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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인이 되기 전에 (204)화 (203/366)



〈 204화 〉히로인이 되기 전에..

이제 너희들 차례인데 얼른  올라오고 뭐햐나고 묻기라도 하는 것 같은 클레어의 눈빛에 즉시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마침 기다리고 있던 차였으니까.


그렇게 연무대를 향해 걸음을 옮기고 있자니 한 발 늦게 자리에서 몸을 일으킨 주인공 놈이 뒤로 따라붙는 걸 느낄  있었다.


그런 놈의 기척을 느끼면서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어차피 이 대련에서 내가 진심으로 노릴 곳은  곳 뿐이었으니까.

어떻게하면 일부러 거길 노려서 때렸다는 티를 내지 않고 그곳을 가격할 수 있을까.

그게 시뮬레이션의 주제였다.


몇 번이고 그걸 반복하다보니 문득 그런 걱정이 들기도 했다.

실은 내 가설이  그대로 가설에 불과했고 놈이 정말 놈이었다면 어쩌지하는 걱정이 말이다. 목표로 삼은 곳의 위치가 위치다보니 그런 걱정이  생길래야 안 생길 수가 없었다.


거길 가격함으로써 놈이 정말로 '놈'이었다는 사실이 증명된다면 대참사도 그런 대참사가 또 없을테니까.

'그렇게 되면 많이 미안할 것 같은데..'


그렇지만 어쩌겠는가?

그 방법만큼 확실한게 또 없는 것을.

그런 식으로 애초에 존재하지조차 않을지도 모르는 것을 향해 심심한 애도를 표하면서  따라 연무대 위로 올라온 놈과 마주섰다.

실전에 가까운 형태라 해도 결국에는 대련이라서 그런 걸까. 놈의 픽은 평소와는 달랐다. 나무를 깎아서 만든 듯한 곤봉이 오늘 놈의 픽이었다. 살짝 의외였던  검보다 그쪽이 익숙해 보인다는 것이었다.  마치 오랫동안 그걸 사용하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시골 마을 출신이라서 그런 걸까.

덕분에 살짝 기묘한 느낌을 받고 있자니 클레어가 대련의 시작을 선언하며 뒤로 물러났다.

놈이 몸을 낮춘 것도 바로 그때였다.


시작하자마자 내가 달려들 거라고 판단했던 모양.

문제는 놈이 자세를 낮추면서 내가 노리고 있는 부분이 감춰졌다는 것이었다.


'일단 저것부터 어떻게 해야겠는데..'


해서 놈의 주변을 빙글빙글 돌며 창끝만을 이용해 놈의 몸을 툭툭 건드려봤다.


일명 꼴받게 하기 작전이랄까. 여름날 잠들기 위해 눈을 감으면 기다렸다는 듯이 어디선가 튀어나와 귀 바로 옆에서 앵앵거리던 모기라는 것들의 행태를 떠올리며 최대한 비슷하게 구현해봤는데 생각보다 효과가 나쁘지 않았다.

손에 든 곤봉을 이용해 자길 향해 날아들던 창끝을 툭툭 걷어내던 놈이 어느 순간 입술을 꽉하고 깨무는 광경을 볼 수 있었으니까.

 타이밍에 맞춰서 은근슬쩍 헛점을 노출해봤더니 아니나 다를까 놈이 기다렸다는 듯이 곤봉을 휘둘러왔다.

제법 매서운 기세를 흩뿌리며 날아드는 곤봉을 향해 팔에 차고 있던 방패를 가져다댔다.


퍼억-하고 둔탁하기 그지없는 소리가 울려퍼짐과 동시에 나무 조각이 사방으로 튀었다.


부딪힌 팔쪽에서 올라오기 시작한 아릿한 통증을 느끼며 놈과 공방을 이어나갔다. 물론, 철저히 놈의 수준에 맞춰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알게되었다.

바이올렛이 그토록 자신했었던 이유를 말이다.

내가 매달릴 수밖에 없을 거라고 자신하던 것치고는 부스트 효과가 별로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실은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이게 되려나 싶은 움직임도 자연스럽게 펼쳐지는  보면.


'이 정도면..'


줄어들기 전의 반절 정도는 되는 것 같은데..


덕분에 목표로 삼은 곳을 가격하는 게 더욱 수월해질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을 하며 열심히 곤봉을 휘둘러대는 주인공 놈의 움직임에 맞춰주고 있자니 연무장 안으로 지루해하는 분위기가 감돌기 시작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목표를 향해 휙휙 날아드는 암기들 덕분에 보기에도 화려했고, 디아나의 거침없는 움직임 덕분에 딱 좋게 과격했던 앞선 대련하고는 다르게 서로  붙어서 투닥거리고 있으니 아무래도 보기 좀 심심하게 느껴졌던 모양.


그리고 그러한 분위기는 주인공 놈에게도 조금씩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다.

슬슬 계획에 시동을 걸어야겠다고 생각한 건 바로 그때였다.

