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로인이 되기 전에 (201)화 (200/366)



〈 201화 〉히로인이 되기 전에..

바이올라가 가져다  서류를 펼치자마자 눈에 들어온 내용이 워낙 생각치도 못했던 내용이라서 조금 더 자세하게 들여다보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그쪽에 집중하고 싶어도 집중이 되질 않았으니까.

언제 내게 찰싹 들러붙어 있었냐는 듯 원래 앉아있던 자리로 돌아간 바이올렛 때문이었다.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고 일러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최근들어 날이갈수록 쌀쌀해지기만 했던 날씨가 오늘따라 훈훈해서 평소보다 얇은 걸 입고 나온 게 패착이었을까.

그래 어쩌면 그게 실수였던 걸지도 모르겠다.


얇아진 옷의 천만큼이나 목 부분을 덮어주고 있는 부분의 천또한 얇아진 건 마찬가지라서 조금만 움직여도 나풀대는 듯한 느낌이 들었으니까. 덕분에 까딱 잘못하면 바이올렛이 목덜미에다가 친히 새겨넣은 표식의 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날 것만 같아서 신경이 안 쓰일래야 안 쓰일 수가 없었다.

그것만으로도 뭔가에 집중하는데 방해가 되기에는 충분한데 정작 더 신경쓰이는 쪽은 따로 있었다.


물론, 그또한 바이올렛으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아무래도..'

아직 페로몬의 효과가  빠진 것 같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동생에게 들켜도 상관없다는 것처럼 대놓고 이쪽을 뚫어져라 바라볼 이유가 없으니까.


사실 그것 자체는 문제가 될 게 없긴 했다.

바이올라는 이미 언니가 자신과 날 감시하고 있다는  인지하고 있는 상태였으니까.


문제가 될만한 구석이 있다면 역시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바이올렛의 얼굴 위에 자리하고 있는 표정이었다.

대체 왜 저런 표정인 걸까.

그런 생각이 안 들래야 안 들 수가 없을 정도로 지금 바이올렛이 얼굴 위로 띄워놓고 있는 표정은 기묘하기 짝이 없었다.

뭔가 굉장히 황홀해하면서도 자신이 왜 그런 감정을 느끼는건지 이해하질 못하는 그런 표정이라고 해야할까.

저런 걸 바이올라가 봐버리게 되면 어떻게 될까.

모르긴 몰라도 분명 난리가 날 거다.

바이올라 입장에서는 자신이 점찍어둔 남성을 언니가 탐내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을테니까.


저번에 생각치도 못하게 앓아누웠을 때 그녀가 병문안을 와서 은연중에 내비췄던 태도를 떠올려보면 언니한테 이래저래 쌓인 게 많아보이던데 그런만큼 더더욱 격노하지 않을까.

분명 그럴 것만 같아서 집중하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었다.

바로 앞에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이 떡하니 자리하고 있는 셈인데 그런 걸 앞에 두고도 집중력을 유지하는  주인공이라 해도 불가능하지 않을까.


 와중에 그나마 다행인 것은 조마조마한 심정에 시달리고 있는 나하고는 다르게 바이올라는 내 반응에 집중하기 바빠 당장 다른 곳에 시선을 줄 생각따위 없어보인다는 점이었다.

뭐, 그것도 내가 서류를 들여다보기 시작하면 언제 그랬냐는  사라질테지만 말이다.


그래서였다.


손에 든  적당히 들여다보는 척을 하다가 반으로 접어 주머니 안으로 밀어넣었던 건.


딱보니 지금과 같은 상황을 앞에 두고 제대로 확인하는 건 무리일듯 싶었으니까. 여기에 비하면 훨씬 안전한 숙소로 돌아가서 확인하든 지금 당장 확인하든 어차피 서류에 적힌 내용은 달라지지 않을테니 숙소로 돌아가서 느긋하게 확인해도 되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더 확인해보지 않아도 괜찮겠냐고 눈빛으로 묻고 있는 바이올라를 향해 눈을 돌렸다.


그리고는 그걸 확인하는 것보다는 그녀와 대화를 나누는 게  중요하다고 여기는 사람처럼 보다 적극적으로 대화를 시도했다.

물론, 바이올라는 그런  태도를 굉장히 기꺼워했다.

그렇게 그녀와  마디씩 대화를 주고받다보니 처음에는 평범했던 주제가 어느새 교류전에 관한 것으로 변질되어 있었다.

사실 생각해보면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했다.

듣자하니 교류전에서 한축을 담당해주지 않겠냐는 교국 측의 제의를 받아들인 국가들이 힘을 합쳐 꾸린 무리가 교국 인근에 당도했다 그랬으니까.

그 소식을 들은 게 바로 어제의 일이니 아마 지금쯤 그들도 교국 내로 진입한 상태일 것이다.

여태껏 일정이 딜레이 되었던 건 그들이 도착하질 않아서 그랬던 것이니만큼 그들이 도착한 이상 이제 교류전의 시작까지 정말 얼마 남지 않았다는 뜻이고.


