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로인이 되기 전에 (206)화 (205/366)



〈 206화 〉히로인이 되기 전에..

바이올라의 입에서  이름이 튀어나온 순간, 앨리스의 얼굴 위로 떠오른 것은 '저건 또 뭐야.'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다른 곳을 쳐다보고 있었던 탓에 앨리스는 바이올라의 얼굴은 확인하지 못하고 목소리만 들었으니까. 앨리스에게는 낯설기 그지없는 목소리였을 것이고, 그런 목소리가 굉장히 친근한 느낌으로 내 이름을 불러대니 그녀 입장에서는 또 언년이 그러나 싶었겠지.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앨리스의 고개가 제법 사나운 기세를 흩뿌리며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향해 돌아갔다. 그 기세가 어찌나 사나운지 홱하는 소리까지 날 정도였다.


그렇게 바이올라의 얼굴을 확인한 순간, 앨리스의 얼굴 위로 새롭게 떠오른 것은 물음표였다. 보아하니 바이올라가 누군지는 이미 알고 있는 것 같은데 제국의 황녀씩이나 되는 양반이 이렇게 몸소  찾아온 이유가 뭔지 궁금했던 모양.

허나 본인에게 묻기는 좀 그랬는지 바이올라를 노리고 날아들던 앨리스의 시선이 이내 내쪽으로 돌아왔다. 해명 비스무리한 것을 요구하는 듯한 그런 시선이었다.


물론, 요구를 받은 것과 거기에 대한 답을 하는 건 명백히 별개의 문제였다. 애초에 갑자기 나타난 바이올라를 보고 당황한  나또한 마찬가지였으니까.


해서 눈짓으로 열심히 나도  모르겠다는 뜻을 전하고 있자니 우리 황녀님께서는 자신이 이렇게 몸소 찾아왔는데 자길 봐주질 않는 내 행동이 야속하게 느껴지기라도 하셨던 모양이다.

"이안?"

살짝 섭섭해하는 목소리가 귓가로 울려퍼지더니 이내 내쪽을 향해 척척척척 걸어오는 발자국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자기가 다가가고 있다는 사실을 온몸을 이용해 어필하며 순식간에 내 옆까지 도달한 바이올라가 가장 먼저 한 행동은 은근슬쩍 내게 엉겨오며 앨리스에 대해 묻는 것이었다.


"이쪽은..?"


그런 바이올라의 행동에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앨리스의 눈빛이 대번 사나워진 건 말할 것도 없었다. 그 모습이 꼭 제 영역을 침범당한 고양이 같았다. 그것도 그냥 침범당한 게 아니라 영역 내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장소에 직빵으로 영역표시를 갈겨버리는 광경을 정면으로 목격한 듯한 그런 느낌이라고 해야할까.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날카롭게 치솟은 눈초리에 풍겨져나오는 기세가 사납기 그지없었다. 허리춤에 검같은게 매어져있었다면 참지 않고 그대로 뽑아들 것만 같은 기세를 줄줄 흘리며 바이올라를 지그시 노려보던 앨리스가 이내 내쪽을 향해 손을 뻗어왔다.

"이안? 저 분은?"

몸이 앨리스 쪽을 향해 쑤욱하고 잡아당겨지며, 보드럽고 말캉한 것이 팔뚝을 포옥하고 감싸안았다.

그렇게 '우리는 이 정도 스킨십은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사이다.'라고 말하는 듯한 느낌으로  팔을 있는 힘껏 끌어안은 앨리스가 바이올라의 정체에 대해 물어왔다. 알고 있으면서도 굳이 그러는 것이 정말 궁금해서 묻는 거라기 보다는 '저 듣도 보도 못한 잡년은 누군데 감히 너한테 껄떡대느냐.'라고 바이올라로 하여금 들으란 듯이 말하는 것 같았다.

앨리스의 붉은 입술을 뚫고서 튀어나온 발언에서 순간적으로 그런 느낌을 받았던  나뿐만이 아니었던 걸까.

나름대로 긴 추적 끝에 간신히  옆자리까지 도달했는데 그걸  즐기기도 전에 빼앗겨버리니 상당히 허망했던 모양이다. 순간적으로 이제  한 입 베어물려고 했던 간식거리를 눈앞에서 빼앗긴 듯한 강아지같은 표정을 하고 있던 바이올라의 얼굴이 앨리스와 비견될 정도로 사납게 변했다.

다만 앨리스의 것하고는 느낌이 살짝 달랐다.


앨리스가 내비친 분노가 고양이를 생각나게 하는 것이라면 바이올라의 그것은 맹수의 그것에 가까웠으니까.


그럼에도 딱히 꿀리지 않는 게 신기할 따름이었다.

그렇게 피차 비슷한 이유로 빡친 둘 사이에 끼어서 생각했다.  자리에 디아나가 없어서 다행이라고.


교류전에 참가하는 이들을 통틀어 신분이 가장 높은 게 바로 디아나였기에 그녀는 지금 나와 앨리스가 서 있는 이 대열의 맨 앞으로 불려가 그곳을 지키고 있는 상태였다.