마침 타이밍도 그럭저럭 괜찮았기에 어깨를 노리고 날아드는 놈의 곤봉에다가 창대를 가져다붙였다.

물론,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버틸 생각따위 없었기에 손에서 적당히 힘을 빼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상태로 맞부딪히니 나름대로 힘껏 휘둘러진 곤봉에 채여 기울어진 창끝이 그대로 연무장 바닥에 처박혔다.

팍-!

"윽..!"


그 타이밍에 맞춰서 살짝 침음성을 흘려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지금까지는 어찌어찌 잘 버텨냈지만 슬슬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는 인상을 주기 위해 일부러 그리했던 것인데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이참에 이 지루하기 그지없는 공방을 끝내버려야겠다고 마음 먹은 건지 살짝 빗겨져나간 곤봉을 회수한 놈이 그걸 다시금 휘둘러왔으니까.


쐐액-!


내 팔을 때려서 창을 떨어뜨리게 만들 속셈인 걸까.

팔을 노리고 내리찍어지는 곤봉을 보며 얼굴 위로 당황이라는 감정을 띄워올렸다.  상태로 창대를 움켜쥔 손을 허둥지둥 움직였다. 아니, 허둥지둥 움직이는 척을 하며 신중하게 목표로 삼은 곳을 겨냥했다.

마침 놈은 내게 결정타를 먹이기 위해 아까보다 가까이 접근해있는 상황.

덕분에 땅바닥에 처박혔던 창끝은 어느새 놈의 다리 사이로 들어가있었다.

그 상태에서 바닥을 퍼올리는 느낌으로 창끝을 들어올렸다. 그렇게라도 해서 팔을 노리고 날아드는 곤봉을 막아보겠다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들어올려지기 시작한 창끝이 조금씩 목표로 삼은 곳과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내게는 그 광경이 슬로우모션 카메라로 찍은 것마냥 느릿하게 보였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혹시라도 상대방이 부상을 입을 것을 우려해 두터운 천으로 칭칭 감아놓은 창의 끝부분이 놈의 사타구니를 향해 나아갔다.

그랬다.


내가 목표로 삼은 곳은 다름아닌 그곳이었다.


그러니까 남자라면 소중한 게 달려있을 수밖에 없는 장소이자 살짝이라도 맞으면 이게 죽음의 고통인가 싶을 정도로 아찔한 고통이 올라오는 '그곳' 말이다.

충분히 다른 곳을 노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딱 꼬집어 그곳을 목표로 삼은 이유는 간단했다.

그곳을 가격하는 것만큼 놈인지 년인지 확실하게 구분할 수 있는 방법이 또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살짝이라도 그곳을 얻어맞은 순간 느껴지는 고통은 아무리 연기를 잘해도 재현해내기 힘드니 말이다. 하물며 연기를 펼치는 대상이 여성이라면?


당연히 어딘가 어색한 느낌이 들 수밖에 없겠지.

여성은 그 고통에 대해 알지 못할테니까.

'남자 맞으면 미안!'

해서 속으로 그리 외치며 창대를 휘두르고 있던 손에 조금 더 힘을 실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허연 천으로 감싸인 창의 끝부분이 놈의 사타구니와 맞부딪힌 순간..

'이 새끼 이거..'

비로소 확신할 수 있었다.

여태껏 놈이라 생각했던  실은 놈이 아니라 '년'이었다는 걸.


그도 그럴 것이 일단 타격감부터가 내가 기억하고 있는 형태와 많이 달랐다. 밋밋하다고 해야할까. 내 기억이 맞다면 뭔가 퍼억하고 터지는 맛이 나야하는데 그런  없었다. 대신 평평하면서도 푹신푹신한 곳을 때렸을 떄나 날법한 느낌이 창대를 타고 올라왔다.

뿐만 아니라 반응도 많이 느렸다.


놈이 정말 남자라면 거길 얻어맞자마자 다 집어치우고 즉시 고통부터 호소하고 봐야하는데 놈은 약 1.5초 정도 반응이 느렸다. 꼭 마치 거길 얻어맞으면 고통스러워 해야한다는 사실을 떠올리고 뒤늦게 그런 모습을 연기하기 시작한 것처럼 말이다.

'심지어..'

그렇게 시작된 연기마저도 밋밋하기 그지없었다.

만약 내가 방금 내가 휘둘렀던 것과 같은 강도로 거길 얻어맞았다면?

지금쯤 얻어맞은 곳을 움켜쥔채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고 있을 거다. 아마 못해도 연무장 벽에서부터 반대쪽 벽까지는 데굴데굴 굴러다니지 않았을까?

그 정도 세게 때렸으니 말이다.

헌데 놈이 반응이랍시고 내보인 것은 바닥에 엎어져서 끙끙하는 소리를 낸 게 다였다.


당장이라도 죽을 것처럼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는 모습도, 남자에게는 더없을 정도로 소중한 것을 조심스레 감싸쥐는 듯한 모습도 없었다.

그야말로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놈이 남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허.. 참..'


