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로인이 되기 전에 (202)화 (201/366)



〈 202화 〉히로인이 되기 전에..

그렇게 숙소로 돌아오자마자 가장 먼저 한 행동은 주머니 안에 넣어두었던 것을 꺼내 들여다보는 것이었다.

물론, 그러기 전에 방문을 걸어잠구는 것도 잊지 않았다.


당연히 중간에 방해가 들어오는 걸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그렇게 혹시 모를 가능성을 완전히 차단한 뒤에 침대 끄트머리에 걸터앉아 손에 쥐고 있던 것을 넓게 펼쳤다.


바이올라가 자의적으로 누락시켰던 네 번째 장에서는 게스메리움이라는 풀의 다른 사용법들에 대해 다루고 있었다. 말 그대로 특수한 사례들이라고 해야할까. 일반적으로, 그리고 널리 알려진 지혈제 용도 말고 다른 방식으로 사용된 경우가 서류 안을 빼곡하게 채우고 있었다.


개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뭐니뭐니 해도 맨 윗부분에 떡하니 자리를 잡고 있는,  번째 케이스였다.

그리고 그것이 바이올라가 이 서류를 자의적으로 누락시켰던 원인이기도 했다.

-별다른 가공 절차를 거치지 않은 게스메리움을 장복하게 될 경우..


서류의 맨 앞부분에서는 그 케이스에 대해서 다루고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날  그대로의 상태인 게스메리움을 장복하게 될 경우 월경이 멈추게 된단다.


다만 영영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고, 복용을 멈추게 될 경우 일정시간이 지난 후에 다시 시작된다는 설명이 그 밑에 덤같은 느낌으로 적혀있었다.


지혈제로 널리쓰이는 이유와 관련이 있는 걸까.

나름대로 추론해보려 했지만 얼마  되는  짧은 지식을 가지고는 영 무리였다. 서류에도 어째서 그런 현상이 벌어지는지에 관해서는 적혀있지 않았고 말이다.

유독 그 부분만 누락된  보면 아직 연구중이기라도  모양인데..

'뭐, 아무튼..'

중요한 건 그게 아니겠지.


게스메리움을 장복할 경우 생리가 멈춘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지금 주목해야할 부분이었다.


 사실을 알게된 순간 머릿속으로 불쑥 떠오른 한 가지 가설과 함께 깨달아버리고 말았으니까.

내가 그동안 얼마나 말도 안 되는 편견에 사로잡혀있었는지를 말이다.

'그래..'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인데  나는 지금껏 그런 말도 안 되는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던 걸까.

암만 생각해봐도 이해가 되질 않았다.

여태껏 거쳐왔던 주인공 놈들이 전부 남자였다고 해서 이번 회차의 주인공까지 놈이라는 법은 없는 건데 말이다.


한편으로는 그런 편견이 생길 수밖에 없었던 것이 이해가 되기도 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아까도 말했듯 지금껏 주인공이랍시고 만났던 것들이 죄다 고추달린 놈들 뿐이었으니까. 그것도 그냥 고추새끼가 아니라 하나같이 여자라면 사족을  쓰는 것들이었다.


한두 놈만 그랬어도 주인공하면 그런 이미지로 고정되기에 충분하다 못해 넘쳤을텐데 무려 다섯 놈이나 그랬다보니..

'편견이 생길만도 하네.'

그것이 완전히 해소된 지금 생각해도 그랬다.

뭐, 아무튼 지금 중요한 건 그딴 게 아니라 주인공 '놈'이라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 실은 주인공 '년'일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좀 당황스러웠다.

 번이나 말했듯 여태껏 고추 새끼들만 주인공으로 만나봤던 탓에 여성이 주인공인 케이스는 내게 있어서는 미지 그 자체였으니까.

'여자가 주인공이면..'

조연인 내 포지션은 어떻게 되는 걸까.


그동안은 확고부동한 주인공의 조력자 포지션이었지만, 여성 주인공일때까지 그러리라는 보장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그런 것부터 시작해서 의문인게 한두 가지가 아니라서 생전 처음 겪어보는 상황에 당황을 호소하는 심정을 달랠 길이 없었다.

'아니지 잠깐만..'


편견에 사로잡히면 안 된다고 바로 조금 전에 생각해놓고서 또다시 편견에 사로잡혀버리다니.

아직 그 놈이 여자라고 확정이 난 것도 아니지 않은가.

헌데 어느새 나는 놈이 놈이 아니라 년일거라고 단정짓고 있었다.

서류에 여성과 관련된 사례만 적혀있는게 아님에도 그랬다.


서류에는 남성과 관련된 사례도 몇 개 적혀있었다. 첫 부분에 적혀있는 사례의 임팩트가 워낙 크다보니 뒤에 적힌 것들이 자연스럽게 묻히는 감이 없잖아 있는데 뒤에 적혀있는 것들 중에도 눈을 번쩍 뜨이게 만들기 충분한 사례가   있었다.