그렇다보니 교류전과 관련된 이야기가  나올래야 안 나올 수가 없었다.


그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꺼내든 쪽은 다름아닌 바이올라였다. 물론, 주제가 주제이니만큼 그것에 대해 묻는 바이올라의 태도는 조심스럽기 그지없었다.

"어떻게.. 교류전 준비는 잘 하고 있어?"


귓가로 울려퍼지는 바이올라의 목소리를 들은 순간 깨달았다.


그녀가 뭔가 특별한 의도를 가지고, 그러니까 내가 은연중에 우리 측의 전략이나 전력같은  누출하길 바라면서 그런 질문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바이올라는 단순히  걱정하고 있었다.


내가 교류전을 준비한답시고 무리를 하진 않을지, 그로인해 저번처럼 다치거나 앓아눕게 되는 건 아닐지를 걱정하고 있었다.

그런 바이올라의 감정이 그녀의 목소리를 통해 고스란히 전해져와서 비교적 편안한 마음으로 그녀의 물음에 답을 할 수 있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경계하는 척을 해보이는 걸 빼먹지는 않았다.

그렇게 그 주제를 가지고 바이올라와 대화를 주고받다보니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제국 측의 승리를 확신하고 있는 건 그녀또한 마찬가지라는 걸 말이다.

"각오하시는게 좋으실걸요."


"흐음, 그래?"


네가 그렇게까지 말하니 일단 명심해두겠다는 것처럼 고개를 끄덕이는 것치고 그녀는 옅은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그에 살짝 분해하는 척을 하다가 이야기를 살짝 옆으로 틀었다.

"그나저나 대진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네요."

"뭐, 다해봐야 네 팀이니까.."

제국은 몰라도 우리 측에게 있어 최선은 4강전에서 제국이 아닌 다른 쪽과 붙고, 결승에서 제국과 만나는 것이었다.


경기 내용이 격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니만큼 참가하기로  이들을 배려해 4강전과 결승전 사이의 텀이  됐으니까.

그 기간까지 고려하면 4강전 때는 힘들어도 결승전 때는 새로운 중화제를 받아볼 수 있지 않을까?

최선의 시나리오라고 하면 역시 4강전 때 딱 맞춰서 중화제가 완성되는 것이겠지만..

'솔직히 힘들지.'


적어도 내 생각은 그랬다.

몇 번이나 말했듯 설비같은게 본래 수준에 미치질 못하니까.


게다가 중화제 제조에 들어가는 약초를 조달하는 것도 문제라면 문제였다. 필요한 것들이 모두 갖춰진 상태라면 다행이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물건을 반입하기 위한 절차를 거쳐야 할텐데 그게 꽤나 까다롭다고 들었으니까.

"개인적으로는 결승에서 만났으면 좋겠네."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바이올라가 지나가듯 그 말을 중얼거렸다.

4강전에서 맞붙게 되면 필시 자신들이 이기게 될테고, 그렇게 되면 열심히 준비했을게 분명한 내가 실망하게 될테니 그걸 바라질 않는 눈치라고 해야할까.

바이올렛에 이어 바이올라까지 저러는  보고 있자니 이제는 어이없는 수준을 뛰어넘어 내심 궁금해질 지경이었다.

대체 무슨 근거로 저렇게까지 자신들의 승리를 확신하나 싶었으니까.

혹시 뭐 뇌물같은  써서 심판진을 매수해놓기라도 한 걸까.


바이올렛도 그렇고 바이올라도 그렇고 자신들의 승리에 대해 이야기할 때 찔리는 것따위는 하나도 없다는 듯 당당하기 그지없었던  떠올려보면 실제로 그럴 가능성은 적겠지만..

한편으로는 그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가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국가간의 문제에서 개개인의 양심이라는 것이 뒷전으로 밀려나는 경우는 굉장히 흔하니 말이다.

하물며 이런 식으로 국가의 자존심까지 걸려있는 문제라면?

말할 것도 없겠지.


그래서 한 번  가능성을 속으로 점쳐봤지만 그 결과 튀어나오는 답은 여전히 아까 떠올렸던 것과 똑같았다.

혐의없음 말이다.

그런 식으로 때때로 시덥잖은 생각도 해가면서 바이올라와 대화를 이어나가고 있자니 어느덧 돌아가야할 시간이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해서 이만 돌아가보겠다고 말하며 자리에서 몸을 일으킨 순간이었을 것이다.

 배웅하기 위해 날 따라 자연스럽게 몸을 일으키던 바이올라를 바이올렛이 제지하고 나섰다.


"바이올라? 해야할 일이 있지 않나요?"

그 말에 바이올라가 몸을 일으키다가 말고 '윽..'하는 소리를 내며 몸을 굳혔다. 꼭 마치 귀찮아서 나중에 할 생각으로 미뤄두었던 숙제를 엄마한테  걸린 듯한 꼬맹이를 보는 것만 같았다.

"듣자하니 꽤 급한 일인 것 같던데.."