그렇기에 기가 찼다.

여태껏 이 놈한테, 아니 이 년한테 깜빡 속고 있었다는 사실이 지금  순간 밝혀져버렸으니까.


속은 이유 중에 절반 정도는 내 탓이라는 게 더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렇게 차오르기 시작한 황당함과 함께 고개를 치켜든 것은 강렬하기 그지없는 의문이었다.


'아니, 대체 왜..'


저 년은 제 성별을 속인 걸까?


무슨 이득이 있다고?


 세계가 남녀의 역할이 정상적인 세계였다면 저 년이 제 성별을 속인 것도 이해할 수 있었을 거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겠지.


그렇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암만 생각해봐도 이해가 되질 않았으니까.

남자인 척 해서 대체 무슨 이득이 있다고 그런 짓을 한단 말인가?


이 세계에서 남자는 얼핏보면 귀한 존재처럼 보여도 여차하면 번식과 성욕해소를 위한 도구나 다름없는 취급을 받는 게 일상인 존재인데 말이다.

그런데 남자인 척을 할 이유가 있나?

차라리 그냥 제 성별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편이 훨씬 나을텐데..

'아니면 혹시..'


설마 여자를 좋아하나?

그래서 남자인 척 하고 매력적인 여성들한테 접근해서..

워낙 황당해서 순간적으로 그런 생각까지 들었지만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남자로 위장한 이유가 그거였다면 디아나나 레이시아, 앨리스같은 이들을 가만히 내버려둘 이유가 없으니까. 분명 어떤 식으로든 그녀들에게 접근하려고 했을텐데 주인공 놈, 아니 년이 그런 모습을 보였던가?


혹시 몰라 기억을 빠르게 되짚어 봤지만 그와 관련된 기억같은  찾을 수 없었다.

그것도 아니라면 대체 뭘까.


대체 무엇이 저 년으로 하여금 해봤자 손해밖에 되지 않는 행동을 하도록 만든 것일까.

그 추측을 이어나갈 시간따위는 주어지지 않았다.


의도치 않게 벌어진 '사고'를 앞에 두고 당황해서 굳어버린 척 할 수 있는 것에도 한계는 법이니까.

해서 이어나가던 추측을 잠시 멈추고 얼굴 위로 크게 당황한 듯한 표정을 띄워올렸다. 거기에 상대방에 대한 미안함을 곁들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괘, 괜찮아?!"

그런 얼굴을 한채 여전히 바닥에 엎어진채 고통스러운 척 연기를 펼치고 있는 주인공 년을 향해 몸을 숙였다.

"으윽.."


"미, 미안.. 급하게 휘두른다고.."


내가 네 거기를 때렸던 것은 의도하고 벌인 일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엉겁결에 벌어진 사고였을 뿐이다.

라는 밑밭을 착실하게 깔아주면서 몸을 동그랗게 말고 엎드려있는 놈의 주변에서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가며 안절부절 못 하는 척을 해보였다.

마침 의도치 않게 목소리가 살짝 삑이 나준 덕분에 크게 당황한 느낌이 더 살았다.


그렇게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는 척을 하다가 바닥에 납작 엎드려있는 주인공 년의 엉덩이를 향해서 손을 뻗었다.

그리고는 동그랗게 말아쥔 손으로 주인공 년의 꼬리뼈 부근을 툭툭 두들기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돌아온 반응에 다시 한  확신할 수 있었다. 무슨 쥐며느리라도 빙의한 것마냥  앞에서 몸을 동그랗게 말고 있는 사람이 놈이 아니라 년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지금과 같은 사고가 벌어졌을 때를 대비해 남자들 사이에서 전해져내려오는 이 처치법에 이토록 민감하게 반응할 이유가 없으니까.


꼬리뼈 부근을 툭툭 두들겨  떄마다 몸을 흠칫흠칫하고 떨어대는데 가관도 이런 가관이 또 없었다.

그러더니 나중에 가서는 자긴 괜찮으니까 그만 두들겨도 된다고 말하기까지 하더라.

"저, 정말 괜찮아?"


"으, 응.. 괜찮아."


암요.

당연히 괜찮으시겠죠.

애초에 달려있지도 않은 걸 얻어맞은 척을 했던 것 뿐이니 괜찮지 않을 리 있겠는가?

생각치도 못했던 사고가 벌어져버린 바람에 대련은 거기서 흐지부지 끝나버렸다.

참관인이랍시고 구경을 왔던 이들이 못내 아쉬워하긴 했지만 단호하기 그지없는 표정으로 이쯤하는게 좋겠다고 선언한 클레어를 상대로 반대를 외칠 정도로 간덩이가 부은 이는 그 자리에 존재하지 않았다.

애초에 외무대신도 클레어의 말에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인 판국에 다른 이들이 뭘 어쩌겠는가. 까라면 까야지.


자, 그래서 놈이 놈이 아니라 실은 년이었다는 걸 밝혀내는데 성공하긴 했는데..


'..이제  어떻게 해야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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