막말로 놈이 여기 적힌대로 게스메리움을 자양강장을 목적으로 복용하고 있을 수도 있는 것 아니겠는가.

진실이 무엇이든 간에 직접 확인하기 전까지 뭐라고 딱 단정지어선 곤란했다.


고로..

'확인해봐야겠지.'


그렇다면 여러가지 가능성을 놓고 골머리를 싸맬 필요도 없어질테니 말이다.

문제는 어떻게 확인하냐는 건데..


최고는 역시 두 눈으로 직접 놈인지 년인지를 확인하는 것이겠지만 솔직히 그건 좀 힘들 것 같았다.

생각해보면 놈은 경계심이 굉장히 강한 편이었으니까.

입학식 때 일을 생각해보면 손만 닿아도 경기를 일으키곤 했는데 쉽게 몸을 보여주려고 할까.

그런 점을 고려하면 역시 놈이 놈이 아니라 년일 가능성쪽으로 무게 추가 기울긴 하지만..

아무튼 확실한 것은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건 여러모로 힘들 거라는 점이겠지.

최선을 써먹기 힘들다면?

차선이라도 써먹어야겠지.

참으로 다행히도 차선이랍시고 떠오른 것은 그나마 가능성이 좀 있어보인다는 점이었다. 애초에 명분조차 없었던 최선 쪽하고는 다르게 말이다.


'그러면..'

해야할 일은 간단했다.


그리고 그게 내가 교류전에 참가키로  이들이 전부 모인 자리에서 자체 홍백전을 제안한 이유기도 했다.

"우리끼리 붙어보자고?"


"네."

"흠.. 굳이?"

헌데 의외로 디아나가 부정적인 뜻을 내비쳐왔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겠냐는 식이었다.

설마 붙었다가 지기라도 할까봐 걱정이 되서 그런 걸까.


그녀의 얼굴을 살펴보니 그래서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그보다는 그로인해 누군가 다칠지도 모른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하긴..'

디아나가 그러는 것도 어느 정도는 이해가 갔다.


아직 날 다치게 했던 게 머릿속에서 완전히 지워지지 않은 상태일테니까.

거기에 혹시라도 홍백전을 진행하다가 누군가 심한 부상을 입기라도 하는 날에는 그것이 그대로 교류전에 영향을 끼치게 될테니 당연히 부정적이  수밖에 없겠지.

문제는 시작부터 반대하는 의견이 튀어나오니 나머지 둘또한 거기에 편승할 기세라는 점이었다.

이대로라면 뭔가 시도를 하기도 전에 꺾여버릴게 뻔한 상황.


해서 다른 둘이 입을 열기 전에 먼저 선수를 쳤다.

"부상걱정 때문에 그러시죠?"

"..아무래도 그렇지."

역시나 그 점이 걱정이었던 모양이다.


해서 그런 디아나를 상대로 추가적인 조건을 덧붙였다.

클레어를 심판으로 두자는 식의 내용이었다.

"스승님을?"

"네, 스승님이라면 위험할  개입하는게 가능하실테니까요."

그러면 부상을 입게될 가능성도 한결 적어지지 않겠냐는 식으로 설득을 시도해봤는데 아무래도 조금 부족한 것 같았다.

그래서 카트린느까지 끌여들이기로 했다.


그녀가 약을 바리바리 싸든  참관한다면 여차할 때 즉석에서 바로 손을 쓰는 게 가능할테니까.

문제는 최근들어 부쩍 바빠보인다는 건데 그 부분은 크게 걱정이 되진 않았다. 교류전에서 승리하기 위해 꼭 필요한 일임을 밝힌다면 기사 부문의 승리를 중요시 여기고 있는 풍조상 그녀가 동원될 가능성이 크니까.

이미  번이나 거절 비스무리한 것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체 홍백전을 포기하려 하지 않는 내게서 무언가 의지같은 거라도 느낀 것일까.

잠시 고민하던 디아나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디아나가 뜻을 돌리니 은근슬쩍 그녀에게 묻어가려던 다른 둘또한 뜻을 돌렸다.

"그러면 진행은.."


"사람이 적어서 실전처럼 하는  힘들테니 각자  번씩 붙어보는 걸로 할까요?"

교류전에서 사용될 방식은 흔히 대장전이라고 부르는 방식이었다.

그걸 그대로 사용하긴 어려울 것 같아 그냥 리그 방식으로 가자고 했더니 디아나가 잠시 고민하다가 다시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다음부터는 굳이 내가 나서지 않아도 충분했다.


일단 수락한이상 더는 미적거릴 생각따위 없다는  디아나가 주도적으로 일을 진행시키기 시작했으니까. 덕분에 심판을 맡아줄 클레어의 섭외와 의료진이라 할 수 있는 카트린느의 섭외또한 순식간에 끝이 났다.


장소 섭외는 클레어가 도움을 주었다.