그렇지 않고 만약 그녀까지 이 자리에 있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라고 여유롭게 생각하고 앉아있을 시간따윈 없었다.

양쪽에서 내게 해명을 요구해왔으니까.

"이안?"


"이안~?"

나보고 뭘 어쩌라는 걸까.


속으로 허허로이 웃고 있다가 이왕 이렇게  김에 서로에게 소개나  해주기로 했다. 보아하니 상대방에 대해 상당히 궁금한 듯 했으니까.


물론, 앨리스와 바이올라가 궁금해하는 것은 살짝 달랐다.

바이올라가 앨리스의 정체와 나와의 관계같은 걸 궁금해하는 느낌이라면 앨리스는 이제 고작  번 만났을 뿐인 나와 바이올라가 어쩌다가 이렇게까지 친해졌는지를 궁금해하는 느낌에 가까웠으니까.

해서 우선적으로 그 부분부터 긁어주기로 했다.


문제는 누구 등부터 긁어주냐는 것인데..

별  아닌  같아도 그 부분은 상당히 중요했다. 한쪽을 선택하게 되면 다른 쪽은 토라지거나 내심 섭섭함을 느낄 수밖에 없으니까.

고려해야할 점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이들의 시선까지 고려할 필요가 있었으니까.


만약 내가 여기서 앨리스의 손을 먼저 들어주면 어떻게 될까.

'뻔하지 뭐..'

바이올라의 뒷편에 자리하고 있는 저 초롱초롱한 눈빛들이 일제히 빡침으로 물들지 않겠는가?

그들 입장에서는 귀하디 귀한 황녀님이 대놓고 무시당한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을테니 말이다.

그렇다고 바이올라의 편을 들어주자니 내가 자신의 손을 들어줄 거라고 이미 확신하고 있는 앨리스의 상태가 마음에 걸렸다.

한 마디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


"황녀님, 이쪽은.."

해서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물론, 무작정 입을 열지만은 않았다. 말을 꺼내면서도 시선만큼은 앨리스쪽에 고정해놓고 그녀를 향해서 보란듯이 눈을 찡긋해보였으니까. 그래도 상대방의 신분이 있으니까 저쪽을 먼저 선택해도 이해해달라는 뜻으로 말이다.

참으로 다행히도 그런 내 필사적인 노력이 효과가 없지는 않았는지 앨리스는 내가 바이올라 쪽을 먼저 택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 납득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에 비에 바이올라는?

 입에서 흘러나온 앨리스에 대한 소개를 듣고 경계심이  강해져버렸다.

'대체 왜..?'


큰 맘 먹고  손까지 들어줬는데 대체 왜 저러는 걸까.


라고 생각하기 무섭게 깨달아버렸다.


그러니까 바이올라가 왜 저렇게까지 앨리스를 경계하는 지를.


아무래도 그녀는 내 말을 듣고 지레짐작을 해버린  같았다. 그러니까 일전에 내가 팔에 붕대를 감은 채로 나타났을때 거기에다가 애정가득한 문구를 적어넣었던 장본인이 지금 자기 눈앞에 있는 여성일지도 모른다는 식으로 말이다.

그렇게 오해할만한 여지?

충분하다 못해 넘쳤다.

일단 지금 당장도  팔이 앨리스의 품 안에 갇혀있는 상태니까. 물론, 내 자의는 아니었다. 앨리스가 한  끌어안은 뒤로 놓아주지 않고 있을 뿐이니까.

팔을 빼기 위한 시도?


그런 걸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딱히 그런 것을 시도한 적이 없음에도 이렇게 내 팔을 감싸고 있는 것들에 꾸욱꾸욱하고 힘을 주고 있는데 거기서 팔을 빼려고 한다?


그렇게 하면 과연 무슨 일이 벌어지게 될지 감히 상상조차 하기 힘들었다.

모르긴 몰라도 눈을 까뒤집으며 발작하는 모습 정도는 보여주지 않을까.

아무리 그래도 지켜보는 눈이 이렇게나 잔뜩인데 설마 그런 짓까지 하겠냐만은 실제로 그렇게 될 것 같아서 두려웠다.

그리고 앨리스가 난리를 피우기 시작한다면 주변은 당연히 지금보다 훨씬 더 소란스러워지겠지.

내가 아는  소란은 일종의 들불과도 같다. 그것도 그냥 들불이 아니라 가을 햇볕 아래에서 바짝 마른 들판 위에서 번져나가는 들불이라고 해야할까. 일단 한 번 붙으면 순식간에 저멀리까지 번져나가는 점같은 게 특히 그랬다.

그런  지금 이 자리에 강림하게 된다면?


우리 주변에서 있는 소란은 순식간에 디아나가 서 있는 곳까지 닿게 될 거다.

그리 되면 당연히 무슨 일인지 알아보기 위해 그녀가 직접 이곳으로 강림하겠지.

