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히로인이 되기 전에 (200)화 (199/366)



〈 200화 〉히로인이 되기 전에..

저걸 뭐라고 표현하면 좋을까?

오만함? 광오함?


나름대로 수많은 단어들이 머리를 스치며 지나갔지만 개중에서 성에 차는 건 없었다. 어째 하나같이 부족하게 느껴진달까.

그만큼 또렷하면서도 강렬한 감정이 바이올렛의 얼굴 위를 지배하고 있었다.

겸손을 떨어도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기 어려운 판국에 저렇게 자만에 가까운 자신감을 내비친다는 건  도발하고자 하는 목적도 어느 정도는 있겠지.


네가 아무리 애써봐야 달라지는 건 없다는 식으로 날 울컥하게 만들어서 자신의 제안을 받아들이게 하려는 그런 생각이 아니었을까.

정말로 그런 거라면 나야 사양할 이유가 없긴 했다.


그렇지만 무턱대고 받아들이는 대신 살짝 망설이는 척을 해보였다.

뭔가 마음에 걸리는 것이라도 있는 사람처럼 말이다.

그랬더니 그런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던 바이올렛이 다시금 말을 걸어왔다.

"뭘 걱정하는지  것 같은데 쓸데없는 걱정이에요."


사실 걱정하고 있는 점같은 건 단 하나도 없었지만 바이올렛이 자기 혼자서 착각한 것을 내 손으로 직접 바로 잡아줄 필요성은 느끼지 못했기에 입을 열어 무어라고 반박을 하는 대신 입술을 슬며시 깨물며 침묵을 지켰다.

그랬더니 바이올렛이 아까 들었던 설명에는 누락되어 있던 것을 슬며시 덧붙여왔다.

"표식은 일족이 아닌 이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거든요."


그러니 바이올라에게만 보이지 않는다면 다른 이에게 들킬 일은 없을 거라고 말을 하면서 바이올렛은 은근히 표식에 관한 것을 바이올라에게는 숨길 것을 종용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덧붙인 말이 참으로 가관이었다.

"그리고 어차피 이미 벌어진 일인데 뭘 그리 고민하나요?"

이미 표식은 새겨져버렸고, 이제와서 그걸 무르기도 뭣한 상황.


그런데 뭘 그렇게까지 고민을 하고 앉아있느냐고 바이올렛이 날 향해 톡 쏘아붙였다.

귓가로 울려퍼지는  말에 그녀로 하여금 보란듯이 입술을 베어물고 있던 쪽에 조금 더 힘을 주다가 이내 수락의 의사를 밝혔다.

평온한 척, 내가 수락하지 않더라도 딱히 상관없다는 듯한 모습을 하고 있었던 것치고는 내심 내 입에서 그 말이 흘러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이다.


수락의 의사를 밝힌 순간 꼬리는 물론이거니와 귀까지 삐죽하고 솟아오르는 걸 보면 필시 그런 거겠지.


아무튼 그래서 수락을 하긴 했는데 이제 뭘 어떻게  생각인 걸까.


그리 생각하기 무섭게 귓가로 울려퍼진 것은 이번에는 조금 아플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그에 고개를 갸웃하기도 전에 멀찌감치 물러나있던 바이올렛의 얼굴이 다시금 내쪽을 향해 들이밀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와 함께 다물어져있던 그녀의 입또한 서서히 벌어지기 시작했다.


설마  깨물 생각인 걸까.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렇게 날카롭기 그지없는 송곳니의 모습이 드러날 때까지 입을 벌릴 이유가 없으니까.

평소에 꽤나 신경써서 관리하는 모양인지 날카롭기 그지없는 순백의 치아가 분홍빛 입술 아래로 술며시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이 얼마나 날카로운지 자랑이라도 하는 것처럼 아까 잘근잘근 씹어댔던 부분을 앙하고 베어문 바이올렛이 이내 턱에 조금씩 힘을 실기 시작했다.


그녀의 송곳니는 날카로운 값을 톡톡히 했다.

그녀가 턱에 힘을 주기 무섭게 살을 꿰뚫리는 듯한 따끔한 감각이 목덜미를 타고 올라왔으니까.


가만히 내버려두면 그대로   크게 뜯어먹기라도 할 기세라서 이쯤에서 말려야하나 생각하고 있던 순간, 바이올렛이 내 목덜미에 가져다붙이고 있던 입을 떼어냈다.

목덜미를 타고 뭔가가 흐르는 듯한 느낌이 엄습해왔다.


그렇게 흐르는 것이 그녀의 타액인지 아니면 내 피인지 구분이 되질 않았다.

어쩌면 둘다 일지도 모르지.

아무튼 그리 좋은 느낌은 아니라서 슬며시 인상을 찌푸리고 있자니 바이올렛이 살짝 뒤로 물렸던 고개를 다시금 들이밀어왔다. 어느새 다시 벌어지기 시작한 분홍빛 입술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건 입술보다 조금  진한색을 띄고 있는 도톰한 살덩이였다.