저번에 우리에게는 존재하지 않는 온실 건을 가지고 따져보겠다고 하더니만 대체 어떻게  건지는 몰라도 교국 측으로부터 실내 연무장을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받아왔으니까.


일전에 우리를 마중나왔던 곳에서 사용하는 곳 중에 하나라는데 은근히 시설이 괜찮아서 살짝 놀랐다.

병적일 정도로 흰색만을 고집하는 기조만큼은 여전히 적응이 되질 않았지만 말이다.

물론, 모든 것이  뜻대로 이루어지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생각외로 일이 커지기도 했으니까.

대체 어디서 소식을 주워들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책임자라 할 수 있는 외무대신이 참관의사를 밝혀오면서 그렇게 되어버렸다.

다른 이도 아니고 우리 측 책임자라 할  있는 이가 그러니 어쩌겠는가.


거절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수락했더니 그걸 시작으로 참관요청이 쇄도해왔다.

다들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이니만큼 내심 우리 측 참가자들의 수준이 어떨지 궁금했던 모양.

맘같아서는 싸그리 다 거절하고 싶었지만 그러긴 힘들어서 몇몇 이들에게만 참관을 허락하는 식으로 타협을 봤다.

문제는 그럴 듯한 장소는 물론 관객이라 할 수 있는 이들까지 갖춰지니 다들 진지해지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특히나 앨리스가 그랬다.

별로 신경쓰지 않는 척 하더니만 내심 디아나와 주인공 놈에게 패배했던  신경쓰고 있었던 걸까.


이번에야말로 자신의  실력을 보여주고야 말겠다고 의지를 불태워대는데 그 모습을 본 디아나또한 질  없다는 듯 의지를 불태웠다.

그렇게 승부욕으로 활활 타오르는 둘과는 다르게 주인공 놈은 비교적 차분했다.

승패에 크게 신경쓰지 않는 듯한 느낌이라고 해야할까.


그런 놈의 모습을 힐끔거리고 있자니 디아나의 부탁으로 심판 역을 맡게된 클레어가 상자 하나를 손에 든채 모습을 드러냈다.


출전 순서를 적어놓은 공이 담긴 상자였다.

그 안으로 손을 밀어넣어 공을 하나씩 뽑고 나니 대충 어떤 식으로 맞붙게 될지 가닥이 나왔다.


디아나를 상대로 그토록 승부욕을 불태우더니만 놀랍게도 앨리스는 처음부터 디아나를 상대하게 되었다.

디아나의 상대가 앨리스로 정해진만큼 주인공 놈과 맞붙게  것은 다름아닌 나였고.

일단 매칭은 내가 원하던대로 풀린 상황.


덕분에 한결 느긋한 마음으로 디아나와 앨리스의 대련을 지켜볼  있게 되었다.


그런 나와는 다르게 앨리스는 살짝 당혹스러워하는 눈치였다.

아직 몸도 풀기 전인데 설마 초장부터 디아나와 맞붙게 될 거라고는 생각 못했던 걸까.


움찔움찔대면서 당황했다는  고스란히 드러내던 것도 잠시, 비로소 마음의 준비가 끝난 것인지 앨리스가 이미 준비를 시작한 디아나를 따라서 몸을 풀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름대로 많은 이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디아나와 앨리스가 서로를 바라보며 마주 섰다.


'누가 이기려나.'

가능성이 큰 쪽을 꼽자면 역시 디아나가 되겠지만 마냥 낙관할 수만은 없었다.

아까 뭔가를 주섬주섬 챙기던 걸 보면 뭔가 준비해온 게 있는 것 같긴 하던데..


'그게 통한다면 상황이 달라지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승리하는 쪽은 디아나가 되겠지.


딱 보니까 일전의 일로 뭔가 깨달은 바가 있는 듯 했으니까.

 생각은 일단 그런데 우리의 주인공께서는 어떤 의견일까.

문득 그게 궁금해져서 스리슬쩍 놈을 향해 질문을 던져보니 놈또한 디아나의 승리를 점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나저나..'


고추 새끼 목소리가 뭐 저렇게 가늘어?

역시는 역시인가?


이래서 의심이 무섭다고 하는 모양이다.


한 번 의심하기 시작하니 그야말로 모든 게 의심스럽게 느껴지는데..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딱히 별 생각이 없었던 놈의 목소리마저도 그렇게 느껴졌다.

남자새끼 입에서 흘러나오는 것치고는 너무 가늘게 느껴진달까.


가늘게 느껴지는 건 몸또한 마찬가지였다.


분명 열심히 단련하는 것 같던데 놈의 몸은 어째 근육이라는  붙을 생각을 안 했다.

'하.. 아직 이러면 안 되는데..'


아직 확정된 게 하나도 없는만큼 섣불리 단정지었다간 결국 곤란해지는 건 내쪽이었기에 나름대로 자제를 해보려고 했지만 쉽지는 않았다.


그렇게 시도때도 없이 불쑥불쑥 솟구치는 의심 속에서 디아나와 앨리스의 대련이 시작되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