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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인이 되기 전에 (213)화 (212/366)



〈 213화 〉히로인이 되기 전에..

솔직히 설마설마 했었는데 역시는 역시였던 모양이다. 하긴,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리 없지.

심지어 평범한 방앗간도 아니었다.

경계가 제법 삼엄한게 흠이긴 하지만 어떤 식으로든 그걸 뚫어내기만 하면 배가 터질 때까지 먹어도 남을 정도로 풍족한 곡식이 넘쳐흐르는 곳이 바로 교류전이라는 이름의 방앗간이었다.


늘상 관심이라는 것이 굶주린 사교도들로서는 결코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을 터.


'아니, 뭐 그건 그렇다 쳐도..'


 놈의 귀가 이리도 밝단 말인가.


이 정도면 지나갈 때 뒤에 대고 몰래 수근대는 것도 불가능할 것 같았다. 아무리 작게 말한들 거리가  100미터 정도 되지 않는 이상은 틀림없이 저 귀에 걸릴 것 같았으니까.


그런 귀신같은 면모를 지닌 귀의 관심을 끈 소리는 다름아닌 아래쪽에서부터 들려오고 있었다.

아래쪽 정확히 어디에서 들려오는 건지가 순간적으로 궁금해져서 바이올렛이 공유해준 감각을 이용해 그것의 행방을 추적해봤다. 그러다보니 눈으로 들어온 것은 우리가 들어와있는 창고 벽쪽에 딸려있는 자그마한 환풍구였다.


소리는 다름아닌 그곳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아무래도 그 환풍구와 연결된 방중에 한 곳에서 오가고 있는 대화가 환풍구를 타고 이곳까지 전달되고 있는 것 같은데..


'건물을 뭐 이따구로 만들었대.'


아무튼 소리가 어디서부터 들려오는지를 파악하고 나니 그곳에 집중하는 것만으로도 들려오는 목소리들이 아까보다 한결 또렷해졌다.

"..표는 역시.. 녀겠지?"

"예, 아무래.. 그게.. 효과.. 좋을.."


그럼에도 여전히 누락되는 부분이 존재하긴 했지만 나름대로 짜맞춰보지 않으면 무슨 말을 하는지 내용을 거의 파악하기 힘들었던 아까하고 비교하면 훨씬 나았다.

지금 열심히 작당을 모의하고 있는 이들의 목표가 바이올라나 바이올렛, 혹은 성녀일지도 모른다는  파악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덕분이었다.


문제는 셋 중에 누구냐는 건데..

효과가 좋을 거라고 말하는걸 보면 역시 성녀를 노리고 있는 걸까.

확실히 성공하기만 하면 대박도 그런 대박이 또 없을테니 가능성은 충분했다.

성녀는 여신교의 상징이자 얼굴마담이니 말이다. 그런 이가 사교도들이 벌인 일에 의해 중상을 입거나 혹은 사망하기라도 한다면?


세상이 떠들썩해질 것이고 덩달아 그 일을 벌인 놈들의 이름값또한 올라가게 되겠지.

그렇기에 그쪽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뒤이어 들려온 년놈들의 대화가 그런  착각을 바로 잡아주었다.

"..고는 역시.. 성녀.. 쓰러뜨리.. 것.. 겠지만.."


"그건 현실적으로.. 힘든.. 황녀.. 최선.."

오가는 대화를 들어보니 놈들도 성녀를 목표로 삼고 싶었던 모양이다. 현실적으로 성공할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하고 진작에 포기해버린 모양이긴 하지만.


그리고 그 대신으로 삼은 것이 바이올렛이나 바이올라 둘 중에  명인듯 했다.

'확실히..'

성녀라는 거목을 고꾸라뜨리는데 성공했을 때와 비교해보면 약발이 좀 떨어지는 건 사실이지만, 효과적으로 보이는 건 그쪽또한 매한가지였다.


아니, 어쩌면 성녀를 고꾸라뜨리는데 성공했을 때보다 더한 소란이 벌어지게 될지도 모르지.


정말로 그런 일이 벌어지게 되면 제국 측에서 가만히 있지만은 않을테니 말이다.


바이올라나 바이올렛의 몸에 자그마한 생채기라도 새겨지는 날에는 사교도들의 씨를 말려버리고 말겠다면서 득달같이 들고 일어나지 않을까.

자존심 때문에라도 그렇게 될 수밖에 없겠지.

중요한 건 바이올라와 바이올렛  중에 어느 쪽이 저들의 타겟이냐는 건데..

그걸 추측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다른 한쪽에 비하면 노리기 압도적으로 쉬운 쪽이 있었으니까.

'노리는 건..'


분명 바이올라겠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야 간단하다. 내가 저들과 같은 입장이었다면 필시 그렇게 했을테니까.

저들이 가용할 수 있는 자원에는 분명 한계가 있을 것이다. 사람 몇 명 몰래 박아넣는 것하고 테러에 쓸 물자를 반입하는 건 난이도 면에서 차원이 다르니 말이다. 분명 들키지 않는 선에서 최소한의 물자만 동원했을 것이고, 그렇게 얼마 되지 않는 자원을 이용해 일을 벌였을 때 성공이라고 부를 수 있을만한 결과를 얻어낼 가능성이 가장 큰 쪽이 바로 바이올라였다.