그렇게 혀를 입밖으로 쭉 빼문 바이올렛이 그것을 이용해 내 목덜미를 따라 흘러내리고 있던 것을 쭉 핥아올렸다.


그것도 그냥 핥아대는게 아니라 단  방울도 남기지 않겠다는 것처럼 꽤나 집요하게 핥아대는데..


그녀의 혀가 목덜미를 스칠 때마다 상처를 들쑤시는 듯한 따끔따끔한 감각이 미약한 쾌감과 뒤섞인채 목을 타고 올라왔다.  기묘하기 짝이 없는 감각은 몸을  의지와는 상관없이 흠칫흠칫 떨리게 만들기 충분했다.

"으.."

설마 피가 다 멎을 때까지 이 짓을 계속 반복해야 하는 걸까.


바이올렛이  목덜미를 핥짝거리면서 나는 질척하기 짝이 없는 소리를 듣고 있자니 떠오르는 건 그루밍이라는 단어였다.


 왜 동물들이 혀를 이용해서 제 동료나 짝을 핥아주곤 하지 않던가.


그걸 당하면 대충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싶었다.

아니, 그래서 대체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생각이지?


'이거 그냥..'


힘을 나눠준다는 핑계로 자기 욕망을 채우고 있는  같은데..

귓가로 울려퍼지는 숨소리가 워낙 거칠다보니 그런 생각이  들래야  들 수가 없었다.

그런 내 기색이 바이올렛에게 고스란히 전해지기라도 했던 모양이다.


이게 정말 마지막이라는 것처럼 제가 이빨을 이용해 직접 뚫어놓은 곳을 입술을 오므려 쪼옥 소리가 나도록 한  빨아들인 바이올렛이 이내 내쪽을 향해 바짝 들이밀고 있던 몸을 뒤로 물렸다.

기분 탓인지는 몰라도 굉장히 만족스러워하는 것 같은 그런 표정이었다.

"어때요?  달라진  같나요?"


그 상태로 그리 물어오는데 솔직히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래서 한 마디 쏘아붙여주려고 했다.

고작 피좀 핥짝거렸다고 달라지는 게 있을 리 있겠냐고 그렇게 쏘아붙여주려고 했는데..

'어..?'

그 순간 짜기라도 한 것처럼 몸 안쪽에서부터 뭔가가 울컥하고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최근들어 가볍다고 생각했던 몸이 한층 더 가볍게 변하는 걸 느낄  있었다.

그게 내 얼굴 위로 고스란히 드러났던 모양이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괜찮죠?"

그리 묻는 바이올렛의 얼굴에는 득의양양한 표정이 떠올라있었다. 그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더니  향해 싱긋하고 웃어보인 그녀가 은근슬쩍 한 마디를 덧붙였다.


아까 말했듯 표식을   있는 건 일족뿐이니 바이올라에게는 왠만하면 이 사실을 숨기는  좋을 거라는 식의 당부였다.

"알면 분명 난리를 피울테니까요. 덩달아 제 입장도 좀 곤란해질테고."


내가 너한테 이런 식으로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줬는데 설마 그걸 배신하고 날 곤란하게 만들 생각이냐고 은근슬쩍 부담을 안겨주는 듯한 그 말에 표정을 살짝 굳힌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기대해봐도 되겠죠?"


자신이 힘까지 빌려줬는데 부디 형편없는 모습을 보이진 말아달라는 듯 눈까지 접어가며 싱긋 웃어보인 바이올렛이 그대로 뒤로 물러났다.

슬슬 물러날 때라고 판단한 모양.


그리고 그런 그녀의 판단은 참으로 시기적절했다.

바이올렛이 뒤로 물러나기 무섭게 얼마 지나지 않아 바이올라가 모습을 드러냈으니까.

대체 어디로 끌려갔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살짝 빡친 듯한 표정과 은근히 땀에 젖은 듯한 모습은 덤이었다.

그러나 그 모습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발견하자마자 언제 찌푸려져 있었냐는  표정이 활짝 피어났으니까.


그러면서 꼬리가 좌우로 흔들리기 시작하는게 덕분에 그녀가 날 얼마나 좋아하는지를  수 있었다.

"미안, 오래 기다렸지? 갑자기 일이 생겨서.."


그리고 그게 내앞까지 쪼르르 달려온 바이올라가 가장 먼저 꺼내든 말이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오래 기다려야 했던 탓에 혹시나 내가 토라지진 않았을지 걱정이 됐던 걸까.


이래저래 신경이 쓰일 수 밖에 없는 목덜미를 덮고 있던 손을 내리며 바이올라를 향해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녀를 안심시키기 위한 용도였다.

"아니에요. 괜찮아요."

그나저나 대체 중간에 무슨 일이 생겼길래 이리도 오래 걸린 것일까. 궁금했지만 섣불리 묻기는 좀 그랬다. 밝혀도 상관없는 것이었다면 아까 내게 늦은 것에 대한 사과를 건넬 때 설명하듯 덧붙였을테니 말이다.


"아, 참 이거.."