그리고 그 말이 결정적이었던 것 같다.

바이올렛이 선사하기 시작한 압박감을 배겨내지 못한 바이올라가 아쉬워 죽겠다는 얼굴을 한채 온실을 빠져나갔으니까.


그리고 그런 바이올라를 대신해서 나선 것이 바로 바이올렛이었다.


설마 이러려고 동생을 내보냈던 것일까. 왠지 그런 것 같아서 어처구니가 없다는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더니 찔리는  아예 없지는 않았는지 바이올렛이 스리슬쩍 고개를 돌려 내 시선을 피했다.


웃긴 건 그 와중에도  배웅을 포기할 생각이 없어보인다는 점이었다.

"갈까요?"


보이지도 않는  산쪽에 시선을 고정한채 그리 말하길래 슬쩍 한숨을 내쉬었더니 바이올렛이 잘 따라오라는 것처럼 앞장 서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어쩔 수 없다는 듯 그녀를 따라 걸음을 옮기고 있던 찰나였을 것이다.

"잘했어요."


뜬금없다고 밖에 말할 수 없는 칭찬이 귓가로 울려퍼졌다.


워낙 뜬금없어서 그것을 처음 들었을 때는 그녀가 대체 뭘 칭찬하는 건지 순간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기도 했다.

그런 내 아리송한 심정이 내 얼굴 위로 고스란히 드러나기라도 했던 모양이다.


"표식 말이에요. 잘 숨기더군요."


대체 뭘 칭찬하는 건가 했더니만 그걸 칭찬하는 것이었을 줄이야.


그 사실을 이해하고 나니 바이올렛이 어떤 표정을 한채 그런 말을 했을지가 궁금해졌다.


해서 즉시 그녀를 향해 시선을 던져봤지만 아무래도 살짝 늦었던 모양이다.


나름대로 바로 확인한다고 확인했는데 무슨 일이냐는 듯 날 향해 고개를 돌리는 바이올렛의 얼굴에는 그녀하면 떠오르는 예의 그 무덤덤한 표정이 자리하고 있었으니까.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아뇨, 아닙니다."


그런 내 답변이 싱겁게 느껴지기라도 했던 건지 피식하고 가볍게 웃은 바이올렛이 지나가듯 한 마디를 덧붙였다.


"앞으로도 그렇게만 해주세요."


그에 원래 바라보고 있던 방향을 향해 돌리려던 고개를 다시금 그녀를 향해 내던진 순간 그런 날 반긴 것은 그린 듯한 미소였다.


누군가 붓으로  그려낸 듯한 미소를 얼굴 한 가득 머금은채 바이올렛은 날 향해 말하고 있었다.


지금처럼  숨기기만 한다면 자신이 빌려준 것은 언제까지고 네 것으로 남을 거라고 말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헛웃음밖에 나오질 않았다.

그만큼 웃겼으니까.


정말 별 것 아닌 것처럼 말하면서 은근슬쩍  목에다가 목줄을 걸려고 하는 점이 특히 그랬다.

자신이 빌려준 것에 의해 늘어난 신체능력에 적응하면 할수록 내가 거기에 목을 맬 거라고 생각한 걸까.


보아하니 아무래도 그런 모양인데..

'글쎄..'

내 의견은 부정적이었다.


목을 매게 될 정도로 확 체감이 되는 수준은 아니었으니까.

덕분에 뭐라 반응하기가 애매해서 침묵을 택했더니 바이올렛은 그런 내 침묵을 긍정이라 받아들인 모양인지 그녀가 어쩐지 흡족해보이는 얼굴을 한채 날 향해 손을 뻗어왔다.

그리고는 제가 표식이 새겨놓은 부분을 손으로 톡톡 두들겨대는 것이 아닌가?

자신이 방금  말을 잊지 말라고 당부라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허허..'

그또한 어이가 없게 느껴지는 건 매한가지라서 속으로 허허로이 웃고 있자니 바이올렛이 제가 새겨넣은 표식의 감촉을 만끽이라도 하는 것처럼 내 목덜미 부근을 손가락으로 살살살살 쓰다듬어댔다.

유독 손가락 끝부분만을 이용해서 그러는데 어찌나 감질나게 잘 쓰다듬어대는지 묘한 느낌이 장난아니었다.

간지러움과 쾌감 사이에 절묘하게 걸쳐있는 듯한 그 감각에 나도 모르게 목덜미 부근을 흠칫흠칫대고 있자니 그런  반응을 확인한 바이올렛이 '후훗..'하고 기껍다는  웃었다.


그러더니 이만 가자는 듯 내 목덜미를 어루만지고 있던 손을 떼어내고는 집합 장소를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허..참..'

그런 바이올렛의 행동에 내심 헛웃음을 흘리면서도 그 잠깐 사이에 살짝 멀어진 그녀를 따라 걸음을 재촉했다.

어찌되었든 간에 아까 주머니 안에 넣어두었던 것을 확인하려면 일단 돌아가긴 해야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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