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로인이 되기 전에 (207)화 (206/366)



〈 207화 〉히로인이 되기 전에..

'이야..'


분위기 살벌하네.


어찌나 살벌한지  의지와는 하등 상관없이 팔뚝을 타고 닭살이 오소소 돋아날 정도였다. 그와 함께 몸 곳곳에서 올라오기 시작한 따끔따끔한 감각 덕분에  수 있었다. 방금 걸로 인해 바이올라가 진심으로 빡쳤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게 아니고서야 이렇게 살벌하기 짝이 없는 기운을 분별없이 사방으로 흩뿌려댈 이유가 없으니까.


그녀의 몸에서부터 줄기차게 흘러나오기 시작한 것에 영향을 받기 시작한  나뿐만이 아니었는지 시야가 닿는 곳에 서 있는 이들이 무슨 병에라도 걸린 것마냥 몸을 흠칫흠칫대기 시작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괜찮았다. 이것보다 살벌한 것도 몇 번이나 받아본 경험이 있으니까. 살짝 흩뿌려진 것만으로도 수련이 부족한 이들은 졸도 수준을 넘어 절명 수준에 이르는 것도 받아봤는데  정도는 뭐..

'애교지.'


문제가 있다면 나는 그랬지만 다른 이들은 그렇지가 않다는 것 정도?


개중에서 이러한 감각에 익숙할 것같이 생겨먹은 이들은 그럭저럭 잘 버티고 있는 편이었지만 이런 쪽에 아예 면역이 없는 이들은 벌써부터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있는 것이 손으로 툭하고 떠밀면 그대로 뒤로 자빠질 것만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이 상황이 지속된다면 정말 누구 하나, 아니 단체로 졸도하는 사태가 벌어져도 그리 이상하지 않은 상황.

그리고 그렇게 된다면?


당연히 교류전은 또다시 연기될 것이다.


바이올라의 과실로 인해 벌어진 일이라고는 하나 교류전의 표면적인 목적이 국가간의 친선에 있는만큼 어느 한쪽에서 그걸 득달같이 물고 늘어지는 일같은 건 벌어지지 않을테니까.

오히려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식으로 처리하려 들겠지.


그것만큼은 어떻게든 막고 싶다는  내 솔직한 심정이었다.


 이상 기다리는  사양하고 싶었으니까.

그렇다는 건?


앨리스의 기습적인 도발로 인해 제대로 꼴이 받아버린 바이올라를 내 손으로 직접 달래야만 한다는 소리 아니겠는가.


이 와중에 환장하겠는 건 발등에 불이 떨어진 거나 다름없는 나와는 다르게 앨리스 쪽은 무슨 일이라도 있었냐는 듯 태연하기 그지없다는 점이었다. 분명 앨리스도 이 따끔따끔한 감각을 느끼고 있을텐데 말이다. 하고 있는 표정이며 자세며 하나같이 어찌나 태연한지 혹시 이런 상황을 노리고서 일부러 바이올라를 도발한  아닐까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그러니까 빡친 바이올라로 인해 제국 측이 피해를 보는 상황을 말이다.

'좋게 좋게 넘어가는 식으로 간다고 해도 체면상 아예  꾹닫고 있을 수는 없을테니까..'


굳이 뭔가를 내놓으라 강요하지 않더라도 필시 그럴 것이다. 우리 측만큼이나 자존심과 자존감이 어마어마한 게 제국 측이니까.

그리고 제국 측으로 모종의 양보를 받아내게 된다면?

당연히 그만큼 이쪽이 유리해지는 건 말할 것도 없겠지.


혹시라도 패배했다간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만큼 어드밴티지를 얻어둬서 나쁠 건 없었다.

만약 정말 이게 앨리스의 의도 하에 벌어진 일이라면 아마 그녀도 비슷한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교류전에서 무슨 일이 있어도 패배해선 안 되는 입장인  그녀또한 마찬가지니 가능성은 충분하다 못해 넘쳤다.


'그럴 듯 한데..?'

그리 생각하니 바이올라를 진정시키기 위해 그쪽으로 손을 뻗는 것이 살짝 저어되긴 했지만, 그럼에도 처음 마음 먹었던대로 행했다. 이점을 얻어둬서 나쁠건 없지만, 그래도 여기서 일정이 더 딜레이 되는 것쪽이 더 손해로 느껴졌으니까.


지금까지 기다린거 며칠 더 기다린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겠냐만은.. 충분히 달라진다.


그러니까 호시탐탐 사고를 칠 기회만 노리고 있는 놈들 입장에서는 충분히 그렇겠지.


준비기간이 더 주어지는 셈이니 말이다. 며칠 정도면 어설픈 준비가 그럭저럭 괜찮은 수준까지 발전하기엔 충분했다.

'그러니까..'


여기서는 말려줘야겠지.

내 생각이 거기까지 다다르는 와중에도 바이올라와 앨리스는 대치구도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물론, 그걸 주도하고 있는 쪽은 다름아닌 앨리스였다. 방금 날린 도발 한 방만으로는 좀 부족하다 여기기라도 한 건지 바이올라를 보며 생글생글 웃는데 보는 내가 다 얄밉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러니 바이올라의 입장에서는 어땠겠는가?