해서 잠자코 침묵을 지키고 있었더니 그런 내 침묵을 뭔가를 기다리기 위한 것이라 해석하기라도 한 것인지 바이올라가 잠시 깜빡했다는 표정을 한채 가슴 쪽에 달린 포켓을 향해 손을 뻗었다. 어디다가 넣어두었나 했더니만 거기다가 보관해뒀던 걸까.


주머니 속으로 들어갔던 그녀의 손이 다시금 모습을 드러낸 순간 그곳에는 혹시라도 구겨질세랴 곱게 접힌 서류 한 장이 쥐어져있었다.

그걸 손에 든채 이걸 정말 건네줘도 되는 건가하는 느낌으로 잠시 망설이던 바이올라가 이내 그것을 내앞으로 들이밀었다.

"자."


그토록 궁금해했던 것이니만큼 얼른 한 번 확인해보라는 것처럼 바이올라가 서류를 움켜쥐고 있는 손을 슬며시 흔들어보였다. 그런 그녀의 얼굴은 살짝이지만 발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민망함이라는 감정으로 말이다.

혹시 그녀가 그것을 누락시켰던 이유하고 관련이 있는 걸까.


팔락-


그녀의 손가락 사이에 끼인 것이 바람에 나부끼며 제법 또렷한 소리를 냈다.

귓가로 울려퍼지는  소리를 들으며 눈앞으로 들이밀어진 것을 받아들어 조심스레 펼쳤다.


바스락바스락하는 소리가 울려퍼지고, 그와 함께 서류의 내용이 눈앞으로 드러난 순간 비로소 이해할 수 있었다.

바이올라가 왜 그리도 민망해했는지를 말이다.

'이게 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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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렛 시점****

대체 서류에 뭐라고 적혀있길래 저런 표정인 걸까.

궁금했다.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한편으로는 그런 자신이 신기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하더라도  남자가 뭘 하던 간에 제국 측에 해가 될만한 일이 아니라면 딱히 관심이 가질 않았었는데 말이다.

그랬던 자신이 이다지도 달라지게 될 줄이야.


물론, 아직까지 그에 대한 의심을 완전히 거둔 상태는 아니었다.

시급하게 취한 연락이 무사히 목표로 하던 사람에게까지 닿아서 내심 궁금했던 부분을 해결한 상태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긴가민가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으니까.


그 이유는 간단했다.


답변이랍시고 돌아온 것이 그만큼 모호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그럴 수도 있는데 아닐 수도 있다는 식이랄까.


한편으로는 그런 식으로 답할 수밖에 없었던 아버지의 입장이 이해가 되기도 했다.

랑인족 내에서 극히 드문 게 바로 쌍둥이니까.


그런만큼 그와 관련된 정보도 적을 수밖에 없겠지.


아버지는 가능하다는 쪽에 무게를 두고 계신 듯 했지만 자신은  모르겠다는 입장이었다.


그래서 기회를 봐서 테스트를 해볼 생각도 어느 정도는 있었다.


그와 단둘이 되자마자 제국에서 매혹의 향수라는 이름으로 불티나게 팔리고 있는 것을 뿌린 채 그를 향해 다가갔던 건 그 때문이었다.


상대방의 이성을 흐릿하게 만들어주는 그 향수의 힘이라면  남자가 숨기고 있을지도 모르는 본성같은  끄집어내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래서 다가갔던 거였는데..

바짝 다가선 순간, 그래서 내심 착각이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이 착각이 아니었다는 게 증명된 순간 다 상관없어져버렸다.

바로 조금 전까지 무엇을 의심하고 있었는지, 무엇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는지 전혀 생각이 나질 않았다.

대신 코를 통해 흘러들어오는 달콤하기 그지없는 향기에 그대로 매혹되어 버렸다.

거기에 휘말려 그를 덮치려던 찰나에 약간이나마 이성을 되찾을 수 있었던 것은  그대로 천운이었다.

만약 그렇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모르긴 몰라도 많은 것이 달라졌겠지. 지금 이렇게 여유롭게 그의 모습을 감상할 수도 없었을 것이고 말이다.

아무튼 그렇게 실낱같은 이성을 간신히 부여잡은채 상황 수습을 위해 노력하다보니 그의 몸에 표식까지 새기게 되었지만 후회하진 않는다.

어차피 언젠가는 이렇게 됐을테니까.


다만..

'좀.. 미안하긴 하네.'


그래, 그게 좀 그럴 뿐이었다.


허나 언제까지고 거기에 매달려있을 생각은 없었다.

그보다 더욱 급한 게 있었으니까.

'어떻게..'


손에 넣는 게 좋을까.

어떤 식으로 하면 손에 넣을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동생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이안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자꾸만 목덜미 쪽을 만지작대는게 눈으로 들어왔다.


아무래도 목덜미 쪽이 신경쓰이는 모양인데..

그렇게 표식이 남아있는 곳을 만지작대는 이안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순간이었을 것이다.

이안이  그러는지 꿈에도 알지 못한채 그저 좋다는 듯 그를 바라보고 있는 동생의 모습이 시야 속으로 파고들어온 순간,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그렇기에 낯설고 기묘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감각이 조금씩 몸을 휘감아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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