이유?


간단하다.

바이올라가 '참가자'기 때문이다.

본인도 황녀이니만큼 평소에는 제 언니하고 동급의 경호를 받을테지만 참가자  한 명으로 교류전에 참가하고 있는 순간이라면 어떨까.

경호를 담당하는 이들이 연무대 위까지 따라올라갈 수는 없을테니 말이다.


그 순간을 노려서 일을 저지른다면?

기사들이라는 이름의 벽에 둘러싸인 상태일때 노리는 것하고 비교하면 몇 배는 더 치명적일 터.

그런 식으로 나름대로 추측을 이어나가고 있자니 띄엄띄엄 들려오던 대화는 어느덧 마무리 국면으로 접어든지 오래였다.


"그럼 다음.. 선은.. 언제.."

"따로.. 기별.. 넣.."


"비틀린 세상.. 바로 잡.."

"그게 우리.. 사명.."


그게 딱 마지막이었다.

암만 귀를 기울여봐도 더는 들려오는 것이 없었다.


그 사실을 깨달은 즉시 환풍구 쪽을 향하고 있던 시선을 다시금 바이올렛을 향해 돌렸다. 물론, 그녀의 반응을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그만큼 궁금했다. 그녀라면 저들이 노리는 것이 바이올라라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알아낼  있을테니까.


아니나 다를까 눈에 들어온 바이올렛의 얼굴은 더없을 정도로 심각하게 굳어있었다. 그런 그녀의 얼굴 위에 자리를 잡은 것은 골치아프다는 표정이었고.

그럴 수밖에 없겠지.


생각치도 못하게 테러 모의에 대한 것을 엿듣게  셈이니까. 심지어는 테러의 목표가 자신의 동생이기까지 하니 그녀로서는 더욱 골이 당길 수밖에 없을 터.


아마 지금쯤 머릿속으로는 방금 들은 되도 않는 작당을 어떤 식으로 치워버릴지 열심히 고민하고 있지 않을까.

힘이 팍 들어가서 꾸깃꾸깃하게 구겨진 미간이 이따금씩 움찔움찔하고 떨리는 것으로 보아 아무래도 그런  같아서 당장은 닥치고 있기로 했다.


그러고 있었더니 자길 바라보는 내 시선을 느끼기라도  모양인지 애먼 곳을 향하고 있던 바이올렛의 시선이 내쪽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눈이 마주치게된 순간 바이올렛이 가장 먼저 내뱉은 말은  건에 대해서는 자신이 알아서 처리할테니 경거망동하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는 식의 말이었다.


양쪽에서 움직였다가 방금  년놈들이 뭔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까고 계획을 틀어버릴 걸 걱정한 걸까.


그렇다기보다는 날 걱정해서 그런 것 같았다.


혹시라도 내가 무턱대고 움직였다가 방금 그 년놈들에게 걸려 놈들에게 노려지진 않을지 걱정이라도 됐던 모양.


솔직히 말하자면 쓸데없는 걱정이라는 생각밖에 안들었다.


존재 자체를 몰랐다면 몰라서 당했을 수는 있었겠지.


하지만 지금처럼 속이 시커먼 년놈들이 참가자들 내에 숨어들었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는 상태라면?

놈들이 부리는 수작질에 당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어찌보면 그쪽 분야의 프로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나니까.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조연 짓을 하면서 보낸 시간을 종류별로 분류해보면 사교도라고 불리우는 놈들하고 부대낀 시간이 대략 절반 정도는 될테니까.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깨우치게 된 건 사람 사는 곳이  거기서 거기인 것처럼 사교도란 새끼들도 다 거기서 거기라는 점이었다.


하나같이 '아, 악신 형! 세상이  이래!'를 부르짖기 바쁜 사회부적응자 놈들이라고 해야할까.


그건 남녀의 역할이 뒤바뀐 이 세계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 같았다.

살짝 마음에 걸리는게 있다면 년놈들이 헤어질 때 주고받았던 멘트에 숭고함 비스무리한 게 묻어있었다는 점인데..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사교도 놈들이 자기들이 하는 행동이 남들한테 얼마나 민폐인줄 모르고 숭고한 행위라 착각하는 경우는 자주 볼 수 있는 케이스다 못해 흔해빠진 경우니까.

아무튼 바이올렛은 내가 나서는 걸 바라지 않는 눈치였다. 그래서 잠시 고민하는 척을 하다가 그렇게 하겠다고 답했다.


굳이 여기서 팅길 이유를 느끼지 못했으니까.

바이올렛의 말마따나 그녀의 선에서 일이 해결된다면 내게도 나쁠 게 없었고.

물론, 답은 그리 했지만 실제로 아무 것도 안 하고 두  놓고 가만히 있을 생각따위는 없었다. 일단 일이 대충 어떻게 돌아갈지 정도는 나도 파악하고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야 영문도 모른  얼떨결에 휘말려버리는 개같은 경우도 없을테니 말이다.