누군가 붓을 가지고  그려낸 듯한 호선을 그리고 있는 앨리스의 입술 앞에 노출되는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바이올라의 턱쪽에 들어간 힘도 커져가고 있었다.


그 와중에 살짝이지만 흥미로웠던 건 다름아닌 바이올라의 반응이었다. 그러니까 그녀는 빡친 것과는 별개로 앨리스라는 존재를 굉장히 흥미로운 것 바라보는 듯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뭐가 그렇게 흥미로운 걸까.

그러한 의문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바이올라가 왜 앨리스라는 존재를 흥미롭게 여기는지 알 것도 같았으니까.

아마 익숙치가 않아서 그런 것이겠지.

그러니까 본인을 상대로 이렇게 대놓고 도발을 갈겨대는 상대가 말이다.

모르긴 몰라도 아마 난생 처음이지 않을까?

그런 거라면 앨리스가 도발을 날려댈 때마다 바이올라가 저렇게 싱싱하기 짝이 없는 반응을 보여주는 것도 충분히 이해가 갔다. 누군가한테 도발당한다는 행위 자체에 면역이 없을테니 당연히 날리는 족족 걸려들 수밖에 없었겠지.

그럴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마음 속에 새기며 이제는 숫제 으르렁대는 소리까지 내고 있는 조심스레 바이올라를 향해 손을 내뻗었다.


그리고 딱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조심스레 뻗어져나간 손이 바이올라의 팔뚝과 접촉한 순간, 곳곳에 배치되어 피부를 쿡쿡 찔러대고 있었던 보이지 않는 바늘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으니까.


야수로 변해버린 왕자님을 사람으로 되돌리는 건 그를 진실로 사랑하는 여성의 키스라고 하더니만 여기서는 이런 간단하기 그지없는 스킨십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렇게 온 사방에 배치되어 있던 무형의 바늘들이 자취를 감추고, 이제 한계라고 말하는 것처럼 핼쑥하게 질려있던 이들의 입술을 뚫고 안도의 기색이 짙게 담긴 한숨이 터져나왔다.


그와 함께 자리에 남겨진 것은 낭패감으로 물든 얼굴을 하고 있는 바이올라였다.


머리끝까지 차올라있던 열기가  빠져나가고 나니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질러버렸는지를 깨달아버린 걸까. 바이올라의 얼굴 위로 그런 표정이 떠오름과 동시에 뒤쪽에서 들려온 것은 칫하고 작게 혀를 차는 소리였다. 짧게 울려퍼진 그 소리에 아쉬움이라는 감정이 그득하게 담겨있던 것으로 보아 아무래도 내가 추측했던 것이 사실이었던 모양.

아무튼 당초 목표했던대로 정신 차리게 만드는  성공했으니 뒷수습은 정신을 차린 바이올라가 알아서 할 터.

해서 바이올라가 뒷수습에 힘쓰는 틈을 타 방금 그걸로 인해 살짝 토라졌을게 분명한 앨리스를 달래주려 했는데..

한 발 물러나야지라는 생각을 하기 무섭게 귀를 의심케하는 발언이 귓가로 울려퍼졌다.

"그.. 미, 미안 많이 놀랐어?"

확실히  놀란 건 사실이긴한데 왜 나말고 다른 이들한테는 사과의 시옷자조차 꺼낼 생각이 없어보이는 걸까. 사실 급한 걸로 따지자면 그녀의 주변에 서 있던 이들, 그러니까 제국 측에 속한 참가자들의 상태를 수습하는 것이 몇 배는 더 급해보이는데 말이다.

아니면 혹시 내 얼굴이 저들만큼이나 창백하게 질려있기라도 한 걸까.

순간적으로 당황이라는 감정이 훅 올라와서 오죽하면 그런 생각까지 들었지만 그런  같지는 않았다.

거울이 없어서 확신까지는 하기 어려웠지만 따끔따끔한 느낌 외에는 딱히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았으니까.


웃긴 건 그런 바이올라의 행동을 받아들이는 제국 측 참가자들의 태도였다.


사실상 없는 취급을 당한 거나 마찬가지인데 분해하는 기색이 코딱지만큼도 없었으니까. 항의는 커녕 바이올라로 인해 흐트러졌던 대열을 즉시 바로잡기 시작하는데 그런 그들의 모습만 보면 정말 그런 일이 있었는지 직접 겪은 나조차도 순간적으로 혼동이  정도였다.

빠릿빠릿하기 그지없는 제국 측 참가자들의 움직임을 보며 내가 기이한 느낌을 받고 있을 때 앨리스는 거기에 대고 감탄을 하고 있었다.


"확실히 제국은 제국이네."

라고 바이올라에게는 닿지 않을 정도로 작게 중얼거리면서 말이다.

"호, 혹시 화났어?"


내가 말이 없으니 자기가 벌인  때문에 화가 났다고 지레짐작한 걸까.


