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6화 〉히로인이 되기 전에..
제국 아니면 왕국 연합이라.
그 말을 내뱉을 때의 뉘앙스를 고려하면 맞으면 좋고 아님 말고 식으로 대충 던져본 말은 아닌 것 같았다.
그렇다면 대체 무엇을 근거로 앨리스는 그런 판단을 내린 걸까.
궁금한 마음에 그 말을 한 장본인을 향해 시선을 던져보니 내 눈빛을 받은 앨리스가 볼을 긁적대며 입을 열었다.
그리고는 타인의 귀를 의식한 듯 조용조용한 목소리로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자신이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를 말이다.
그런 앨리스의 설명 덕분에 알 수 있었다. 그녀가 어떤 흐름을 통해서 그런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는지를 말이다.
앨리스가 추측을 위해서 동원한 방법은 다름아닌 소거법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설명에 따르면 가장 먼저 제외된 곳은 다름아닌 교국이었다.
앨리스의 주장은 이러했다.
교국은 코딱지만한 땅덩어리만큼이나 사는 사람도 거기서 거기라서 누굴 몰래 잠입시킨다거나 그럴 수 있는 구조가 아니란다.
그래서 교국 측 인원이 포섭되었을 수도 있는 거 아니겠냐는 식의 가능성을 펼쳐보이니 그또한 반박당했다.
이번 교류전을 위해서 교국 측에서 동원한 이들의 전부가 오랜 시간에 걸쳐 다방면으로 '검증'이 끝난 이들인데 그럴 리 있겠냐는 식의 논리였다.
하도 자신만만해하길래 의아해서라도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검증이요?"
그게 대체 뭐길래 저렇게까지 자신하나 싶었으니까.
해서 물어봤더니 답이랍시고 돌아온 건 영 만족스럽지가 않았다.
"..뭐, 아무튼 그런 게 있어."
가타부타 설명도 없이 그게 딱 전부였으니까.
말하는 걸 꺼리는 느낌이 강하게 나서 더 파고 들어가기도 좀 그랬다.
아무튼 그렇다니 그 부분은 그렇다치고 넘어간다 쳐도 우리 측은 왜 제외한 것일까.
말하길 껄끄러워 하는 부분을 더 파고 들어가봐야 분위기만 어색해질 뿐이었기에 그쪽으로 잽싸게 화제를 돌렸다.
"우리 측은 진작에 다 검증이 끝났거든. 애초에 다른 쪽에 비교하면 남자 수가 얼마 안 되기도 하고.."
그랬더니 그런 말이 돌아왔다.
그 부분만큼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좀 생겼다 싶으면 그냥 끌고 온 듯한 제국 측이나 왕국연합 쪽하고는 다르게 우리 측은 남성을 뽑을 때도 실력을 봤으니까.
그렇기에 다른 곳들과 비교하면 남성의 수가 상대적으로 적을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한 명 한 명이 알짜배기긴 했지만.
그런 식으로 앨리스가 어쩌다가 그러한 결론에 다다르게 되었는지를 내 나름대로 추측해보고 있자니 앨리스가 잽싸게 설명을 덧붙여왔다.
"뭐, 단순히 그런 이유 때문만은 아니야."
뭐가 더 있단 말인가?
그리 생각하기 무섭게 앨리스의 입에서 생소하기 짝이 없는 이름 하나가 흘러나왔다. 느낌상 종교단체의 것으로 추정되는 이름이었다.
"혹시 아버지 교단이라고 알아?"
"아버지 교단이요?"
어째 이름부터 심상치 않았다. 사이비 냄새가 아주 그냥 확 풍긴달까.
게다가 이 세계의 주된 종교가 여신교라는 이름을 단채 활동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노골적인 작명을 통해 그들과 정면으로 맞서보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는 드러내고 있는 듯 했다.
아니나 다를까 뒤이어 흘러나온 앨리스의 이야기는 내가 예상한 것과 대충 비슷한 내용을 그 안에 내포하고 있었다.
이 세계는 기본적으로 여신교의 세가 압도적으로 강하기에 여신교가 아닌 다른 종교는 자연스럽게 마이너 신세가 될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그리고 아버지 교단이라는 곳은 그렇게 마이너가 되어버린 곳들 중에서도 메이저에 해당되는 곳이란다.
그만큼 유서가 깊으며 악명또한 깊은 곳이라고.
"뭐, 지역에 따라서는 주신교나 구교같은 이름으로 부르는 곳도 있다고는 하는데.."
본인들만큼은 아버지 신을 곳이니만큼 꼬박꼬박 아버지 교단이라는 이름으로 부른다는 것이 앨리스의 설명이었다.
"그리고 놈들의 특징이라면.."
왜 또 말하길 주저하는 걸까.
망설이는 이유가 나로서는 이해가 되질 않아서 고개를 갸웃하고 있었더니 입술을 오물대며 망설임을 드러내던 앨리스가 결국 입을 열었다.
"교리가 특징이야."
"교리요?"