바이올라의 기습에 이어 테러를 노리는 년놈들의 작당모의까지.


정신이 번쩍 들 수밖에 없는 일이 연달아서 들이닥치니 흥이 팍 식어버린 것일까. 몸을 포옥하고 감싸고 있던 바이올렛의 꼬리가 떨어져나가더니 그녀가 내 몸을  부여잡고 있던 팔을 풀었다.

그렇게 자유의 몸이  순간 귓가로 울려퍼진 것은..

"..꼴이 엉망이네요."


다름아닌 그것이었다.


 말을 들은 순간, 하도 어이가 없어서 나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본인이 이렇게 만들어 놓고서는 탓이라도 하는 뉘앙스라니.


아니, 그건 그렇다 쳐도 본인 꼴이 어떤지는 알고서 저런 소리를 하는 걸까.

바이올렛은  보고 엉망이라 했지만 내가 볼때 그런 소리를 들어야하는 건 내가 아니라 그녀였다.


그만큼 바이올렛의 몰골은 엉망이었다.


오늘 처음 봤을 때만 하더라도 종이를 가져다대면 잘리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빳빳하게 잘 다려져있던 제복은 군데군데가 꼬깃꼬깃하게 구겨져있었고, 내가 이 두 손으로 직접 세심하게 공을 들여 가지런하게 빗어준 꼬리는 부스스하게 붕 뜬채 사방을 향해 뻗쳐있었으니까.

그뿐만이면 차라리 다행이지 그 잠깐 사이에 꼬리에서 빠진 털이 그녀의 옷 곳곳에 찰싹 들러붙어있었다.

나하고 찰싹 붙어있었던 탓에 시녀들이 공을 들여 세팅했을 머리도 특정 부분이 눌려있었고 말이다.

오늘 그녀를 세팅해주었던 시녀들이 봤다면 대체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할지 감이 잡히질 않아 비명을 내지르기에 충분한 상황.


그야말로 총체적난국이라는 말이 참으로 잘 어울리는 바이올렛의 몰골이 헛웃음을 흘리며 그녀의 모습을 위에서부터 아래로 쭉 훑었다.

이대로 보내도 되는 건가 싶었으니까.

그런  행동 덕분에  몰골또한 만만치 않다는 사실을 자각한 모양이다.


"일단.. 나가죠."


그리 말하면서 한동안 신세를 졌던 창고를 빠져나가는 바이올렛을 따라 나무벽으로 둘러싸인 좁은 공간을 벗어나니 그때부터 그녀가 분주하게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시녀들을 찾아가 다시 세팅할 여유따위 있을 리 만무하니 급한대로 혼자서 수습해보려는 모양인데..


'될 리가 있겠냐..'


바이올렛이 암만 뛰어나도 여러 명이 달라붙어서 제법 오랜 시간 공을 들여 만들어낸 것을 혼자 힘으로 단시간 내에 재현해내는 건 불가능했다.

이쯤되면 급한대로 고양이 손이라도 빌려야겠다는 생각을 하기 마련이건만 바이올렛은 그러질 않았다.


혼자 힘으로 해결하고야 말겠다는 것처럼 더욱 분주하게 손을 놀리기만 할뿐.

내게 도움을 청하자니 여성으로서 자존심같은 게 그걸 허락치 않기라도 했던 걸까.

그 모습이 왠지 모르게 안쓰럽게 느껴졌다.


그래서 보다못해 나서기로 했다.

"이리 와보세요."


화장실 벽면에 붙은 거울 앞에 서서 손짓으로 그녀를 불렀다. 그러자 제 몸 곳곳을 내려다보며 분주하게 손을 놀리고 있던 바이올렛의 어깨가 움찔하고 튀어올랐다.

그럼에도 바이올렛은 자리에서 움직이질 않았다.

'이건 뭐..'


저기에 뿌리내린 것도 아니고 말이지.

웃긴 점은 거절하겠다는 것처럼 제자리에서 옴짝달싹도 안 한 것치고는 은근히 내가  자신을 설득해주길 바라는 눈치라는 점이었다.

대체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 지는 모르겠지만..

"연설하신다면서요.  몰골로 올라가실 생각입니까?"

나도 네가 좋아서 이러는  아니라고 말이라도 하는 것처럼 한숨을 포옥하고 내쉬면서 다시 한 번 바이올렛을 향해 손짓을 해보였다.


참으로 다행히도 이번에는 거절당하지 않았다.


"흠흠.."

헛기침 소리가 울려퍼졌다.

다 합쳐서  두 번 울려퍼진  소리는 꼭 네가 그렇게까지 말을 하니까 어쩔 수 없이 들어주는 거라고 말하는  했다.

'거참..'

대체 그놈의 자존심이 뭐라고 이렇게까지 하는지..


그래도 나름 귀엽게 느껴지긴 해서 속으로 피식피식 거리다가 빗을 든 손을 살짝 눌려있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향해 가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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