입꼬리는 물론이거니와 귀와 꼬리까지 축 늘어뜨린 채 슬금슬금  눈치만 보는 꼴이 퍽 안쓰럽게 느껴졌다.


그리고 열심히  눈치를 살펴대는 바이올라에게서 그러한 느낌을 받은 건 나뿐만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어느새 바이올라가 등장하기 전의 모습으로 돌아간 제국  참가자들이 이쪽을 향해 뜨겁기 그지없는 시선을 보내왔다. 남녀를 가리지 않고서 그러는데 그 시선이 어찌나 열렬한지 단번에 집중이 대상이 되어버린 얼굴이 근질근질거릴 정도였다.

우리 황녀님께서 저렇게나 안절부절 못하고 계신데 얼른 사과를 받아주지 않고 뭐하는 거냐고 그렇게 말하고 싶었던 모양인데..


딱히 신경이 쓰이는 건 아니었지만 일단은 바이올라의 사과를 받아주기로 했다. 사실 화라고는 요만큼도 나지 않은 상태라 받아주고 말고 할 것도 없긴 했지만.


"아니에요. 근데 그.."

옆에 있는 이들은 정말로 괜찮은 거냐고 물으려다가 말았던 것은 바이올라와 대화를 나누고 있자니 이제는 앞쪽이 아닌 등뒤에서부터 날아와 꽂히는 시선이 조금씩 달아오르기 시작한 탓이었다.

이미 바이올라를 말림으로서 그녀의 편을 들어준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인데 그것도 모자라 친근하게 대화까지 주고받고 있으니 열이 안 받을래야 안 받을 수가 없었던 걸까.


"이안~?"


분명 어조 자체는 나긋나긋한데 묘하게 경직된 듯한 느낌을 풍기는 목소리가 귓가로 울려퍼졌다.

그에 나도 모르게 어깨를 움찔하고 떠니 언제  늘어져 있었냐는 듯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어대며 나와 대화를 주고받고 있던 바이올라의 표정이 대번 사납게 변했다.

대화를 나누려고만 하면 방해가 들어오니 순간적으로 저도 모르게 울컥했던 모양. 물론, 바로 조금 전에 제가 저지른 실수를 고새 까먹지는 않았는지 그녀는 아까와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듯한 모습은 보여주지 않았다.


대신 날카롭게 날이 세운 눈빛이 앨리스를 향해 날아들었지만 안타깝게도 효과는 미미했다.

바이올라가 자신을 노려보건 말건 앨리스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할 말을 이어나갔으니까. 가당치도 않다는 듯 코웃음까지 쳐가면서 말이다.

"똑바로 서야될 것 같은데? 슬슬 시작하려나 봐."


심지어 내 관심을 제쪽으로 끌어당기기 위해 내세운 명분마저도 완벽하기 그지없었다.


이제 곧 행사가 시작될 것 같다는데 지금처럼 바이올라와 대화를 나눈답시고 나란히 맞춰진 대열 사이에서 혼자만 삐죽하고 튀어나와 있으면 십중팔구 저 새끼는 뭐하는 새끼지라는 느낌으로 눈에 확 띌테니까.


바이올라를 향해 시선을 던졌던  그래서였다.

이만 가봐야 하는 것 아니냐는 식으로 시선을 던져봤더니 그녀는 처음에는 모르는 척 했다.


물론, 그건 어디까지나 잠시에 불과했다.

앨리스의 말이 거짓이 아님을 증명하듯 대열의 앞쪽이 시끌시끌해지더니 한 번 본적이 있는 실루엣을  여인이 기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천천히 단상 위로 오르는 광경을 볼 수 있었으니까.

멀리 서 있는 사람도 볼 수 있도록 개막식을 위해 준비된 단상은 그 높이가 제법 높았고, 그래서 그곳을 오르는 성녀의 모습은 멀리 떨어진 이곳에서도 눈에 확 띄었다.

'저러다가 무슨 일 생겨서 떨어지기라도 하면 난리날텐데..'

그녀가 오르는 단상이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불안하게 느껴지는 건 과연 기분 탓일까?


아무튼 성녀씩이나 되는 지위의 인물이 등판하니 아무리 바이올라라도 더이상 모르는  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던 모양이다.

살짝 떨어지기만 할뿐인데 아쉬워 죽겠다는 표정을 한채 입맛을 살짝 다신 그녀가 나중에 보자며 제국 측 참가자들이 이루고 있는 대열을 향해 쪼르르 달려갔다. 그런 그녀의 움직임에 맞춰서 살랑살랑 흔들리는 꼬리에 시선을 주고 있던 것도 잠시, 문득 얼마 전의 일이 머릿속으로 떠올랐다.


그러니까 주인공 놈, 아니 주인공 년이 성녀라는 존재를 피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행동했던 것이 말이다.

놈이  있을만한 곳을 향해 시선을 던졌던  그 때문이었다.


어쩌면 정말로 타이밍이 기가막히게 맞아떨어진 것일 수도 있었지만 내 감은 그런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확인차 뒤를 향해 시선을 던져봤는데..

'..이 년 봐라?'


오늘도 그녀의 자리는 비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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