"응, 놈들의 주장에 따르면 여신은 아버지 신을 배신하고 그 자리를 찬탈한 허신이고, 그렇기에 여신이 다스리는 작금의 세상은 정상적이지 않다는데.."
주변에 사람이 많다보니 혹시라도 남들의 귀에 들어갈 것을 우려한 걸까. 앨리스의 목소리는 뒤로 갈수록 줄어들었다.
그나저나 세상이 잘못되었다는 식의 교리라니.
온갖 주장으로 무장한 사교도들을 다 만나봤던 내게는 굉장히 흔한 레퍼토리로밖에 들리지 않았다.
사교도 놈들이야 원체 세상에 불만이 많은 놈들이다보니 놈들이 틈만나면 하는 소리가 대충 그런 식이니까.
그런데 그게 특징적이라니.
어쩌다가 그렇게 된 걸까 나름대로 추측해보고 있자니 앨리스의 설명이 곁들어졌다.
"그.. 여성들이 우위에 서 있는 지금의 세상을 말하는 거야."
"아."
어쩐지 왜 말하길 주저하나 했더니만.
그런 거라면야 순간적으로 망설였던 것도 이해가 됐다.
앨리스의 입장에서는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을테니까. 혹시라도 내가 놈들의 교리와 주장에 매력을 느끼기라도 하는 날에는 제 손으로 사랑하는 남자를 사이비 종교에 빠뜨린 꼴이 되어버리는 것이니 말이다.
'뭐, 확실히..'
이 세계에서 평범하게 나고 자란, 그렇기에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여성들에게 많은 시달림을 받았던 남성이라면 혹할 수밖에 없는 주장이긴 했다.
남자가 번식을 위한 도구 취급 당하는 게 일반적인 세상에서 사실은 네가 여자들보다 더 우월한 존재였다고 속삭여대는데 매력적으로 들릴 수밖에 없겠지.
의아한 부분이 있다면 그것만으로는 놈들이 마이너 중에서도 메이저 자리에 오른 것이 설명이 되질 않는다는 점이었다.
다른 분야보다 몇 배는 더 심하게 머릿수빨을 타는 것이 바로 종교니까.
헌데 이 세계는 대체 무슨 이유 때문인지는 몰라도 남성의 비율이 여성에 비해 압도적으로 적었다.
그런데 오롯이 남성만을 노리는 종교로 메이저 자리에 오른다?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고, 그렇다는 건..
'뭔가 또다른 전략을 썼다는 이야기인데..'
그게 뭘까.
대체 어떤 방법을 썼길래 여성들까지 끌어들여서 머릿수를 채울 수 있었던 걸까.
그건 곧 알 수 있었다.
참으로 친절하게도 앨리스가 설명을 덧붙여주었으니까.
앞서 말했듯 여성에 비해 남성의 수가 압도적으로 적다보니 자연스럽게 도태되는 여성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걸 방지하기 위해 여러 여성이 한 명의 남자를 공유하는 일부다처제가 일반적인 일이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태되는 여성의 수가 어마어마하단다.
그리고 스스로를 아버지의 자식들이라 칭하는 놈들이 노리는 건 바로 그렇게 도태되어진 여성들이었다.
딱 거기까지 들은 순간 감이 왔다.
아버지 교단이라는 놈들이 대충 어떤 식으로 영업을 했을지가 말이다.
내 예상이 틀리지 않다면 놈들은 분명..
"교단에 들어오면 남자들하고.. 그걸 할 수 있게 해준다는 식으로 사람들을 유혹한다고 하더라."
그래, 그렇겠지.
솔직히 말하자면 놀랍지도 않았다.
사이비 종교에서 미인계를 사용해 교세를 불리는 경우는 자주 보이다 못해 사용하지 않으면 왜 안 써먹나 싶을 정도로 흔하면서도 상당히 효과적인 방법이니까.
현생만 봐도 그렇지 않던가.
일단 상대방의 얼굴이 괜찮으면 상대방의 입에서 '혹시 도를 믿으시나요?'라는 말이 튀어나와도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이 사람인데 일평생 남자하고 손 한 번 잡지 못한채 늙어죽는 여성들이 발에 채일 정도로 많은 이 세계에서는 어떻겠는가.
하물며 여성들의 성욕이 현생의 남성들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압도적으로 강하다면?
자길 따라오면 남자랑 할 수 있다는 말을 듣자마자 머리로는 따라가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일단 몸부터 움직이지 않을까.
궁금한 건 더 나은 세상을 꿈꾸며 교단에 가담한 놈들이 영업용 딜도로 전락하는 걸 순순히 받아들일지 하는 것인데..
'짐작가는 게 아예 없는 건 아닌데..'
아무튼 그 의문 또한 앨리스가 해결해주었다.
그런 식으로 교단에 투신한 여성들을 감당하는 것은 남성들 중에서도 신앙심이 증명된 이들, 그러니까 세뇌 작업이 어느 정도 끝난 이들의 몫이란다.
그리고 여성들을 많이 상대하면 상대할수록, 스스로 '희생'하여 끌어들인 여성들의 수가 많을수록 교단 내에서 직위가 올라가는 구조라나?
