼭 귀를 뚫을 필요는 없는데 말이다.

그렇게라도 해서  앞에서 보였던 쪽팔린 꼴을 조금이라도 만회하고 싶었던 걸까. 아무래도 그런  같아서 바라는대로 해주기로 했다. 괜찮다고 꼭 그럴 필요까진 없다고 말을 하자니 그렇게 말해버리면  시무룩한 얼굴이 한층  시무룩하게 변해버릴 것만 같았으니까.

"알겠어요."

원하는대로 해줄테니 눈좀 감아보라고 말했더니 클레어가 감으라는 눈은 감지 않고 슬금슬금 내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뭐 또 부탁할 게 남은 것일까.


그런 거라면 어디 한 번 해보라는 뜻으로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더니 뭔가를 말할 듯 말 듯 입술을 오물대던 클레어가 이내 조심스럽기 그지없는 요청 하나를 전해왔다.

"그.. 손좀.."

잡아줄  있겠냐는 내용의 요청이었다.


그녀의 입에서 그 말이 흘러나온 순간 뒤쪽에 버티고 있던 접객원의 입에서 피식하고 바람 빠지는 소리 비슷한 게 튀어나온 것 같기도 했지만 일단은 신경쓰지 않고 넘어갔다.


"됐죠?"

바라는대로 손까지 잡아줬으니 이제 정말 하겠다는 뜻으로 그리 말했더니 클레어가 마주잡은 손에 꼬옥하고 힘을 준채 고개를 끄덕였다.

뾰족한 것이 자길 향해 다가오는 광경을 차마 두 눈 뜨고 맞이할 자신까지는 없었던 것일까.

얼른 끝내달라는 듯 눈을  감은 채 내 처분만을 기다리고 있는 클레어를 향해서 귀뚫는 도구를 움켜쥔 손을 내뻗었다.

눈을 감는 걸로 시각까지는 차단해도 자연스럽게 감지되는 기척까지는 어찌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도구를 움켜쥐고 있는 손이 클레어와 가까워질수록 그녀의 몸이 불 위에 올려진 오징어마냥 움츠러드는 꼴을   있었다.


하필이면 목도 같이 움츠려버린 탓에 그대로는 시도를 할 수가 없었다.

자세가 자세인지라 무턱대고 시도했다간 귀는 물론이거니와 목덜미에도 구멍이 뚫리기 딱 좋아보였으니까.

'어쩐다..'


한껏 움츠려든 클레어를 보며 잠시 고민하다가 그녀를 향해 몸을 숙였다. 혹시 내가 뭐 키스같은 거라도 할 거라고 생각했던 걸까.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아까부터 뒤쪽에서 날아와 꽂히던 시선이 한층  강렬해지는 걸 느낄  있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하려던 걸 이어나갔다.

점차 거리가 가까워짐에 따라 클레어의 몸이 아까하고는 다른 의미로 뻣뻣해지는 걸 눈에 담으며 입술이 그녀의 볼에 닿기 직전에 멈춰섰다.

그리고는 그것을 살짝 벌려서 후하고 가볍게 숨을 내뱉었다.

내심 기대하고 있었던 것하고는 많이 달랐던 걸까.

언제 질끈 감고 있었냐는 듯 동그랗게 뜨인 클레어의 눈과 시선을 맞추며 그녀로 하여금 보란듯이 피식하고 웃어보였다.


그에 클레어의 얼굴 위로 빨간 물이 확 솟구친 순간,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미리 대기 시켜놓고 있었던 것을 이용해 그녀의 귀를 꿰뚫었다.

아마 클레어의 입장에서는 살짝  때리고 있었더니 따끔하고 끝나지 않았을까.

분명 그랬을 거다.

그러니 저렇게 얼떨떨한 표정을 하고 있는 것이겠지.

그와는 별개로 뚫린 구멍을 통해서 그녀의 낯빛보다 훨씬  새빨간 액체가 찔끔찔끔 새어나오길래 옆에 대기하고 있던 접객원에게서 깨끗한 천을 건네받아 그곳에 대주었다.

그리고는 그것이 서서히 빨갛게 물들어가는 모습을 눈에 담으며 클레어의 손을 그쪽을 향해 잡아끌었다.

그런 식으로 알아서 지혈을 하도록 해둔 다음에 접객원을 향해서 돌아섰다.

물론, 그가 여태껏 보여준 성의에 보답하기 위함이었다.


이렇게까지 성심성의껏 손님을 접대하는 걸 보면 단순히 애국심 그런 문제를 떠나서 파는 양에 따라서 뭔가를 약속받기라도 한 모양인데..

그래서 아까 그에게 추천받았던 것 외에도 몇 개를 더 골라  번에 값을 치뤘다.

그 중에서  개는 다름아닌 클레어의 몫이 될 예정이었다.

어찌되었건 나로인해 귀까지 뚫게되지 않았던가. 그런데 하나만 덜렁 선물해주긴 뭔가 좀 그랬다.

그리고  외에 나머지 것들은..


'뭐.. 그때그때 상황봐서 꺼내든가 해야겠네.'

맘 같아서는 한 명마다 하나씩 쥐어주고 싶었지만 그러기에는 아직 둘러보지 못한 부스가 많았으니까. 여기다가 돈을 죄다 때려박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아무튼 그렇게 추가로 몇 개를  구매해서 그런 지는 몰라도 접객원의 얼굴에 싱글벙글한 미소가 내걸렸다.

그런 접객원만큼이나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는 이가 있다면 다름아닌 클레어였다.


한 개였던 선물이 세 개가 되니 그녀는 귀에서 올라오는 통증마저 잊은 채 헤실헤실 웃기 바빴다.


 모습이 얼마나 얼빠져 보이던지 그녀를 처음 봤을 때 봤던 살벌하기 그지없었던 모습이 더이상 생각나지 않을 정도였다.

"저기도 한 번 가보죠."

왕국 연합 측에서 준비한 부스는 세공과 관련된 부스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세공과 관련된 부스가 그들에게 배정된 영역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긴 했지만 그 외의 다른 것들을 다루고 있는 부스또한 옆에 버젓이 자리하고 있었으니까.


메인이랍시고 적극적으로 밀고 있는 세공 부문쪽에 비해 배정된 인원 수가 적다보니 살짝 초라하게 느껴지는 감이 없잖아 있긴 했지만 존재감만큼은 확실했다.


그렇게 또렷한 존재감을 발하고 있는 곳 중에 하나가 바로 요리 부문을 담당하고 있는 노점이었다.


그곳을 지키고 있는 건 일전에 개막식 때 보았던 불꽃 연설녀와 같은 종족으로 보이는 불꽃으로 이루어진 몸을 지닌 인간들이었다.


그들 옆에 놓여져있는 것들은 왕국 연합쪽 특산물 같은 거라도 되는 지  생소한 식재료들이었고 말이다.

'하나같이 철판이 딸려있는  보면..'


저기다가 볶아서 주는 건가?

뭐, 확인해보면 알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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