본의 아니게 대열의  앞자리를 차지하게 되면서 참가자들의 대표와도 같은 위치로 거듭나버린만큼 필시 그렇게  터.

무슨 일이 있어도 상황이 그렇게 되는 것만큼은 막고 싶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었다.

앨리스와 바이올라가 서로 대립하고 있는 지금도 충분히 골치가 아픈데 여기에 디아나까지 추가된다면 그때는 정말 수라장이라는 말로도 부족할 정도의 상황이 되어버릴테니까.


그래서였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을 한채 앨리스라는 새로운 경쟁자를 뜯어보기 바빴던 바이올라를 상대로 은근슬쩍 눈치를 주었던 것은.


그녀가  자리로 강림함으로 인해 몰려든 시선과 그로 인한 소란이 못내 신경쓰이는 것처럼 앨리스에 대한 소개를 이어나가면서도 바이올라의 너머에서 열심히 이쪽을 흘깃대고 있는 이들을 역으로 힐끔거렸다.


살짝 마이페이스적인 성향이 있어 다른 이들의 눈치따위 보지 않을 것같은 바이올라지만 그런 것치고 그녀는 눈치가 꽤 좋은 편에 속했다. 때로는 답답하다는 생각마저  정도로 그쪽으로는 영 젬병인 디아나보다는 일단 훨씬 나은 편에 속했으니까.


덕분에 살짝 티만 내줬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몰려든 시선을 부담스럽게 여기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데 성공한 바이올라가 그 즉시 자신의 뒤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 기세가 어찌나 격렬한지  돌아가버린 목쪽에서 뚜둑하고 파열음 비슷한 소리까지  정도였다.


사람들을 향해 돌아선 바이올라가 그 상태로 뭘 했는지는 모르겠다. 뭔가 경고같은 걸 했다면 분명 들렸을텐데 딱히 들리는  없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궁금해 죽겠다는 식으로 열심히 이쪽을 힐끔대던 이들의 시선이 일제히 전방을 향해 돌아갔다. 그리고는 그 상태로  고정되었다.


감히 황녀님의 연애사를 훔쳐보려 했던 이들에게 제 나름의 응징을 가한 바이올라가 득의양양한 얼굴을 한채 다시금 내쪽으로 돌아섰다.  표정이 꼭 '이제 됐지?'라고 묻는  했다. 해서 거기에 대고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여주니 흐흫하는 소리를 내며 만족스럽게 웃은 그녀가 옆쪽을 향해 손을 휘휘 내저었다.

그곳에는 원래 내 옆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가 바이올라가 강림함으로 인해 옆으로 밀려나게 된 이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런 식으로 엉거주춤하게 서 있던 여성을 대열의 앞쪽으로 쫓아낸 바이올라가 내 옆자리에 두 발을 박아넣었다. 그 광경을 목도한 순간 깨달았다. 이대로 개막식이 끝날 때까지 그녀는 내 옆자리에서 버틸 생각이라는 걸.


내가 눈치챈 것을 앨리스가 눈치채지 못할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당당하기 그지없는 모습으로 '내 자리!'를 선언해버리는 바이올라의 행동에 아까와 비교하면 한결 누그러졌던 앨리스의 표정이 다시금 딱딱하게 변했다.


그렇게 저기에는 모기 주둥아리조차 들어가지 않겠다 싶을 정도로 딱딱하게 얼굴을 굳히고 있던 것도 잠시, 앨리스가 언제 그러고 있었냐는 듯 굳히고 있던 것을 풀었다. 그것도 모자라 심지어 미소를 짓기까지 했다. 무려 바이올라를 향해서 말이다.

무슨 한몸이라도 되는 것마냥 나하고 찰싹 들러붙어 있는 탓에  그래도 신경쓰이는 년이 갑자기 자길 보며 실실 웃어대기까지 하니 저게 뭐하는 짓인가 싶었던 모양이다.


바이올라의 눈썹이 순간적으로 꿈틀거렸다.


허나 그건  그대로 시작에 불과했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앨리스의 '긁기'가 시작되었으니까.


"황녀님이셨군요~?"

이제 알았다는 것처럼 내뱉어진 앨리스의 발언에 바이올라는 답을 하지 않았다. 무슨 의도를 가지고 저러는지 파악하는게 먼저라고 생각한 걸까.

물론, 앨리스는 바이올라가 답을 하든 말든 상관없다는 듯 계속해서 제  말을 이어나갔다.

"우리 이안이가 마음에 드셨나봐요? 이렇게까지 몸소 찾아오실 정도면?"

우리라는 단어가 유독 강조된 것처럼 느껴진 것은 꼭 기분 탓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꼴받기에는 충분하다 못해 넘치는데 표정까지 실실 웃으면서 그러니 울컥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질  없다는 듯 앨리스를 따라 미소를 짓고 있던 바이올라의 볼이 파르르 떨리더니 그녀의 턱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뿌득-


나름대로 소리를 죽여본다고 죽여본 것 같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벌하기 그지없는 소리가 그녀의 입술 사이에서 툭하고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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