그 설명을 듣고 든 생각은 딱 하나였다.
'이야, 이거 완전..'
다단계 아닌가?
설마 그 아버지 교단인지 뭔지 하는 곳에 환생자라도 한 명 섞여있는 걸까.
그런 생각마저 들 정도로 참 익숙한 구조였다.
"뭐, 그것도 그거지만 교단 내에서 남자들의 권한이 압도적으로 강하다더라. 듣기로는 그.. '의식'을 할 때도 여자는 특별히 준비해놓은 기구 위에 묶인 채로 가만히 있어야 한다고 하던데.."
특별히 준비해놓은 기구에 묶인 채로 가만히라.
의식인지 뭔지를 거행하는 남자들에게 따먹힌다는 느낌이 아니라 따먹는다는 느낌을 주기 위한 장치일까.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았다.
아니, 그 부분은 그렇다 쳐도.. 왜 이렇게 잘 알고 있는 걸까.
'설마..?'
나도 모르게 의심하는 듯한 눈빛으로 앨리스를 바라보기라도 했던 모양이다. 내 눈빛을 받은 앨리스가 화들짝 놀라며 다급하게 손을 내저었다.
의심하지 말라고 그런 것 같은데 솔직히 말하자면 역효과였다.
하도 강하게 부정해대니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머릿속으로 떠올랐으니까.
"아니이.. 진짜로 그런 거 아니라니까? 그냥 내 첫 임무가 놈들에 대해 조사하는 거였어서.."
자연스럽게 잘 알게 되었다고는 하는데.. 뭐 믿어줘야겠지.
아무튼 자칭 아버지 교단 전문가 피셜에 따르면 놈들은 하나같이 기형적인 모습을 하고 있는 세상을 바로 잡아야만 한다는 사명감에 쩔어있단다.
"아, 혹시 그러면.."
"그래, 네가 들었다던 마지막 인사 때문이야."
그래서 아버지 교단이라고 추측했던 거구나.
아무튼 자칭 아버지 교단 전문가인 바이올렛의 피셜에 따르면 놈들이 주로 활동했던 지역이 바로 제국 일부 지역과 왕국 연합 쪽이란다.
그 말 덕분에 알 수 있었다.
그녀가 왕국 연합 아니면 제국 쪽에 범인이 숨어있을 거라고 추측했던 근거가 뭐였는지를.
"개인적으로는 여자 쪽은 제국일 가능성을 남자 쪽은 왕국 연합측에 숨어있을 가능성을 조금 더 높게 보고 있긴 해."
"흠, 그래요?"
"응, 그리고 아마 그런 식이라면.."
주 행동원들은 대개 왕국 연합 측에 몸을 담고 있을 거라는 것이 앨리스의 주장이었다.
아마도 그쪽 일행이 급하게 꾸려졌다는 점을 고려한 것이겠지.
서두르는 상대만큼 속여넘기기 좋은 것도 또 없으니 말이다.
앨리스를 바라보며 대충 알았다는 식으로 고개를 주억거리던 순간이었을 것이다.
아까 전부터 배경음악마냥 울려퍼지던 바이올렛의 목소리가 뚝 멎었다.
그에 그곳을 향해 시선을 던져보니 고새 할 말을 다 끝낸 것인지 오연하기 짝이 없는 눈빛을 한채 자리에 모인 이를 쓱 둘러보다가 그대로 몸을 돌려 단상 밑으로 내려가는 바이올렛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문득 웃음이 나왔다.
저 모습을 보고 그 누가 동생 옷을 뺏어입었다고 생각할까.
그만큼 방금 바이올렛의 모습은 제국의 황녀라는 직위에 딱 맞게 오만했으며, 자신감이 넘쳤다.
'어떻게 연설은 잘 했으려나..'
앨리스와 대화를 나눈답시고 멀리서부터 들려오는 것을 귀담아 듣질 않았던 탓에 그 부분만큼은 알 수가 없었다.
다만 밑으로 내려가기 위해 걸음을 옮기는 바이올렛의 꼬리가 좌우로 살랑살랑 흔들리며 만족스러움과 여유라는 감정을 사방으로 흩뿌리고 있는 것으로 보건데 제 딴에는 제법 괜찮은 연설을 펼쳤다고 생각하는 듯 했다.
기본적으로 브레이크가 없어서 그렇지 급발진만 안 하면 기본적으로 남들에게도 자신에게도 엄격한 편인 그녀가 그럴 정도라면 분명 괜찮게 한 거겠지.
그런 내 추측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듯 불꽃녀가 내려갈 때하고는 다르게 자연스럽게 울려퍼지기 시작한 박수소리에 맞춰서 적당히 손뼉을 부딪히고 있자니 마지막 차례라 할 수 있는 우리 측 대표가 단상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각국의 책임자라 할 수 있는 이들이 올라오기로 되어있는만큼 우리 차례때는 필시 그 꼬장꼬장하게 생긴 외무대신이 올라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음..?"
왜 클레어가 올라오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